에피소드 16 / 16
[몇 년 뒤 / 아침]
전화는 이른 시간에 왔다.
하준이 먼저 받았다.
잠시 뒤 부모의 집으로 달려갔다.
태경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지안은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지안) : “진짜래.”
태경은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하준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하준) : “아버지.”
태경이 아들을 봤다.
(하준) : “노벨상이에요.”
신경재생의학과 인간 신경조직 발달 제어 기술의 기초 원리에 대한 공로.
공식 발표문에는 태경의 이름과,
40여 년 전 그의 연구가 현대 기술에 끼친 영향이 적혀 있었다.
한때 과학계에서 퇴출된 연구자가,
수십 년 뒤 자신이 시작했던 연구로 세계 최고의 과학적 명예를 받게 됐다.
지안은 울었다.
하준도 웃으면서 눈을 닦았다.
태경만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준) : “기분이 어때요?”
태경은 잠시 생각했다.
(태경) : “이상하네.”
(지안) : “그게 끝이야?”
(태경) : “뭘 더 해야 돼?”
지안이 울다가 웃었다.
하준이 물었다.
(하준) : “억울하지 않았어요?”
태경은 고개를 저었다.
(태경) : “뭐가.”
(하준) : “40년 동안.”
태경은 창밖을 봤다.
(태경) : “난 그때 이미 내가 한 일의 값을 치른 거야.”
(하준) : “그래도 결국 아버지가 맞았다고—”
태경이 고개를 저었다.
(태경) : “그건 아니야.”
하준이 멈췄다.
(태경) : “과학이 맞았던 거지. 내가 한 선택까지 맞았던 건 아니야.”
태경은 담담하게 말했다.
자신이 옳았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이해해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그 판결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일이었다.
[몇 달 뒤 / 부모의 옛집]
노벨상 수상 이후,
부모의 이사도 완전히 마무리됐다.
남아 있던 마지막 짐을 정리하던 하준은 다시 창고 상자를 열었다.
이미 여러 번 본 연구노트들이었다.
검증도 끝났고,
공개도 끝났고,
세상은 이제 그 노트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하준은 상자 바닥을 정리하다가 손끝에 다른 감촉이 닿는 걸 느꼈다.
노트 한 권이 더 있었다.
얇고 낡은 검은 표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이었다.
하준은 먼지를 털고 첫 장을 펼쳤다.
수술 직전의 기록이 이어졌다.
D-37.
실험 결과.
D-12.
수술 계획.
D-3.
최종 조직 상태.
D-1.
마지막 점검.
하준은 천천히 다음 장을 넘겼다.
손이 멈췄다.
처음으로 숫자 앞의 부호가 바뀌어 있었다.
D+1.
하준은 그 글자를 오래 바라봤다.
수술 다음 날.
자신이 살아 있던 날.
다섯 살을 넘길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던 아이가,
일단 하루를 더 살아낸 날.
하준은 아래쪽을 봤다.
연구 데이터가 없었다.
혈관화 수치도.
신경신호 기록도.
실험 계획도.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오늘부터 나는 다시 아버지만 하면 된다.’
하준은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창고 밖에서 태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경) : “하준아, 아직 멀었어?”
하준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웃었다.
(하준) : “아니요. 다 됐어요.”
노트를 조심스럽게 덮었다.
D+1.
그날은 위대한 연구가 완성된 날이 아니었다.
한 과학자가 자기 인생의 가장 큰 실험을 끝낸 날이었다.
그리고 한 아버지가,
다시 아버지로 돌아간 날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