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3 / 16
[밤 / 부모의 집 창고]
하준은 밤새 연구노트를 읽었다.
처음에는 과학자로 읽었다.
실험 설계가 맞는지.
데이터가 일관적인지.
당시 기술 수준에서 가능한 기록인지.
그다음부터는 아들로 읽었다.
노트 곳곳에 날짜 대신 숫자가 반복됐다.
D-730.
D-603.
D-412.
D-219.
D-37.
하준은 계산기를 켰다가 곧 내려놓았다.
이미 알 것 같았다.
자신의 다섯 번째 생일.
의사들이 생존 한계로 예상했던 날.
그날까지 남은 숫자였다.
D-730.
자신이 세 살이었을 때.
D-37.
수술을 앞둔 시점.
하준은 한동안 다음 장을 넘기지 못했다.
아버지가 연구할 때마다 자신의 죽음까지 남은 날짜를 적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다음 날 / 거실]
태경은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하준이 낡은 연구노트 한 권을 들고 앉았다.
태경의 시선이 노트에 닿았다.
신문이 천천히 내려갔다.
(태경) : “그걸 찾았구나.”
(하준) : “왜 말 안 했어요?”
태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준) : “이 기술들… 아버지가 먼저 한 거 맞죠?”
(태경) : “노트에 있는 그대로야.”
(하준) : “지금 우리가 쓰는 기술이 여기 있어요.”
태경이 조용히 웃었다.
(태경) : “지금 쓰는 기술은 검증된 기술이지.”
(하준) : “원리가 같잖아요.”
(태경) : “그래도 다른 거야.”
하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준) : “아버지가 수십 년 전에 먼저 했다고요.”
태경은 아들을 바라봤다.
(태경) : “그래서?”
하준이 멈췄다.
(태경) : “그때 내가 한 게 옳아져?”
하준은 대답하지 못했다.
태경이 시선을 돌렸다.
(태경) : “나는 네가 죽을까 봐 규칙을 깼어. 승인도 없이 사람한테 썼고.”
(하준) : “그 사람이 저였잖아요.”
(태경) : “그래서 더 문제였지.”
하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태경은 담담했다.
억울해 보이지 않았다.
명예를 되찾고 싶어 하는 사람의 얼굴도 아니었다.
하준이 물었다.
(하준) : “그럼 이걸 왜 보관했어요?”
태경이 잠시 생각했다.
(태경) : “버리지는 못하겠더라.”
그 말뿐이었다.
[며칠 뒤 / 하준의 연구실]
하준은 노트를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복사본만 만들었다.
원본은 그대로 상자에 두었다.
그날부터 검증을 시작했다.
당시 논문.
병원 기록.
아버지의 연구실 폐쇄 당시 남은 공식 데이터.
수술 전후 MRI.
자신의 현재 영상.
하나씩 맞춰 봤다.
감정적으로 세상에 내놓을 생각은 없었다.
아버지가 천재였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하준 역시 과학자였다.
증명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몇 주 뒤,
그는 믿을 수 있는 동료 연구자 세 명에게 연락했다.
(하준) : “검토해 줬으면 하는 자료가 있습니다.”
(동료) : “무슨 자료인데요?”
하준이 잠시 망설였다.
(하준) : “40년 된 미공개 연구노트입니다.”
그날부터,
아버지가 숨겨 둔 과학이 다시 검증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