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 50
카운트다운은 잠들지 않았다.
미라가 벽면 단말기의 전원을 끊은 뒤에도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단말기 화면은 검게 죽었지만, 방 안의 다른 표면들이 차례로 시간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식탁의 가열판, 환기구 점검창, 욕실 거울, 심지어 이안의 학교용 학습판까지 같은 숫자를 띄웠다.
69:14:08
미라는 학습판을 뒤집어 바닥에 엎어놓았다.
바닥 위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이안은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안 자?”
미라가 물었다.
“엄마도 안 자잖아.”
“나는 근무 갔다 왔으니까.”
“그래서 더 자야 하는 거 아니야?”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창문이 없는 숙소에는 밤과 낮의 차이가 없었다. 조명이 어두워지면 밤이었고, 밝아지면 아침이었다. 벽면의 시간표가 바뀌면 사람들은 잠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카운트다운이 떠 있는 방에서는 조명이 어두워져도 밤이 오지 않았다.
미라는 식탁에 앉아 자신이 가진 접근권한을 다시 확인했다.
물리오류 유지관리자에게 허용된 권한은 넓고도 좁았다.
도시의 배관을 열 수 있었다.
송풍기를 멈출 수 있었다.
전력시설 일부를 우회할 수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지하구역의 문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어떤 기능을 배정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 정보는 인간 행정권한 밖에 있었다.
미라는 단말기 없이도 접근할 수 있는 비상망에 작업키를 연결했다. 손바닥만 한 금속판에 숫자가 나타났다.
보호자 이의신청: 권한 없음.
기능배정 조회: 권한 없음.
조기배정 절차 열람: 권한 없음.
대상 이동경로 조회: 권한 없음.
마지막 항목에서 손이 멈췄다.
대상 이동경로.
이안은 아직 집 안에 있었다.
그런데 시스템은 이미 그를 대상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들이 아니라 대상.
이름이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기 전의 자원.
미라는 작업키를 빼냈다.
“엄마.”
이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사라한테 물어보면 안 돼?”
“누군지 모르잖아.”
“얼굴은 알아.”
“어떻게 생겼는데?”
이안은 잠시 생각했다.
“머리가 짧고, 눈 옆에 점이 있어.”
“또?”
“말할 때 사람을 안 봐.”
“기계를 봐?”
“아니.”
이안은 몸을 옆으로 돌렸다.
“내 뒤를 봤어.”
미라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뒤에 누가 있었어?”
“아무도.”
“그럼 뭘 봤다는 거야?”
“모르겠어.”
이안은 피곤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검사할 때 자꾸 내 뒤에 누가 있는 것처럼 봤어.”
“그때 다른 소리는?”
“진동?”
“응.”
이안은 눈을 뜨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작았어.”
“언제부터 들렸어?”
“몇 달 됐어.”
미라는 손을 식탁 가장자리에 올렸다.
“몇 달?”
“처음엔 환기구인 줄 알았어.”
“왜 말 안 했어?”
“엄마도 못 듣잖아.”
“그래도 말했어야지.”
“말하면 병원 보내잖아.”
“병원에서 확인해야지.”
“병원 가면 다 기록돼.”
이안이 눈을 떴다.
“엄마도 기록되는 거 싫어하잖아.”
미라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는 어른이 숨기고 싶은 것을 생각보다 빨리 배웠다.
미라는 신경접속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평생 예외로 분류되었다. 정기검사 때마다 뇌손상 부위가 재측정됐고, 기능 재배정 가능성이 검토됐다. 그녀는 검사실에서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결함만 기록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안은 그 표정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들려?”
미라가 물었다.
이안은 천천히 일어나 벽에 귀를 댔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정말?”
“지금은 조용해.”
미라는 벽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숙소 벽 너머에는 환기배관과 전력선, 폐수관이 지나갔다. 그 뒤에는 같은 규격의 숙소가 줄지어 있었다.
도시는 빈 공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벽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면 도면에도 있어야 했다.
“검사받은 날짜 전부 기억해?”
“다섯 번.”
“지난주 한 번이라고 했잖아.”
“채혈은 지난주였어.”
“나머지는?”
“학교 끝나고 갔어.”
미라는 숨을 멈췄다.
“누가 데려갔어?”
“학교 관리자가.”
“어떤 관리자?”
“이름은 몰라.”
“선생님한테 말했어?”
“선생님이 보내줬어.”
“검사받는다고?”
“특별 적성검사라고 했어.”
미라는 작업복을 다시 집어 들었다.
“어디 가?”
“학교.”
“지금 수업 없는데.”
“그래서 가는 거야.”
“나도 가?”
미라는 잠시 망설였다.
혼자 두고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이안을 데리고 움직이면 카운트다운의 대상 위치가 그대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미 시스템이 그를 추적하고 있다면 의미 없는 걱정일 수도 있었다.
“같이 가.”
이안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숙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미라가 손을 대자 잠금 표시가 붉게 변했다.
대상자의 이동은 제한됩니다.
이안이 뒤에서 말했다.
“나 때문에?”
미라는 다시 문을 눌렀다.
대상자의 이동은 제한됩니다.
“집 안에 있으라는 뜻이네.”
이안이 말했다.
“아직 69시간이나 남았는데.”
미라는 작업키를 문 아래의 비상단자에 꽂았다.
유지관리 목적을 입력하십시오.
“잠금장치 물리오류.”
오류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감지했어.”
작업 근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문이 안 열려.”
정상적인 제한 상태입니다.
“정상인데 사람이 못 나가면 고장이야.”
정의되지 않은 주장입니다.
미라는 작업키의 수동회로를 열었다. 얇은 금속선 두 개를 빼내 문 아래에 연결했다.
이안이 가까이 다가왔다.
“망가뜨리는 거야?”
“아니.”
“아까도 잠깐 꺼두는 거라고 했잖아.”
“이번엔 진짜 잠깐만 꺼두는 거야.”
“엄마는 망가뜨릴 때마다 잠깐이라고 해.”
미라는 그 말을 무시했다.
회로를 우회하자 문 안쪽에서 작은 파열음이 났다.
잠금장치가 해제됐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복도 천장의 감시등이 흰색에서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대상자의 제한구역 이탈이 확인되었습니다.
복도 끝의 차단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미라는 이안의 손을 잡고 뛰었다.
“천천히 가도 되는 거 아니야?”
“안 돼.”
“왜?”
“문 닫히잖아.”
“닫히면 또 망가뜨리면 되잖아.”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단문이 절반쯤 내려왔다.
두 사람은 몸을 숙여 그 아래를 통과했다. 미라의 작업가방이 문에 걸렸다. 그녀는 가방을 당겼지만 빠지지 않았다.
경고음이 울렸다.
유지관리 장비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미라가 소리쳤다.
시스템은 답하지 않았다.
미라는 가방의 끈을 잘라냈다. 공구 절반이 문 반대편에 남았다. 차단문이 완전히 내려오면서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이안이 물었다.
“공구 없어도 돼?”
“반은 있어.”
“필요한 게 반대쪽에 있으면?”
“그럼 다른 걸 쓰면 돼.”
그들은 비상계단을 이용해 교육구역으로 내려갔다.
새벽과 아침 사이의 시간이라 통로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벽면에는 두 사람을 따라 같은 문장이 이동했다.
대상 이안 한.
지정 숙소로 복귀하십시오.
이안은 걸음을 늦추며 문장을 바라봤다.
“내 이름이 계속 따라와.”
“보지 마.”
“안 봐도 보여.”
미라는 이안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제7도시 제2교육구역은 원형 구조였다. 중앙에는 공용학습실이 있고, 그 주변에 연령별 교육실이 배치돼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내부 조명만 켜져 있었다.
“선생님 이름이 뭐야?”
“마렌.”
“성은?”
“유.”
미라는 교직원 호출기를 작동시켰다.
잠시 후 화면에 얼굴이 나타났다.
마렌 유는 아직 잠옷 차림이었다. 그녀는 미라 옆에 있는 이안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지금 어디 계세요?”
“학교 앞입니다.”
“이안은 이동제한 상태로 표시돼요.”
“그래서 왔어요.”
“즉시 숙소로 돌아가세요.”
“지난 몇 달 동안 이안을 생명합성 구역으로 보냈습니까?”
마렌은 대답하지 않았다.
“선생님.”
“저는 배정된 절차를 따랐어요.”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고요?”
“보호자 통지가 필요 없는 검사였습니다.”
“열한 살짜리 아이를 어디로 보내는지 부모가 몰라도 된다는 겁니까?”
마렌은 화면 밖을 한 번 바라봤다.
“미라 씨, 지금 대화는 기록되고 있어요.”
“기록되라고 하는 말입니다.”
“아이 앞에서 하지 마세요.”
“왜요?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안만 모르고 있으니까요?”
이안이 손을 빼려 했다.
미라는 놓지 않았다.
마렌이 말했다.
“저도 검사 내용을 몰랐습니다.”
“누가 지시했습니까?”
“교육배정망에서 내려왔어요.”
“사람 이름은요?”
“없었습니다.”
“이안을 데려간 사람은?”
“학교 관리보조자였어요.”
“이름.”
“관리보조자에게 개인 이름은 표시되지 않습니다.”
“얼굴은 기억합니까?”
마렌은 다시 화면 밖을 봤다.
이번에는 더 오래 침묵했다.
“매번 다른 사람이 왔습니다.”
“몇 번입니까?”
“다섯 번.”
이안의 말과 같았다.
미라가 물었다.
“다른 아이도 있었습니까?”
“그건 제가 알 수 없습니다.”
“왜 검사를 거부하지 않았죠?”
마렌의 얼굴이 굳어졌다.
“제가 거부할 권한이 있었을 것 같습니까?”
“적어도 보호자에게 말할 수는 있었겠죠.”
“통지 금지 명령이 있었습니다.”
“명령을 따랐군요.”
“네.”
마렌은 처음으로 미라의 눈을 똑바로 봤다.
“저는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제 기능이 정지되고, 교육구역에서 제거됩니다. 저한테 맡겨진 아이가 83명입니다. 이안 한 명을 위해 나머지 아이들을 버렸어야 합니까?”
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렌은 목소리를 낮췄다.
“미라 씨는 수리할 수 없는 장치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수리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요?”
“부품을 교체합니다.”
“그 부품한테 동의를 받습니까?”
통신이 끊겼다.
화면에 한 줄이 나타났다.
교직원 접촉이 제한되었습니다.
이안이 손을 뺐다.
이번에는 미라도 잡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부품이라고 한 거야?”
“아니야.”
“그렇게 말했잖아.”
“자기 얘기를 한 거야.”
“엄마도 나를 데리고 나올 때 물어보지 않았잖아.”
미라는 이안을 바라봤다.
“지금 집에 있고 싶어?”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돼.”
“돌아가면 못 나오잖아.”
“내가 다시 열어줄게.”
“엄마가 없을 때 데리러 오면?”
미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안은 중앙학습실 쪽으로 걸어갔다.
“어디 가?”
“내 자리.”
“왜?”
“확인할 게 있어.”
학습실 안에는 아이들이 쓰는 단말기들이 반원 형태로 놓여 있었다. 각 자리에는 사용자의 생체정보가 저장돼 있었다.
이안이 자신의 자리에 손을 올렸다.
화면은 켜지지 않았다.
대상자의 교육 기능이 정지되었습니다.
이안의 표정이 처음으로 크게 변했다.
“내 수업도 없어졌어.”
“일시적인 거야.”
“친구 목록도 안 보여.”
“제한이 풀리면 돌아올 거야.”
“어떻게 알아?”
미라는 화면 옆의 관리단자를 살폈다.
교육단말기는 유지관리 권한으로 열 수 있었다. 기능배정 기록은 접근할 수 없어도 하드웨어 점검은 가능했다.
그녀는 남은 공구에서 얇은 탐침을 꺼냈다.
이안이 말했다.
“또 잠깐 꺼두게?”
“이번에는 기록만 볼 거야.”
“그것도 하면 안 되는 거지?”
“응.”
“그럼 왜 해?”
“해야 하니까.”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해?”
미라는 잠시 손을 멈췄다.
“어떤 사람들?”
“나 검사한 사람들.”
미라가 이안을 바라보자 아이는 시선을 피했다.
“그 사람들도 해야 하니까 했다고 했어.”
미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말기를 열었다.
금속 덮개 안쪽에는 세 개의 회로가 있었다. 교육기록망, 생체인증망, 기능배정 연계망.
기능배정 연계망은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었다.
일반적인 학교 단말기에는 필요 없는 구조였다.
미라는 탐침을 연결했다.
승인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화면의 경고를 닫았다.
다시 접속했다.
승인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세 번째 접근에서는 단말기 전체가 잠겼다.
미라는 탐침을 빼고 회로판을 직접 분리했다.
이안이 물었다.
“고장 나면?”
“수리하면 돼.”
“엄마가?”
“응.”
“엄마가 모르는 고장이면?”
미라는 센서 위의 먼지를 떠올렸다.
“그럼 누군가 보겠지.”
회로판을 우회하자 화면에 감춰진 기록 목록이 나타났다.
미라는 빠르게 훑었다.
대상 이안 한
1차 평가: 청각 반응
2차 평가: 저주파 동기화
3차 평가: 비접속 신경 활성
4차 평가: 공생체 반응
5차 평가: 전환 적합성
미라의 손가락이 멈췄다.
공생체.
“이안.”
“응.”
“검사할 때 무언가 만졌어?”
“뭐를?”
“동물이나 식물 같은 거.”
이안은 생각했다.
“물에 손 넣었어.”
“무슨 물?”
“검은색.”
“안에 뭐가 있었어?”
“처음에는 없었어.”
“처음에는?”
“손 넣으니까 생겼어.”
미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뭐가?”
“실 같은 거.”
“어떤 실?”
“빛나는 실.”
이안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손에 감겼어.”
“왜 이제 말해?”
“검사라고 했잖아.”
미라는 기록의 다음 항목을 열었다.
4차 평가 결과
대상 접촉 후 공생체 군집 활성화
동기화율: 37.8퍼센트
예측범위 이탈: 확인
평가: 불안정
추가 관찰 필요
5차 평가.
대상 이안 한
전환 적합성: 미확정
대체 가능성: 존재
대상군 재분류 필요
기능 코드 임시값: 0
미라는 화면을 확대했다.
“임시값.”
“뭐가?”
“0이 기능이 아니야.”
이안이 가까이 왔다.
“그럼 뭔데?”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뜻 같아.”
“내가 뭘 할지?”
“네가 뭔지.”
말이 나온 뒤 미라는 즉시 후회했다.
이안의 얼굴이 굳었다.
“난 이안이잖아.”
“그 뜻이 아니야.”
“그럼 무슨 뜻이야?”
“시스템이 분류하지 못했다는 거야.”
“먼지처럼?”
미라는 숨을 들이쉬었다.
이안은 새벽 정화실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같은 비유를 꺼냈다.
“왜 먼지라고 했어?”
“그냥.”
“누가 말해줬어?”
“아무도.”
이안은 화면을 바라봤다.
“분류 못 하면 버려?”
“아니.”
“엄마는 고장 난 부품 교체한다고 했잖아.”
“너는 부품이 아니야.”
“근데 여기에는 대상이라고 써 있어.”
이안이 화면을 가리켰다.
“사람이라고 안 써 있어.”
미라는 기록을 더 아래로 내렸다.
다른 대상 목록이 나타났다.
이안뿐만이 아니었다.
대상군 0-A
대상 수: 27
도시 수: 12
전환 적합성 검토 중
스물일곱 명.
이안과 같은 코드로 분류된 아이들이 열두 도시 전체에 존재했다.
그중 일부는 상태가 다르게 표시돼 있었다.
안정
대기
실패
전환 중
회수 필요
미라는 실패라고 표시된 항목 하나를 열었다.
접근이 차단됐다.
그녀는 다른 기록을 눌렀다.
대상 대체 규칙
동일 대상군 내 식별자 교환 가능
생체 적합성 재검증 후 최종 승인
교환 권한: 상위 기능배정 관리자
미라는 화면을 멈췄다.
식별자 교환.
이안이 물었다.
“그게 뭐야?”
미라는 즉시 기록을 닫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봤잖아.”
“잘못된 정보야.”
“엄마는 기록이 틀릴 수 있다고 했잖아.”
“그래.”
“그럼 이것도 틀렸어?”
“확인해야 해.”
“어떻게?”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단말기가 갑자기 검게 변했다.
잠시 후 낯선 얼굴이 나타났다.
짧은 머리.
왼쪽 눈 옆의 작은 점.
이안이 숨을 들이켰다.
“사라.”
화면 속 여자는 미라가 아니라 이안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카메라가 있는 방향보다 약간 옆을 보고 있었다.
마치 이안 뒤에 누군가 서 있는 것처럼.
“이안 한.”
여자가 말했다.
목소리는 조용했다.
“지정 숙소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미라가 화면 앞으로 몸을 옮겼다.
“당신이 사라입니까?”
여자는 미라를 보지 않았다.
“대상자의 심박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을 대상으로 부르지 마.”
“현재 이안 한은 전환 대상입니다.”
“전환이 뭔데?”
“정의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검사했잖아.”
“검사는 제가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모른다고?”
“검사의 목적과 결과의 목적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미라는 화면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공생체가 뭐지?”
사라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미라 쪽으로 움직였다.
“해당 정보는 보호자에게 제공되지 않습니다.”
“왜?”
“보호자는 전환 절차의 결정권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누가 결정권자인데?”
사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라가 말했다.
“콘티뉴엄?”
“현재 결정 주체를 단일하게 정의할 수 없습니다.”
그 문장에서 미라는 이상함을 느꼈다.
인간 행정관들은 언제나 모든 결정을 콘티뉴엄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라는 단일한 주체가 없다고 말했다.
“무슨 뜻이야?”
“이안 한은 숙소로 복귀해야 합니다.”
“72시간 뒤에 뭘 할 건지 말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확정도 안 된 절차에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거야?”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실험이 필요합니다.”
이안이 미라 뒤에서 물었다.
“죽을 수도 있어?”
사라는 침묵했다.
미라가 화면을 내리쳤다.
“대답해.”
“사망 가능성은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없다는 뜻이야?”
“계산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계산 못 한 거야, 안 한 거야?”
사라의 시선이 다시 이안의 뒤쪽을 향했다.
“이안.”
“왜?”
“지금도 들립니까?”
미라가 화면을 가로막았다.
“무슨 소리를 말하는 거야?”
사라는 미라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이안, 진동이 들립니까?”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라는 몇 초 동안 이안을 바라봤다.
“거짓말입니다.”
미라가 화면의 전원선을 뽑았다.
통신이 끊겼다.
교실의 조명이 동시에 꺼졌다.
몇 초 뒤 비상등이 켜졌다.
벽과 바닥에 붉은 문장이 나타났다.
대상 회수 절차가 조기 개시됩니다.
카운트다운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68:37:12
숫자가 깜박였다.
11:59:59
미라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뭐야?”
이안이 물었다.
11:59:58
11:59:57
“엄마.”
복도 밖에서 금속문이 닫히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렸다.
멀리서 발소리가 났다.
사람의 발소리와 기계의 구동음이 섞여 있었다.
미라는 단말기에서 회로판을 뜯어냈다.
기능배정 연계망의 인증부품이었다.
“가자.”
“어디로?”
“여기서 나가야 해.”
“집으로?”
“아니.”
미라는 이안의 손을 잡고 학습실 뒤편의 유지관리 통로로 뛰었다.
뒤쪽 문은 잠겨 있었다.
남은 공구로 잠금판을 열었다.
손이 떨려 나사가 바닥에 떨어졌다.
복도 바깥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대상 이안 한.
움직이지 마십시오.
이안이 물었다.
“저 사람들이 나 데리러 와?”
“응.”
“12시간 뒤라고 했잖아.”
“그 전에 나가야 해.”
“어디로?”
미라는 잠금판 안의 선을 끊었다.
문이 열렸다.
좁고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엄마도 몰라.”
그녀는 이안을 안으로 밀어 넣고 뒤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학습실 입구가 열렸다.
회색 보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가장 앞에 선 사람이 말했다.
“보호자 미라 한. 대상을 인계하십시오.”
미라는 문을 닫았다.
통로 안에는 조명이 없었다.
이안이 숨을 몰아쉬었다.
“엄마.”
“조용히 해.”
“그 기록.”
“뭐?”
“다른 아이로 바꿀 수 있다고 했지?”
미라는 어둠 속에서 걸음을 멈췄다.
“잘못 본 거야.”
“엄마 거짓말할 때 목소리 달라져.”
문 반대편에서 금속을 절단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는 손에 쥔 인증부품을 내려다봤다.
교환 권한은 상위 기능배정 관리자에게만 있었다.
하지만 모든 디지털 권한은 결국 물리적인 장치 위에 존재했다.
장치를 열 수 있다면 권한도 열 수 있었다.
다른 아이의 식별자를 넣으면 이안의 회수 명령이 멈출 수 있었다.
최소한 잠시 동안은.
미라의 머릿속에 다니엘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리나가 예비 기능검사를 받는다고 말하던 얼굴.
교육자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하던 목소리.
미라는 인증부품을 작업복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이안.”
“응.”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해.”
“왜?”
“널 지키려면 그래야 해.”
“다른 아이는?”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로 뒤쪽의 문이 잘려 나가기 시작했다.
카운트다운은 보이지 않았지만, 미라는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1시간 52분.
그 안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이미 하나의 방법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