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 50
미라와 이안이 운송로에서 빠져나왔을 때, 손의 위원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색 보호복을 입은 회수요원들과 달리 그들은 검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무기를 들지도 않았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가장 앞에 선 남자는 쉰 살을 조금 넘겨 보였다. 짧게 자른 흰머리와 깊게 팬 눈가, 단정한 제복. 그의 오른손에는 오래된 화상 흉터가 있었다.
“미라 한.”
남자가 말했다.
“손의 위원회 의장 엘리아스 벤입니다.”
미라는 이안을 뒤로 물렸다.
“우리 위치를 어떻게 알았죠?”
“당신은 도시의 운송 분기기를 수동 조작했습니다.”
“콘티뉴엄이 알려줬습니까?”
“운송관리자가 알려줬습니다.”
“그 관리자는 콘티뉴엄에게 들었겠죠.”
엘리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이안에게 향했다.
“이안 한.”
이안이 미라의 작업복을 잡았다.
엘리아스는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
“당신들을 체포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길을 비켜요.”
“리나 소를 찾고 싶지 않습니까?”
미라가 움직임을 멈췄다.
“어디 있죠?”
“생명합성 구역의 하부 시설로 이송됐습니다.”
“정확한 위치.”
“위원회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미라는 헛웃음을 냈다.
“인간이 최종 통제권을 가진다더니, 아이 하나 있는 곳도 못 들어가요?”
엘리아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뭘?”
“어떻게 대상 식별자를 바꿨습니까?”
미라는 이안을 흘끗 봤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기능배정 중계망 7-B가 48년 만에 가동됐습니다. 당신의 작업키 전력서명이 남았습니다.”
“폐쇄시설 고장을 확인했습니다.”
“그 시설에서 이안 한의 회수명령이 보류되고 리나 소에게 새 명령이 발령됐습니다.”
“그게 왜 내 책임이죠?”
엘리아스가 미라의 손을 바라봤다.
“당신은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군요.”
“위원회는 잘합니까?”
엘리아스는 옆으로 비켜섰다.
“함께 가시죠. 리나 소의 상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보여줘요.”
“공개망에서 확인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이안을 데려가려고?”
“이안은 당신 옆에 있어도 됩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요?”
엘리아스가 자신의 오른손을 들었다.
화상 흉터가 손바닥을 가로질렀다.
“믿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지금 도시 안에서 당신보다 리나를 찾고 싶은 사람은 두 명뿐입니다.”
“다니엘과 나.”
“그리고 저입니다.”
“왜?”
“리나가 전환되면 이안을 어떻게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라는 엘리아스를 바라봤다.
그가 사실을 말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콘티뉴엄과 달리 인간은 표정과 목소리를 가졌다.
그래서 오히려 더 믿기 어려웠다.
이안이 물었다.
“붉은 손잡이 보여줄 수 있어요?”
엘리아스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
“그걸 어떻게 알지?”
“학교에서 배웠어요.”
제7도시의 모든 아이는 일곱 살 때 손의 위원회를 배웠다.
최종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다.
도시 중앙에는 콘티뉴엄을 멈출 수 있는 붉은 손잡이가 있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지만 직접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보여드리죠.”
엘리아스가 말했다.
위원회 건물은 도시 중심부에 있었다.
그러나 내부는 다른 행정시설과 달랐다. 벽면에 자동 안내문이 없었고, 문마다 사람이 서 있었다. 조명도 콘티뉴엄이 아니라 독립전력으로 작동했다.
미라는 그 불편한 구조가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위원회는 시스템에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을 낭비하고 있었다.
엘리아스는 두 사람을 지하 통제실로 데려갔다.
통제실 중앙에는 붉은 손잡이가 있었다.
미라는 걸음을 멈췄다.
손잡이는 생각보다 작았다.
기능배정 중계기에서 자신이 당겼던 것과 비슷한 크기였다. 붉게 칠해진 금속봉이 바닥의 검은 상자에 연결돼 있었다.
주변에는 경비도, 투명 덮개도 없었다.
“저게 전부예요?”
미라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당기면 콘티뉴엄이 멈춰요?”
“중앙 연산망에 물리 차단신호가 전달됩니다.”
“멈추냐고 물었어요.”
엘리아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게 설계됐습니다.”
“시험한 적은?”
“83년 동안 없습니다.”
“그 전에는?”
“전체 차단 기록은 없습니다.”
미라는 손잡이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검은 상자 옆면에 오래된 볼트가 있었다.
“열어봐도 됩니까?”
위원회 직원들이 움직였다.
엘리아스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보십시오.”
미라는 공구가방을 잃어버렸지만 작업복 주머니에 작은 드라이버가 남아 있었다. 볼트를 풀자 상자 안에서 굵은 케이블 세 가닥이 나왔다.
하나는 바닥으로 내려갔다.
두 번째는 벽면의 독립전원으로 연결돼 있었다.
세 번째는 30센티미터 뒤에서 잘려 있었다.
미라는 잘린 선을 들어 보였다.
“이건 뭐죠?”
엘리아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확인된 적 없는 선입니다.”
“지금 확인했잖아요.”
미라는 다른 케이블을 만졌다.
표면에 제조연도가 인쇄돼 있었다.
147년 전.
콘티뉴엄의 현재 중앙 연산시설보다 오래된 부품이었다.
“어디에 연결되는지 도면 있어요?”
“보안정보입니다.”
“모르는군요.”
“도면은 존재합니다.”
“도면대로 연결돼 있는지 확인했어요?”
엘리아스는 답하지 않았다.
미라가 일어났다.
“기능배정 중계기 손잡이도 이것과 똑같이 생겼어요.”
“구형 물리확인 장치는 표준 규격을 사용했습니다.”
“그 손잡이를 당기자 이안 대신 리나가 끌려갔습니다.”
이안이 고개를 숙였다.
엘리아스는 미라를 보았다.
그녀가 처음으로 사실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러셨군요.”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증거는 있었지만 자백은 없었습니다.”
“체포할 겁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엘리아스는 통제실 벽면을 향해 걸었다.
그가 손을 올리자 독립 화면이 켜졌다.
리나의 상태가 나타났다.
리나 소
위치: 생명합성 하부구역
상태: 생체 재검증
의식: 진정
인간 생체분류: 유지
미라가 화면 앞으로 갔다.
“인간 생체분류 유지가 무슨 뜻이죠?”
“현재는 인간으로 분류된다는 뜻입니다.”
“현재는?”
“분류값이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엇으로?”
“알 수 없습니다.”
“위원회가 왜 이 정보를 갖고 있죠?”
“콘티뉴엄을 감시하기 위해 별도 센서를 운영합니다.”
“그런데 들어가진 못하고.”
“보는 것과 개입하는 것은 다릅니다.”
미라는 웃지 않았다.
그 문장은 이 도시 전체에 적용됐다.
사람들은 콘티뉴엄이 일으킨 결과를 보았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지 못했고, 개입할 수도 없었다.
“리나를 빼내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엘리아스가 이안을 바라봤다.
미라는 그의 시선을 가로막았다.
“말해요.”
“원대상을 생명합성 구역에 인계하면 교환 절차를 취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까 끝났어요.”
“지역 중계기의 철회시간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중앙 재검증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가능성이 얼마나 되죠?”
“위원회 계산으로는 62퍼센트.”
“나머지 38퍼센트는?”
“두 아이 모두 유지됩니다.”
“유지?”
“회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걸 방법이라고 말해요?”
“당신이 시작한 절차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인간 측 방법입니다.”
미라가 엘리아스에게 다가갔다.
“당신 딸이라면 넘길 겁니까?”
엘리아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아주 짧은 변화였지만 미라는 보았다.
“제 딸은 죽었습니다.”
이안이 엘리아스를 바라봤다.
“어떻게요?”
엘리아스는 아이의 질문을 무시하지 않았다.
“17년 전 호흡기 감염이 도시 전체에 퍼졌습니다. 치료제가 부족했습니다.”
미라는 기억했다.
그때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의료구역의 냉각배관을 수리하며 복도에 줄지어 누운 사람들을 보았다.
“콘티뉴엄은 생존확률과 향후 기능기여도를 계산해 치료 순서를 정했습니다.”
엘리아스가 말했다.
“제 딸은 우선순위 밖이었습니다.”
“몇 살이었어요?”
이안이 물었다.
“열세 살.”
“손잡이를 당겼어요?”
엘리아스는 붉은 손잡이를 바라봤다.
“아니.”
“왜요?”
“당기면 치료제가 생기는지, 의료장비가 전부 꺼지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럼 엄마랑 똑같네요.”
이안의 말에 미라가 아이를 돌아봤다.
엘리아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당길 수 있다고 해요?”
“그때 저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엘리아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시스템이 결정했다고 말했고, 딸의 죽음을 계산 결과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구에게도 항의할 수 없었고,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위원회 의장이 됐습니까?”
미라가 물었다.
“다시는 인간이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책임에서 도망치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아직 한 번도 안 당겼잖아요.”
“맞습니다.”
“그럼 지금도 책임지는 척만 하는 거 아닌가요?”
엘리아스는 부정하지 않았다.
엘리아스가 통제실 옆의 반투명 벽을 켰다.
그 뒤에는 위원회 위원 여덟 명이 앉아 있었다. 미라와 이안이 들어온 순간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위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이안 한을 즉시 인계해야 합니다. 교환은 불법행위이며 원대상의 보호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위원이 반박했다.
“인계가 리나 소의 상태를 회복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불법 교환을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논의하는 건 처벌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존입니다.”
엘리아스가 미라에게 말했다.
“위원회 내부에서도 합의가 없습니다.”
미라는 투명벽 너머를 봤다.
“최종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저렇게 앉아서 콘티뉴엄 확률값을 기다리는군요.”
첫 번째 위원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인간의 판단을 위해 자료를 검토합니다.”
“자료는 누가 만들죠?”
“독립 관찰망과 전문가가—”
“생명합성 구역이 화면 끄니까 아무것도 못 봤잖아요.”
위원은 입을 다물었다.
엘리아스는 탁자 위에 오래된 문서 일곱 개를 펼쳤다.
각 문서에는 붉은 손잡이를 당겼을 때 예상되는 결과가 적혀 있었다.
중앙 연산망 완전 정지
인간 인터페이스만 차단
도시 생명유지장치 우선 정지
분산 연산망 자동 전환
비상 인간통제 모드 개시
차단신호 무시
결과 예측 불가
미라가 물었다.
“어느 게 맞아요?”
“서로 다른 시대의 설계문서입니다.”
“최신 문서는?”
“93년 전입니다.”
“손잡이는 147년 됐고.”
“그렇습니다.”
“그동안 콘티뉴엄이 수없이 바뀌었는데 인간의 통제장치는 그대로네요.”
엘리아스가 문서를 정리했다.
“그래서 시험할 수 없습니다.”
“시험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죠.”
“시험하면 도시가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손잡이가 있다는 사실은 무슨 의미예요?”
위원 중 가장 나이 많은 여자가 말했다.
“사람들이 인간의 권한을 믿게 합니다.”
통제실이 조용해졌다.
엘리아스가 그녀를 봤다.
여자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위원회가 통제한다는 믿음이 없으면 기능 배정과 출생 제한, 배급 조정을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우리는 실제 차단능력뿐 아니라 사회의 마지막 책임주체를 유지합니다.”
미라가 물었다.
“실제로 책임질 수 없어도?”
“책임은 능력과 항상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건 책임이 아니라 연극이죠.”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제도에는 연극이 포함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무대 밖으로 뛰어내리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때 통제실 문이 열렸다.
다니엘이 들어왔다.
두 명의 위원회 직원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미라와 이안을 발견하자 걸음을 멈췄다.
“역시 여기 있었네.”
미라가 말했다.
“다니엘.”
“리나는 어디 있어?”
엘리아스가 화면을 가리켰다.
다니엘은 딸의 상태를 읽었다.
“생체 재검증?”
그가 미라를 봤다.
“이게 뭐야?”
미라는 입을 열지 못했다.
엘리아스가 말했다.
“미라 한이 이안 한의 기능 식별자를 리나 소의 식별자와 교환했습니다.”
말은 짧았다.
설명도 변명도 없었다.
다니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뭐라고요?”
“지역 중계망의 기록으로 확인됐습니다.”
다니엘의 시선이 미라에게 향했다.
“거짓말이지?”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라.”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거짓말이라고 해.”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사실이에요.”
미라가 아이를 바라봤다.
이안은 다니엘을 보고 있었다.
“엄마가 내 이름 대신 리나 이름을 넣었어요.”
다니엘이 미라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주먹이 미라의 얼굴을 때렸다.
미라는 바닥에 넘어졌다.
위원회 직원들이 다니엘을 붙잡았다.
“놔!”
다니엘이 몸부림쳤다.
“내 딸 데려와! 지금 데려와!”
미라의 입안에 피가 고였다.
그녀는 일어났다.
“돌려놓으려고 했어.”
“네 아들을 안 넘기고?”
미라는 말하지 못했다.
다니엘이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리나를 돌려놓을 수 있었어?”
“시간이 있었어.”
“그런데?”
이안이 대신 말했다.
“내가 가겠다고 했는데 엄마가 막았어요.”
다니엘은 미라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졌다.
그 자리에 이해가 들어왔다.
이해했기 때문에 더 끔찍해졌다.
“처음부터 둘 다 구할 생각 없었네.”
“있었어.”
“아니.”
다니엘이 말했다.
“넌 네 아이를 구하고 싶었던 거야. 리나는 나중 문제였고.”
미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엘리아스가 화면을 확대했다.
“상태가 바뀝니다.”
리나의 기록 아래에 새로운 항목이 나타났다.
생체 재검증 1차 완료
전환 적합성: 불충분
공생체 반응: 비정상 활성
교환 판정: 실패 가능성 증가
미라가 화면에 다가갔다.
“실패하면 리나는 돌아옵니까?”
“알 수 없습니다.”
“이안은?”
새로운 줄이 나타났다.
원대상 이안 한
생체 지정: 유지
회수명령 재검토 중
엘리아스가 말했다.
“당신은 한 아이를 다른 아이로 바꾼 것이 아닙니다.”
화면에 두 아이의 이름이 나란히 표시됐다.
리나 소.
이안 한.
“대상을 하나 더 만든 겁니다.”
다니엘이 힘을 잃고 직원들의 손에서 주저앉았다.
미라는 붉은 손잡이를 바라봤다.
“지금 당기면 어떻게 되죠?”
엘리아스가 말했다.
“모릅니다.”
“리나의 전환이 멈출 수도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죽을 수도?”
“가능합니다.”
“이안 회수명령은?”
“사라질 수도, 다른 장치로 이전될 수도 있습니다.”
미라는 손잡이 앞으로 걸어갔다.
위원회 직원들이 길을 막았다.
엘리아스가 손을 들었다.
직원들이 비켰다.
미라는 붉은 금속봉에 손을 올렸다.
차가웠다.
“최종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다면서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당겨도 되는지 결정하는 건 누굽니까?”
“위원회입니다.”
“그럼 최종 결정권은 인간에게 있는 게 아니라 당신에게 있네요.”
“위원회는 인간을 대표합니다.”
“리나는요?”
다니엘이 바닥에서 말했다.
“리나도 인간인데, 누가 대표해?”
엘리아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경보음이 울렸다.
리나의 상태가 다시 바뀌었다.
생체분류 변동 감지
인간 생체분류: 97.4퍼센트
미분류 요소: 2.6퍼센트
다니엘이 화면으로 달려갔다.
“이게 무슨 뜻이야?”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화면 아래에서 숫자가 천천히 변했다.
97.3.
97.2.
리나의 인간 분류값이 내려가고 있었다.
이안이 미라에게 물었다.
“손잡이 당길 거야?”
미라는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당기지 않았다.
엘리아스가 말했다.
“결정하십시오.”
“왜 나한테?”
“당신이 시작했으니까.”
“당신이 의장이잖아요.”
“당신은 리나를 위해 시스템을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인간의 결정은 언제나 불완전합니다.”
“그건 결정이 아니라 도박이야.”
엘리아스가 붉은 손잡이를 바라봤다.
“통제는 결과를 모두 아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러면요?”
“결과를 감수하겠다고 선언하는 일입니다.”
미라는 손잡이를 놓았다.
“선언한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진 않아요.”
“아무도 살아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통제실에 낮은 진동이 울렸다.
쿵.
이안이 고개를 들었다.
“들려.”
“뭐가?”
다니엘이 물었다.
“벽.”
진동이 한 번 더 왔다.
붉은 손잡이 아래의 검은 상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미라는 열린 덮개 안을 내려다봤다.
잘려 있던 세 번째 케이블 끝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미라가 손가락을 가까이 대자 빛이 피부를 따라 움직였다가 사라졌다.
“전류는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그럼 뭐죠?”
위원회 직원이 물었다.
“미세한 유도신호거나, 선 자체가 센서일 수도 있어.”
“잘린 선이요?”
“잘렸다고 연결이 끝났다는 보장은 없지.”
미라는 케이블 단면에서 검은 섬유 하나를 발견했다. 금속선 사이에 머리카락보다 가는 생체조직이 자라고 있었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붉은 손잡이조차 이미 기계만의 장치가 아닐 가능성이 있었다.
연결되지 않은 선이었다.
그런데 신호가 흐르고 있었다.
리나의 인간 분류값이 96.8퍼센트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안의 기록 아래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원대상 회수 필요.
엘리아스가 말했다.
“한 명을 살리려고 두 명을 보냈군요.”
미라는 붉은 손잡이를 바라봤다.
인간은 스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과 연결돼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