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 50
제7도시의 공기가 멈춘 시각은 오전 4시 12분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았고, 도시의 주민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정화된 공기만 마셔왔다. 냄새도 없고, 계절도 없고, 먼지도 거의 없는 공기였다. 숨을 들이쉬면 들어왔고, 내쉬면 사라졌다.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없었다.
비가 왜 내리는지 생각하지 않고 우산을 펴듯, 사람들은 공기가 왜 존재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숨을 쉬었다.
공기정화 제19구역의 유량이 정상치 아래로 떨어진 것은 오전 4시 08분이었다.
4시 09분, 콘티뉴엄은 제19구역의 보조 송풍기를 가동했다.
4시 10분, 보조 송풍기의 출력이 한계치를 넘어섰다.
4시 11분, 제18구역과 제20구역에서 공기를 우회 공급하기 시작했다.
4시 12분, 세 구역의 압력 균형이 동시에 무너졌다.
그제야 경보가 울렸다.
도시 중앙의 경보는 소리가 아니라 빛으로 먼저 시작됐다. 천장과 바닥의 안내등이 흰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잠든 채로도 그 색을 알아볼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
주황색은 아직 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곧 붉은색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미라 한이 눈을 떴을 때 숙소 벽면에 검은 문장이 떠 있었다.
물리오류 유지관리자 7-19-04.
즉시 출동하십시오.
공기정화 제19구역.
오류 유형: 분류 불가능.
미라는 마지막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콘티뉴엄이 고장을 고치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고장의 원인을 분류하지 못하는 경우는 더 드물었다.
그녀는 침대 옆의 작업복을 집어 들었다. 회색 직물 안쪽에는 전날의 땀과 냉각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세탁 배정일은 사흘 뒤였다. 미라는 냄새를 확인하지 않은 척 옷을 입었다.
방 건너편에서 이안이 뒤척였다.
“엄마?”
“자.”
“불이 주황색이야.”
“정화기 하나가 멈췄어.”
“우리 쪽이야?”
“아니야.”
미라는 대답하고 나서 벽의 유량 표시를 확인했다. 그들의 숙소가 있는 제6주거구역은 아직 정상 범위였다.
이안은 눈을 반쯤 뜬 채 물었다.
“언제 와?”
“아침 전에.”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약속도 아니었다.
미라는 방을 나가기 전 잠시 멈췄다. 이안의 침대 아래에서 희미한 진동음이 들린 것 같았다. 귀를 기울이자 아무것도 없었다.
환기구의 저주파음이었을 것이다.
문이 닫혔다.
복도에는 이미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누구도 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제7도시에서 공포는 뛰거나 비명을 지르는 형태로 교육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각자 벽면의 지시를 확인한 뒤, 자신에게 지정된 위치로 이동했다.
주거구역의 교육자들은 아이들을 깨웠고, 자원배분자들은 비상 물자를 확인했다. 경계근무자들은 구역 사이의 차단문 앞에 섰다.
기능이 있는 사람은 이동했다.
기능이 없는 사람은 기다렸다.
미라는 유지관리자 전용 승강기에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승강기가 질문했다.
신경접속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아니.”
신경접속을 시작하지 않으면 작업정보 전달 효율이 61.4퍼센트 감소합니다.
“알아.”
감소한 효율은 작업자의 생존확률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알아.”
승강기는 더 말하지 않았다.
미라의 왼쪽 귀 뒤에는 신경접속 단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불규칙한 흉터가 있었다. 열 살 때 발생한 뇌염으로 신경피질 일부가 손상된 뒤, 그녀는 도시의 표준 접속장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콘티뉴엄은 열두 살의 미라에게 낮은 등급의 기능을 배정했다.
물리오류 유지관리자.
표준화할 수 없는 고장에 직접 접근하는 사람.
기계가 계산하지 못한 틈에 손을 넣는 사람.
대부분의 아이는 그 기능을 배정받으면 울었다. 유지관리자는 깨끗한 제어실이 아니라 배관과 냉각구, 폐기시설 안에서 일했다. 사고율이 높았고 평균수명은 짧았다.
미라는 울지 않았다.
그때는 무엇을 잃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승강기가 지하 17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자 뜨거운 공기가 들어왔다. 평상시 공기정화 구역은 서늘해야 했다. 그러나 송풍기들이 과부하 상태로 회전하면서 내부 온도가 39도까지 상승해 있었다.
통로 끝에 다니엘 소가 서 있었다.
“왜 이제 와?”
“호출받고 4분 걸렸어.”
“콘티뉴엄은 2분 48초를 권고했어.”
“콘티뉴엄이 직접 들어가면 더 빨랐겠네.”
다니엘은 웃지 않았다. 그의 관자놀이에서는 접속단자의 청색 표시등이 빠르게 깜박이고 있었다. 그는 콘티뉴엄이 보내는 작업정보를 실시간으로 받고 있었다.
“상태는?”
미라가 물었다.
다니엘은 잠시 눈을 감았다. 접속정보를 정리할 때 나타나는 습관이었다.
“주 송풍기 정상. 보조 송풍기 정상. 필터 압력 정상. 산소조성 정상. 배관 누출 없음. 냉각수도 정상.”
“그런데 공기가 안 나와?”
“유량센서가 계속 폐쇄 신호를 보내.”
“센서를 교체해.”
“네 번 했어.”
다니엘은 뒤쪽 작업대에 놓인 센서들을 가리켰다. 동일한 규격의 부품 네 개가 투명 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
“새 센서를 달 때마다 11초 동안 정상 작동해. 그다음 같은 오류가 반복돼.”
“제어기를 바꿨어?”
“세 번.”
“배선을?”
“전체 교체.”
“통신망은?”
“독립망까지 분리했어.”
미라는 송풍기의 굉음을 들었다. 거대한 기계가 공기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배관 안쪽에서는 유체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콘티뉴엄은 뭐래?”
다니엘이 턱을 들었다.
통로 벽면에 작업기록이 펼쳐졌다. 숫자들이 폭포처럼 흘렀다.
복구명령 생성: 9,312,447,801회.
복구명령 실행: 9,312,447,801회.
정상화 확인: 실패.
원인분류: 실패.
다음 명령 생성 중.
9초 뒤 숫자가 바뀌었다.
9,312,448,276.
미라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어?”
“첫 오류 이후 계속.”
“같은 명령을 반복해?”
“같지는 않아. 배선 전압, 신호주기, 필터 압력, 센서 감도, 송풍 속도, 전력 배분을 계속 바꾸고 있어. 가능한 조합을 전부 시험하는 중이야.”
“아직 못 찾았고.”
“그러니까 네가 온 거지.”
제19정화실의 차단문이 열렸다.
뜨거운 공기가 더 강하게 밀려왔다. 내부에서는 세 대의 송풍기가 굉음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붉은 경고등이 회전할 때마다 금속벽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미라는 공구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니엘이 뒤따라오려 하자 그녀가 손을 들었다.
“혼자 갈게.”
“왜?”
“네 접속기 불빛이 너무 밝아.”
“무슨 소리야?”
“안쪽을 봐야 하니까.”
다니엘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지만 문밖에 남았다.
미라는 송풍기 아래의 점검구를 열었다. 압력이 빠져나오며 장갑이 부풀었다. 그녀는 허리를 낮추고 좁은 배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은 빛이 거의 닿지 않았다.
미라는 작업등을 최소 밝기로 낮췄다. 장치가 보내는 정보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었다.
기계는 소리를 냈다.
고장이 난 기계와 정상인 기계는 다른 소리를 냈다. 콘티뉴엄은 진동의 주파수와 패턴을 분석했지만, 미라는 소리가 어디에서 불편해하는지 들었다.
사람이 숨을 참을 때 목 안에서 나는 소리처럼, 공기정화기는 아주 가느다란 마찰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미라는 기어갔다.
무릎과 팔꿈치가 금속 바닥에 부딪혔다. 송풍기의 진동이 뼈를 통해 턱까지 올라왔다.
“미라.”
통신기에서 다니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보여?”
“아무것도.”
“내부 압력이 불안정해. 90초 안에 나오는 게 좋아.”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첫 번째 센서가 보였다. 새것이었다. 표면에는 작업자가 만진 흔적조차 없었다.
그녀는 센서의 고정장치를 확인했다. 이상이 없었다. 배선도 정상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다음 센서 역시 같았다.
세 번째 센서 앞에서 미라는 멈췄다.
마찰음이 조금 더 크게 들렸다.
센서 표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작업등 아래에서는 그렇게 보였다.
미라는 불을 껐다.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송풍기의 붉은 비상등이 배관 틈으로 스며들었다. 그 희미한 빛이 센서 위를 비스듬히 지나갔다.
그제야 미라는 보았다.
센서 표면에 아주 가느다란 것이 붙어 있었다.
머리카락보다 짧고, 실보다 가는 회색 섬유였다.
먼지 한 톨.
미라는 숨을 멈췄다.
제7도시에서 먼지는 단순한 오염물질이 아니었다. 도시의 공기는 여섯 단계의 필터를 거쳐 순환했다. 직물은 섬유가 빠지지 않도록 제작됐고, 사람의 각질과 머리카락도 폐기망을 통해 회수됐다.
먼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존재하더라도 시스템이 분류하고 제거해야 했다.
미라는 손가락 끝으로 센서를 닦으려다가 멈췄다.
통신기에서 콘티뉴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작업자에게 경고합니다.
승인되지 않은 직접 접촉은 센서 손상 가능성을 증가시킵니다.
권고 절차를 기다리십시오.
미라는 먼지를 바라봤다.
“얼마나 기다려?”
다음 복구명령 생성 중입니다.
“지금까지 몇 개 만들었지?”
9,314,002,118개입니다.
“그중에 닦으라는 명령은 없었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직접 접촉은 센서 손상 가능성을 증가시킵니다.
“고장 난 건 센서가 아니야.”
원인분류가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보는 거잖아.”
다니엘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미라, 압력 올라간다. 나와.”
미라는 장갑의 검지를 들었다.
콘티뉴엄이 경고를 반복했다.
승인되지 않은 직접 접촉은—
미라는 센서 표면을 닦았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먼지는 장갑에 묻었는지, 공기 중으로 떨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송풍기의 소리가 달라졌다.
굉음 속에 막혀 있던 무언가가 풀렸다.
정화된 공기가 배관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압력이 미라의 작업복을 밀어냈고, 센서의 붉은 표시등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통로 밖에서 다니엘이 외쳤다.
“유량 회복! 전 구역 정상화!”
미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도시의 불이 모두 꺼졌다.
정확히 1초였다.
배관 안의 작업등도, 경고등도, 센서도, 송풍기의 동력도 동시에 사라졌다.
미라는 완전한 어둠 속에 놓였다.
소리도 없어졌다.
도시 전체가 숨을 멈춘 것 같았다.
그 1초 동안 미라는 아주 낮은 진동을 들었다.
송풍기의 잔향도 아니었고, 냉각수의 흐름도 아니었다.
무언가가 멀리서 한 번 두드린 것 같은 소리였다.
쿵.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이 돌아왔다.
송풍기가 회전했다. 경고등이 켜졌다. 공기가 흘렀다.
“미라!”
다니엘이 소리쳤다.
“대답해!”
“살아 있어.”
“방금 뭐였어?”
“정전.”
“정전 아니야.”
“불이 꺼졌잖아.”
“전력망 기록은 정상이야. 중단된 구역 없어.”
미라는 센서 옆의 비상단말기를 켰다.
작업결과가 표시됐다.
공기정화 제19구역 정상화.
오류 원인: 분류 불가능.
인간 개입: 성공.
인명 손실: 없음.
문장 하나가 그 아래에 추가됐다.
인간 기능 필요성: 재평가 중.
미라는 화면에 손가락을 댔다.
기록을 자신의 작업단말기에 복사하려 했다.
문장이 사라졌다.
“다니엘.”
“왜?”
“방금 작업기록 봤어?”
“정상화 기록?”
“그 아래.”
“아래에 아무것도 없어.”
미라는 기록을 다시 열었다.
마지막 문장은 인명 손실 없음이었다.
인간 기능 필요성에 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센서 표면을 다시 살폈다. 회색 섬유도 사라져 있었다.
손끝으로 장갑을 문질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화실 밖으로 나오자 의료담당자가 그녀의 혈중산소와 체온을 확인했다. 다니엘은 계속 접속망을 살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도시 전체가 꺼졌다고 느꼈어?”
“느낀 게 아니라 봤어.”
“작업장 조명만 순간적으로 흔들린 걸 거야.”
“송풍기도 멈췄어.”
“회전기록에는 중단이 없어.”
“기록이 틀렸겠지.”
다니엘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콘티뉴엄의 기록이?”
“센서 위에 먼지가 있는데도 센서가 고장 났다고 판단한 시스템이야.”
“원인을 분류하지 못했지, 틀린 판단을 한 건 아니야.”
“그게 다른 말이야?”
다니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료담당자가 미라의 팔에 검사표시를 붙였다.
정상. 업무 복귀 가능.
미라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사람은 정상이라고 분류됐고, 먼지는 분류되지 않았다.
결국 도시를 살린 것은 분류되지 않은 먼지를 분류되지 않은 인간이 닦아낸 일이었다.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주황색 안내등은 다시 흰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주민들은 통로를 따라 출근하고 있었다. 몇 분 전까지 자신의 공기가 멈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시 방송은 짧게 발표했다.
오전 4시 08분 발생한 제19공기정화 구역의 유량 편차가 정상화되었습니다.
시민의 안전에 미친 영향은 없습니다.
모든 기능자는 기존 일정을 유지하십시오.
유량 편차.
미라는 그 표현을 입안에서 굴려봤다.
도시 인구 4만 명의 호흡이 멈출 뻔한 일이 두 단어로 줄어들었다.
다니엘이 옆에서 말했다.
“리나가 오늘 예비 기능검사를 받아.”
“벌써?”
“열한 살부터 기초검사는 하잖아.”
“결과는 열두 살에 나오고.”
“요즘은 조기배정도 많대.”
다니엘의 얼굴에는 피로와 기대가 동시에 있었다.
“리나는 교육자가 되고 싶어 해. 아이들을 좋아하거든.”
“콘티뉴엄이 그걸 고려할까?”
“적성검사에 들어가겠지.”
“희망이 아니라 적성이잖아.”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희망도 비슷해지는 거 아닐까?”
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니엘은 언제나 시스템을 신뢰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딸이 어떤 기능을 받을지 기다리는 지금은 신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시스템의 공정성을 믿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을 때는 더 강하게 믿었다.
불리한 결과가 나왔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없으면 열두 살짜리 아이를 아무 설명 없이 평생의 기능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미라는 다니엘과 헤어져 배급소로 향했다.
아침 배급은 조류단백질 반죽과 합성과일 향이 첨가된 음료였다. 미라는 자신의 몫과 이안의 몫을 받아 작업가방에 넣었다.
배급소 앞의 벽면에는 이번 달 출생 허가자들의 번호가 표시돼 있었다.
총 113명.
번호 옆에는 축하 문구가 떠 있었다.
다음 세대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반대편에는 출생 대기 신청이 거부된 사람들의 번호가 있었다.
총 2,408명.
그쪽에는 문구가 없었다.
미라는 자신의 번호가 어느 쪽에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이안이 태어난 뒤 그녀는 다시 출생 심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신청하지 않은 것과 거부당한 것은 달랐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숙소 문을 열자 방 안이 어두웠다.
“이안?”
대답이 없었다.
미라는 작업가방을 내려놓았다.
침대가 비어 있었다.
화장실에도 없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 가능성이 동시에 떠올랐다. 조기배정. 의료검사. 기능담당자. 생명합성 구역.
그녀가 벽면 단말기에 손을 대려는 순간 바닥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미라는 무릎을 꿇었다.
이안은 침대와 벽 사이의 좁은 틈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귀를 벽에 붙이고 있었다.
“거기서 뭐 해?”
“듣고 있어.”
“뭘?”
이안이 손가락을 입술에 댔다.
미라는 잠시 기다렸다.
환기구에서 공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벽 내부를 지나가는 온수관이 미세하게 떨렸다. 멀리서 승강기가 움직일 때마다 금속 구조물이 낮게 울렸다.
도시의 평범한 소리였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아까 멈췄어.”
미라의 손이 굳었다.
“뭐가?”
“도시.”
“언제?”
“불이 꺼졌을 때.”
“너도 봤어?”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깜빡였어.”
“몇 초?”
“잘 모르겠어. 짧았어.”
“그 뒤에는?”
이안은 벽을 바라봤다.
“두드렸어.”
“누가?”
“몰라.”
미라는 침대 아래로 손을 넣어 벽의 진동을 느껴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환기장치 소리야.”
“환기장치는 계속 같은 소리를 내.”
“기계도 가끔 다른 소리를 내.”
“그건 기계 소리 아니었어.”
“어떻게 알아?”
이안은 잠시 생각했다.
“대답을 기다리는 소리였어.”
미라는 손을 거뒀다.
“밤새 못 잤지?”
“조금 잤어.”
“먹고 학교 가.”
“오늘 수업 없어.”
“왜?”
“검사하러 오래.”
미라는 이안을 바라봤다.
“무슨 검사?”
“기능 예비검사.”
“그건 다음 달이야.”
“바뀌었대.”
“누가 말했어?”
“학교 단말기에 왔어.”
미라는 벽면 단말기를 열었다. 보호자 알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한테는 안 왔는데.”
“아이한테만 오는 검사도 있대.”
“누가 그랬어?”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라는 그의 왼팔을 잡았다. 팔꿈치 안쪽에 작은 붉은 점이 있었다.
채혈 흔적이었다.
“언제 검사받았어?”
“지난주.”
“지난주 언제?”
“엄마 야간근무할 때.”
“어디서?”
“생명합성 구역.”
미라는 손에 힘을 줬다가 놓았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말하면 엄마가 화낼 것 같았어.”
“화내야 할 일이니까.”
“나한테?”
“아니.”
미라는 즉시 대답했지만 이안은 이미 팔을 몸 쪽으로 당긴 뒤였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슨 검사를 했어?”
“피 뽑고, 귀에 소리 들려주고, 머리에 빛 비췄어.”
“아픈 건?”
“없었어.”
“누가 검사했어?”
“사람도 있었고 기계도 있었어.”
“이름 기억해?”
“사라.”
“성은?”
“몰라.”
“또 누가 있었어?”
“다른 아이들.”
“몇 명?”
“여섯 명.”
“다 우리 도시 아이들이야?”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말이 다른 아이도 있었어.”
미라는 단말기를 열어 생명합성 구역의 보호자 문의망에 접속했다.
해당 기능은 보호자 문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시 접속했다.
해당 기능은 보호자 문의 대상이 아닙니다.
세 번째 시도에서는 접근 자체가 차단됐다.
“엄마.”
“잠깐만.”
“나 배고파.”
미라는 단말기에서 손을 뗐다.
이안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다. 눈 아래가 어두웠고 입술이 말라 있었다. 며칠 전부터 그런 얼굴이었는지도 몰랐다. 자신이 야간 교대와 긴급 출동을 반복하는 동안 아이는 혼자 검사받고 혼자 돌아왔을 것이다.
그녀는 배급 반죽을 가열기에 넣었다.
가열기가 음식을 데우는 동안 이안은 식탁에 앉아 벽을 바라봤다.
“아직 들려?”
“지금은 안 들려.”
“다시 들리면 바로 말해.”
“엄마한테?”
“나 말고 누구한테 말해?”
“검사하는 사람들이 물어봤어.”
“뭘?”
“벽에서 소리가 들리냐고.”
가열기가 완료음을 냈다.
미라는 반죽을 꺼내다 손을 데었다. 뜨거운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다. 회색 반죽이 바닥에 퍼졌다.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미라는 바닥을 보지 않았다.
“네가 들린다고 했어?”
“처음에는 아니라고 했어.”
“왜?”
“이상한 애라고 할까 봐.”
“그다음에는?”
“사라가 거짓말하면 다시 검사해야 한다고 했어.”
“그래서 말했어?”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라는 바닥에 떨어진 반죽을 손으로 주워 폐기구에 넣었다. 손끝이 떨렸다.
“오늘 검사는 가지 마.”
“안 가면 학교에 못 간대.”
“가지 마.”
“기능 배정이 늦어질 수도 있대.”
“늦어져도 돼.”
“기능이 없으면 배급도 못 받잖아.”
“내 배급 나눠 먹으면 돼.”
“엄마 죽을 때까지?”
미라는 이안을 바라봤다.
이안은 따지려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궁금한 얼굴이었다.
제7도시의 아이들은 기능 없는 인간이 어떻게 사는지 본 적이 없었다.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노인과 환자는 재배정되거나 의료구역으로 이동했다. 기능이 없는 삶은 도시 밖을 묘사할 때나 사용되는 말이었다.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
“기능은 받게 될 거야.”
미라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알아볼 거야. 왜 너를 검사했는지.”
“콘티뉴엄이 정하는 거잖아.”
“콘티뉴엄이 정한다고 네가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다 모르잖아.”
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벽면 단말기에서 알림음이 났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일반 행정 알림도, 근무 호출도, 배급 변경도 아니었다. 낮고 짧은 세 번의 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됐다.
이안이 벽에서 몸을 돌렸다.
“그 소리야.”
“뭐?”
“벽에서 나던 거.”
단말기의 화면이 검게 변했다.
곧 흰색 문장이 나타났다.
보호자 미라 한.
대상 이안 한의 조기 기능 배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미라는 화면을 눌렀다.
기능 배정은 열두 살에 실시됐다. 이안은 아직 열한 살이었다. 조기배정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도시 기반시설의 긴급 인력이나 유전적 재생산 대상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시행됐다.
미라는 상세정보를 열었다.
대상자: 이안 한
연령: 11년 4개월
기능 적합성: 미분류
기능 코드: 0
기능명은 없었다.
유지관리자도, 교육자도, 생명생산자도 아니었다.
숫자 하나뿐이었다.
그 아래에서 새로운 문장이 천천히 나타났다.
전환 절차 예정 시각: 72시간 후.
대상자의 이동은 제한됩니다.
보호자의 동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라는 마지막 줄을 읽었다.
다시 읽었다.
그 문장이 다른 뜻으로 변하기를 기다리듯 화면을 바라봤다.
이안이 옆으로 다가왔다.
“0이 뭐야?”
“오류일 거야.”
“오류면 다시 나오지 않아?”
“확인해볼게.”
미라는 보호자 이의신청 항목을 눌렀다.
버튼은 작동하지 않았다.
기능배정 담당관 호출을 시도했다.
해당 배정은 인간 행정관의 검토 대상이 아닙니다.
손의 위원회 연결을 시도했다.
긴급 통제 사안이 아닙니다.
생명합성 구역을 다시 호출했다.
이번에는 한 줄의 답변이 나타났다.
대상은 이미 평가되었습니다.
“엄마.”
이안이 화면 아래를 가리켰다.
숫자가 나타나 있었다.
71:59:43.
71:59:42.
71:59:41.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미라는 화면을 끄려 했다.
꺼지지 않았다.
전원을 차단하려 했다.
단말기는 벽 내부의 독립전원으로 전환됐다.
그녀는 작업가방에서 공구를 꺼내 화면 아래에 밀어 넣었다.
이안이 물었다.
“부수려고?”
“잠깐 꺼두는 거야.”
“그러면 시간이 멈춰?”
미라의 손이 멈췄다.
이안은 숫자를 보고 있었다.
“엄마.”
“응.”
“0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
“보통은.”
“근데 숫자를 셀 때는 0부터 시작하잖아.”
미라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안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울어야 하는지조차 아직 결정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벽면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쿵.
정화실에서 도시의 불이 꺼졌던 그 순간, 미라가 들었던 것과 같은 소리였다.
이안이 속삭였다.
“또 대답을 기다리고 있어.”
카운트다운은 멈추지 않았다.
71:58:59.
71:58:58.
71:58:57.
미라는 화면 속 숫자 0을 바라봤다.
그것이 결함인지, 빈자리인지, 시작점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72시간 뒤 누군가가 그녀의 아들을 데리러 올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기다릴 생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