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2 / 16
[약 40년 후 / 신경재생의학센터]
하준은 회진을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가운 주머니에는 환자 명단이 구겨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신경재생 치료 관련 논문이 여러 편 펼쳐져 있었다.
쉰 살에 가까워진 그는 의사이자 연구자였다.
어릴 때 자신이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승인되지 않은 신경 오가노이드 조직을 이식했다는 사실도.
그 일 때문에 아버지가 과학계를 떠났다는 것도.
하지만 정확히 어떤 기술이 사용됐는지는 몰랐다.
태경은 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하준) : “아버지는 그때 뭘 한 거예요?”
젊은 시절 몇 번 물은 적이 있었다.
태경의 답은 늘 비슷했다.
(태경) :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지.”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하준도 더 캐묻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충분히 복잡한 질문이었으니까.
[주말 / 부모의 집]
태경과 지안은 이제 노인이 되어 있었다.
계단이 많은 오래된 집에서 지내기 힘들어지자,
하준은 두 사람에게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자고 오래전부터 권했다.
마침내 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경) : “네 엄마가 계단 오르는 걸 힘들어하더라.”
(지안) : “당신 무릎이 더 문제야.”
하준이 웃었다.
(하준) : “둘 다 문제니까 이번에 같이 나가는 겁니다.”
주말마다 가족이 모여 짐을 정리했다.
책.
오래된 옷.
사진 앨범.
태경이 과학계를 떠난 뒤 한 번도 열지 않았던 상자들도 나왔다.
하준은 대부분 묻지 않고 버리거나 옮겼다.
태경이 원하지 않는 기억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후 / 창고]
창고 가장 안쪽에서 낡은 상자 하나가 나왔다.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하준이 상자를 들어 올리다가 무게에 놀랐다.
뚜껑을 열자 검은색 연구노트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표지에는 날짜 대신 숫자가 적혀 있었다.
D-730.
D-641.
D-412.
하준의 손이 멈췄다.
그 숫자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맨 위의 노트를 펼쳤다.
익숙한 글씨였다.
아버지의 글씨.
신경발달 신호.
혈관화.
회로 연결.
성장 후 동반 발달.
하준은 몇 장을 넘기다가 숨을 멈췄다.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세포는 날짜를 모른다.’
그 아래.
‘세포에게 다음 시간이 왔다고 계속 속인다.’
하준은 연구자였다.
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하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그 원리는 현재 신경재생의학에서 사용하는 발달 유도 기술과 너무 닮아 있었다.
문제는 날짜였다.
40년 전.
하준은 다른 노트를 꺼냈다.
이번에는 혈관화 관련 기록이었다.
몇 년 전 혁신적인 기술로 발표됐던 방식과 비슷한 발상이 적혀 있었다.
다음 노트.
또 있었다.
신경회로 통합.
장기 생존성.
숙주와의 양방향 연결.
하준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자 안에서 노트를 하나씩 꺼냈다.
밖이 어두워지는 것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