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오래 기다린 아이

에피소드 1 / 16

[아침 / 대학병원 연구동]

태경은 회의실 맨 앞에 앉아 있었다.

스크린에는 인간 뇌 오가노이드의 성장 데이터가 떠 있었다.

사람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아주 작은 신경조직.

완전한 뇌는 아니지만, 실제 인간 뇌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부를 실험실 안에서 따라가게 만든 조직.

그것이 뇌 오가노이드였다.

연구원 한 명이 슬라이드를 넘겼다.

(연구원) : “배양 11개월째부터 전기적 활동이 빠르게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혈관 유사 구조도 이전 배치보다 안정적입니다.”

태경은 화면을 보다가 손을 들었다.

(태경) : “이식 실험 확대안은 보류합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연구원) : “교수님, 동물 이식 데이터는 이미—”

(태경) : “살아남는 것과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태경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태경) : “우리는 아직 이 조직이 숙주 뇌와 얼마나 안정적으로 연결되는지 충분히 모릅니다. 혈관이 붙는다고 끝도 아니고, 전기신호가 나온다고 정상도 아닙니다.”

다른 연구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연구원2) : “그래도 임상 가능성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속도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태경은 고개를 저었다.

(태경) : “환자는 우리가 모르는 걸 대신 확인해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늘 그랬다.

빠른 결과보다 순서.

가능성보다 검증.

연구실에서는 답답할 만큼 원칙적인 사람으로 통했다.

회의를 끝낸 태경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지안에게서 사진 한 장이 와 있었다.

초음파 사진.

작은 글씨가 함께 붙어 있었다.

‘오늘도 잘 붙어 있대.’

태경의 표정이 처음으로 풀렸다.

둘은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렸다.

처음 몇 년은 “때가 되면 생기겠지”라고 웃었다.

그다음부터는 병원 일정이 달력의 중심이 됐다.

검사.

주사.

채취.

이식.

기다림.

실패.

다시 기다림.

지안은 임신 테스트기를 서랍 깊숙이 넣었다가 다시 꺼내는 일을 여러 번 반복했다.

태경은 그런 지안을 보면서도 쉽게 희망을 말하지 못했다.

괜히 말했다가 또 무너지게 할까 봐.

그래서 임신 12주가 지나고서도 아기용품 하나 사지 않았다.

20주가 넘어서야 둘은 처음으로 아주 작은 양말 한 켤레를 샀다.

(지안) : “이걸 진짜 신을 사람이 생기는 거지?”

(태경) : “응.”

태경은 대답하면서도 양말을 한참 바라봤다.

믿기가 어려웠다.

[밤 / 집]

임신 막달.

지안은 소파에 기대 앉아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지안) : “이름은 하준이 진짜 제일 나아?”

(태경) : “당신이 제일 좋아하잖아.”

(지안) : “당신은?”

(태경) : “난 당신이 안 바꾸면 됐어.”

지안이 웃었다.

그 순간 배가 크게 움직였다.

태경이 손을 올렸다.

안쪽에서 작은 발이 손바닥을 밀어냈다.

태경은 말없이 웃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아이였다.

그래서 둘 다 당연히 생각했다.

이제부터는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열이틀 뒤 / 대학병원 진료실]

의사는 모니터에 신생아 뇌 MRI를 띄워 놓고 있었다.

태경은 한눈에 알아봤다.

대뇌피질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얇았다.

형성 자체가 충분하지 않은 영역도 넓었다.

(의사) : “선천성 중증 뇌기형입니다.”

지안이 태경을 봤다.

태경은 화면만 보고 있었다.

(지안) : “치료할 수 있죠?”

의사가 잠시 말을 골랐다.

(의사) : “지금 의학으로 손상된 뇌를 정상 조직으로 바꾸는 치료는 없습니다.”

지안의 입술이 떨렸다.

(의사) : “발달 지연과 반복적인 경련 가능성이 높고, 심한 경우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태경) : “어느 정도까지 봅니까?”

의사는 태경이 의사라는 걸 알 듯 더 직접적으로 말했다.

(의사) : “통계적으로는 다섯 살 전후가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다섯 살.

태경은 그 숫자를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집 서랍에는 아직 뜯지도 않은 작은 양말이 있었다.

하준은 이제 겨우 태어난 지 열이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