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 / 16
[새벽 / 연구실]
태경은 인간 신경발달 자료를 다시 쪼개 보기 시작했다.
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건 단순한 시간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특정 성장 신호가 올라왔다.
그다음에는 다른 신호가 사라졌다.
산소 요구량이 달라졌고,
주변 지지세포의 비율이 바뀌었다.
전기적 활동도 단계적으로 복잡해졌다.
태경은 같은 자료를 수십 번 넘겨보다가 손을 멈췄다.
세포는 달력을 보지 않는다.
자기가 며칠째인지 모른다.
주변 환경이 달라지면,
다음 단계가 왔다고 받아들인다.
태경은 메모장에 적었다.
‘세포는 날짜를 모른다.’
그 아래에 썼다.
‘발달은 시간 자체가 아니라 순서의 누적일 수 있다.’
손이 빨라졌다.
만약 정상 발달 과정에서 필요한 신호를 더 촘촘한 간격으로 바꿔 준다면.
다음 단계의 환경을 조금 더 빨리 만들어 준다면.
세포가 그 순서를 따라갈 수 있다면.
태경은 생각을 멈췄다가 다시 적었다.
‘세포에게 다음 시간이 왔다고 계속 속인다.’
그 순간 스스로도 소름이 돋았다.
이론상 가능하다고 해서 정상 발달이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너무 빨리 밀어붙이면 신경세포가 죽을 수 있었다.
겉보기엔 성숙해 보여도 회로가 엉망일 수 있었다.
혈관 유사 구조가 따라오지 못하면 중심부부터 괴사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밤 / 집]
지안은 자고 있는 하준 옆에 누워 있었다.
태경이 늦게 들어오자 눈을 떴다.
(지안) : “또 연구실?”
(태경) : “응.”
(지안) : “당신 요즘 너무 안 자.”
태경은 대답 대신 하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은 없었다.
지안이 조용히 물었다.
(지안) : “무슨 생각 하고 있어?”
태경은 거의 말할 뻔했다.
하지만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생각일 뿐이었다.
가능성이라고 부르기에도 이른.
(태경) : “하준 살릴 방법.”
지안의 눈이 흔들렸다.
(지안) : “있어?”
태경은 대답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야 말했다.
(태경) : “아직 없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아직은.
[다음 날 / 연구실]
태경은 새로운 배양 조건을 설계했다.
정상 발달 순서를 건너뛰지 않되,
각 단계 사이의 시간을 압축했다.
산소 농도.
영양 공급.
성장 신호.
세포외 환경.
전기 자극.
모든 조건을 동시에 맞춰야 했다.
하나만 앞서가도 실패였다.
태경은 새 실험 파일을 만들었다.
제목 대신 날짜만 적었다.
D-713.
그리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