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게 32억이 생겼다
30만 원

에피소드 10 / 10

서윤은 다시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친구들이 물었다.

(친구) : “이제 애도 좀 컸는데 다시 취업 생각은 없어?”

그럴 때마다 서윤은 잠깐 생각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이 싫었던 건 아니었다.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는 것도 좋았고, 팀 안에서 자기 역할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회사가 서윤의 시간을 월급으로 샀다.

퇴사하고 나서는 그 시간을 거의 전부 가족에게 썼다.

둘 다 당연한 삶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기 시간을 어디에 쓸지 자기가 정해보고 싶었다.

사업은 여전히 작았다.

어떤 날은 주문이 여러 건 들어왔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알림이 하나도 없었다.

잘 팔릴 줄 알고 들여온 상품이 생각보다 반응이 없는 날도 있었다.

예전 같으면 실패했다는 생각에 한참 주저앉았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었다.

다음 상품을 찾았다.

다시 해볼 수 있었다.

그 여유가 서윤을 계속 움직이게 했다.

어느 날, 첫 달 정산 내역이 나왔다.

서윤은 노트북 앞에 앉아 하나씩 계산했다.

매출. 상품 원가. 배송비. 플랫폼 수수료.

포장재. 광고비. 기타 비용.

숫자를 빼고 또 뺐다.

마지막에 남은 금액은

302,400원.

서윤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30만 원 남짓.

32억과 비교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돈이었다.

이 돈으로는 좋은 가방 하나 사기도 어려웠다.

가족 외식 몇 번이면 사라질 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윤은 다시 계산했다.

혹시 잘못 본 건가 싶어서.

302,400원.

맞았다.

그 돈에는 우연이 없었다.

로또 번호 여섯 개가 우연히 맞아서 생긴 돈이 아니었다.

서윤이 직접 고른 상품이 있었고, 실패한 상품도 있었고, 도매시장을 돌아다닌 시간이 있었고, 강의를 듣고 메모한 시간도 있었다.

사진을 다시 찍은 날도 있었고, 문의에 답한 시간도 있었다.

포장을 잘못해서 다시 뜯은 박스도 있었고, 배송비를 잘못 계산해 손해 본 주문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의 끝에 30만 원이 남았다.

서윤은 혼자 웃었다.

(서윤) : “내가 번 거네.”

말하고 나니 더 기분이 이상했다.

32억이 통장에 들어왔을 때도 이렇게 오래 숫자를 바라보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정산 화면을 보여줬다.

(서윤) : “나 이번 달에 돈 벌었어.”

남편이 화면을 봤다.

(남편) : “얼마?”

(서윤) : “30만 원.”

남편이 웃었다.

(남편) : “축하해.”

(서윤) : “왜 안 놀라?”

(남편) : “뭘?”

(서윤) : “32억 있는 사람이 30만 원 벌었다고 좋아하잖아.”

남편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남편) : “그건 네가 번 거잖아.”

서윤은 남편을 봤다.

별것 아닌 말인데 마음에 남았다.

맞았다.

이건 자기가 번 돈이었다.

며칠 뒤, 가사도우미가 오는 날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서윤은 카페로 갔다.

예전에도 왔던 곳이었다.

처음 이 카페에 왔을 때는 커피를 마시다가 빨래가 생각나 10시 48분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었다.

지금은 달랐다.

노트북을 꺼냈다.

오늘 확인할 주문이 있었고, 새로 알아볼 상품도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서윤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화면을 열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그 생각이 들자 서윤은 피식 웃었다.

예전에도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는 빨래를 해야 해서, 장을 봐야 해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 저녁을 준비해야 해서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고, 저녁도 준비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래서 시간이 부족했다.

같은 말인데 전혀 다른 뜻이었다.

서윤은 창밖을 봤다.

돈이 생긴다고 갑자기 행복해지는 건 아니었다.

32억이 서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주지도 않았다.

다만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을 사게 해주었다.

집안일을 맡길 시간. 배울 시간. 실패할 시간. 다시 해볼 시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천천히 찾아볼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가 서윤의 시간을 샀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가족이 서윤의 시간을 거의 전부 가져갔다.

이제는 달랐다.

서윤이 자기 시간을 다시 샀다.

그리고 어디에 쓸지는 자기가 정했다.

서윤은 다시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새 주문 알림이 하나 떠 있었다. 서윤은 웃으며 클릭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가끔,

행복을 찾아볼 시간부터 필요한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