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6 / 10
가사도우미는 그 뒤로도 몇 번 더 왔다. 처음에는 올 때마다 괜히 집을 조금 치워두었다.
‘도우미 오는데 너무 지저분하면 민망하잖아.’
그러다 세 번째쯤부터는 그 생각도 그만뒀다.
어차피 이 시간을 사려고 돈을 쓰는 건데, 청소 전에 미리 청소를 하는 게 더 이상했다.
주 2회. 세 시간씩.
서윤의 일주일에 처음으로 빈칸이 생겼다.
아이 미술학원도 등록했다. 유치원 하원 후 바로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는 등록한 첫날부터 신이 났다.
(아이) : “엄마, 오늘도 그림 그려?”
(서윤) : “응. 오늘은 뭐 만들려나?”
아이는 학원 문이 열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들어갔다. 서윤은 유리문 너머로 한참 아이를 봤다. 예전에는 18만 원을 몇 번이나 계산했었다.
지금은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남편이 학원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남편) : “미술학원? 갑자기?”
서윤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서윤) : “아빠가 서이 뭐라도 하나 보내주라고 돈 좀 줬어.”
(남편) : “장인어른이?”
(서윤) : “응. 손녀한테 쓰라고.”
남편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 : “좋아하면 보내지 뭐.”
서윤은 또 작은 거짓말을 했다.
조금 찔렸지만, 아직은 32억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미술학원에 보내놓고 나면 한 시간이 더 생겼다.
가사도우미가 오는 날에는 오전도 비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게 마냥 좋았다.
백화점에 갔다. 평일 오전 백화점은 한산했다.
매장에 들어가도 가격표를 보고 바로 나올 필요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봤다. 거울 속 자신이 낯설었다.
회사 다닐 때였으면 회의 있는 날이나 약속 있는 날 참 잘 입었을 것 같은 옷이었다.
한참 고민하다 샀다.
집에 와서 다시 입어봤다.
예뻤다.
그런데 옷걸이에 걸어놓고 나니 문득 생각났다.
‘이거 어디 입고 가지?’ 유치원 등원? 마트? 카페?
옷은 마음에 들었는데, 입을 곳이 없다는 사실이 묘하게 서글펐다.
친구도 만났다.
예전에는 친구가
[이번 주 평일 점심 어때?]
라고 보내면 가격부터 생각했다.
한 번 만나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택시라도 타면 금세 몇만 원이었다.
남편이 뭐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월급이 없는 뒤부터는 이상하게 그런 돈이 더 크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친구와 식사를 하고 서윤이 먼저 카드를 꺼냈다.
(친구) : “야, 왜 네가 사?”
(서윤) : “그냥. 오늘은 내가 살게.”
(친구) : “뭐야. 좋은 일 있어?”
서윤은 웃었다.
(서윤) : “그냥 기분이 좋아서.”
좋았다.
누군가에게 밥 한 번 사면서 이번 달 생활비를 다시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게.
운동도 시작했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필라테스였다.
첫날에는 동작 하나를 따라 하는 것도 힘들었다. 다음 날 온몸이 아팠다. 그런데 기분은 좋았다.
내 몸을 위해 한 시간을 썼다는 게 좋았다.
가사도우미가 오는 날에는 운동을 하고, 카페에 갔다.
어떤 날은 일부러 버스를 타고 시장에 갔다. 예전부터 한번 천천히 구경해보고 싶던 곳이었다.
아이 옷도 샀다. 서윤 옷도 샀다.
길거리에서 파는 작은 액세서리도 하나 샀다. 가격을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다 예쁜 악세서리 5천원 짜리를 사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을지 몰랐다. 그동안 못 했던 일을 하나씩 해보는 기분이었다.
몇 주 동안은 그렇게 재미있었다.
카페. 쇼핑. 친구. 운동.
시장 구경.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봤다.
그런데 어느 날, 카페에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시간이 남았다. 내일도 가사도우미가 온다. 모레는 아이 미술학원도 있다.
시간은 계속 생기는데 이 시간을 계속 이렇게 보내는 게 맞나 싶었다.
쇼핑을 해도, 맛있는 걸 먹어도, 운동을 해도 좋았다.
분명 좋았다.
그런데 그걸로는 뭔가 부족했다.
서윤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지만 겁이 나서 시작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떼어 팔아보는 것. 직접 작은 걸 만들어 팔아보는 것. 아예 새로운 분야를 배워보는 것. 회사와 전혀 다른 일을 해보는 것.
퇴사하고 한동안은 그런 걸 검색만 했다.
강의료가 아까워서 멈췄고, 돈을 넣었다가 잃을까 봐 무서웠고, 괜히 시작했다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늘
‘조금 더 알아보고.’ ‘준비되면.’
이라고 미뤘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돈이 있었다. 시간도 있었다.
조금 실패한다고 생활이 흔들리지 않았다.
서윤은 문득 웃었다.
그동안 자신에게 없었던 건 아이디어가 아니라, 용기가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다는 여유였는지도 몰랐다.
서윤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검색창에 한참 머뭇거리다 적었다.
‘온라인 판매 시작하는 법’
검색 결과가 쏟아졌다.
강의. 도매. 사입. 스마트스토어.
상품 소싱.
처음 보는 단어도 많았다. 서윤은 화면을 천천히 내렸다. 이번에는 창을 닫지 않았다.
‘한번 해볼까.’
퇴사하던 날 3년 전에 했던 생각이었다.
그때는 막연했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서윤은 강의 하나를 눌러 커리큘럼을 끝까지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