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 50
오후 두 시 십칠 분이면 빛이 바닥의 두 번째 줄눈에 닿았다.
처음부터 시간을 재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시계가 없는 방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빛의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햇빛은 바닥에 세로로 긴 사각형을 만들었다. 겨울에는 침대 가까이 들어왔고, 여름에는 창문 아래에서 짧게 머물렀다. 맑은 날에는 모서리가 선명했고, 구름이 낀 날에는 바닥에 우유를 엎질러 닦다 만 흔적처럼 흐렸다.
나는 침대 옆 탁자에 연필로 작은 표시를 해두었다.
두 번째 타일 금에 빛이 닿으면 약 배부가 시작됐다. 침대 다리에 닿으면 재활실에서 돌아올 시간이었다. 벽 아래 전선 몰딩까지 올라가면 저녁 점호가 가까웠다.
정호는 내가 표시를 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웃었다.
“해시계라도 만들려고?”
“시계가 없으니까요.”
“복도에 있잖아.”
“누워 있으면 안 보입니다.”
“시간을 알아서 뭐 하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을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배식은 정해진 시간에 왔고, 약도 정해진 시간에 왔다. 문은 내가 원할 때 열리지 않았다. 면회 시간도, 운동 시간도, 목욕 시간도 다른 사람이 정했다.
그럼에도 시간을 알고 싶었다.
모르는 사이에 하루가 사라지는 것이 싫었다.
사고 전에는 시간을 알기 위해 손목시계와 휴대전화와 노트북 화면을 번갈아 봤다. 사무실 벽에도 시계가 있었고 회의실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도 시간이 표시됐다. 모든 장치가 같은 숫자를 보여주는데도 나는 계속 확인했다.
그때 시간은 부족했다.
지금은 시간이 남았다.
부족했던 시간과 남는 시간이 같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오후 두 시가 되기 전, 윤서진이 약 카트를 밀고 들어왔다. 카트 바퀴 하나가 조금 틀어져 있어서 복도 바닥을 지날 때마다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가 났다.
덜컹, 덜컹, 덜컹.
그 소리가 가까워지면 정호는 성경에 책갈피를 끼웠다. 나는 물컵을 준비했다.
“4271 한재호.”
서진이 수용번호와 이름을 함께 불렀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그녀는 약봉지의 인쇄된 번호와 내 손목띠를 대조했다. 작은 흰 알약 두 개와 노란색 캡슐 하나를 종이컵에 넣었다.
“통증은요?”
“어제와 같습니다.”
“경련 횟수는요?”
“밤에 두 번.”
“기록하셨어요?”
“한 번만 했습니다.”
“왜요?”
“두 번째는 시간을 못 봤습니다.”
서진이 내 탁자 위의 연필 표시를 보았다.
“빛으로는 못 재셨어요?”
“밤에는 해가 없잖습니까.”
그녀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은 것 같았지만, 곧 기록지로 시선을 내렸다.
“시간을 정확히 몰라도 횟수는 적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약을 삼켰다. 서진은 내 입 안을 확인하지 않았다. 다른 수용자에게는 혀 밑에 약을 숨겼는지 보기도 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약을 빼돌린 적이 없었다.
신뢰라고 부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적발된 적이 없다는 기록에 가까웠다.
서진이 정호의 약을 준비하는 동안 나도윤이 우편물을 들고 들어왔다.
“한재호 씨, 편지 하나입니다.”
봉투를 보는 순간 발신인을 알았다.
유리는 이름의 ‘유’를 쓸 때 왼쪽 획을 길게 내렸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이름표에도 ‘유’의 첫 획이 글자 아래까지 내려가 있었다. 수진이 지우고 다시 쓰라고 했지만 유리는 자기 이름이 기린처럼 보여서 좋다고 했다.
봉투에는 한유리라고 적혀 있었다.
주소는 수진과 유리가 사는 아파트였다. 내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집이었다.
“검열 완료했습니다.”
나도윤이 말했다.
봉투 한쪽이 칼로 열렸다가 투명테이프로 다시 붙어 있었다.
나는 편지를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당장 열지 않았다.
정호가 약을 삼키며 물었다.
“딸인가?”
“네.”
“읽어보지.”
“나중에요.”
“왜 아껴두나?”
“아끼는 것 아닙니다.”
“그럼 무서운가?”
나는 편지를 탁자 서랍에 넣었다.
“약 드셨으면 쉬세요.”
정호는 더 묻지 않았다.
편지는 물건인데도 방의 모양을 바꾸었다. 서랍을 닫아두었지만 그 안에 편지가 있다는 사실이 계속 느껴졌다. 유리가 무슨 말을 썼는지 알기 전까지는 여러 가능성이 동시에 있었다.
학교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면회를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앞으로 편지를 쓰지 않겠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그 가능성들은 봉투를 열기 전까지만 존재했다. 읽으면 하나만 남는다.
나는 사고 전에도 결정이 늦어질수록 가능성이 보존된다고 생각했다.
작업을 중단하지도, 완전히 강행하지도 않은 채 점검팀 도착까지 한 시간만 진행하겠다고 결정했다. 그 한 시간 동안에는 공정도 지킬 수 있고 안전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중단하지 않는 순간 강행한 것이었다.
중간의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한쪽에만 속했다.
빛이 두 번째 줄눈에 닿았다.
나는 서랍을 열었다.
봉투를 꺼내 투명테이프가 붙은 부분을 따라 벌렸다. 안에는 줄이 없는 편지지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첫 장 위쪽에 작은 구름 그림이 있었다. 유리는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았다. 구름은 아마 편지지에 원래 인쇄된 것이었다.
아빠에게.
첫 줄 아래에는 한 칸이 비어 있었다.
잘 지내? 나는 잘 지내. 중간고사 끝났어. 수학은 생각보다 잘 봤고 영어는 망했어. 엄마는 안 망했다고 하는데 엄마는 내 점수를 아직 몰라.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영어는 망했어.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이 있었다. 몇 점이냐고 물을 수 있고, 다음 시험은 괜찮을 거라고 쓸 수 있었다. 유리가 어렸을 때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며 내가 사용한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편지는 이미 다음 문장으로 이어졌다.
학교에서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인생을 조사해서 발표하는 과제가 있어. 처음에는 엄마를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싫다고 했어. 외할머니를 할까 생각 중이야. 아직 정한 건 아니야.
나는 숨을 조금 길게 내쉬었다.
유리가 나를 조사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안도한 뒤에는 서운했다. 두 감정이 너무 빨리 이어져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알 수 없었다.
편지의 뒷부분에는 질문이 세 개 있었다.
아빠가 내 나이였을 때 제일 하고 싶었던 건 뭐였어?
회사에서 일할 때 제일 좋았던 일은 뭐였어?
사고가 없었으면 지금 뭐 하고 있었을 것 같아?
마지막 질문 아래에는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과제에 쓰려는 건 아니야.
나는 편지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사고가 없었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질문은 쉬워 보였다.
회사에 계속 다녔을 것이다. 승진했을 수도 있고, 해외법인에 나가 있었을 수도 있다. 당시 장석호 본부장은 사고만 없었으면 다음 인사에서 상무보 승진 후보에 넣겠다고 말했다. 수진과 유리는 함께 나가거나 한국에 남았을 것이다.
나는 걸었을 것이다.
혼자 화장실에 갔을 것이다.
유리의 학교 행사에 참석했을 수도 있고, 참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대답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대답에는 사고 이후에도 회사와 가족과 몸이 그대로 계속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들어 있었다.
사고가 없었다고 해서 다른 일이 없었을까.
회사가 합병되었을 수도 있었다. 장석호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내가 다른 현장에서 또 다른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었다. 수진이 사고와 무관하게 나를 떠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인간은 일어나지 않은 삶을 상상할 때 좋은 부분만 연속시킨다.
나는 사고 전날의 나를 시작점으로 삼아, 그날 갖고 있던 것들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졌다고 가정했다. 직장, 가족, 몸, 딸의 사랑. 그중 어느 것도 계속된다는 보장은 없었는데, 사고가 그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빼앗겼다는 말은 원래 내 것이었다는 뜻이었다.
나는 유리의 편지를 다시 읽었다.
첫 번째 질문부터 답하려 했다.
내가 열다섯 살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것.
외국에 가고 싶었다. 정확히는 내가 사는 곳이 아닌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매일 같은 이유로 다투는 집에서 멀어지고 싶었고, 학교에서 내 이름보다 성적표가 먼저 알려지는 생활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유리에게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쓸 수 있었다. 실제로 해외운영 업무를 했으니 그럴듯했다. 과거는 현재에 맞춰 정리할 수 있었다.
회사 면접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국제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는 집을 떠나고 싶었다.
둘은 완전히 다른 말은 아니었다. 집을 떠나고 싶어 해외를 꿈꿨고, 해외를 꿈꾸다 보니 외국어를 공부했고, 그 결과 해외업무를 했다. 어느 문장을 원인으로 고르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양이 달라졌다.
나는 답장을 쓰기 위해 종이를 꺼냈다.
아빠가 열다섯 살 때는 외국에 나가보고 싶었어.
첫 문장을 적었다.
왜냐하면,
그 뒤에서 멈췄다.
집을 떠나고 싶어서라고 쓰면 유리는 나에게 왜 집이 싫었느냐고 물을 수 있었다. 세계를 보고 싶어서라고 쓰면 거짓은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었다.
나는 ‘왜냐하면’을 지웠다.
볼펜으로 두 줄을 그었다. 종이가 조금 찢어졌다.
정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답장 쓰나?”
“네.”
“정직하게 쓰게.”
“아저씨는 모든 편지를 정직하게 쓰십니까?”
“적어도 하나님한테는.”
“하나님이 검열합니까?”
“다 보시지.”
“그러면 편지를 쓸 필요도 없겠네요.”
정호는 잠시 생각하다 웃었다.
“자네 말도 맞네.”
나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정직하다는 게 뭡니까?”
“거짓말 안 하는 거지.”
“말하지 않는 건요?”
“무엇을 말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그럼 필요한 사실을 골라 말하는 건요?”
“자네 회사에서 하던 것 말인가?”
나는 볼펜을 내려놓았다.
“꼭 제 이야기로 돌아와야 합니까?”
“자네가 물었잖아.”
“일반적으로 물은 겁니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묻는 건 대개 자기 이야기야.”
정호는 성경을 펴며 대화를 끝냈다.
나는 답장을 계속 쓰지 못했다.
빛은 침대 다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간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빛이 움직였고, 빛이 움직이는 동안 내가 같은 곳에 있었다.
사고 전에는 일정표가 시간을 앞으로 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월요일에는 철골 설치.
화요일에는 전기배선.
수요일에는 하중시험.
목요일에는 고객사 점검.
금요일에는 임시승인.
한 칸이 끝나면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완료율이 올라갔고 지연일수가 줄었다. 시간은 빈칸을 채우는 방향으로 흘렀다.
프로젝트 관리 프로그램에는 기준일이라는 것이 있었다. 기준일 이전은 실적이었고 이후는 계획이었다. 오늘이라는 세로선이 화면 가운데를 지나갔다. 오늘 선은 매일 오른쪽으로 한 칸씩 움직였다. 끝나지 않은 업무가 선의 왼쪽에 남으면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나는 빨간색을 싫어했다.
빨간 업무는 지연이었다. 책임자를 지정하고 만회계획을 세워야 했다. 사람들은 빨간색을 없애기 위해 완료되지 않은 업무를 완료로 바꾸기도 했고, 큰 업무를 작은 업무로 쪼개기도 했고, 기준일 자체를 수정하기도 했다.
시간이 늦은 것이 아니라 계획이 잘못됐다고 말하면 빨간색을 줄일 수 있었다.
사고 당일 아침에도 화면에는 빨간 업무가 열일곱 개 있었다.
오후 네 시까지 야간 하중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면 준공일은 최소 이틀 밀릴 예정이었다. 이틀은 달력에서는 작은 숫자였지만, 회사 보고서에서는 손실액으로 바뀌었다. 지체상금, 긴급운송비, 임시창고 임차료, 고객사 생산차질 예상비용.
나는 그 숫자를 보고 있었다.
박진수는 기둥을 보고 있었다.
오광철은 연결부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같은 시각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본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오후 세 시 십 분이 되자 빛이 침대 다리에 닿았다. 재활실에 갔던 수감자들이 복도로 돌아오는 소리가 났다. 휠체어 바퀴와 보행보조기가 바닥을 긁었다.
매일 거의 같은 시각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빛은 어제의 빛이 아니었다.
어제 바닥에 닿았던 빛은 어디에도 저장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쌓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지나간 흔적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유리와 먹지 못한 저녁도 어딘가에 적립되어 나중에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출장 뒤에 보상하겠다고 생각했던 주말도 저장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자 답장에 무엇을 써야 할지 더 어려워졌다.
사고가 없었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지금’이라는 말을 동그라미 쳤다.
교도소 의료동 침대에 앉아 딸의 편지에 답하고 있다.
그것이 현재의 사실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현재를 만들어 답하는 대신,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을 쓰기로 했다.
아빠가 열다섯 살 때는 외국에 나가보고 싶었어. 지금 생각하면 세계를 보고 싶었던 것도 맞고, 내가 있던 곳을 떠나고 싶었던 것도 맞아.
나는 문장을 읽었다.
두 번째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썼다.
회사에서 가장 좋았던 일은 여러 나라 사람들과 같이 문제를 해결할 때였어. 문제가 해결되면 내가 필요한 사람처럼 느껴졌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서 좋았다’고 쓰려다가 바꿨다. 내가 좋아한 것은 도움 자체보다 필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세 번째 질문 앞에서는 오래 멈췄다.
사고가 없었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을 것 같아?
나는 처음에 회사에 다니고 있었을 거라고 썼다. 그 뒤에 줄을 그었다.
아마 회사에 다니고 있었겠지만, 확실히는 모르겠어. 사고가 없었어도 다른 일이 생겼을 수 있으니까. 다만 걷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해. 그것도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너무 복잡한 대답처럼 보였다.
유리는 단순히 물었을 것이다. 나는 매 질문을 법정 진술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답장 마지막에 썼다.
너는 외할머니를 발표해도 좋고 엄마를 설득해도 좋아. 나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싶은 사람을 해.
쓰고 나서 ‘나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괜찮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은 나를 생각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문장도 지웠다.
하고 싶은 사람을 해.
그것만 남겼다.
편지를 접는 동안 구름이 해를 가렸다.
바닥의 사각형이 사라졌다.
방 안은 갑자기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 조금 전보다 덜 밝아졌다. 나는 빛이 없어진 자리를 보았다. 표시해둔 타일 금은 그대로 있었지만 시간을 짐작할 수 없었다.
정호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비 오려나.”
“일기예보 봤습니까?”
“무릎이 아파.”
“아저씨 무릎은 항상 아프잖습니까.”
“오늘은 다르게 아파.”
잠시 뒤 정말 비가 내렸다.
창문에 작은 물방울이 붙었다. 철제 창틀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빛으로 만든 시계는 그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복도 끝의 시계를 보기 위해 휠체어로 이동했다. 네 시 이십이 분이었다.
방으로 돌아와 탁자 표시 옆에 날짜를 썼다.
6월 17일, 흐림. 오후 세 시 사십 분 이후 빛 없음.
정호가 물었다.
“그것도 기록하나?”
“네.”
“왜?”
“나중에 비교하려고요.”
“무엇과?”
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무엇과 비교하려는지 나도 몰랐다. 내일의 빛과 비교할 수도 있었고, 다음 달의 빛과 비교할 수도 있었다. 내가 이 방을 떠난 뒤에는 아무도 그 표시를 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냥 오늘 그랬다는 걸 적는 겁니다.”
내가 말했다.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쓸 만하지.”
비가 시작된 뒤 오후 간식 배식이 평소보다 늦었다.
세 시 오십 분이면 복도 끝에서 카트 소리가 들려야 했지만 네 시가 지나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정호는 배가 고프지 않다면서도 세 번 문 쪽을 봤다. 맞은편 방에서는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배식 왜 안 옵니까?”
교도관이 순찰을 돌 때마다 같은 질문이 나왔다.
“취사동 이동이 늦어졌습니다.”
“몇 시에 옵니까?”
“확인 중입니다.”
확인 중이라는 말이 복도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간식은 작은 빵과 우유일 뿐이었다. 한 끼를 굶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정해진 일이 정해진 시각에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은 시간을 잃은 것처럼 행동했다.
정호가 말했다.
“자네 빛시계도 오늘은 쓸모없구먼.”
“복도 시계는 있습니다.”
“시간은 아는데 빵은 안 오잖아.”
나는 복도 시계를 확인했다. 네 시 십삼 분이었다. 숫자를 알자 오히려 지연이 더 분명해졌다. 평소보다 이십삼 분 늦었다.
회사에서는 지연 시간이 숫자가 되는 순간 책임자가 생겼다. 십 분까지는 상황이었고, 한 시간이 넘으면 이슈였으며, 하루가 지나면 경영진 보고사항이 되었다. 사람들은 기준을 넘기 전까지 문제를 문제라고 부르지 않으려 했다.
나는 나도윤에게 물었다.
“취사동에서 몇 분 늦는다고 합니까?”
“모릅니다.”
“확인한다면서요.”
“제가 확인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확인합니까?”
“담당자가 하겠죠.”
“담당자가 누구인지 모릅니까?”
나도윤이 나를 보았다.
“빵이 늦어서 불편하신 겁니까, 절차를 알고 싶으신 겁니까?”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언제 오는지 알면 기다리기 쉬우니까요.”
“도착하면 배식합니다.”
그는 다음 방으로 갔다.
네 시 이십칠 분에 카트가 왔다. 늦은 이유는 비 때문에 취사동과 의료동 사이 통로 일부가 젖어 우회했기 때문이었다. 빵은 눅눅하지 않았고 우유도 차가웠다. 아무것도 손상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빵을 받은 뒤 지연에 대해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포장지를 뜯지 않고 시계를 봤다. 삼십칠 분의 지연은 빵이 도착하는 순간 과거가 되었다. 그 시간이 다른 곳에 저장되어 나중에 돌려받는 것은 아니었다.
“안 먹나?”
정호가 물었다.
“먹습니다.”
“기다릴 때는 그렇게 따지더니.”
“언제 오는지 알고 싶었던 겁니다.”
“왔잖아.”
그는 빵을 반으로 나눠 먹었다.
나는 우유팩에 적힌 유통기한을 봤다. 열흘 뒤의 날짜였다. 우유에는 앞으로도 시간이 남아 있는 것처럼 숫자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팩을 열면 오늘 안에 마셔야 했다.
나는 유통기한 아래에 인쇄된 생산시각을 읽었다. 내가 사고 전날 잠들어 있던 시각에도 어딘가에서는 우유가 만들어지고 포장되고 있었을 것이다. 내 삶에서 중요한 날과 세계의 다른 시간이 같은 무게로 흐르지는 않았다.
빵을 다 먹고 포장지를 버린 뒤, 나는 답장 봉투에 날짜를 적었다. 유리가 편지를 언제 받을지는 몰라도 내가 언제 썼는지는 남길 수 있었다.
저녁 점호 뒤 나도윤이 편지를 수거하러 왔다. 나는 접은 답장을 봉투에 넣어 건넸다.
“내용 확인 후 발송됩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가 봉투를 서류판에 끼웠다. 나가려다 문 앞에서 돌아봤다.
“금요일에 가족면회 잡혔습니다.”
“누가 옵니까?”
“신청자 김수진, 동반 한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수진과 유리.
두 사람이 함께 오는 면회는 세 달 만이었다.
“시간은요?”
“오후 두 시입니다.”
나도윤이 나간 뒤 나는 바닥을 보았다.
금요일 오후 두 시.
그 시각이면 맑은 날 빛은 두 번째 타일 금에 닿기 직전일 것이다.
나는 탁자 위 날짜 아래에 금요일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 아무 의미도 없는 작은 선을 하나 그었다.
선은 오늘과 금요일을 이어주지 않았다.
다만 내가 금요일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