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 50
면회를 가는 날에는 몸을 더 오래 씻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아침 일곱 시에 윤서진이 물수건과 세정제를 가져왔을 때 나는 평소보다 먼저 상체를 일으켰다. 전날 밤 체위 변경을 두 번 했고, 새벽에는 소변주머니 연결관이 꺾여 침대 시트가 조금 젖었다. 서진은 젖은 부분을 보고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시트를 갈고 피부를 확인한 뒤, 면회 시간까지 휠체어에 오래 앉아 있지 말라고 했다.
“압박 완화 방석은 새 걸로 바꿔드릴게요.”
“기존 것도 괜찮습니다.”
“공기가 조금 빠졌어요.”
“면회 삼십 분입니다.”
“삼십 분 동안도 눌립니다.”
그녀는 방석 밸브를 눌러보더니 새 방석을 가져왔다. 검은 고무 표면에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바지를 갈아입을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지금 입은 것도 오늘 아침에 갈아입으셨잖아요.”
“주름이 졌습니다.”
서진이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오른쪽 허벅지 부분이 휠체어 안전벨트에 눌려 접혀 있었다.
“펴드릴 수는 있습니다.”
“새것은 없습니까?”
“면회용 옷은 따로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손바닥으로 주름을 문질렀다. 회색 수용복은 아무리 펴도 수용복이었다. 가슴 오른쪽에 수용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유리는 아홉 살 때 병원에서 처음 그 번호를 봤다. 그때는 아직 수감 전이었고, 구치소에서 법원으로 외부진료를 나온 날이었다. 유리는 번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빠 이름은 어디 있어?”
나는 옷 안쪽에 있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이름은 없었다.
오늘 유리는 열다섯 살이었다.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면회 전에 진통제 드릴까요?”
서진이 물었다.
“통증 없습니다.”
“어깨요.”
나는 오른쪽 어깨를 돌렸다. 휠체어를 오래 밀면 관절 안쪽이 타는 것처럼 아팠다.
“괜찮습니다.”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서진이 나가자 정호가 침대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수용복에는 새로 단추가 달려 있었다. 원래 단추보다 색이 밝았다.
“딸 오는 날이지?”
“네.”
“무슨 말 할 건가?”
“그냥 이야기할 겁니다.”
“그냥 이야기가 제일 어렵지.”
“아저씨는 면회 오는 사람도 없잖습니까.”
말이 나가고 나서 나는 정호를 보지 않았다.
정호에게는 남은 가족이 거의 없었다. 여동생이 몇 년에 한 번 편지를 보냈고, 교회 봉사자가 정기적으로 면회를 왔다. 아들은 성인이 된 뒤 연락을 끊었다고 들었다.
“맞아.”
정호가 말했다.
그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할 말은 많지. 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나는 사과하지 않았다. 면회가 가까워질수록 다른 사람의 말이 모두 간섭처럼 들렸다.
탁자에는 유리에게 받은 편지 사본이 놓여 있었다. 원본은 개인보관함에 넣어두었다. 나는 유리의 질문 세 개에 답한 내용을 다시 읽었다.
아빠가 열다섯 살 때는 외국에 나가보고 싶었어.
회사에서 가장 좋았던 일은 여러 나라 사람들과 문제를 해결할 때였어.
사고가 없었으면 무엇을 했을지는 확실히 모르겠어.
편지는 이미 발송됐지만 유리가 아직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오늘 같은 질문을 하면 같은 답을 해야 했다. 말과 글이 다르면 유리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다른 질문도 준비했다.
학교는 어때.
친구들은 잘 지내.
영어 시험은 몇 점이었어.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마지막 질문은 지웠다. 유리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수진의 말을 잘 듣는지 확인하는 것이 내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증명해주지 않았다.
수진에게 할 말도 준비했다.
이혼조정 서류는 확인했다.
유리 교육비는 내가 가진 돈에서 계속 지급되게 하겠다.
가석방 절차가 시작됐다.
재심 가능성은 아직 말하지 않기로 했다. 민석의 제보가 사실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수진에게 희망을 주었다가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희망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말 속에는 내가 실패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오전 열한 시가 되자 면회가 취소될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유리가 아플 수도 있었다.
학교 일정이 생겼을 수도 있었다.
수진이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었다.
정오 배식을 받을 때는 밥이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다. 반찬으로 나온 생선에는 작은 가시가 있었다. 나는 가시를 골라내며 시간을 확인했다. 복도 시계는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오후 한 시에 나도윤이 들어왔다.
“면회 준비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두 사람이 실제로 왔다는 사실을 믿었다.
“둘 다 왔습니까?”
“신청자와 동반인 확인됐습니다.”
“유리도요?”
“동반인 한유리 확인됐습니다.”
나도윤은 내 신분과 이동기록을 확인했다. 휠체어 안전벨트를 매고 발판 위치를 조정했다.
“직접 미시겠습니까?”
“네.”
“오늘은 이동거리가 깁니다.”
“알고 있습니다.”
가족관계회복 면회실은 일반 접견실보다 멀리 있었다. 철문 네 개와 긴 복도를 지나 별도 건물로 이동해야 했다. 일반면회실에는 유리벽과 전화기가 있었지만, 가족관계회복 프로그램 면회에는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같은 방에 앉을 수 있었다. 분기마다 한 번 신청할 수 있었고, 수용생활 평가와 가족관계에 따라 허가됐다.
나는 그 제도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싫어했다.
딸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일이 평가와 허가의 대상이었다.
첫 번째 철문을 지나며 오른쪽 어깨가 아팠다. 두 번째 철문 앞에서 나도윤이 손잡이를 잡았다.
“제가 밀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어깨 쓰는 게 보입니다.”
“원래 이렇게 밉니다.”
“면회 전에 지치실 필요 없잖습니까.”
나는 손을 바퀴에서 뗐다.
그가 휠체어를 미는 동안 나는 무릎 위의 수용복을 다시 폈다. 바지가 한쪽으로 당겨져 있었다. 손으로 바로잡고, 머리를 만졌다. 거울을 본 것은 아침 세면 때가 마지막이었다.
면회실 문 앞에 도착하자 담당 교도관이 규정을 설명했다.
신체 접촉은 입실과 퇴실 때 가벼운 포옹만 가능하다.
음식물과 물품 전달은 금지된다.
사고나 재판과 관련해 가족에게 진술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면회는 삼십 분이며 필요시 즉시 종료될 수 있다.
“알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담당 교도관이 문을 열었다.
수진과 유리가 이미 안에 있었다.
수진은 창가 쪽 의자에 앉아 있었고 유리는 탁자 반대편에 서 있었다. 유리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검은 바지와 연한 파란색 셔츠를 입었다. 머리는 어깨 아래까지 길어져 있었다. 지난 면회 때보다 키가 큰 것 같았다.
유리가 나를 먼저 보았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나는 정확히 읽지 못했다. 반가움과 당황함이 동시에 지나간 것 같았다. 유리는 내 얼굴을 보고, 휠체어를 보고, 다시 얼굴을 봤다.
나는 웃었다.
“많이 컸네.”
유리는 지난번에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보다 많이 안 컸어.”
“아빠 눈에는 매번 커 보여.”
말하고 나서 너무 준비된 문장처럼 느껴졌다.
수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잘랐다. 전에 보지 못한 회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오는 데 힘들었어?”
내가 물었다.
“괜찮았어.”
수진의 대답도 준비된 말 같았다.
담당 교도관이 포옹이 가능하다고 손짓했다. 유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내 쪽으로 왔다. 나는 팔을 벌렸다.
유리의 몸이 내 어깨에 닿았다.
포옹은 짧았다. 유리의 셔츠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머리카락 한 올이 내 입가에 붙었다가 떨어졌다.
나는 더 오래 안고 싶었지만 먼저 팔을 풀었다. 유리가 떨어지려는데 붙잡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수진은 포옹하지 않았다.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우리는 탁자에 앉았다.
정확히는 수진과 유리가 의자에 앉았고 나는 휠체어를 탁자 아래에 넣었다. 유리의 무릎이 탁자 밑에서 보였다. 운동화 끈 한쪽이 조금 풀려 있었다.
“시험 끝났다며.”
내가 말했다.
“응.”
“영어 망했다며.”
“엄마가 말했어?”
“네가 편지에 썼잖아.”
“아, 맞다.”
“몇 점인데?”
“칠십팔.”
“그 정도면 망한 건 아니네.”
“우리 반 평균이 팔십육이야.”
“다음에 올리면 되지.”
유리는 빨대가 꽂힌 종이컵을 손으로 돌렸다. 면회실에서 제공한 물이었다. 빨대 포장지는 탁자 옆에 접혀 있었다.
“수학은?”
“구십사.”
“잘했네.”
“응.”
대화가 끝났다.
나는 준비한 질문을 하나씩 사용했다.
학교는 어때.
친구들은 잘 지내.
과제는 외할머니로 정했어.
유리는 짧게 대답했다. 그 대답들은 틀리지 않았지만 다음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수진은 대부분 듣고 있었다. 가끔 유리의 컵이 탁자 끝으로 가면 가운데로 옮겼다.
“편지는 아직 못 받았어.”
유리가 말했다.
“며칠 걸릴 거야.”
“질문 답했어?”
“응.”
“길게?”
“너무 길지 않게 썼어.”
“아빠는 항상 말이 길잖아.”
유리가 웃지는 않았지만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나는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유리가 여전히 나와 농담할 수 있다는 증거처럼 저장하고 싶었다.
“엄마한테도 그렇게 말하니?”
내가 물었다.
“엄마는 말이 안 길어.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지.”
수진이 유리를 보았다.
“한유리.”
“사실이잖아.”
잠깐 세 사람이 함께 웃었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예전 가족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꼈다. 수진이 내 옆에 있고 유리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휠체어와 수용복과 교도관을 보지 않으면 주말 카페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느낌을 붙잡고 싶었다.
“가석방 준비가 시작됐어.”
예정에 없던 말을 했다.
수진의 표정이 먼저 굳었다.
유리는 빨대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언제 나와?”
유리가 물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니야. 심사를 준비한다는 뜻이야.”
“그럼 언제 결정돼?”
“몇 달 걸릴 수 있어.”
“나올 수도 있어?”
“가능성은 있어.”
나는 수진을 보았다. 수진은 나를 보지 않았다.
“왜 미리 말해?”
그녀가 물었다.
“유리도 알아야 하니까.”
“결정된 다음에 알려도 되잖아.”
“희망을 주려고 한 건 아니야.”
“그럼 뭘 주려고 한 건데?”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 소식을 가진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기다려달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기다릴 이유를 주고 싶었다.
“그냥 상황을 말한 거야.”
내가 말했다.
수진은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당신이 그냥 상황만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그 말 뒤에 과거가 길게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이번 출장만 다녀오면.
이번 인사만 지나면.
나는 상황을 설명했고, 수진과 유리에게 그 상황에 맞춰 기다리라고 요구했다.
“엄마.”
유리가 낮게 불렀다.
수진은 더 말하지 않았다.
담당 교도관은 방 구석 책상에서 서류를 보고 있었다.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모든 말을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나는 대화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
“외할머니 발표는 어떻게 할 거야?”
“녹음해서 영상 만들 거야.”
“편집할 줄 알아?”
“응. 학교에서 배웠어.”
“아빠가 도와줄 건 없겠네.”
“여기서는 못 하잖아.”
유리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유리는 빨대 포장지를 집었다. 길게 펴진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손톱으로 접힌 자리를 눌렀다. 다시 펼치고 반대 방향으로 접었다.
그 모습이 편지에서 상상한 것보다 더 어른 같고, 동시에 어릴 때와 같았다. 유리는 생각하기 어려운 말을 앞에 두면 종이를 접었다. 병원 대기실에서도 영수증을 접었고, 법원 가족대기실에서도 안내문 모서리를 접었다.
“아빠.”
“응.”
“판결문 읽어봤어.”
수진이 고개를 들었다.
“유리야, 그 이야기는—”
“엄마가 보여준 거 아니야. 인터넷에 있는 거 봤어.”
유리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포장지를 접었다.
“거기에는 안전점검하는 사람이 야간작업 미루라고 했다고 나와 있어.”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준비했던 질문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위험 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했어.”
말이 바로 나왔다.
법정에서 했던 설명이었다.
“미루라고 한 건 아니야?”
“법원은 그렇게 정리했지만, 그때 통화에서는 사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확정한 건 아니었어.”
“그럼 안전하다고 했어?”
“안전하다고도 확정하지 않았지.”
“그런데 왜 했어?”
유리가 포장지를 내려놓았다.
나는 수진을 보았다. 도움을 구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수진이 이 대화를 예상했는지 알고 싶었다.
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러 상황이 있었어.”
내가 말했다.
“공사가 늦어지면 손실이 컸고, 현장업체에서는 보강한 상태라 작업할 수 있다고 보고했어. 나 혼자 결정한 것도 아니고—”
말하다가 멈췄다.
유리의 표정이 바뀌었다.
화가 난 것도 울 것 같은 것도 아니었다. 예상한 대답을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승인했다며.”
“그래.”
“그러면 아빠가 안 된다고 하면 안 하는 거였어?”
“원칙적으로는.”
“그럼 왜 했어?”
같은 질문이었다.
나는 처음과 다른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때는 사고가 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전혀?”
“위험이 완전히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게 위험한 줄 알았다는 거 아니야?”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붕괴할 거라고 아는 건 달라.”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고 당시 나는 사망 가능성을 숫자로 떠올리지 않았다. 공정 지연, 연결부 변위, 임시보강, 추가점검. 모든 것이 기술과 일정의 언어였다.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문장은 회의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안전 위험이란 말 안에는 그 가능성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단어를 작게 만들어 결과를 멀리 두었다.
“거기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어.”
내가 말했다.
유리는 나를 보았다.
“생각 안 한 거야, 몰랐던 거야?”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두 말은 법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달랐다. 몰랐다면 책임이 줄어들 수 있었다. 생각하지 않았다면 알아야 할 것을 외면한 것이 될 수 있었다.
“둘 다인 것 같아.”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정확히는 모르겠다는 뜻이야.”
유리는 빨대 포장지를 다시 집었다. 접힌 종이는 여러 번 꺾여 더 이상 평평하게 펴지지 않았다.
“아빠는 맨날 정확히 모르겠대.”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결정하는 사람이었잖아.”
면회실의 공기가 갑자기 좁아졌다.
교도관의 책상, 창문, 탁자와 의자가 모두 가까워진 것 같았다.
나는 반박하고 싶었다.
결정하는 사람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불확실한 정보 안에서 판단하는 것이 책임자의 일이다.
결과를 알고 과거의 결정을 평가하는 것은 쉽다.
그 말들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유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맞아.”
내가 말했다.
“나는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했어.”
유리는 고개를 숙였다.
수진이 처음으로 내 쪽을 똑바로 보았다. 그녀의 눈 아래에는 얇은 주름이 생겨 있었다.
“유리한테 다 설명하려고 하지 마.”
수진이 말했다.
“설명 안 하면 오해하잖아.”
“설명하면 이해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처럼 말하잖아.”
“그런 의도 아니야.”
“당신 의도 말고 듣는 사람 입장을 말하는 거야.”
“그럼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거야?”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면 돼. 매번 그 뒤에 상황을 붙이지 말고.”
나는 손을 휠체어 바퀴 위에 올렸다.
“상황을 빼면 사실이 아니잖아.”
“상황을 붙인다고 다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니야.”
유리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만해.”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말을 멈췄다.
담당 교도관이 시계를 보았다. 남은 시간은 칠 분이었다.
나는 그 칠 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고 이야기를 계속할 수도 없었고, 다시 시험점수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유리야.”
내가 불렀다.
“응.”
“아까 질문에 제대로 답 못 해서 미안해.”
“괜찮아.”
그 말이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다음에 다시 물어보면—”
“다음에 꼭 물어봐야 해?”
나는 말을 멈췄다.
유리에게는 내 답을 완성시킬 의무가 없었다. 내가 준비될 때까지 같은 질문을 반복해줄 의무도 없었다.
“아니.”
내가 말했다.
“안 물어봐도 돼.”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에는 수진이 최근 유리의 편두통이 줄었다고 말했고, 나는 필요한 약이 있는지 물었다. 수진은 병원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유리는 다음 달에 수학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나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유리는 제주도라고 대답했다.
평범한 이야기들은 사고 이야기 뒤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담당 교도관이 면회 종료를 알렸다.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옹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는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팔을 벌리지 않았다.
“편지 보내.”
내가 말했다.
“응.”
“수학여행 잘 다녀오고.”
“아직 한 달 남았어.”
“알아.”
수진은 내게 이혼조정 관련 서류가 곧 송달될 거라고 말했다.
“변호사한테 들었어.”
내가 말했다.
“유리 연락 문제는 별도로 정할 거야.”
“알겠어.”
수진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가석방이 되더라도 바로 유리하고 살 계획은 세우지 마.”
“그런 말 한 적 없어.”
“말 안 해도 당신은 계획부터 세우니까.”
“나도 현실은 알아.”
“당신이 아는 현실하고 유리가 사는 현실은 다를 수 있어.”
수진은 더 말하지 않았다.
유리가 문 앞에서 돌아봤다.
“아빠.”
“응.”
“편지 답은 읽어볼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약속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해석하고 싶었다.
문이 닫혔다.
면회실에는 나와 담당 교도관만 남았다. 수진이 앉았던 의자는 탁자에서 조금 뒤로 밀려 있었고, 유리가 앉았던 의자에는 빨대 포장지가 놓여 있었다.
“쓰레기는 두고 가셔도 됩니다.”
교도관이 말했다.
나는 포장지를 집었다. 여러 번 접혀 작은 막대 모양이 되어 있었다.
“반출할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그렇겠죠.”
나는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동 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가족이 문 밖에서 기다렸다. 일곱 살쯤 된 남자아이가 할머니 손을 잡고 있었다. 아이는 휠체어를 탄 나를 보다가 교도관이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복도에서 잠시 기다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 아이가 유리가 앉았던 의자에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아이의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앞뒤로 흔들렸다. 할머니가 아이의 옷을 정리해주었다.
조금 전까지 유리의 체온이 남아 있을 것 같던 의자는 다른 사람의 자리가 되었다.
의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다.
유리가 빨대를 접은 일도, 내게 질문한 일도, 수진이 나를 보던 표정도 의자에는 남지 않았다.
그 사실이 서러웠다.
동시에 다행이었다.
사물이 모든 일을 기억한다면 세상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사고 현장의 기둥과 바닥과 안전모가 모두 그날을 기억한다면, 사람들은 그곳에 다시 건물을 세울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의료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깨 통증이 심해졌다. 나도윤은 말없이 휠체어를 밀었다.
두 번째 철문 앞에서 그가 물었다.
“면회는 잘하셨습니까?”
“그 질문은 관찰기록용입니까?”
“일상적인 질문입니다.”
“잘했다는 기준이 뭡니까?”
“그냥 물어본 겁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딸이 질문했고, 저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그게 잘한 면회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도윤은 철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말했다.
“질문을 들은 건 사실이네요.”
“답을 못 했잖습니까.”
“못 한 답을 한 것처럼 말하지는 않으셨고요.”
나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방에 돌아오자 정호가 물었다.
“그냥 이야기는 잘했나?”
나는 침대 옆 탁자에서 반성문을 꺼냈다.
“질문을 받았습니다.”
“무슨 질문?”
“왜 작업을 했냐고요.”
“뭐라고 했는데?”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정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건 맞는 말인가?”
“모르겠습니다.”
“딸 말이 맞네. 자네는 모른다는 말을 자주 하는구먼.”
“모르는 걸 안다고 할 수는 없잖습니까.”
“그래.”
정호는 새 단추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그런데 모른다고 말하면 끝나는 일도 있고, 모르면 안 됐던 일도 있지.”
나는 종이에 유리의 질문을 적었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 아래에 내가 한 대답을 적었다.
거기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문장을 보고 있으니 변명처럼 보였다.
생각하지 못한 것과 생각하지 않은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래에 유리의 두 번째 질문을 적었다.
생각 안 한 거야, 몰랐던 거야?
답은 적지 않았다.
오후 햇빛은 이미 벽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내가 면회실에 있는 동안 빛이 바닥을 건너간 것이다.
나는 오늘의 빛이 어디에 닿았는지 보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갔다.
저녁이 되자 유리가 앉았던 의자의 모양이 기억에서 흐려졌다. 파란 셔츠의 색과 접힌 빨대 포장지는 남아 있었지만, 포옹할 때 닿았던 몸의 무게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기억하려고 할수록 장면을 고쳐 만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리가 먼저 안겼는지 내가 먼저 팔을 벌렸는지.
수진이 가석방 이야기를 들었을 때 컵을 들고 있었는지 내려놓은 뒤였는지.
유리의 마지막 표정이 조금 부드러웠는지,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확실한 것만 적었다.
유리가 왔다.
유리는 질문했다.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유리는 돌아갔다.
네 문장은 면회 전체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의자와 달리 내가 기억하려 했다는 흔적은 남았다.
나는 마지막 줄에 쓰려던 문장을 멈췄다.
유리는 나를 아직 사랑한다.
그 문장은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이렇게 썼다.
유리는 편지를 읽어보겠다고 말했다.
그날의 몫은 그 문장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