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설명의 기술

에피소드 6 / 50

변호사 서준호는 내 반성문을 세 장으로 늘려왔다.

내가 쓴 문장은 한 장도 되지 않았다.

오늘 나는 단추 하나를 주웠다.

윤서진 간호사가 내 상처를 치료했다.

나는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작업을 즉시 중단하지 않았다.

유리는 내게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느냐고 물었다.

서준호가 가져온 문서는 그 문장들을 부드러운 순서로 다시 배열한 것이었다. 첫 장에는 범행에 대한 인정, 두 번째 장에는 수감생활 중의 성찰, 세 번째 장에는 가족관계 회복과 사회복귀 계획이 있었다.

문서 제목은 ‘가석방 심사용 자기성찰서 초안’이었다.

“먼저 한번 읽어보시죠.”

서준호가 말했다.

그는 접견실 탁자 건너편에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여름이 시작된 뒤 접견실 냉방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변호사 접견은 일반면회보다 시간이 길었고 유리벽도 없었지만, 문 옆에는 교도관이 앉아 있었다.

나는 첫 문장을 읽었다.

저는 현장 총괄책임자로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사 일정과 회사 손실을 우려한 나머지 신중하지 못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나는 다음 문장을 읽었다.

그 결과 소중한 두 생명이 희생되고 한 분이 중상을 입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하였습니다.

“소중한 두 생명이라는 말은 누가 썼습니까?”

“제가 썼습니다.”

“왜 이름을 안 썼습니까?”

서준호는 문서를 내려다봤다.

“박진수 씨와 오광철 씨 이름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심사문서는 간결하게 가는 게 좋습니다.”

“이름 두 개 넣으면 얼마나 길어집니까?”

“길이 문제라기보다 균형의 문제입니다.”

“무슨 균형이요?”

“피해자에 대한 애도는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적인 문장으로 가면 자기처벌 성향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보고 싶은 건 안정된 인식입니다.”

“죽은 사람 이름을 쓰는 게 감정적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넣으세요.”

서준호는 펜으로 ‘소중한 두 생명’ 위에 선을 긋고 여백에 두 이름을 적었다.

박진수, 오광철.

인쇄된 문장 사이에 들어간 손글씨는 주변 글자보다 진했다.

“계속 읽으시죠.”

나는 문서를 넘겼다.

수감 초기에는 제게 닥친 신체적 장애와 가족의 해체만을 생각하며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의료수용동에서 다른 수용자들과 생활하고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한 적 없습니다.”

“직접 하신 말은 아니지만, 보내주신 메모에서 취지를 정리했습니다.”

“어떤 메모요?”

“간호사에게 치료받은 일, 동료 수용자의 단추를 주워준 일 말입니다.”

“단추 하나 주운 게 타인의 도움 없이는 누구도 살 수 없다는 깨달음이 됩니까?”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중요합니다.”

나는 문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왜 배워야 합니까?”

서준호가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았다.

“심사 때문입니다.”

“사람 둘이 죽었고 제가 다쳤습니다. 거기서 뭘 배웠다고 말하면 그 일이 저를 가르치려고 일어난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셨잖습니까.”

“수감생활을 통해 태도가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사고가 교육 목적으로 일어났다고 쓰는 게 아니고요.”

“문장을 읽는 사람은 구분합니까?”

“대부분 구분합니다.”

서준호는 안경을 다시 썼다.

그는 사고 직후부터 내 사건을 맡은 변호사가 아니었다. 처음 변호인은 회사가 선임한 대형 로펌 소속이었고, 재판 1심이 끝난 뒤 회사 지원이 중단되면서 수진의 소개로 서준호를 만났다. 그는 산업재해와 업무상 과실 사건을 주로 다뤘다. 나보다 세 살 많았고, 말할 때 상대의 문장을 끝까지 들었다. 그러나 듣는 것과 반영하는 것은 달랐다.

“한재호 씨.”

그가 말했다.

“이 문서는 철학 논문이 아닙니다. 심사위원들은 제한된 시간에 수십 건을 봅니다. 한재호 씨가 책임을 인정하는지, 재범 위험이 낮은지, 사회 안에서 생활할 계획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써야 합니다.”

“제가 믿지 않는 말을 써도요?”

“거짓말을 쓰자는 게 아닙니다.”

“깨달았다는 말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생각하게 되었다’로 바꾸죠.”

“말만 바뀌잖습니까.”

“말을 바꾸는 게 글 쓰는 일입니다.”

그 대답은 너무 당연해서 반박하기 어려웠다.

회사에서도 문장을 바꾸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

사고 발생 사흘 전, 장석호 본부장은 화상회의에서 말했다.

“지연이라는 표현은 빼. 일정 영향 검토 중으로 가.”

나는 보고서 문장을 수정했다.

철골 보강작업 지연 예상.

일정 영향 검토 중.

현상은 바뀌지 않았다. 보강작업은 늦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연’은 이미 발생한 실패였고, ‘영향 검토 중’은 아직 관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사고 당일 오후에는 현장소장이 말했다.

“변위 수치가 기준치에 근접했습니다.”

나는 회의록에 적었다.

변위 측정 결과 허용기준 내.

근접했다는 말도 사실이었고 허용기준 내라는 말도 사실이었다. 어느 문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 달라졌다.

나는 더 정확한 문장을 고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행동을 만들 문장을 골랐다.

“두 번째 장은 나중에 보겠습니다.”

나는 세 번째 장으로 넘겼다.

출소 후에는 가족의 신뢰를 회복하고, 장애인 직업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제 경험을 산업안전 교육에 활용하고자 합니다. 또한 피해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잊지 않고 관련 봉사활동을 지속하며 사회에 기여하겠습니다.

나는 문서를 다시 내려놓았다.

“이 계획은 누가 세웠습니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향을 제안한 겁니다.”

“딸과 같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가족의 신뢰를 회복한다고 쓰고, 제가 산업안전 강의를 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교육에 활용한다고 씁니까?”

“가족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게 동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연락을 유지하고 양육책임을 다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피해자 관련 봉사는요?”

“유가족 지원단체나 산재예방단체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저를 원합니까?”

“출소 후에 확인해야죠.”

“원하지 않으면요?”

“다른 방식으로 사회공헌을 하면 됩니다.”

그에게 계획은 빈칸을 채우는 항목이었다. 한 방법이 안 되면 다른 방법을 넣을 수 있었다.

“이런 글을 쓰면 가석방 가능성이 높아집니까?”

내가 물었다.

“보장은 못 합니다.”

“확률이 얼마나 올라갑니까?”

“숫자로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이 문장을 쓰는 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도 모르는 거네요.”

“심사 관행상 필요한 요소입니다.”

“안전점검 담당자도 비슷하게 말했습니다.”

서준호가 눈썹을 조금 올렸다.

“무슨 뜻입니까?”

“붕괴할 확률을 숫자로 말할 수 없지만 야간작업을 미루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저는 확률을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그 일과 반성문을 비교하는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나는 문서 첫 장으로 돌아갔다.

신중하지 못한 판단.

돌이킬 수 없는 결과.

깊이 반성.

자기연민.

깨달음.

신뢰 회복.

사회 기여.

문장에는 방향이 있었다. 잘못에서 반성으로, 반성에서 성장으로, 성장에서 사회복귀로. 교육실 벽의 화살표와 같았다.

사람의 삶을 설명하는 기술은 사건을 순서대로 배열하는 일이었다.

사고 전의 나는 성과를 좇았다.

사고로 잘못을 깨달았다.

감옥에서 반성했다.

출소 후에는 타인을 위해 살 것이다.

완성된 이야기는 읽기 편했다. 원인과 결과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설명해주었다.

피해자들의 죽음은 이야기의 전환점이 되었다.

내 장애는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감옥은 성찰의 장소가 되었다.

유리는 내가 회복해야 할 관계가 되었다.

모든 사람이 내 이야기 안에서 기능을 가졌다.

그것이 싫었다.

동시에 그 이야기에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 의미 없이 두 사람이 죽고, 아무 목적 없이 내 몸이 부서지고, 내가 여전히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것보다 훨씬 견디기 쉬워 보였다.

“서 변호사님.”

“네.”

“이 글을 읽으면 제가 나아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까?”

“그렇게 보여야 합니다.”

“실제로는요?”

서준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판단할 문제는 아닙니다.”

“다들 그 말만 하네요.”

“어떤 말이요?”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

“변호사는 의뢰인을 도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심사위원에게 평가받을 글은 써주면서요.”

“평가받게 도와드리는 겁니다.”

나는 웃었다. 웃음이 나와서 웃은 것이 아니라 문장의 구조가 정확해서 웃었다.

“회사 법무팀하고 비슷하군요.”

“기분 나쁘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입니다.”

서준호도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잠시 긴장이 풀렸다.

“회사에서 사고보고서를 처음 썼을 때 기억납니까?”

그가 물었다.

“제가 직접 작성하지는 않았습니다.”

“초안 검토하셨죠.”

“병원에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이메일로 의견 보냈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기억했다.

수술 후 열흘쯤 지났을 때였다. 집중치료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긴 뒤 회사 법무팀 오세라가 노트북을 들고 왔다. 수진은 내가 안정해야 한다며 반대했지만, 나는 보고서를 보겠다고 했다.

보고서 제목은 ‘서부물류센터 증축현장 구조물 붕괴사고 1차 보고’였다.

사고 개요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예상치 못한 국부적 구조 불안정으로 작업구역 일부 붕괴.

나는 ‘예상치 못한’이라는 표현을 보고 물었다.

“사전 경고가 있었는데 예상치 못했다고 써도 됩니까?”

오세라는 말했다.

“붕괴 자체를 예상했다는 자료는 없습니다.”

“안전담당자가 작업 연기를 권고했습니다.”

“권고는 구조물 붕괴 가능성을 확정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수사 단계에서는 표현을 넓게 가져가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군데를 수정했다.

‘작업구역 일부 붕괴’를 ‘증축구역 일부 붕괴’로 바꾸었다. 작업구역이라고 쓰면 사람이 작업 중이었다는 사실이 문장 앞쪽에 드러났다. 증축구역이라고 쓰면 장소만 남았다.

그때 나는 회사 보고서의 정확성을 높였다고 생각했다.

“그 보고서에 제가 수정한 내용이 남아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수사기록에 이메일 사본이 있습니다.”

“왜 재판에서는 문제 되지 않았죠?”

“사고 후 대응 문서라 범죄 성립과 직접 관련이 낮다고 본 겁니다.”

“가석방 심사에는요?”

“굳이 언급할 필요 없습니다.”

굳이.

그 말도 보고서에서 자주 사용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위험.

굳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지연.

굳이 회의록에 남기지 않아도 되는 반대의견.

나는 서준호가 가져온 초안을 다시 읽었다.

“제가 직접 써보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초안은 참고용입니다.”

“다만 구조는 그대로 쓰라는 거죠?”

“심사에 필요한 내용은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책임을 인정하되 과도하게 자책하지 말고.”

“네.”

“피해자를 기억하되 감정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고.”

“표현을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네.”

“가족관계를 회복하겠다고 하되 가족에게 의무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고.”

“맞습니다.”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하되 구체적으로 가능한지는 나중에 확인하고.”

서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재호 씨는 원래 이런 식으로 회의를 했습니까?”

“어떤 식이요?”

“상대가 한 말을 가장 불리한 형태로 정리해서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부하직원들이 나를 두고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내게 보고할 때는 문장을 잘 골라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한 단어를 잡으면 보고의 전체 방향이 바뀐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꼼꼼함이라고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

“사과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도 필요 없다는 뜻입니까?”

“아니요. 받겠습니다.”

서준호는 초안 한 부를 내 쪽으로 밀었다.

“오늘 결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만 다음 상담 전에는 기본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심사에서 제가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꼭 써야 합니까?”

“그 질문을 그대로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책임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쓰면 됩니다.”

“변하지 않았다면요?”

“정말 변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단추를 주운 일, 도움을 요청한 일, 유리의 질문에 모른다고 말한 일을 생각했다.

그런 일이 나를 바꾸었는지 알 수 없었다. 사고 전에도 나는 단추를 주웠을 것이고,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딸에게 모른다고 말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예전에는 그런 행동을 기억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서준호는 이번에는 그 말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는 서류가방에서 얇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이건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봉투 안에는 회사가 최근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 사본이 있었다. 재심 이야기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인데도 회사는 사고 관련 추가 자료 공개 요청에 반대하고 있었다.

“누가 자료 공개를 요청했습니까?”

“최민석 씨 쪽 대리인이 정보공개와 증거보전 절차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민석.

사고에서 살아남은 작업자.

그는 재판 때 회사가 위험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지만, 구체적인 내부문서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나와 연락한 적은 없었다.

“왜 지금요?”

“정확한 의도는 모릅니다. 언론사 한 곳도 사건기록 열람을 문의했다고 합니다.”

“민석 씨가 재심을 도우려는 겁니까?”

“그렇게 단정하지 마십시오.”

“회사 책임이 더 드러나면 제 책임은 줄어들 수 있잖습니까.”

“법적으로는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한재호 씨에게 불리한 자료가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료요?”

“모르니까 확인하는 겁니다.”

서준호가 내 말을 돌려준 것처럼 느껴졌다.

“회사하고 접촉해보셨습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오세라 변호사는요?”

“법무팀에 계속 있습니다.”

오세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병실에서 사고보고서를 넘기던 손, 문장을 넓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하던 목소리.

“회사가 왜 공개를 막습니까?”

“기업은 보통 내부자료 공개를 막습니다. 그 사실 자체로 은폐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저도 회사 편을 들 때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회사와 이해관계가 다릅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그걸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사고 직후 나는 회사와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살아야 직원들이 살고, 프로젝트가 유지돼야 협력업체가 살며, 사고를 수습해야 유가족 보상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회사의 책임을 줄이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처럼 느껴졌다.

재판이 시작되면서 회사는 내 결정을 개인의 독립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때부터 이해관계가 달라졌지만, 나는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가 나를 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면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먼저 회사의 언어를 사용하고, 보고서를 고치고, 현장에 결정을 밀어붙였다는 사실도 남았다.

서준호가 접견 종료 시간을 확인했다.

“반성문은 다음 주까지 다시 써보세요. 자료 공개 건은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민석 씨를 만나볼 수 있습니까?”

“지금은 권하지 않습니다. 상대방 의도를 모릅니다.”

“그도 피해자입니다.”

“생존자이자 증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재호 씨와 이해가 충돌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다 역할로 나누시네요.”

“사건을 맡으면 그렇게 봐야 합니다.”

그는 서류를 정리했다.

“한재호 씨도 사람을 역할로 나누는 일을 하셨을 겁니다.”

현장책임자.

안전담당자.

하청소장.

작업자.

사망자.

생존자.

유가족.

피고인.

나는 역할을 정하면 해야 할 말과 책임의 범위가 보인다고 생각했다.

접견이 끝난 뒤 의료동으로 돌아와 반성문 초안을 펼쳤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서준호의 초안과 빈 종이를 나란히 무릎 위에 놓았다. 철문이 열릴 때마다 바람이 불어 종이 모서리가 들렸다. 나도윤이 집게판을 건네주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두 손으로 종이를 누르느라 휠체어는 그가 밀었다.

첫 번째 철문 앞에서 한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도윤이 주워주려 하자 내가 말했다.

“제가 줍겠습니다.”

“문 열어야 합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나는 집게를 꺼내려 했지만 서류가 무릎에서 다시 미끄러졌다. 나도윤이 먼저 종이를 집어 집게판에 끼웠다.

“고맙습니다.”

“바람 부는 곳에서는 고정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는 문을 열었다.

떨어진 장에는 사회복귀 계획이 적혀 있었다. 산업안전 교육, 장애인 지원, 가족관계 회복. 바닥에 엎어진 동안에도 문장들은 손상되지 않았다. 모서리에 먼지가 조금 묻었을 뿐이었다.

나는 나도윤에게 물었다.

“교도관님도 수용자들 반성문을 읽습니까?”

“업무상 필요하면 일부 봅니다.”

“좋은 반성문과 나쁜 반성문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제 업무가 아닙니다.”

“또 그 말이군요.”

“다만 비슷한 표현은 많이 봤습니다.”

“어떤 표현이요?”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다, 가족을 위해 살겠다, 사회에 봉사하겠다.”

“그 말들이 거짓입니까?”

“모릅니다.”

“그럼 왜 다들 씁니까?”

“묻는 질문이 비슷하니까 답도 비슷하겠죠.”

그 대답은 서준호의 말보다 단순했다.

“똑같이 쓰지 않으면 불리합니까?”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그렇게 볼 수 있겠죠.”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쓰면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겁니까?”

“발견하지 못했다고 답한 거겠죠.”

“심사위원도 그렇게 봅니까?”

“그건 심사위원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도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규정 뒤에 숨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태도는 내가 회사에서 거의 보지 못한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보고받은 사람이 답을 기대하면 담당자는 무언가를 말해야 했다. 확실하지 않으면 전망을 말했고, 전망이 없으면 가정을 세웠다. 모른다는 말은 준비 부족으로 평가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문장으로 덮었다.

현시점 기준 특이사항 없음.

추가 확인 예정.

영향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

나는 그 언어를 잘했다.

방에 도착한 뒤 빈 종이에 반성문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써보았다.

나는 6년 전 6월 19일 오후 4시 12분 작업 개시를 승인했다. 그 전에 안전담당자로부터 점검 완료 전 집중하중 작업을 보류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현장소장과 시공사는 작업 가능 의견을 냈다. 나는 안전담당자의 권고보다 일정과 현장 의견을 따랐다.

사고는 오후 7시 34분 발생했다. 박진수와 오광철이 사망했고 최민석이 중상을 입었다. 나는 척수손상을 입었다.

그 뒤에는 아무 문장도 쓰지 않았다.

성찰도 미래계획도 없었다.

사실만 적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역시 내가 고른 사실이었다. 왜 6월 18일의 메일은 쓰지 않았는지, 장석호의 압박은 왜 빼놓았는지, 하청업체의 수치 축소는 왜 적지 않았는지 질문할 수 있었다.

짧게 쓰면 책임이 내게 모였고, 길게 쓰면 책임이 흩어졌다.

나는 두 문서를 나란히 놓았다. 하나는 나를 변화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사고 당시의 행동만 남겼다. 어느 쪽도 전체는 아니었다.

정호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새 단추는 수용복에 단단히 달려 있었다.

나는 서준호가 만든 첫 문장을 그대로 베껴 썼다.

저는 현장 총괄책임자로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사 일정과 회사 손실을 우려한 나머지 신중하지 못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문장은 잘 읽혔다.

나는 그 아래에 이름을 넣었다.

그 결과 박진수 씨와 오광철 씨가 사망하고 최민석 씨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소중한’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내가 소중하다고 쓰지 않아도 그들의 생명이 덜 소중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음 문장을 쓰려 했다.

저는 수감생활을 통해.

손이 멈췄다.

사고보고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본 사고를 계기로 당사는 안전관리 체계를 전면 재점검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겠습니다.

회사는 그 뒤 안전선포식을 열었다. 임직원들이 헬멧을 쓰고 구호를 외쳤다. 현장에는 새 점검표가 배포됐고, 위험작업 승인단계가 하나 늘었다.

박진수와 오광철의 이름은 선포식에서 불리지 않았다.

사고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는 더 안전한 조직이 되겠다고 말했다.

나는 사고를 계기로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쓰려 했다.

회사와 내가 같은 방법으로 죽음을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번째 문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초안 여백에 적었다.

설명은 사실을 전달할 수 있다.

설명은 사실을 가릴 수도 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나는 설명을 잘한다.

그 문장은 장점처럼도, 자백처럼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