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두 개의 원인

에피소드 7 / 50

사고 원인조사서는 세 종류였다.

회사가 작성한 내부조사서.

고용노동부가 작성한 중대재해 조사보고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공소사실과 증거목록.

서준호는 그중 일부를 복사해 보내왔다. 자료는 투명한 비닐봉투에 봉인되어 있었고 나도윤이 목록과 페이지 수를 대조한 뒤 내게 건넸다.

“총 백팔십칠 쪽입니다.”

그가 말했다.

“일주일 뒤 반납입니다.”

“필기해도 됩니까?”

“원본 훼손은 안 됩니다. 별도 종이에 하세요.”

나는 자료를 무릎 위에 올렸다. 종이 무게 때문에 허벅지가 눌렸지만 감각은 거의 없었다. 손으로 한 번 들어보니 예상보다 무거웠다.

정호가 물었다.

“성경보다 두껍나?”

“이건 글씨가 작습니다.”

“사람 죽은 이유를 저렇게 많이 써야 하나.”

“이유가 많으니까요.”

나는 첫 봉투를 열었다.

내부조사서 표지에는 회사 로고가 있었다. 로고 아래에 ‘대외비’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사고 뒤 수차례 본 문서였지만, 교도소에서 다시 보니 남의 회사 자료처럼 느껴졌다.

회사는 사고 원인을 네 항목으로 분류했다.

첫째, 설계 단계에서의 접합부 안전율 검토 미흡.

둘째, 시공사의 보강재 설치 불완전.

셋째, 하청업체의 변위 측정값 일부 누락.

넷째, 현장 운영책임자의 작업중지 판단 미흡.

내 책임은 네 번째였다.

네 항목 가운데 하나.

처음 이 보고서를 봤을 때는 그 비율을 계산했다. 원인이 네 개라면 내 책임도 사분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법률상 책임은 그렇게 나뉘지 않았지만 마음은 숫자를 원했다.

설계사 삼십 퍼센트.

시공사 삼십 퍼센트.

하청업체 이십 퍼센트.

회사 십 퍼센트.

나 십 퍼센트.

더 세분화하면 내 몫은 작아졌다. 감독기관의 형식적 점검, 발주처의 준공 압박, 자재 납품 지연, 날씨, 야간 근무자의 피로까지 원인에 넣으면 분모가 커졌다.

나는 원인을 찾는 것보다 원인의 수를 늘리는 데 관심이 있었다.

고용노동부 보고서는 달랐다.

직접 원인: 임시보강 상태에서 허용한계를 초과한 집중하중 발생.

간접 원인: 구조검토 미흡, 측정정보 전달 누락, 작업중지 절차 부재.

관리적 원인: 공기 단축 중심의 의사결정과 안전관리 책임 불명확.

보고서는 원인을 층으로 나눴다. 직접 원인 아래에 간접 원인이 있고, 그 아래에 관리적 원인이 있었다. 가장 아래에 있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 도식에서는 나는 어디에 있는지 불분명했다.

집중하중을 직접 만든 작업자는 아니었다. 구조검토를 한 설계자도 아니었다. 측정값을 누락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중지 절차를 실행할 권한이 있었고, 공기 단축 중심의 의사결정을 현장에서 구현했다.

나는 여러 층에 조금씩 걸쳐 있었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훨씬 단순했다.

피고인 한재호는 현장 총괄책임자로서 구조물의 안전이 충분히 확인될 때까지 작업을 중지시켜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게을리하여 작업을 계속하게 하였다.

그 결과 구조물이 붕괴했고 박진수와 오광철이 사망했으며 최민석이 중상을 입었다.

주어가 하나였다.

피고인 한재호.

문장이 명확했다.

법은 모든 원인을 설명하는 대신 처벌할 행위를 골랐다. 그 단순함이 억울하면서도 이해되었다. 법정은 원인 전체를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물을지 결정하는 장소였다.

1심 재판에서 검사는 붕괴 모형을 법정 가운데에 놓았다. 실제 구조물을 축소해 만든 회색 모형이었다. 붕괴한 3구간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검사는 막대기로 내 위치를 가리켰다.

“피고인은 이곳 현장사무실에서 작업 개시 승인 전화를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박진수와 오광철의 위치를 가리켰다.

“피해자들은 피고인의 승인에 따라 이 구역에서 작업했습니다.”

막대기가 내 위치에서 두 사람의 위치로 움직였다. 하나의 선이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변호인은 같은 모형의 아래쪽 접합부를 가리켰다.

“이 구조물은 피고인의 승인과 무관하게 설계상 안전율이 부족했습니다. 시공사는 보강재를 도면과 다르게 설치했고 측정값을 누락했습니다.”

이번에는 막대기가 내 위치를 지나가지 않았다. 설계도면에서 접합부로, 접합부에서 붕괴구간으로 움직였다.

검사는 사람이 움직이는 경로를 보여줬고, 변호인은 힘이 움직이는 경로를 보여줬다.

둘 다 같은 붕괴를 설명했다.

판사가 내게 물었다.

“피고인은 어느 설명이 맞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변호인을 봤다. 그는 사실대로 답하되 질문 범위를 벗어나지 말라고 했다.

“두 원인이 모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피고인의 승인 없이도 붕괴했을 것이라고 봅니까?”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그 시각에는 붕괴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 시각이 아니면 결국 붕괴했을 것이라는 뜻입니까?”

“보강하지 않은 채 하중을 가하면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질문에 답하십시오. 피고인의 승인이 사망 결과에 원인이 됐습니까?”

“네.”

그 한 글자가 법정에 오래 남았다.

검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변호인은 서류를 넘겼다. 이후에 설명한 설계오류와 회사 압박은 ‘네’ 뒤에 붙는 부연이 되었다.

항소심에서는 반대였다. 변호인이 회사의 공기 단축 지시와 잘못된 안전자료를 먼저 제시했다. 검사는 내가 최종 승인권자였다는 점을 반복했다. 법정에서 원인의 수는 많았지만, 판결문에는 책임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것만 남았다.

나는 판결이 틀렸다고만 말할 수 없었다. 다만 판결문이 사고 전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빈 종이를 꺼내 가운데에 ‘붕괴’라고 썼다.

그 주위에 원인을 배치했다.

설계오류.

보강재 누락.

변위값 축소.

준공 압박.

야간 집중하중.

감독기관 부실점검.

작업중지 절차 미비.

현장 총괄책임자의 승인.

각 단어에서 붕괴를 향해 화살표를 그었다. 화살표가 많아지자 종이는 거미줄처럼 보였다.

정호가 침대에서 내려다봤다.

“자네 이름은 어디 있나?”

“현장 총괄책임자라고 썼습니다.”

“왜 이름은 안 쓰고?”

“다른 것도 회사, 업체 이름은 안 썼잖습니까.”

“설계오류는 사람이 아닌가?”

“설계자가 했겠죠.”

“보강재 누락도 사람이 했고.”

“그렇죠.”

“준공 압박도 누가 했을 거고.”

나는 종이를 손으로 가렸다.

“보고서 보실 겁니까, 성경 보실 겁니까?”

“자네가 바닥에 펼쳐놔서 보이는 걸 어떡해.”

나는 자료를 침대 위로 옮겼다.

정호의 말이 불편한 이유는 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고서의 원인들은 사람을 지웠다. 설계오류는 설계팀의 누구인지, 측정값 축소는 누가 어떤 숫자를 바꿨는지, 준공 압박은 어떤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 드러내지 않았다.

반대로 공소사실은 나만 남겼다.

나는 어느 방식이 더 정확한지 결정하고 싶었다.

회사의 방식이 맞다면 나는 여러 원인 중 일부였다.

검찰의 방식이 맞다면 내 결정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핵심 고리였다.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견디기 쉬웠다.

점심 전까지 자료 오십 쪽을 읽었다. 구조감정서에는 계산식과 도면이 많았다. 연결부 안전율은 설계조건에서 1.28로 산정됐으나 실제 시공상태와 임시 적재하중을 반영하면 0.91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1보다 작으면 요구 성능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나는 0.91에 밑줄을 긋고 싶었지만 자료 훼손이 금지되어 별도 종이에 옮겼다.

0.91.

사고 당시 내가 받은 보고서에는 1.12라고 적혀 있었다.

1.12와 0.91 사이에 두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숫자는 사람을 포함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안전담당자에게 물었다.

“허용기준이 1.0이라면 1.12는 문제없는 것 아닙니까?”

그는 답했다.

“현재 입력값 기준으로는 그렇습니다. 다만 보강 상태가 도면과 같은지 확인이 안 됐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확인 전까지 법적으로 작업을 중지해야 합니까?”

그는 말했다.

“법적 의무는 제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안전상으로는 미루는 게 좋습니다.”

나는 법적 의무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부분을 선택했다.

그때 내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결정이 아니라 책임을 설명할 수 있는 결정이었는지도 몰랐다.

점심 배식 뒤 서진이 상처를 확인하러 왔다. 나는 보고서를 침대 한쪽에 쌓아두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자료가 많네요.”

그녀가 말했다.

“사고기록입니다.”

“피부에 닿지 않게 치우세요. 종이 모서리에 긁힐 수 있습니다.”

“감각 없어서 모릅니다.”

“그러니까 치우라는 겁니다.”

서진은 장갑을 끼고 드레싱을 떼었다.

“붉은 범위는 어제보다 줄었습니다.”

“체위 변경했으니까요.”

“수분 섭취도 늘었고요.”

“상처가 물 마신 것하고 관계있습니까?”

“피부 상태, 혈액순환, 영양, 압박, 습기, 여러 가지가 같이 작용합니다.”

나는 몸을 조금 돌려 그녀를 보려 했다.

“그중 직접 원인은 압박 아닙니까?”

“대부분은요.”

“그럼 압박만 없애면 낫습니까?”

“이미 손상된 상태와 다른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원인을 하나로 말하기 어렵군요.”

서진이 손을 멈췄다.

“상처 이야기하시는 것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럼 치료에 필요한 것만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내가 종이에 그린 화살표를 보았다.

“이런 식으로 상처 원인도 그릴 수 있겠죠.”

내가 말했다.

“그럴 수는 있겠네요.”

“그러면 누구 책임입니까?”

“한재호 씨 피부니까 본인 책임이라고 말하면 되겠어요?”

“제가 체위 변경을 안 했으니까 제 책임도 있죠.”

“침대와 방석 상태, 교대근무, 간호인력, 감각 소실도 영향이 있습니다.”

“그럼 아무 책임도 없는 겁니까?”

서진은 새 드레싱을 붙였다.

“치료할 때는 책임보다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봅니다.”

“사고는 치료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제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왜 저한테 하세요?”

그녀의 말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서진은 치료를 마치고 장갑을 벗었다.

“원인이 여러 개여도 오늘 체위 변경을 안 한 사실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다른 조건이 나빴다고 본인 행동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요.”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같은 걸 물으시잖아요.”

그녀는 기록지에 상처 상태를 적었다.

“제가 판단을 잘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방석이 맞는 제품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체위 변경 간격을 다르게 정했어야 할 수도 있어요. 그게 확인되면 제 책임도 기록하고 방법을 바꿉니다.”

“간호사님은 사람을 죽인 적 없잖습니까.”

말이 나가자 방 안이 조용해졌다.

서진은 기록지를 덮었다.

“네. 없습니다.”

그녀는 가림막을 접고 나갔다.

나는 사과하지 못했다.

그녀가 말한 내용보다 내가 대화를 이겼는지가 먼저 중요해진 순간이었다.

오후에 보고서를 다시 펼쳤다. 자료 중간에는 사망자와 부상자의 인적사항이 있었다.

박진수, 당시 만 46세.

용접 및 철골조립 경력 18년.

배우자와 자녀 2명.

오광철, 당시 만 31세.

현장 근무 경력 4년.

미혼.

최민석, 당시 만 33세.

철골조립 경력 9년.

기록은 사람을 몇 줄로 줄였다.

박진수의 유류품 목록에는 낡은 휴대전화, 검은 지갑, 자동차 열쇠, 편의점 영수증, 어린이용 축구장갑 한 쌍이 있었다.

축구장갑은 왜 현장에 있었을까.

아들에게 주려고 샀을 수도 있고, 반품하려고 차에 두었다가 작업가방에 섞였을 수도 있었다. 나는 알지 못했다.

오광철의 유류품에는 보온병, 전기기능사 필기문제집, 이어폰 한쪽, 현금 삼만이천 원이 있었다.

문제집 표지에는 형광펜 자국이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박진수는 현장에서 내게 인사했고, 회의 때 몇 번 의견을 말했다. 오광철은 야간작업 명단에서 이름을 본 적이 있고, 사고 일주일 전 안전교육장에서 뒷줄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역할과 얼굴 일부였다.

박진수, 숙련공.

오광철, 젊은 작업자.

최민석, 생존자.

그들이 퇴근 후 어디로 가고 무엇을 사며 누구에게 전화했는지는 몰랐다.

사고 뒤 회사 추모식에서 나는 두 사람의 영정사진을 처음 오래 보았다.

박진수는 사진에서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오래전 가족행사 때 찍은 사진처럼 보였다. 오광철은 야외에서 웃고 있었다. 사진 한쪽에 다른 사람의 어깨가 잘려 있었다.

나는 영정 앞에 고개를 숙였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났다.

회사 홍보팀이 언론 배포용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 기사에는 ‘현장책임자도 조문’이라고 적혔다.

박미영은 빈소에서 나를 보지 않았다. 박진수의 아내는 내게 나가달라고 말했다. 오광철의 형은 내 멱살을 잡으려다 친척들에게 제지됐다.

나는 회사가 준비한 사과문을 읽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서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의 이름 앞에서 회사 문장을 읽을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원인도식의 한쪽에 박진수와 오광철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곧 선을 그었다.

두 사람은 사고의 원인이 아니었다.

보고서 일부에는 작업자들의 위험 인지와 자발적 작업 참여가 언급되어 있었다. 하청업체 측은 작업자들도 임시보강 상태를 알고 있었으며, 숙련공으로서 작업을 거부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법정에서 그 주장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 한쪽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들도 현장에 남았다.

그 문장은 내 책임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박진수와 오광철이 위험을 알았다는 사실은 내가 작업을 승인한 사실을 바꾸지 않았다. 그들이 왜 남았는지, 실제로 거부할 수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일당, 고용관계, 현장 분위기, 숙련공으로서의 자존심, 동료를 두고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모두 있었을 수 있다.

사망한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 빈자리에 이유를 넣었다.

나는 두 이름을 원인도식 아래에 따로 적었다.

결과.

그 옆에 최민석을 적었다.

중상.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사건의 결과로만 보였다.

나는 종이를 접었다가 다시 폈다.

원인을 아무리 많이 적어도 결과는 세 사람의 몸에 모였다.

회사 손실은 보험과 회계처리로 분산됐다. 공사 지연은 만회계획으로 줄었다. 경영진은 인사이동을 했고, 설계사는 과징금을 냈고, 하청업체는 폐업했다가 다른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박진수와 오광철은 돌아오지 않았다.

민석의 팔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내 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원인은 넓게 퍼져 있었고 결과는 좁은 몸에 남았다.

저녁 전 서진이 다시 들어왔다. 약을 놓고 나가려는 그녀를 불렀다.

“아까 말은 미안합니다.”

“어떤 말이요?”

“간호사님은 사람을 죽인 적 없다고 한 말이요.”

“사실이잖아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자격을 따졌습니다.”

서진은 약봉지를 정리했다.

“사과는 받겠습니다.”

“화 안 났습니까?”

“났습니다.”

그녀는 바로 말했다.

“그래도 약은 드려야 하니까 왔고요.”

“제가 싫어도요?”

“좋아해야 치료하는 건 아닙니다.”

그녀는 물컵을 내게 건넸다.

나는 약을 삼켰다.

“원인이 여러 개면 책임도 여러 사람에게 있는 겁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서진이 한숨을 쉬었다.

“또 상처 이야기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저는 모릅니다.”

“간호사님은 모른다고 쉽게 말하네요.”

“모르는 걸 오래 설명하면 더 모르게 되니까요.”

그녀가 나갔다.

정호는 저녁기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을 펴기 전 내가 그린 원인도식을 집어 들었다.

“보지 마시라니까요.”

“바닥에 떨어졌어.”

그는 종이를 돌려가며 봤다.

“원인이 이렇게 많나?”

“보고서에 나온 것만 적은 겁니다.”

“그럼 자네는 이것 중 하나고?”

“네.”

“하나뿐인가?”

“제 결정도 여러 세부 행동으로 나눌 수 있죠. 경고를 축소해서 기록한 것, 추가점검을 기다리지 않은 것, 작업자들에게 위험을 직접 설명하지 않은 것.”

“그러면 자네 안에도 원인이 여러 개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호는 종이를 내게 돌려주었다.

“그렇게 쪼개면 끝이 있나?”

“없을 수도 있죠.”

“그러면 하나님까지 가야겠구먼.”

“왜 하나님이 나옵니까?”

“세상을 만들었으면 저 설계오류도 만들었을 거 아닌가.”

“그런 식이면 사람이 한 일은 아무 책임도 없겠네요.”

“나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닌데.”

“모든 일에 이유가 있다면서요. 그 이유가 하나님 계획이면 제가 승인한 것도 계획입니까?”

정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건 자네 선택이지.”

“하나님 계획 안의 선택 아닙니까?”

“사람한테 자유의지를 주셨으니까.”

“결과는 미리 아셨고요?”

“그렇다고 믿네.”

“그러면 알면서 두 사람을 죽게 둔 겁니까?”

정호가 성경을 덮었다.

“자네는 지금 원인을 찾는 게 아니야.”

“그럼 뭘 찾습니까?”

“누군가 자네 대신 제일 마지막 원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거지.”

나는 휠체어 바퀴를 세게 잡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군요.”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는 말이네.”

“아저씨는 사람을 죽이고도 신의 계획이라고 생각하잖습니까.”

정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언제 그랬어?”

“매일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잖아요.”

“이유가 있다는 것과 내가 책임이 없다는 게 같나?”

“아저씨한테는 다를지 몰라도 죽은 사람한테도 다릅니까?”

“내 아내 이야기 함부로 하지 마.”

“제가 이름도 모르는데 어떻게 함부로 합니까?”

정호가 성경을 침대 위에 던졌다. 책이 펴지며 얇은 종이들이 구겨졌다.

나도윤이 복도에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정호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윤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본 뒤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물러났다.

정호는 성경을 주워 펴진 페이지를 손으로 폈다. 새로 단 단추가 가슴에서 빛을 받았다.

“기도 시간입니다.”

그가 말했다.

“혼자 하세요.”

정호는 침대 끝에 앉아 눈을 감았다.

나는 원인도식을 다시 보았다.

가운데의 ‘붕괴’를 검은색으로 칠했다. 모든 화살표가 그 점으로 모였다.

내 이름을 역할 대신 직접 적었다.

한재호.

장석호.

설계책임자 이문식.

현장소장 조병철.

안전점검 담당 김도현.

감독기관 담당자.

이름을 모르는 작업반장.

사람 이름이 늘어나자 종이가 더 정확해진 것 같았지만, 여전히 각자의 행동은 한 단어로 줄어 있었다.

나는 내 이름 옆에 썼다.

최종 작업 승인.

그리고 한 줄 아래에 적었다.

모든 원인은 아니다.

잠시 뒤 그 옆에 썼다.

원인 중 하나다.

두 문장을 합쳤다.

나는 모든 원인은 아니지만 원인 중 하나였다.

읽는 순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문장이 균형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책임을 부정하지도 않고, 전부 떠안지도 않았다. 심사위원이 좋아할 문장처럼 보였다.

그 사실 때문에 다시 불편해졌다.

나는 그 문장을 믿어서 쓴 것인지, 가장 방어하기 좋은 위치를 찾았기 때문에 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정호의 기도 소리가 들렸다.

“저희가 지은 죄를 용서하시고.”

나는 원인도식을 접어 보고서 맨 뒤에 넣었다.

박진수의 축구장갑과 오광철의 문제집이 적힌 페이지는 따로 접지 않았다. 페이지 모서리에 작은 종이표시를 끼웠다.

이름과 유류품이 원인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원인을 계산하는 동안 내가 무엇을 결과로 만들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는 필요했다.

불이 꺼진 뒤에도 정호는 내 쪽을 보지 않았다.

나도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방에서 서로 다른 이유를 붙잡고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