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정호의 신

에피소드 8 / 50

정호는 다음 날 아침 내게 물을 건네지 않았다.

평소에는 기상방송이 나오면 자기 컵에 물을 받고 내 컵도 채워두었다. 내가 부탁한 적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 행동이 불편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물이 놓여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날 탁자 위에는 빈 컵만 있었다.

나는 휠체어로 세면대까지 가서 직접 물을 받았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도꼭지 손잡이가 짧아 집게를 사용해야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다.

컵에 물이 차는 동안 정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기도했다.

“오늘도 저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컸다.

나는 컵을 들고 돌아왔다. 물이 손등에 조금 흘렀다.

“컵 채워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정호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저희가 저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들으라고 크게 하시는 겁니까?”

그는 아멘이라고 말한 뒤 눈을 떴다.

“기도했네.”

“평소보다 목소리가 큽니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가 보지.”

그는 성경을 들고 방을 나갔다. 아침 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의료수용동의 예배는 일반 종교집회실이 아니라 재활실 옆 다목적실에서 열렸다. 휠체어와 보행보조기를 사용하는 수용자들은 이동 시간이 길어 별도 예배가 허용됐다. 정호는 매주 빠지지 않았다. 몸이 아픈 날에도 나도윤에게 부탁해 참석했다.

나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종교가 싫어서라기보다, 종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방식이 싫었다. 봉사자들은 내 사고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큰 시련을 겪었다고 말했고, 하나님이 나를 살려둔 데에는 뜻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물었다.

“그럼 죽은 사람들에게는 무슨 뜻이 있었습니까?”

봉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뒤로 나를 직접 권유하는 사람은 줄었다.

아침 약을 나눠주러 온 서진이 정호의 빈 침대를 보았다.

“예배 갔어요?”

“네.”

“한재호 씨는 안 가시고요?”

“제가 가야 합니까?”

“출석 확인하려고 물은 겁니다.”

나는 약을 받아 삼켰다.

서진은 내 손목띠를 확인하고 기록지에 표시했다. 어제의 말다툼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정호 씨하고 무슨 일 있었습니까?”

내가 먼저 물었다.

“왜 저한테 물으세요?”

“평소에는 간호사님한테 말 많이 하잖습니까.”

“환자 이야기는 다른 환자에게 하지 않습니다.”

“저하고 싸웠다고 말해도요?”

“그것도 이정호 씨 이야기죠.”

그녀는 약 카트를 밀고 나갔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경계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변호사는 법률, 간호사는 치료, 교도관은 행동, 교정위원은 심사. 나는 그 경계 밖의 답을 요구했고, 대답하지 않으면 회피한다고 생각했다.

정호는 한 시간 뒤 돌아왔다.

그는 내게 말을 걸지 않은 채 성경을 침대 위에 놓았다. 책을 놓는 순간 테이프로 붙인 책등 일부가 떨어졌다. 표지와 속지가 조금 벌어졌다.

“테이프 다시 붙여야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정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의료실에 투명테이프 있습니다.”

그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아저씨.”

“듣고 있네.”

“대답을 안 하시잖습니까.”

“할 말이 없어서.”

나는 어제 그가 성경을 던졌던 장면을 떠올렸다. 정호는 ‘내 아내 이야기 함부로 하지 마’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아내 이름도 몰랐다.

“어제 말은.”

사과하려다 멈췄다.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 정확히 하고 싶었다. 신앙을 비판한 것인지, 아내의 죽음을 끌어온 것인지, 사람을 죽였다고 직접 말한 것인지.

정호가 나를 보았다.

“어제 말은 뭐?”

“아저씨 신앙하고 범죄를 같은 것으로 말한 건 지나쳤습니다.”

“같은 거라고 생각하잖아.”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신앙을요. 자기가 한 일을 더 큰 계획 안에 넣으면 책임이 작아질 수 있으니까.”

“사과하는 중인가, 다시 싸우자는 건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호는 침대에 등을 기댔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알겠네.”

“틀렸습니까?”

“사과는 끝까지 못 하는구먼.”

그는 성경을 들어 벌어진 책등을 손으로 눌렀다.

“오늘 목사님이 자네 이야기를 하더군.”

“제 이름을요?”

“이름은 안 했어. 고통 속에서 의미를 잃은 형제가 있다고.”

“아저씨가 말했습니까?”

“기도제목으로 이야기했지.”

“제 이야기를 왜 허락 없이 합니까?”

“이름도 안 말했다니까.”

“사고와 장애 이야기 했잖습니까.”

“그런 사람이 여기 자네 하나인가?”

“어제 싸운 뒤 바로 목사한테 말했으니 저인 줄 알았을 것 아닙니까.”

정호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미안하네.”

그의 사과는 짧았다.

“하지만 기도해준 게 나쁜 건 아니잖아.”

“저를 위해서인지 아저씨가 불편하지 않기 위해서인지 어떻게 압니까?”

“기도받는 사람이 그걸 정해야 하나?”

“최소한 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죠.”

정호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자네는 남이 주는 건 다 빚으로 생각하는군.”

“받으면 감사해야 하니까요.”

“감사 안 해도 돼.”

“아저씨는 제가 하나님을 안 믿으면 계속 말하잖습니까.”

“좋은 걸 권하는 건데.”

“저는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호는 벌어진 성경을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 예배에 와서 직접 들어보게.”

“싫습니다.”

“듣지도 않고 판단하나?”

“충분히 들었습니다.”

“자네 회사도 위험보고를 충분히 들었다고 생각했겠지.”

그 말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컵을 세게 내려놓았다. 물이 탁자에 튀었다.

“모든 걸 사고에 붙이지 마십시오.”

“자네가 모든 걸 붙이잖아.”

정호가 말했다.

“단추도 사고, 상처도 사고, 편지도 사고. 무슨 말을 해도 마지막에는 그날로 가. 그런데 하나님 이야기만 하면 피해자 핑계를 대면서 못 가게 막아.”

“피해자 핑계라고요?”

“자네가 그 사람들을 생각하는지, 자네가 하나님을 미워할 이유로 쓰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나는 휠체어를 뒤로 밀었다.

문으로 가려 했지만 정호가 말했다.

“나가면 또 내가 이겼다고 생각할 거야.”

“이기려고 한 적 없습니다.”

“자네는 말할 때 늘 이기려고 해.”

나는 멈췄다.

정호는 성경을 무릎 위에 올렸다.

“오후에 목사님 다시 온다네. 아픈 사람들 상담한다고. 자네가 와서 물어봐. 왜 사람을 죽게 두는지. 왜 자네를 살렸는지. 나한테 묻지 말고.”

“목사가 압니까?”

“모르겠지.”

“그럼 왜 갑니까?”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버티는지 들으러 가는 거야.”

그 말은 예상과 달랐다.

나는 정호가 목사에게 답을 들으러 간다고 생각했다. 정해진 이유를 확인받고, 자신의 믿음이 맞다는 말을 듣기 위해 간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답을 안다고 생각하잖습니까.”

“안다고 믿는 것과 매일 믿어지는 건 달라.”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오후 상담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두 시가 가까워지자 나는 재활실 옆 복도로 나갔다. 정호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 먼저 출발했다. 나도윤은 종교상담 신청 명단에 내 이름이 없다고 했지만 빈자리가 있으면 참관할 수 있다고 했다.

“참여하실 겁니까?”

“듣기만 하겠습니다.”

“중간에 나가셔도 됩니다.”

다목적실에는 수용자 일곱 명이 앉아 있었다. 휠체어 세 대, 보행기 두 대, 일반 의자 네 개가 원을 만들었다. 가운데에는 작은 나무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상담을 맡은 사람은 최 목사였다. 오십대 후반으로 보였고,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다. 그는 나를 알아봤지만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오늘은 질문을 받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첫 번째 질문은 말기암 진단을 받은 배성환이라는 수감자가 했다.

“죽으면 아픈 게 끝납니까?”

최 목사는 천국과 부활을 말했다. 배성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수감자는 가족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지 물었다. 최 목사는 사람의 용서는 강요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용서는 구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정호는 내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지 않았다.

“처음 오신 분도 질문 있으십니까?”

최 목사가 내게 물었다.

나는 없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왔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습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최 목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의 이유를 말씀하십니까?”

“사람이 죽는 이유요.”

“원인을 묻는 겁니까, 목적을 묻는 겁니까?”

그는 질문을 나누었다.

“목적이요.”

“저는 모든 죽음의 목적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은 왜 합니까?”

정호가 몸을 움직였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최 목사는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신앙에서 계획이라는 말은 인간이 모든 사건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해하지 못해도 세계가 완전히 무질서하지 않다고 믿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사람 두 명이 죽었고 그 책임이 있는 사람이 살아남았습니다. 그걸 무질서하지 않다고 믿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그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한테는요?”

“제가 죽은 분의 입장을 대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가족에게는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살아남은 사람만 편해지는 믿음 아닙니까?”

내 목소리가 커졌다.

최 목사는 잠시 나를 보았다.

“그럴 위험이 있습니다.”

나는 그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신앙이 책임을 피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이유를 강요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고요.”

“그러면 믿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칼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고 칼을 모두 없애야 하는지와 비슷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신앙이 도구라는 말입니까?”

“도구로만 말한 건 아닙니다.”

최 목사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저는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가 믿는 방식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설명할 권리를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정호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성경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 구절을 고통 중인 사람에게 너무 빨리 말하면 안 됩니다.”

“말씀이 틀렸다는 겁니까?”

“말씀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누구의 선을 말하는지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그 말씀으로 삼십 년을 버텼습니다.”

“그 말씀이 이정호 형제님을 살렸다면 소중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됩니까?”

“그 사람을 살릴지, 그 사람의 고통을 덮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호는 성경을 세게 잡았다.

나는 정호를 공격하려고 질문했는데, 최 목사의 대답이 정호를 향하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저는 믿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두 사람이 저를 바꾸기 위해 죽었다고 말할 수 없고, 제가 살아남은 데 목적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 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런데 목적이 없으면 책임질 이유도 없는 것 아닙니까?”

질문을 한 뒤 내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깨달았다.

삶에 의미가 없다면 왜 책임져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반성문 앞에서 피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최 목사는 대답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

“목적이 있어야만 다른 사람의 고통이 실제가 됩니까?”

“아니요.”

“하나님이 명령해야만 사람을 해치지 말아야 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미 일부 답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건 답이 아닙니다.”

“저도 완전한 답은 모릅니다.”

정호가 작게 웃었다.

“모르는 사람이 하나 더 늘었구먼.”

몇 사람이 따라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상담이 끝난 뒤 정호는 나보다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복도에서 배성환과 잠시 함께 기다렸다. 그는 산소통이 달린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질문 잘하더군.”

그가 말했다.

“답은 못 들었습니다.”

“답 들으러 온 거 아니잖아.”

“그럼 왜 왔다고 생각합니까?”

“저 노인이 틀렸다는 소리 들으러 왔겠지.”

그는 정호가 사라진 복도를 턱으로 가리켰다.

“티가 났습니까?”

“여기서는 다 남이 틀렸다는 말 들으려고 오지.”

“당신은요?”

“나는 죽어도 안 아프다는 말 들으러 왔고.”

“믿습니까?”

배성환은 산소줄을 코에 고쳐 끼웠다.

“오늘은 믿어.”

“내일은요?”

“내일 아프면 또 물어보겠지.”

그는 교도관의 도움을 받아 먼저 이동했다.

배성환의 휠체어가 복도 모퉁이를 돌기 전 기침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마른기침 두 번이었지만 곧 몸 전체가 접힐 만큼 심해졌다. 산소줄이 귀에서 벗어났고 휠체어 옆에 걸린 작은 통이 흔들렸다.

교도관이 의료진을 부르러 뛰었다.

정호가 먼저 배성환 옆으로 갔다. 그는 산소줄을 다시 코에 끼워주려다 손을 멈추고 물었다.

“내가 만져도 되겠나?”

배성환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정호가 줄을 고정하고 등을 받쳤다. 무슨 성경 구절을 말할 줄 알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배성환의 기침이 잦아들 때까지 어깨를 잡고 있었다.

윤서진과 다른 간호사가 도착해 산소포화도를 확인했다. 서진은 정호에게 한 걸음 물러나달라고 했다. 정호는 바로 손을 뗐다.

“흉통 있어요?”

서진이 물었다.

배성환은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말고 호흡만 하세요.”

그들은 배성환을 처치실로 옮겼다. 정호의 수용복 소매에는 배성환이 기침하며 흘린 침이 묻어 있었다.

“옷 갈아입으셔야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래야지.”

“아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습니까?”

“무슨 말?”

“천국이라든지 하나님이 함께한다든지.”

정호는 젖은 소매를 내려다봤다.

“숨 못 쉬는 사람한테 긴 말 하면 더 힘들잖아.”

“기도는요?”

“했지.”

“언제요?”

“속으로.”

“그 사람은 모르잖습니까.”

“몰라도 되는 기도도 있어.”

나는 아침에 속으로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요?”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였어.”

정호는 소매를 걷었다.

“믿음이 사람한테 들려줘야만 있는 건 아니네.”

그는 의료동으로 돌아가는 동안 배성환이 살아난 데 신의 뜻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도왔다고도 하지 않았다. 단지 다음 상담 때 배성환이 앉을 자리를 창가에서 먼 곳으로 바꿔야겠다고 했다. 찬바람이 들어와 기침이 심해지는 것 같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것이 신앙에서 나온 행동인지, 삼십 년 동안 아픈 사람을 봐온 경험에서 나온 행동인지 알 수 없었다. 둘을 나누는 것이 필요한지도 알 수 없었다.

방에 돌아왔을 때 정호는 성경 책등에 천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테이프가 비뚤게 붙어 표지가 한쪽으로 당겨졌다.

“제가 해드릴까요?”

내가 물었다.

“됐네.”

“그렇게 붙이면 책이 안 펴집니다.”

“내 책이야.”

나는 내 침대로 갔다.

잠시 뒤 정호가 테이프를 떼려다 표지 종이까지 찢었다. 그는 욕을 작게 했다.

“주세요.”

내가 말했다.

정호는 성경을 건네지 않았다.

“아저씨가 믿는 책 망가지겠습니다.”

“망가져도 말씀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그래도 매일 보시잖습니까.”

그는 한동안 책을 들고 있다가 내게 건넸다.

나는 의료동에서 서류 보수용으로 쓰는 얇은 투명테이프와 작은 가위를 빌렸다. 벌어진 책등을 맞추고, 찢어진 표지 안쪽에 테이프를 붙였다. 휠체어 팔걸이 위에서 작업하느라 선이 곧지 않았지만 책은 다시 펼쳐졌다.

정호가 책을 받아 몇 장을 넘겼다.

“고맙네.”

“테이프 붙인 것뿐입니다.”

“자네가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야.”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저녁이 지나고 불이 꺼진 뒤 정호가 먼저 말했다.

“내 아내 이름은 은희였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만 들렸다.

나는 몸을 돌리지 않았다.

“처음 교도소에 들어왔을 때는 매일 죽으려고 했어. 밥을 안 먹고, 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겨울에 물을 뒤집어쓴 채 잤지.”

“왜 지금까지 안 죽었습니까?”

“무서웠겠지.”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다 성경을 읽었어. 하나님이 가인한테 표를 주고 아무도 죽이지 못하게 했다는 부분이 있었네. 사람을 죽인 놈도 살아 있게 두는구나 싶었어.”

“그게 아저씨가 살아야 할 이유가 됐습니까?”

“처음에는 핑계였지. 내가 사는 걸 하나님 탓으로 돌린 거야. 내가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아직 안 데려가서 산다고.”

“지금은요?”

“지금도 비슷할 때가 있어.”

정호는 한동안 숨만 쉬었다.

“모든 일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면 내가 은희를 죽인 뒤 살아온 삼십 년이 너무 길어. 이유가 있어야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네.”

“은희 씨 죽음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건 모르겠어.”

“매일 있다고 말했잖습니까.”

“말해야 믿어질 때가 있으니까.”

그의 대답은 믿음이라기보다 고백처럼 들렸다.

“그럼 거짓말 아닙니까?”

“자네는 내 믿음이 사실인지 묻는 건가, 내가 일부러 속이는지 묻는 건가?”

“둘 다요.”

“사실인지는 죽어봐야 알겠지. 일부러 속이는 날도 있었어. 신의 뜻이라고 말하면 내가 선택했다는 말보다 덜 아팠으니까.”

나는 천장을 보았다. 불이 꺼져 균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믿습니까?”

“신을 이용한 적이 있다고 신이 없는 건 아니잖아.”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

정호는 웃지 않았다.

“자네는 이유 없이 살 수 있나?”

나는 대답하려 했다.

유리.

가석방.

사실을 밝히는 일.

피해자에게 책임지는 삶.

어떤 말을 골라도 그것이 삶의 이유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유리는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고, 가석방은 삶의 목적이라기보다 조건이었다. 피해자에게 책임진다는 말도 그들의 죽음을 내 남은 삶에 묶는 것 같았다.

“아직 살아 있잖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건 답이 아닌데.”

“지금은 그게 답입니다.”

정호는 더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탁자 위에는 물컵이 채워져 있었다.

나는 물을 마신 뒤 정호의 빈 컵도 채웠다.

정호는 기도 중이었다. 나는 컵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기도를 마친 뒤 말했다.

“고맙네.”

“제가 신을 믿게 된 건 아닙니다.”

“물 한 컵 줬다고 개종했다고 생각 안 해.”

“아저씨 믿음이 맞다고 인정한 것도 아니고요.”

“알았네.”

“저를 위해 기도하는 건 하지 마십시오.”

정호가 잠시 생각했다.

“입 밖으로는 안 하겠네.”

“속으로도 하지 마세요.”

“그건 자네가 알 수 없잖아.”

나는 반박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날 반성문 여백에 한 문장을 썼다.

어떤 의미는 사실이어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붙잡았기 때문에 그날을 넘기게 할 수도 있다.

문장이 너무 길었다.

나는 뒤를 줄였다.

정호는 이유가 있어서 버틴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다고 말하며 버텼다.

그 문장도 정호의 삶을 내가 해석하는 것 같았다.

나는 둘 다 지웠다.

대신 기록했다.

정호는 아내의 이름이 은희라고 말했다.

그날 내가 확실히 알게 된 것은 그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