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 / 50
가석방 교육실 벽에는 사람이 바뀌는 순서가 붙어 있었다.
인정.
반성.
회복.
재통합.
네 단어는 화살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인정에서 반성으로, 반성에서 회복으로, 회복에서 재통합으로. 화살표는 언제나 오른쪽을 향했다. 뒤로 돌아가는 선은 없었다.
나는 그 그림을 오래 보았다.
회사에서 사용하던 개선활동 도식과 비슷했다. 문제를 정의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안을 실행하고, 표준화한다. 잘못은 네 개의 칸을 지나면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처리됐다.
서기현 교정위원이 칠판 앞에 섰다.
“오늘은 자기이해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교육실에는 여섯 명이 앉아 있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오른쪽 끝에는 교통사고로 사람을 다치게 한 남자가 있었고, 내 앞에는 횡령죄로 복역 중이라는 전직 회계사가 있었다. 서로의 죄를 자세히 묻지 않는 것이 이곳의 예의였지만, 대부분은 기사나 판결문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었다.
서기현은 빈 종이를 나눠주었다.
“맨 위에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고 쓰십시오.”
누군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쓰라는 겁니까?”
앞에 앉은 회계사가 물었다.
“그렇게 생각되면 그렇게 쓰셔도 됩니다. 다만 근거를 같이 적으세요.”
나는 종이 위에 질문을 옮겨 적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질문 끝에 물음표를 찍자 문장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회사 인사평가에도 여러 번 적힌 표현이었다.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결과를 만들어낸다. 상사는 그것을 강점이라고 썼다. 부하직원 중 몇 명은 내가 일을 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문장을 적었다.
그 아래에는 가족을 사랑했다고 썼다.
성실했다.
거짓말을 싫어했다.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다섯 줄을 쓰고 멈췄다.
종이 위의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나와 닮아 있었다. 적어도 사고 전까지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과는 같았다.
“근거를 적으세요.”
서기현이 말했다.
나는 책임감 옆에 괄호를 만들었다.
프로젝트 일정 준수, 긴급상황 대응, 부하직원 업무 지원.
가족을 사랑했다는 말 옆에는 생활비, 주택대출, 교육비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돈을 벌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신 유리와 놀이공원에 갔던 날을 적으려 했다.
그날은 유리가 일곱 살이었다. 수진이 한 달 전부터 날짜를 잡았다. 나는 오전에만 회사에 들렀다가 오겠다고 했고, 실제로는 오후 두 시가 넘어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유리는 기다리는 동안 회전목마를 세 번 탔다. 내가 도착하자 유리는 달려와 안겼다. 나는 가장 비싼 자유이용권을 샀고, 저녁까지 함께 있었다.
그날을 ‘가족을 사랑한 근거’로 적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장면에는 내가 다섯 시간 늦었다는 사실도 있었다.
어느 부분을 근거로 고르느냐에 따라 좋은 아버지와 나쁜 아버지가 모두 가능했다.
“다들 적으셨습니까?”
서기현이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 분씩 읽어보겠습니다. 강제는 아닙니다. 먼저 하실 분?”
횡령죄로 복역 중인 회계사가 손을 들었다.
“저는 원래 남한테 피해 주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는 종이를 보며 읽었다.
“회사에서 십칠 년 동안 일했고, 어려운 직원들에게 돈도 빌려줬고, 부모님 병원비도 제가 냈습니다. 횡령한 돈도 도박이나 유흥에 쓴 게 아니고 회사 손실을 메우려고 돌려막기하다가 커진 겁니다.”
서기현이 물었다.
“그러면 본인은 어떤 사람이라고 적으셨습니까?”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피해자들은 그렇게 생각할까요?”
회계사의 얼굴이 굳었다.
“피해자들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와 실제 제가 어떤 사람인지는 다를 수 있죠.”
“맞습니다.”
서기현은 쉽게 동의했다.
“그럼 실제 본인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누가 결정합니까?”
회계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 차례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종이를 접고 싶어졌다. 내 목록과 회계사의 목록 사이에는 차이가 별로 없었다. 그도 부모 병원비와 직원 지원을 적었고, 나도 가족과 부하직원을 적었다.
사람은 자신이 선하다는 증거를 비슷한 곳에서 찾았다.
돈을 벌었다.
가족을 돌봤다.
몇 번 양보했다.
누군가를 도왔다.
그리고 그 증거가 충분히 쌓이면 한 번의 잘못이 전체를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한재호 씨.”
서기현이 불렀다.
나는 종이를 폈다.
“읽겠습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을 사랑했고, 성실했고, 거짓말을 싫어했고,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고 썼습니다.”
뒤쪽에서 의자가 삐걱거렸다.
서기현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근거는요?”
“회사에서 맡은 프로젝트 대부분을 계획대로 완료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남에게 넘기지 않았고, 부하직원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가 대신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가족을 사랑했다는 근거는?”
“가족을 부양했습니다.”
“다른 근거는 없습니까?”
질문이 불쾌했다.
마치 돈만 벌어다준 아버지였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딸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얼마나 자주요?”
“정확한 횟수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거짓말을 싫어했다는 근거는?”
“업무에서 사실과 다른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고 난 뒤 곧바로 사고 전날의 회의록이 떠올랐다.
사용 중지 기준 미해당.
야간 하중 작업은 미루는 게 좋겠다는 안전담당자의 말은 기록하지 않았다.
사실과 다른 보고는 아니었다.
사실의 일부만 적은 보고였다.
“확실합니까?”
서기현이 물었다.
나는 그가 회의록 내용을 아는지 궁금했다. 가석방 심사자료에는 판결문과 수사기록 일부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제가 의도적으로 허위보고를 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표현을 바꾸었다.
의도적으로.
허위보고.
두 단어를 넣자 빠져나갈 공간이 생겼다.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건요?”
“현장직원이나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사망한 두 사람도 협력업체 직원이었죠?”
교육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박진수와 오광철.
판결문에는 피해자라고 적혀 있었고 회사 사고보고서에는 사망자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회의에서 두 사람을 ‘두 분’이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 작업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은 문장을 길게 만들었다.
“네.”
내가 말했다.
“그분들을 함부로 대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날의 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습니다.”
“질문은 책임이 있는지가 아니라 함부로 대했는지입니다.”
“일부러 위험에 넣은 것은 아닙니다.”
“일부러가 아니면 함부로 대한 게 아닙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답을 원하시는 겁니까?”
“제가 원하는 답은 없습니다.”
“그런데 질문은 계속 한쪽으로 가고 있잖습니까.”
서기현은 잠시 나를 보았다.
“한재호 씨가 적은 다섯 문장과 사고 당일의 결정이 어떤 관계인지 묻는 겁니다.”
“사람은 한 가지 행동으로만 평가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또 쉽게 동의했다.
“그럼 한 번의 행동이 사람 전체를 규정할 수 없다면, 과거의 좋은 행동도 사고 당일의 결정을 바꾸지 못하겠네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사람을 불렀다.
교육이 끝난 뒤 종이를 제출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반으로 접어 무릎 위에 놓았다. 휠체어를 돌리려는데 뒤쪽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다 거기서 거기네.”
그는 교통사고로 복역 중인 임태식이었다. 음주운전 사고로 행인을 중태에 빠뜨렸다고 들었다.
“무슨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여기 들어온 사람들 다 자기는 원래 착하대.”
“당신은 안 그렇습니까?”
“나는 원래 개새끼였다고 썼어.”
그가 웃었다.
“그렇게 쓰면 반성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그는 먼저 교육실을 나갔다.
나도윤이 내 휠체어 뒤에 섰다.
“직접 가시겠습니까?”
“네.”
복도 경사로까지 가는 동안 나는 접은 종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도윤이 물었다.
“버리실 거면 제가 폐기함에 넣겠습니다.”
“안 버립니다.”
“그럼 왜 그렇게 구기십니까?”
손을 펴자 종이에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교정위원이 일부러 저런 질문을 합니까?”
“어떤 질문이요?”
“좋은 사람이었는지 증명할 수 없게 만드는 질문이요.”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까?”
“가석방 심사에서는 사람이 바뀌었는지 보잖습니까.”
“바뀌기 전이 좋은 사람이면 바뀔 필요가 없겠네요.”
나는 휠체어를 멈췄다.
나도윤은 바로 뒤에서 걸음을 멈췄다.
“저한테 시비 거는 겁니까?”
“질문하셔서 답했습니다.”
“교도관들이 수감자한테 철학문답도 합니까?”
“저는 철학을 모릅니다.”
그의 표정에는 비웃음이 없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제가 나쁜 사람이었다고 말하면 만족합니까?”
“제가 왜 만족합니까?”
“그럼 좋은 사람이었다고 하면요?”
“그것도 저와 관계없습니다.”
“그런데 제 관찰보고서는 쓰시잖습니까.”
“행동을 씁니다.”
“행동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심사위원들이 하겠죠.”
“당신은 아무 판단도 안 합니까?”
나도윤은 경사로 아래를 확인한 뒤 내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안 씁니다.”
그가 말했다.
“오늘 교육실에서 질문을 받자 목소리가 커졌고, 귀실 중 교정위원의 질문 의도를 반복해서 확인했다고 씁니다.”
“그게 판단 아닙니까?”
“일어난 일을 적는 겁니다.”
“무엇을 적을지 고르는 게 판단이죠.”
“맞습니다.”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경사로를 내려가는 동안 휠체어가 그의 손에 의해 천천히 움직였다. 내가 브레이크를 잡지 않아도 속도가 일정했다.
방으로 돌아오자 정호는 단추를 꿰매고 있었다.
바늘은 없었다. 그는 흰 실을 단추 구멍과 수용복의 남은 실 사이에 여러 번 묶어 임시로 고정했다.
“그렇게 하면 금방 떨어집니다.”
내가 말했다.
“오늘만 붙어 있으면 되지.”
“내일 또 해야 하잖습니까.”
“내일 간호사한테 부탁하면 되고.”
나는 탁자 위에 종이를 펼쳤다.
“교육은 어땠나?”
정호가 물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쓰라고 했습니다.”
“뭐라고 썼어?”
“좋은 사람이었다고요.”
“그랬나?”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고 전 자네를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
“사람을 죽인 사람은 좋은 사람일 수 없습니까?”
정호는 손에 들고 있던 단추를 내려다보았다.
“그 질문은 나한테 하는 게 아니구먼.”
“아저씨도 사람을 죽였잖습니까.”
정호의 손이 멈췄다.
나는 말하고 나서 후회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으면 아내가 살아나나?”
“그런 뜻이 아닙니다.”
“내가 나쁜 사람이면 죽은 일이 더 나빠지나?”
“사람은 자기 행동 전체로 평가된다는 말입니다.”
“누가 평가하는데?”
“다른 사람들이요.”
“다른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럼 아무도 평가하지 않겠죠.”
“하나님은 남겠지.”
“또 그 이야기입니까.”
정호는 단추를 잡아당겼다. 묶어둔 실이 풀리며 단추가 다시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네.”
그가 말했다.
“젊을 때도 그랬어. 술 안 마실 때는 어머니한테 돈도 드리고, 동생 학비도 냈고, 이웃집 장례에도 빠지지 않았지. 술 마신 다음 날에는 아내한테 꽃도 사줬어.”
“그게 좋은 사람이었다는 증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지.”
정호는 실을 다시 묶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꽃을 사준 날이 많다고 해서 때린 날이 없어지지는 않더군.”
“저는 사람을 때린 적 없습니다.”
“알아.”
“제가 직접 구조물을 무너뜨린 것도 아닙니다.”
“그것도 알아.”
“아저씨 일과 제 일은 다릅니다.”
“다르지.”
정호는 계속 동의했다.
그 동의가 나를 더 불편하게 했다. 나는 그가 나와 자신을 같은 종류의 사람으로 묶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직접 사람을 죽인 살인자와 업무상 과실로 사고를 낸 사람은 달랐다. 법도 다르게 판단했다.
나는 그 차이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었다.
고의와 과실.
행위와 부작위.
직접 원인과 간접 원인.
그러나 지금 정호가 묻는 것은 법률상 죄명이 아니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과 좋은 행동을 하는 건 다른가 봐.”
정호가 말했다.
“그건 당연하죠.”
“당연한데 왜 사람은 자기가 되고 싶었던 걸 자기가 한 것처럼 기억할까.”
나는 종이 위의 다섯 문장을 보았다.
책임감이 강했다.
가족을 사랑했다.
성실했다.
거짓말을 싫어했다.
약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문장들은 행동이 아니라 성질이었다. 책임감 있게 행동한 횟수와 무책임하게 행동한 횟수를 적지 않았다. 가족을 사랑한 날과 외면한 날을 구분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약자를 존중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라는 말은 계속 유지되는 성질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고 당일 한 행동은 예외가 되었다.
좋은 사람에게 일어난 나쁜 한 번.
나는 그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종이에 적었을 것이다.
오후에는 의료동 도서정리 시간이 있었다. 글을 읽기 어려워하는 수감자들이 반납된 책의 번호를 확인하는 일을 나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날은 신입 수감자 한 명이 책장 앞에서 우편신청서를 들고 서 있었다.
“이거 어디 쓰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나는 신청서를 받아 항목을 설명해주었다. 수신인 주소, 관계, 편지 매수. 그는 한글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주소를 칸에 맞춰 쓰는 것을 어려워했다.
“제가 써드릴까요?”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주소를 대신 적었다. 경상북도 영천시의 작은 마을이었다. 수신인은 어머니였다.
“고맙습니다, 형님.”
그가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가 돌아간 뒤 이상하게 기분이 나아졌다.
조금 전까지 교육실에서 흔들렸던 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었고,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생각을 알아차리는 순간 기분이 나빠졌다.
신입 수감자의 서투름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확인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가 고맙다고 말한 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증거를 하나 얻은 것처럼 느꼈다.
저녁에 그는 다시 와서 신청서가 반려됐다고 말했다.
내가 우편번호 한 자리를 틀리게 적은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이번에는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새 신청서를 받아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우편번호표를 찾아 두 번 대조한 뒤 적었다.
“이제 맞습니다.”
그에게 건네자 그는 다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도와줬다는 사실과 처음에 틀렸다는 사실은 동시에 남았다. 두 번째로 바로잡았다고 해서 첫 번째 오류가 없어지지 않았고, 처음 틀렸다고 해서 두 번째 도움이 무효가 되지도 않았다.
사람을 그렇게 볼 수는 없을까.
좋거나 나쁜 하나의 성질로 묶지 않고, 했던 행동을 각각 남겨두는 것.
그러면 나를 지켜줄 전체적인 이름은 사라진다.
나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 문장은 편리했다.
사고 당일의 나와 그 전날의 나와 오늘의 나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그 안에서 어떤 행동은 실수로, 어떤 행동은 본성으로 분류할 수 있었다.
나는 나쁜 사람이었다.
이 문장도 비슷하게 편리할 수 있었다. 모든 행동을 악한 본성으로 설명하면 더 이상 세부사항을 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나쁜 인간이므로 그런 결정을 했다. 형벌을 받고 고통받는 것도 당연했다.
스스로를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종류의 중심이 되는 일이었다.
모든 원인과 모든 비극이 나를 향했다.
나는 종이 위의 다섯 문장에 줄을 그었다.
한 번에 지우지 않았다. 각각 두 줄씩 그었다. 글자가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덧칠하지는 않았다.
아래에 새 문장을 썼다.
나는 좋은 행동을 한 적이 있다.
그 다음 줄에 썼다.
나는 두 사람이 죽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결정을 하지 않았다.
문장이 너무 단정적이라고 느꼈다. 아직 나는 위험이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알지 못했다. 당시 보고받은 수치가 조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었고, 구조설계 자체에 결함이 있었다는 감정 결과도 있었다.
나는 문장을 고쳤다.
나는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도 작업을 즉시 중단하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아래에 오늘의 일을 하나 더 썼다.
나는 다른 사람의 우편신청서를 잘못 썼고, 다시 썼다.
세 문장은 서로를 설명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만들지 않았다.
정호가 내 종이를 보려 했지만 나는 손으로 가렸다.
“좋은 사람이라고 쓴 건 지웠나?”
그가 물었다.
“네.”
“나쁜 사람이라고 썼어?”
“아니요.”
“그럼 뭐라고 썼는데?”
“한 일들을 썼습니다.”
“그걸 언제 다 쓰려고.”
“다 쓸 필요는 없겠죠.”
“중요한 것만 고르게 되잖아.”
“그렇겠죠.”
“그러면 또 자네가 고른 자네가 되는 거고.”
나는 펜을 멈췄다.
정호는 성경 위에 단추를 올려놓았다.
“사람이 자기를 다 아는 건 어렵네.”
“그러면 왜 쓰라고 합니까?”
“다 알려고 쓰는 게 아니라, 자기가 뭘 빼고 있는지 보려고 쓰는 거 아닐까.”
“아저씨가 교정위원 하셔도 되겠습니다.”
“월급 주면 하지.”
그는 웃었다.
나는 종이 맨 아래에 작게 적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사고 당일의 결정을 바꾸지는 않는다.
쓰고 난 뒤 ‘사실’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쳤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나는 ‘사실’을 지우고 ‘주장’을 넣었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주장은 사고 당일의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이번에는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잘 정리되어 있었다. 교정위원이 좋아할 만한 문장이었다.
나는 문장 전체를 지우지 않았다.
그대로 두었다.
내가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기로 했다.
밤 점호 전에 나도윤이 관찰기록 확인을 위해 들어왔다. 그는 내 점검표와 수분섭취량을 확인했다.
“오늘 교육 중 언성이 높아졌다고 쓰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네.”
“우편신청서 잘못 썼다가 고쳐준 것도 씁니까?”
“그건 관찰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수감자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 기록해야 합니까?”
“행동을 쓴다면서요.”
나도윤은 내 얼굴을 잠시 보았다.
“좋은 행동으로 남기고 싶습니까?”
“사실이니까요.”
“한재호 씨가 우편신청서를 작성해준 사실이 보안이나 생활지도에 필요하면 기록하겠습니다.”
“가석방에는 필요하지 않습니까?”
“제가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는 점검표를 제자리에 걸었다.
나는 그가 나가기 전에 물었다.
“교도관님은 저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왜요?”
“제 생각을 들으면 그에 맞춰 행동하실 수 있으니까요.”
그는 문을 열었다.
“지금도 충분히 그러고 계십니다.”
문이 닫힌 뒤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말이 모욕인지 관찰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나는 종이를 다시 보았다.
좋은 사람이었다는 승인을 받고 싶었다.
심사위원에게서.
딸에게서.
수진에게서.
죽은 사람들의 가족에게서.
정호와 서진과 나도윤에게서.
그 승인들이 충분히 모이면 사고 당일의 결정이 내 삶 전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내 삶 전체를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보지 못했다.
나는 맨 위의 질문을 잘라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종이에서 그 부분만 손으로 찢었다. 찢어진 가장자리가 곧지 않았다.
아래에는 행동을 적은 세 문장이 남았다.
그날 밤 나는 정호의 단추가 다시 떨어지기 전에 간호실에 수선 요청을 넣었다.
정호는 부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럼 왜 했나?”
“내일 또 주우러 가기 싫어서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정호가 웃었다.
선한 이유처럼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