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내 몸의 타인

에피소드 2 / 50

아침 점호가 끝난 뒤 윤서진이 들어왔다.

그녀는 문을 닫지 않았다. 의료수용동의 문은 안에서 잠글 수 없었고, 치료가 있을 때도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나도윤 교도관이 복도에서 안을 볼 수 있을 만큼 문틈이 남았다. 서진은 접이식 가림막을 펴 침대와 문 사이에 세웠다. 가림막의 흰 천에는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은 갈색 얼룩이 있었다.

“옆으로 돌아누우세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정호는 아침 운동을 나가 방에 없었다. 나에게 운동은 재활실에서 따로 배정되었다. 정호가 없는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누군가 보는 것이 싫었지만, 아무도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손에 몸을 맡기는 것도 싫었다.

“어느 쪽으로요?”

“왼쪽으로요. 지난번 오른쪽으로 봤으니까.”

나는 침대 난간을 잡았다. 오른팔로 몸을 당기고 왼팔로 매트리스를 밀었다. 상체가 먼저 돌아갔다. 골반 아래는 잠시 그대로 있다가 시트에 끌려 따라왔다. 서진이 내 오른쪽 무릎을 잡아 앞으로 옮겼다.

“제가 하겠습니다.”

“무릎이 침대 틈에 걸렸습니다.”

“말하면 제가 합니다.”

“말하셨으면 지금보다 오래 걸렸겠죠.”

그녀는 내 다리를 놓고 장갑을 꼈다. 비닐이 손목에 달라붙는 소리가 났다.

“바지를 내리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자세에서는 못 합니다.”

그녀의 말은 질문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손을 난간 위에 둔 채 움직이지 않았다. 허리 아래에서 옷이 당겨지는 감각은 희미했다.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어디를 만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천이 움직이고 피부가 눌린다는 사실은 멀리서 전해지는 진동처럼 느껴졌다.

사고 전에는 옷을 벗는 데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셔츠를 입고, 단추를 잠그고, 넥타이를 매고, 양말을 신고, 구두를 신었다. 손이 알아서 했다. 해외출장을 가면 호텔 방에서 눈을 감은 채로도 가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노트북은 오른쪽 칸, 충전기는 바깥 주머니, 영수증 봉투는 안쪽 지퍼. 몸도 가방 안 물건처럼 정해진 위치에 있었다.

나는 몸에 명령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밤을 새우라고 하면 새웠다. 술을 마신 다음 날에도 여섯 시에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났다. 열이 있어도 현장에 가라고 하면 갔다. 다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었고, 위가 쓰리면 우유를 마셨다. 몸은 늦게 정비해도 되는 설비였다.

설비에는 소유자가 있다.

나는 내 몸의 소유자가 나라고 믿었다.

서진이 허리 아래에 손을 넣어 시트를 팽팽하게 폈다. 차가운 공기가 닿았다.

“어제 저녁에 체위 변경하셨어요?”

“했습니다.”

“몇 시에요?”

“정확히는 기억 안 납니다.”

“점검표에는 아홉 시하고 자정으로 되어 있는데, 자정에는 안 하셨죠?”

“잠들었습니다.”

“그러면 했다고 표시하면 안 됩니다.”

“정호 아저씨가 했을 겁니다.”

“이정호 씨는 어제 열한 시 반에 수면제를 먹었습니다.”

나는 난간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수감자가 밤마다 다른 수감자 몸을 확인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본인이 호출하셔야 합니다.”

“두 시간마다 교도관을 부르라고요?”

“필요하면요.”

“여기 있는 사람이 저 하나도 아닌데.”

“그래서 점검표가 있는 겁니다.”

서진의 손가락이 엉치뼈 주변을 눌렀다. 나는 압박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가림막 너머의 금속 보관함에 비친 흐릿한 모습으로만 알 수 있었다.

“붉은 부위가 넓어졌습니다.”

“지난번에도 그랬잖습니까.”

“지난번에는 눌렀을 때 색이 돌아왔고, 오늘은 늦게 돌아옵니다.”

“아프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손을 멈췄다.

“안 아픈 게 문제예요.”

그 말은 여러 번 들었다.

병원에서도 그랬다. 통증이 없으니 더 자주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어도 모를 수 있고,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도 모를 수 있고, 상처가 뼈까지 깊어져도 모를 수 있다고 했다.

모르는 것이 문제라는 말.

그 문장은 사고 이후 내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균열이 위험한지 몰랐다고 말했다.

검사 수치가 조작된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

상부가 책임을 내게 넘겼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고 말했다.

작업자들이 현장에서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모르는 사실이 많아질수록 내 책임은 작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동시에 내가 책임자였다는 말은 더 이상해졌다.

“사진 찍겠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왜요?”

“변화 기록해야 합니다.”

“지난번 사진으로 비교하면 되잖습니까.”

“오늘 상태는 오늘 찍어야죠.”

“얼굴은 안 나오죠?”

“환자번호하고 상처 부위만 나옵니다.”

환자번호.

여기에서 나는 수용번호이면서 환자번호였다. 한 사람에게 번호가 두 개 필요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죄를 관리하는 번호와 몸을 관리하는 번호.

카메라 셔터 소리가 한 번 났다.

나는 가림막 위쪽의 천장을 보았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였다. 불이 완전히 꺼지는 것은 아니고, 밝기가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사고 현장의 임시조명도 그랬다. 발전기 전압이 일정하지 않아 하얀 불빛이 떨렸다.

붕괴 직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기둥이 아니었다.

천장 가까이 매달린 작업등이었다.

등이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 “나가!”라고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불빛이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먼지가 떨어졌다. 그 다음에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붕괴를 굉음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는 여러 소리가 겹쳤다.

철골이 휘는 소리, 볼트가 튀는 소리,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 사람들이 뛰는 발소리, 무전기에서 누군가 계속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너무 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나서 오히려 한동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눈을 떴을 때도 불빛이 있었다.

병원 중환자실의 등이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려 했다. 먼저 손가락이 움직였다. 팔도 움직였다. 목을 돌릴 수 있었다. 다리를 움직이려 했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명령했다.

오른쪽 다리를 들어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발가락을 움직여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입에 관이 들어가 있어 말을 할 수 없었다. 손으로 침대 난간을 두드렸다. 간호사가 와서 내 손을 잡았다. 그녀는 진정하라고 했고, 수술은 끝났으며 의사가 곧 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자를 썼다.

다리.

간호사는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다시 썼다.

사람.

그 단어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내가 먼저 알고 싶었던 것이 내 다리였는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생사였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기억은 순서를 바꿀 수 있다. 이후의 부끄러움이 앞선 장면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는 내가 사람을 먼저 물었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최초의 의식은 다리를 움직이려 했던 감각이었다.

그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한재호 씨.”

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형광등에서 시선을 내렸다.

“네.”

“상처 주변에 보호제를 바르겠습니다. 차갑습니다.”

차가운지 알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약을 바르고 얇은 폼 드레싱을 붙였다. 비닐 포장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앞으로 사흘 동안 재활실 운동 줄일 겁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압박 줄여야 합니다.”

“운동을 안 하면 어깨가 더 굳습니다.”

“상체 운동은 침대에서 하세요.”

“재활 일정은 재활치료사가 결정하는 것 아닙니까?”

“상처 상태는 제가 전달합니다.”

“상처 하나 때문에 다 중단하면—”

“하나가 아니에요.”

서진이 말했다.

“지금은 붉은 반점이지만 관리 안 하면 피부가 열리고, 감염되면 재활이고 가석방 준비고 다 멈춥니다.”

가석방이라는 말을 그녀가 입에 올리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건 이 치료와 관계없습니다.”

“몸은 관계있어요.”

“제 가석방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제가 먼저 꺼낸 건 맞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녀는 바로 사과했다.

그렇게 빨리 사과하면 내가 화를 이어갈 자리가 없어졌다.

“바지를 올리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다시 난간을 잡았다. 그녀가 옷을 끌어올리는 동안 몸이 조금 흔들렸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나는 옆으로 누운 자세를 유지했다.

“돌아누우셔도 됩니다.”

“잠깐 이대로 있겠습니다.”

서진은 장갑을 벗어 의료폐기물 봉투에 넣었다. 가림막을 접기 전에 침대 옆의 소변주머니를 확인했다.

“색이 진하네요. 물 적게 드셨죠?”

“국도 먹었습니다.”

“국은 물로 계산하지 마세요.”

“왜요?”

“염분이 많으니까요.”

그녀는 소변주머니 연결관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꺾인 곳이 없는지 확인했다. 투명한 관이 내 바지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내 몸 안에서 나온 것이 내 침대 옆 비닐주머니에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을 볼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소변량을 소리 내어 읽었다. 천이백, 팔백오십, 육백. 몸에서 나온 액체가 수치로 바뀌었다. 배변 시간도 기록됐고, 물을 마신 양도 기록됐다. 나는 서른여섯 살이 되어서야 누군가에게 내가 언제 소변을 보고 변을 봤는지 보고하는 사람이 되었다.

수진이 처음 병실에서 소변주머니를 비웠던 날이 기억났다.

그녀는 간호사에게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밑에 통을 받치고 잠금장치를 열었다. 수진의 손이 떨렸다. 나는 천장을 보며 말했다.

“당신이 안 해도 돼.”

수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간호사 부르면 되잖아.”

“간호사도 바빠.”

“그래도 당신이 할 일은 아니야.”

그때 수진이 나를 봤다.

“그럼 누구 일이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후 수진은 여러 번 내 소변주머니를 비웠다. 내 몸을 닦았고, 피부를 확인했고, 재활치료 시간에 맞춰 휠체어를 밀었다. 나는 그녀가 해준 일을 기억하면서도, 어떤 날에는 그녀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고 원망했다.

피로한 표정.

겁먹은 표정.

잠깐 얼굴을 찌푸린 표정.

나는 그 표정을 배신처럼 받아들였다. 사랑한다면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몸의 변화가 그녀에게도 낯설고 무서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진이 소변주머니를 침대 아래 고리에 다시 걸었다.

“점심 전까지 물 두 컵 드세요.”

“한꺼번에 마시면 방광관리 시간이 꼬입니다.”

“나눠서 드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가림막을 접었다. 복도의 빛이 다시 들어왔다.

나도윤이 문 앞에서 물었다.

“끝났습니까?”

“네. 체위 변경 기록 다시 안내했습니다.”

서진은 진료기록지에 무언가를 썼다. 그녀의 글씨는 작고 일정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적는지 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환자가 비협조적임.

치료 필요성에 대한 이해 부족.

자가관리 불량.

그런 문장이 적힐 것 같았다.

기록은 사실을 남긴다고 하지만, 기록하는 사람이 고른 사실만 남는다.

“간호사님.”

내가 불렀다.

서진이 펜을 멈췄다.

“아까 자정에 체위 변경 안 한 건 맞습니다.”

“네.”

“점검표에는 제가 표시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정호 아저씨가 한 게 아닙니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녀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그러면 왜 물으셨습니까?”

“본인이 말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시험한 겁니까?”

“치료하려고 확인한 겁니다.”

“같은 말 아닙니까?”

“다릅니다.”

그녀는 기록지에 다시 펜을 댔다.

“점검표를 거짓으로 쓰면 다음 근무자는 실제로 체위 변경이 된 줄 압니다. 피부 상태가 나빠졌을 때 원인을 판단하기도 어렵고요.”

“한 번 안 돌았다고 이렇게 됐다는 겁니까?”

“한 번 때문인지 열 번 때문인지 알 수 없으니까 기록하는 겁니다.”

그 말은 안전점검 담당자의 말과 비슷했다.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멈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그때 확신할 수 없는 경고를 행동하지 않을 이유로 사용했다. 서진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기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문장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있었다.

사람 둘이 죽을 수 있을 만큼 큰 차이였는지는 아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기록 수정하겠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그녀는 점검표를 가져와 자정 칸의 동그라미 위에 한 줄을 긋고 ‘미시행, 본인 확인’이라고 적었다. 내가 한 거짓말이 지워지지 않고, 취소선 아래에 남았다.

“끝났습니다.”

그녀가 방을 나가려 했다.

“윤 간호사님.”

나는 다시 불렀다.

그녀가 돌아봤다.

할 말은 두 가지였다.

내 몸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다. 치료할 때마다 먼저 설명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었다. 둘 다 필요한 말이었다.

또 하나는 고맙다는 말이었다.

그 말은 입 안에서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하면 내가 도움받았다는 사실이 확정되는 것 같았다. 이미 도움받았는데도 말하지 않으면 확정되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무릎 옮기기 전에 말씀해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손가락으로 시트를 문질렀다.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진은 웃지 않았다.

“제 일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고맙다는 말을 받기 위해 한 일이 아니라는 뜻처럼 들렸다. 동시에 내가 감사하지 않아도 계속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도 되었다.

그녀가 나간 뒤에도 가림막이 있던 자리에 소독약 냄새가 남아 있었다.

나는 휠체어로 옮겨 앉아 복도 끝 세면실로 갔다. 물을 받으려다 오른쪽 다리가 갑자기 뻗었다. 발판 위에 있던 발이 옆으로 미끄러졌고 운동화 끝이 바닥에 끌렸다. 몸을 멈추려고 바퀴를 잡았지만 경련은 내가 잡는 것과 관계없이 계속됐다.

뒤에서 오던 수감자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가만있어 봐요. 내가 다리 올려줄게.”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무릎 아래로 손을 넣었다.

“놓으세요.”

내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남자가 손을 뗐다.

“도와주려고 한 건데 왜 소리를 질러.”

“먼저 물어보셔야죠.”

“넘어질 것 같으니까 잡은 거잖아.”

“안 넘어졌습니다.”

“그래, 혼자 잘해.”

그는 나를 지나갔다. 복도에 있던 몇 사람이 우리 쪽을 봤다. 나는 왼손으로 오른쪽 무릎을 들어 발을 발판에 다시 올렸다. 경련은 이미 멈춰 있었다.

남자가 잡지 않았어도 넘어지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가 잡았기 때문에 넘어지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세면대 앞에 도착해 컵에 물을 받았다.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이 컵 안쪽을 때렸다. 손이 조금 떨렸다.

나는 도움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장면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을 싫어했다. 다른 사람들은 내 몸을 보고 먼저 판단했다. 잡아야 한다. 옮겨야 한다. 밀어야 한다. 나는 그 판단 뒤에서 고맙다고 말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되었다.

사고 전에는 내가 다른 사람의 몸을 그렇게 판단했다.

현장 작업자가 무거운 자재를 옮기는 것을 보면 인원을 더 배치해야 하는지, 작업속도를 높일 수 있는지 계산했다. 피곤해 보이면 교대시간을 조정했고, 손이 느리면 숙련도가 낮다고 평가했다. 그 사람에게 지금 손을 대도 되는지 물은 적은 거의 없었다. 작업지시에는 동의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물을 마신 뒤 조금 전 남자를 찾아갔다. 그는 휴게공간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됐어요.”

“잡기 전에 말해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넘어지는데 허락부터 받으라고?”

“시간이 있으면요.”

그가 나를 보았다.

“시간 없으면?”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때는 잡으셔도 됩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모르시면 물어보시면 됩니다.”

남자는 헛웃음을 쳤다.

“알았어요. 다음부터 ‘넘어지십니까’ 물어볼게.”

그는 다시 텔레비전을 봤다. 대화가 잘 끝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사과했고 그는 받았지만, 둘 다 상대가 유난스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윤이 물었다.

“문제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나는 대답한 뒤 말을 고쳤다.

“경련이 있었고 다른 수감자가 잡아줬습니다. 제가 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도윤은 기록하지 않았다.

“다친 곳은요?”

“없습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무엇이 되었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다치지 않았으니 사건이 없는 것인지, 사과했으니 관계가 끝난 것인지, 기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지.

나는 방에 들어와 점검표의 빈칸에 적었다.

10시 40분, 오른쪽 다리 경련 1회.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타인이 휠체어를 잡음. 부상 없음.

그 기록은 내 감정이나 남자의 의도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보다는 정확했다.

정호가 운동에서 돌아온 것은 그 뒤였다. 그는 땀에 젖은 수건을 목에 걸고 들어왔다.

“오늘 치료 있었나?”

“네.”

“상처는?”

“조금 나빠졌답니다.”

정호는 내 침대 옆 점검표를 보았다.

“자정에 안 돌았구먼.”

“보지 마세요.”

“벽에 붙어 있는데 어떻게 안 봐.”

“아저씨는 수면제 드셨잖습니까.”

“그래서 내가 못 도와줬지.”

“도와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정호는 대답하지 않고 자기 침대로 갔다. 베개 옆에는 어제 떨어진 단추가 그대로 있었다. 흰 실이 길게 풀려 있었다.

“아직 안 꿰매셨습니까?”

“간호사가 바빴어.”

“말은 하셨어요?”

“아니.”

“그러면 바쁜지 어떻게 압니까?”

“늘 바쁘지.”

나는 탁자 위에 놓인 반성문을 보았다.

오늘 나는 단추 하나를 주웠다.

어제 쓴 문장은 여전히 있었다. 밤새 종이가 달라지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나는 그 아래에 무언가를 더 쓰려 했다.

오늘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몸을 맡겼다.

문장을 머릿속으로 만들었다가 쓰지 않았다. 맡겼다는 말에는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는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았다.

오늘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치료했다.

이 문장은 사실에 가까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라고 쓰면 서진의 얼굴이 지워졌다.

오늘 윤서진 간호사가 내 상처를 치료했다.

나는 볼펜을 들었다.

종이 위에 첫 글자를 썼다.

오.

그때 다리가 경련했다.

오른쪽 무릎이 갑자기 들렸다가 침대에 떨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몸이 움직였다. 침대 프레임이 가볍게 울렸다.

정호가 돌아봤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몸은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내 입은 여전히 그 말을 잘했다.

종이에는 ‘오’ 한 글자만 남았다.

오늘의 첫 글자일 수도 있었고, 오광철의 성을 적기 시작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나는 볼펜으로 그 글자를 천천히 지웠다. 잉크 위에 잉크가 겹쳐 작은 검은 상처처럼 번졌다.

점심 전까지 물 두 컵을 마셨다.

첫 번째 컵은 한 번에 절반을 마셨다. 두 번째 컵은 침대 옆에 오래 두었다. 햇빛이 물컵을 지나 바닥에 흔들리는 사각형을 만들었다.

물을 다 마신 뒤 나는 체위 변경 호출버튼을 눌렀다.

나도윤이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오른쪽으로 돌아누워야 합니다.”

“혼자 가능하지 않습니까?”

“가능합니다.”

나는 잠시 멈췄다.

“그래도 다리 위치를 확인해주십시오.”

그는 아무 말 없이 장갑을 꼈다.

나는 난간을 잡고 몸을 돌렸다. 상체를 움직이고, 골반을 끌고, 무릎을 접었다. 나도윤이 발목이 침대 틈에 끼지 않도록 옮겼다.

몸은 내 것이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손과 기록과 규정이 없으면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것이었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고를 필요는 없을지도 몰랐다.

나는 오른쪽으로 누운 채 창문을 보았다.

유리창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 아래로는 내 몸의 절반만 보였다.

보이지 않는 절반도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호출기록에 내 이름이 남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윤의 펜이 종이를 긁었다.

오늘 나는 도움을 요청했다.

그 문장을 종이에 쓰지는 않았다.

쓰지 않아도 일어난 일은 없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