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7 / 10
월요일. 민서는 출근하자마자 옆 팀 자리를 한번 봤다. 도윤은 아직 없었다.
별생각 없이 컴퓨터를 켰다. 메일을 확인하고, 메신저를 열었다.
10분쯤 뒤. 옆 팀 쪽에서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민서는 모니터를 보는 척 고개만 조금 들었다.
도윤이었다. 머리 위 숫자는 3
그대로였다. 민서는 다시 화면을 봤다. 왜 확인했지.
오전 회의가 끝난 뒤, 도윤에게 메신저가 왔다.
[도윤 : 지난번 기획안 수정본 혹시 올라왔어요?]
업무 이야기였다. 민서는 바로 답했다.
[민서 : 네. 잠시만요.]
파일을 보내고 끝내려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민서 : 회의 아직 안 끝난 분노의 표정인데요?]
보내고 나서 잠깐 멈췄다. 내가 왜 이걸 보냈지. 곧 답이 왔다.
[도윤 : 오늘은 시작도 하기 싫은 표정입니다.]
민서가 웃었다.
[민서 : 그건 매일 아닌가요.]
[도윤 : 들켰네요.]
업무 이야기는 이미 끝났는데, 메신저는 몇 줄 더 이어졌다. 민서는 그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도윤이 답장을 조금 늦게 하면 메신저 창을 한번씩 확인했다.
점심시간. 세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린) : “대리님, 밥 먹으러 가요.”
민서는 거울을 한번 봤다. 립스틱이 거의 지워져 있었다. 파우치를 꺼냈다.
세린이 쳐다봤다.
(세린) : “오.”
(세린) : “요즘 점심 먹는데 립도 바르시네요.”
민서는 손을 멈췄다.
(민서) : “입술이 너무 창백해서.”
세린이 웃었다. 민서는 괜히 립스틱 뚜껑을 세게 닫았다. 그날 점심,
식당에서 우연히 옆 팀과 마주쳤다. 도윤도 있었다.
(도윤) : “여기 자주 오세요?”
(민서) : “가끔요. 도윤 대리님도요?”
별것 아닌 대화였다. 그런데 도윤이 웃는 순간, 숫자가 바뀌었다.
7 민서는 젓가락을 멈췄다. 다시 봤다.
7 3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올랐다.
민서는 괜히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며칠 뒤.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세린은 먼저 갔다.
민서도 일을 거의 끝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메일 하나를 다시 읽었다.
이미 확인한 메일이었다. 옆 팀에서는 아직 도윤이 일하고 있었다. 7시 12분.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서는 거의 동시에 마우스를 놓았다. 가방을 챙겼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났다.
(도윤) : “이제 가세요?”
(민서) : “네. 도윤 대리님도요?”
(도윤) : “네.”
둘은 회사 건물을 나왔다. 역까지 가는 길이 같았다.
(도윤) : “지난주 고깃집은 괜찮았어요?”
(민서) : “고기보다 재산세 얘기만 기억나요.”
도윤이 웃었다.
(도윤) : “그걸 아직도 기억해요?”
(민서) : “웃겼으니까요.”
(도윤) : “제 인생 최고의 농담이 그거면 좀 슬픈데.”
민서가 웃음을 터뜨렸다. 숫자가 움직였다. 12
조금 뒤. 도윤이 회사 이야기를 하다가 민서의 말을 받아쳤다. 또 웃었다.
18 역 입구가 보였다. 민서는 평소보다 길이 짧게 느껴졌다.
(도윤) : “저는 여기로 가요.”
(민서) : “아, 네.”
평소 같으면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 민서는 먼저 말했다.
(민서) : “내일 봬요.”
도윤이 웃었다.
(도윤) : “네. 내일 봬요.”
21 민서는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입꼬리를 눌렀다. 올라갔다.
토요일. 준호와 약속이 있었다. 민서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두 시간 전. 씻어야 했다. 조금 더 누워 있었다.
한 시간 반 전. 이제 정말 씻어야 했다. 민서는 겨우 일어났다.
옷장을 열었다. 니트. 바지.
이 정도면 됐다. 그 순간, 며칠 전 회사에서 립스틱을 고쳐 바르던 자신이 생각났다.
도윤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며 쓸데없는 메일을 다시 읽던 것도. 민서는 옷장을 바라봤다. 준호를 만나는 날에는
나가기 전까지 귀찮았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도윤과 점심에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화장을 고쳤다.
퇴근길에 같이 걷고 싶어서 퇴근할 수 있는데도 안 갔다. 이상했다.
아니. 사실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았다. 민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준호와 저녁을 먹었다. 준호는 여전히 다정했다. 숫자도
100 이었다.
(준호) : “다음 주에는 뭐 먹고 싶어요?”
(민서) : “아무거나 괜찮아요.”
준호가 맛집 이야기를 했다. 민서는 듣다가 문득, 도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 인생 최고의 농담이 그거면 좀 슬픈데.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그 순간 민서는 깨달았다.
완벽한 조건의 준호와 데이트하며 떠올린 건 도윤이었다. 이 연애의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