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몇 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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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 10

토요일 아침. 민서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알람을 끄고 잠깐 천장을 바라봤다.

오늘 뭐 있었지. 3초쯤 뒤 생각났다. “…아.”

템플스테이. 휴대전화를 열었다. 예약 문자가 그대로 있었다.

[오늘은 템플스테이 입소일입니다.] 민서는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안 가면 안 되나.

몸이 안 좋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갑자기 회사 일이 생겼다거나.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누구한테 핑계를 대지? 아무도 민서에게 왜 안 왔느냐고 따질 사람이 없었다. 자기가 예약했고,

자기가 취소하면 끝이었다. 그래서 더 취소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도 안 가면,

결국 평소랑 똑같은 주말일 것 같았다. 민서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자.”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절은 생각보다 멀었다.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갈아타고, 마지막에는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민서는 계단을 올려다봤다.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얘기는 없었는데.” 배낭을 고쳐 메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나자 숨이 찼다. 20분쯤 지나자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은커녕 택시가 생각났다.

앞서가던 일흔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민서를 추월했다. 민서는 괜히 속도를 조금 높였다. 금방 포기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혼자 온 대학생. 중년 부부.

친구끼리 온 여자 둘. 외국인 한 명. 민서는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생각했다.

다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왔나. 그러다 바로 생각을 고쳤다. 아니.

나부터 별 사연 없잖아. 그냥 집에 있기 싫어서 왔지. 휴대전화를 맡겼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절밥을 먹었다. 스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오후에는 108배를 했다. 처음 열 번은 괜찮았다. 스무 번도 괜찮았다.

서른 번쯤 되자 무릎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민서는 절을 하며 생각했다. 나는 대체 왜 사는 걸까.

일어나고. 회사 가고. 일하고.

돈 벌고. 집에 오고. 먹고.

자고. 또 회사 가고. 그렇게 마흔이 되고,

쉰이 되고, 예순이 되면. 그다음은 뭘까.

마흔 번째 절. 내가 원하는 삶은 뭘까.

결혼? 꼭 하고 싶은가? 모르겠다.

아이? 그것도 모르겠다.

성공? 부장이 되고 싶나? 아니.. 승진하는 게 성공은 아니지 않나.

쉰두 번째 절. 무릎이 아팠다. 민서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났다.

돈? 많으면 좋지. 그런데 돈이 많아질 방법이 있나, 내가?

월급이 갑자기 두 배가 되는 것도 아니고. 로또라도 맞지 않는 이상.

예순일곱 번째 절. 무릎이 더 아팠다. 그래서 나는 뭘 해야 하지.

뭘 해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여든세 번째. 나를 돌아보고 뭐고 무릎이 제일 중요했다. 민서는 바닥에 엎드린 채 잠깐 눈을 감았다.

집에서 자고 있을 걸.

아흔 번째를 넘기자 머릿속도 단순해졌다. 인생. 돈.

결혼. 회사. 다 모르겠고.

제발 끝나기만 해라. 그러다 문득 웃음이 날 것 같았다. 나를 돌아본다는 문구에 혹해 산까지 와서, 지금 제일 간절한 건 무릎이 덜 아픈 거였다.

백여덟 번째 절을 마쳤을 때, 민서는 바닥에 잠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무릎이 얼얼했다.

그래도 이상하게 머릿속은 조금 조용해져 있었다.

밤이 되었다. 일정이 끝난 뒤 민서는 작은 법당에 혼자 들어갔다. 휴대전화도 없고,

회사 메신저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할 게 없으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민서는 불상 앞에 앉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빌까.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할까. 회사에서 잘되게 해달라고 할까.

하나씩 떠올려봤지만, 이상하게 어느 것도 딱 맞지 않았다. 민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제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거든요.” 잠시 멈췄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오늘 108배를 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이 다시 스쳤다. 왜 사는지. 뭘 해야 하는지.

무엇을 남기고 죽어야 하는지. 결국 민서는 두 손을 모았다.

“대체 삶의 의미가 뭔가요.” 조금 있다가 한마디를 더 붙였다. “태어나서 뭘 하고 죽어야 후회하지 않아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당연했다. 민서는 눈을 떴다.

잠깐 가만히 있다가 혼자 피식 웃었다. “…어렵네.” 그날은 그대로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민서는 절밥을 먹고, 가벼운 산책을 하고,

퇴소 안내를 들었다. 휴대전화를 돌려받았다. 메신저.

회사 단톡방. 광고 문자. 엄마의 부재중 전화 두 통.

다 그대로였다. 민서는 산을 내려갔다. 어제와 달라진 건

허벅지 근육통 정도였다.

버스 정류장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커피 한 병을 집어 계산대로 갔다. 젊은 남자 직원이 바코드를 찍었다.

(편의점 직원) : “3천4백 원입니다.”

민서는 카드를 꺼내다가 멈췄다. 남자 머리 위에 뭔가 떠 있었다. 7

민서는 눈을 깜빡였다. 그대로였다.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떴다.

7

(편의점 직원) : “손님?”

(민서) : “아, 네.”

민서는 얼른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산길을 조금 내려가는데, 중년 남자 한 명이 민서 옆을 지나갔다. 그 사람 머리 위에는

2 민서가 걸음을 늦췄다. 맞은편에서 젊은 남자 둘이 올라왔다.

11 24 민서는 두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조금 뒤 여자 등산객이 지나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 뒤로 남자가 지나갔다.

0 다시 여자.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남자. 18 민서는 그 자리에 잠깐 멈췄다.

“…뭐야.” 버스에 올라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들의 머리 위에는 숫자가 있었다.

여자들의 머리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민서는 창가에 앉아 사람들을 몰래 쳐다봤다. 앞자리 남자.

4 통로 건너편 남자. 17

민서는 눈을 몇 번 비볐다. 그래도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잠시 후, 민서는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장을 열었다. 남자 머리 위 숫자

쓰고 나서 멈췄다. 잠깐 생각했다. 그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여자는 없음 그리고 숫자를 다시 바라봤다. 도대체

이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