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숨.찐
물린 날

에피소드 1 / 20

[방과 후 / 폐신사]

폭우 속에서 하라는 낡은 도리이를 지나 폐신사 안으로 뛰어든다. 품에는 비에 젖으면 끝장인 한정판 캐릭터 가방이 안겨 있다.

(일진) : “하라! 거기 숨으면 못 찾을 줄 알아?”

(하라) : “사람보다 굿즈가 먼저 죽겠네, 진짜.”

더 들어갈 곳은 없었다. 하라는 본당 밑에 난 좁은 틈을 발견하고 몸을 밀어 넣었다.

손을 짚는 순간—

찍!

족제비 한 마리가 하라의 손등을 문다.

(하라) : “으악!”

번개가 번쩍인다. 족제비는 도망치지 않고 하라를 빤히 본다.

밖에서는 일진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일진) : “안에 있는 거 알아. 나와!”

하라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인다.

잠시 뒤 발소리가 멀어진다.

하라가 기어 나오자 족제비는 여전히 비를 맞으며 앉아 있다.

(하라) : “너… 일부러 문 거냐?”

족제비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밤 / 하라의 방]

하라는 고열에 시달린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크다.

(하라) : “시계를 왜 머리 안에 넣어 놨어….”

손등의 상처가 화끈거린다.

그 순간 아주 멀리서 철도 건널목 경보음이 들린다.

땡, 땡, 땡—

그리고 희미한 목소리.

“…살려 주세요….”

하라가 눈을 뜬다.

창밖은 조용하다.

[다음 날 / 학교 복도]

열은 내렸지만 세상은 시끄러워졌다.

책장 넘기는 소리, 운동화 끄는 소리, 샤프심 부러지는 소리까지 모두 너무 선명하다.

같은 반 일진이 길을 막는다.

(일진) : “어제 잘 도망갔더라.”

코하루가 하라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다가온다.

(코하루) : “너 어디 아파?”

(하라) : “아니. 잠을 좀 못 자서.”

일진이 하라를 향해 주먹을 뻗는다.

그 순간 하라는 주먹이 오기 전에 안다.

어깨 근육이 먼저 당기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발바닥이 바닥을 미는 진동.

몸이 먼저 움직인다.

하라는 반걸음 피하고 일진의 손목을 붙잡는다.

(일진) : “아악! 놔!”

하라는 당황한다.

힘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 상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하라) : “나… 힘 안 줬는데.”

하라는 황급히 손을 놓는다.

코하루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하라를 바라봤다.

(코하루) : “방금 뭐였어?”

(하라) : “나도 몰라.”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 몰랐다.

다만 반창고 아래의 이빨 자국이 다시 뜨겁게 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