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9 / 50
심사 뒤 아홉 날 동안 나는 오전 우편 카트 소리를 먼저 들었다.
첫날에는 결과가 빨리 오면 허가일 것 같았고, 닷새가 지나자 오래 검토하는 것이 불허 신호처럼 느껴졌다. 도윤은 통지 예정일 전에는 진행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고 같은 대답을 했다.
그 사이 의료동 일정은 바뀌지 않았다. 아침 피부 확인, 소변주머니 관리, 오른쪽 어깨 냉찜질, 오태수의 재활 통로를 비키는 일이 이어졌다. 나는 매일 규칙을 지킨 횟수와 통지 속도를 연결하려 했다. 오늘 병규에게 묻지 않은 말을 하지 않았으니 내일 좋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식이었다.
결정기관은 그날의 내 행동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심사 기록은 이미 봉인돼 있었다.
일곱째 날에는 회사가 공개 진술 일부 문구에 대한 법률 검토를 계속한다는 통지가 왔다. 그것을 불허의 전조라고 읽었다가, 가석방 위원회가 같은 날 그 문서를 받았는지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덟째 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허가됐을 때 필요한 짐 목록과 불허됐을 때 갱신할 계획표를 번갈아 생각했다. 어느 쪽도 확정되지 않아 물건은 꺼내지 않았다.
결정은 심사 아홉째 날 오전에 왔다.
봉투 겉면에는 `가석방 심사 결과 통지`라고 적혀 있었다. 서기현은 내가 직접 개봉할지 물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나는 봉투를 무릎 위에 놓고 왼손 엄지로 접착선을 벌렸다. 종이는 두 장이었다.
첫 장 상단에 결과가 있었다.
`현 시점 가석방 불허.`
`6개월 경과 후 재심 가능.`
나는 두 번째 줄부터 다시 읽었다. 불허라는 단어가 바뀌지는 않았다.
결정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었다. 실명 사실확인 진술과 기존 반성자료의 책임 배열 차이에 대한 추가 관찰이 필요하고, 회사의 공개범위 이의와 관련 법률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장애인 자립전환 주거는 최종 배정 전이었고, 활동지원 시작 전 돌봄 공백과 첫 달 생계비 대안도 일부 확인 대기 상태였다.
긍정 요소도 적혀 있었다. 장기간 규율 위반 없음, 의료동 생활기록의 도움 요청과 경계 준수 변화, 불리한 사실자료 공개 협조, 가족에게 돌봄을 전가하지 않은 출소 계획.
그 아래에는 `피해자 용서 또는 가족 지지 부재를 불허 사유로 삼지 않음`이라고 명시돼 있었다.
긍정 요소가 있는데도 결과는 불허였다. 나는 종이를 뒤집어 다른 결론이 있는지 확인했다.
두 번째 장에는 재심 전 확인 권고가 항목별로 있었다.
첫째, 공개 사실확인 진술 이후 최소한의 관찰 기간 동안 생활기록과 책임 진술의 일관성을 볼 것. 날짜는 `최소 6개월`로 적혀 있었지만, 여섯 달을 채우면 자동 충족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둘째, 회사 이의 절차 결과와 추가 민형사 조치가 출소 후 주거·생계·보호관찰 계획에 미치는 영향을 갱신할 것.
셋째, 휠체어 접근 가능한 실제 주거지를 확보하고 활동지원 시작 전 공백을 맡을 기관의 서면 확인을 제출할 것.
넷째, 첫 달 의료 소모품과 생활비의 최소 재원을 확인할 것.
`피해자 접촉 또는 가족 지지 확보`는 권고 목록에 없었다.
나는 네 항목 옆에 가능한 답을 적으려 했다. 첫째는 시간을 당길 수 없었다. 둘째는 회사가 움직여야 했다. 셋째와 넷째도 기관 결정이 필요했다. 내 행동으로 준비할 수 있는 것과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섞여 있었다.
“재심이면 사실상 보류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이번 심사는 불허로 종결됐고, 여섯 달 뒤 새로 신청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기현이 말했다.
“주거만 확정되면 됩니까?”
“결정문에 적힌 항목을 종합해서 다시 봅니다. 한 조건 충족으로 허가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실명 공개 진술을 안 했으면 기존 자료 차이도 없었겠네요.”
“새 진술이 없었다면 그 항목은 없었을 수 있습니다. 다른 판단 결과까지 가정할 수는 없습니다.”
“사별 보완지나 사과문을 냈으면 긍정 자료가 늘었을 겁니다.”
“제출했다면 내용이 검토됐을 겁니다. 허가됐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손해의 목록을 만들었다. 공개로 가석방 일정이 밀렸고, 사과문과 정호의 죽음을 평가자료로 쓰지 않아 빈칸이 생겼다. 그 선택들이 모두 헛된 것처럼 느껴졌다.
“사과문을 지금 추가 제출하면 재심에 들어갑니까?”
내가 물었다.
“새 자료로 제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 비었던 칸을 채울 수 있네요.”
“내용과 제출 목적이 새로 검토됩니다. 빈칸을 채운다는 이유만으로 긍정 자료가 되지는 않습니다.”
“정호 형 초안도 아직 있습니다.”
말하고 나서 입안이 말랐다. 불허 통지 한 장이 오자 제출하지 않기로 한 두 종이를 다시 자원처럼 세고 있었다.
“제출하시려면 별도 신청을 하십시오.”
서기현은 막지도 권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날 신청하지 않았다. 영원히 내지 않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불허의 분노가 조금 가라앉은 뒤에도 제출 목적이 같은지 다시 볼 필요가 있었다.
“공개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까?”
실명 공개문을 접수하던 날에도 물었던 질문이었다.
“결정문에 편입돼 공개됐습니다. 사실 오류가 아니라 심사 결과 때문에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 이의가 받아들여지면 제 이름은 빠질 수 있잖습니까.”
“공개범위 일부가 바뀔 가능성은 있지만 본인 진술과 접수 기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기현은 불허가 옳은 판결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고결한 선택의 대가를 치렀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서준호는 오후 접견에서 불복 범위를 설명했다. 절차상 사실 오류나 심각한 심사 위반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위원회의 위험 판단 자체를 다른 결론으로 바꾸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결정문에 틀린 사실이 있습니까?”
그가 물었다.
“주거가 미확정이고 활동지원이 확인 대기인 건 맞습니다.”
“회사 절차 미종결도 맞고요.”
“네.”
“기존 자료와 공개 진술 차이를 추가로 보겠다는 판단에 법률적으로 반박할 수는 있지만, 당장 취소될 가능성을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이의 신청을 바로 결정하지 않았다. 불허에 화가 난 것과 절차 오류가 있는 것은 달랐다.
출소 계획은 그대로 유지되지 않았다. 자립전환 임시주거 사전 적합 판정은 석방일이 정해지지 않으면 석 달 뒤 갱신해야 했다. 대체 숙소 한 곳은 이미 다른 입소자에게 배정됐고, 활동지원 사전 상담은 실제 신청 시점에 다시 잡아야 했다.
혜원은 계획표 옆에 새 날짜를 적었다.
“여섯 달 동안 무엇을 확정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접근성 현장 확인, 의료기록 전환 서류, 급여 신청 준비는 갱신할 수 있습니다. 실제 주거 방과 서비스 시작일은 재심 가까이 가야 확정됩니다.”
“또 확인 대기입니까?”
“네. 다만 이번에 확인하지 못한 질문이 무엇인지는 압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다음 계획표에도 빈칸이 생길 것이었다.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주거와 비상연락 칸을 채우기 쉬울 수 있었다. 나는 수진 측 경계를 다시 읽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불허 결과를 알리거나 지원을 요청하는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주 서준호가 전달한 다른 절차 소식이 두 건 있었다.
박미영 측이 요구한 사고기록 정정안에서는 오광철이 `추가 작업에 자원 참여`했다는 기존 문구가 삭제되고 `관리 지시에 따라 3구간에 배치`된 것으로 바뀌었다. 최종 확정 전 회사 의견 절차가 남아 있었다.
그 수정은 내 가석방 불허와 무관하게 진행됐다. 박미영은 내 결과에 의견을 내지 않았다.
수진 측은 이혼조정 서류 송달 창구 변경을 알렸다. 수진이 자신의 어머니 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마쳤고, 실제 주소는 대리인 외 비공개였다. 유리의 연락 의사 없음 경계는 그대로였다.
그들의 이사는 내가 나오지 못하게 됐다고 멈추지 않았다. 기록 정정도 내 불허를 기다리지 않았다.
의료동에서는 오태수가 보행기로 복도를 네 번 왕복했다. 다음 주 일반동 복귀 평가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처음보다 침대 높이를 낮췄고, 밤 호출벨은 여전히 오른손 쪽에 뒀다.
“결과 안 좋았습니까?”
그가 내 봉투를 보고 물었다.
“불허입니다.”
“다음은요?”
“여섯 달 뒤 신청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되겠네요.”
“모릅니다.”
태수는 더 위로하지 않았다. 보행기 손잡이 높이가 한쪽 다르다며 직원에게 조정을 요청했다.
배성환은 공용공간에서 물컵 손잡이를 돌려 달라고 했다. 나는 먼저 어디를 향하게 할지 물었다.
“오른쪽 바깥.”
컵을 돌려 놓았다. 그가 고맙다고 말하기 전에 나는 손을 뗐다. 불허를 받은 날에도 컵 위치는 한 번에 영원히 맞지 않았다.
저녁에 오른쪽 어깨 통증이 올라와 냉찜질을 요청했다. 서진은 통증과 피부 상태, 휠체어 사용량을 확인했다. 가석방 결과를 묻지 않았다.
“오늘 체위 확인은 평소대로 합니까?”
“네.”
“기분 때문에 식사나 물을 줄인 건 없습니까?”
“점심은 절반 먹었습니다.”
“메스꺼움이 있었습니까, 입맛이 없었습니까?”
“입맛이 없었습니다.”
그는 섭취량을 기록하고 저녁 상태를 다시 보기로 했다. 불허는 치료계획의 새 진단명이 아니었다.
저녁 죽은 점심보다 조금 더 먹었다. 나는 그것을 회복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몸이 그 끼니에 받아들인 양이 달랐을 뿐이었다.
태수는 내 맞은편에서 재활 평가지를 작성했다. 일반동 복귀 허가 여부는 다음 날 결정될 예정이었다. 내 불허와 그의 이동 심사는 같은 의료동 게시판에 있었지만 서로 영향을 주지 않았다.
서기현은 재심 가능일을 달력에 표시했다. 오늘로부터 여섯 달 뒤였다. 주거 갱신, 활동지원 재상담, 공개 진술 후속 검토의 중간 날짜도 함께 적혔다.
나는 그 칸을 오래 보았다. 여섯 달을 잘 보내면 허가된다는 약속은 아니었다.
밤에 환자복 두 번째 단추의 실이 풀렸다. 단추는 이불 위를 굴러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새 긴 집게로 단추를 집어 탁자 위에 올렸다. 바느질 도구 배부 시간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재심 날짜 아래에는 여섯 달이 남아 있었다.
단추를 다시 다는 일은 내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