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정호의 죽음을 쓰지 않았다

에피소드 46 / 50

나는 빈칸의 첫 줄에 `이정호의 죽음을 통해`라고 썼다.

그 뒤 문장은 쉽게 이어졌다.

`돌봄은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상대의 선택을 묻고 오늘 필요한 일을 반복하는 책임임을 배웠다.`

배성환의 물컵과 야간 체위 확인, 정호가 내게 물병을 채워 주었던 일까지 한 문장 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죄를 믿음으로 덮지 않으려 했고, 마지막까지 치료와 연락 범위를 스스로 선택했다.`

금식과 반송 확인서, 우회 송금을 그만둔 일, 은희 동생에게 병을 알리지 않은 일도 이어 붙일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은 제가 남은 삶에서 타인의 경계를 존중하고 책임을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를 깨닫게 했다.`

한 장의 절반이 빠르게 채워졌다. 서기현이 원한 `의미와 변화`에 맞는 문장이었다. 정호의 삶은 순서대로 배열됐고, 마지막에는 내가 달라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구체적 사례를 더 붙였다.

`처음에는 그의 금식을 믿음의 문제로만 보았지만, 약 복용과 식사 선택을 지켜보며 돌봄에는 상대의 몸과 의사를 함께 확인하는 책임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유족에게 송금을 반복하다 멈춘 과정을 통해 사과와 배상이 상대에게 또 다른 응답을 요구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병이 진행된 뒤에도 치료와 연락 범위를 직접 정하는 모습을 보며 타인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 법을 실천했습니다.`

모두 사실에서 출발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금식은 내 교육 과정이 아니었고, 반송 확인서는 심사위원에게 보여 주라고 정호가 보관한 물건이 아니었다. 연명의료계획을 작성하던 그의 질문은 내 변화 사례가 아니었다.

초안 끝에는 출소 후 계획을 붙일 수도 있었다.

`출소한다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책임 있는 생활을 이어가겠습니다.`

어디에서 누구를 어떻게 돌볼지는 없었다. 정호의 죽음이 내 미래를 보증하는 문장만 생겼다.

나는 더 구체적으로 쓰려고 했다. 의료동 자원봉사, 피해자지원기금 기부, 안전교육 참여. 출소 뒤 가능한지 확인하지 않은 계획들이었다. 한 장을 채울수록 정호의 죽음은 내가 쓸 수 있는 자격증처럼 변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정호가 금식을 한 것은 내게 돌봄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송금을 멈춘 것도 내가 사과문을 보내지 않는 법을 배우게 하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암 치료와 연명의료 범위를 정한 것은 내 심사자료가 아니었다.

그가 죽은 뒤에는 반박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는 마지막 통화에서`라고 쓰려다 멈췄다. 마지막 통화에서 정호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 침묵을 인용하면 오히려 깊은 유언처럼 보일 수 있었다.

초안을 접어 서기현 면담에 가져갔다.

“사별 사실만 제출할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이정호 씨 사망은 기관 기록으로 이미 확인됩니다.”

“제가 어떤 도움을 했는지 객관적인 기록만 붙이는 건요?”

“의료동 생활기록에 허용된 범위의 도움과 갈등이 남아 있습니다. 별도 보완지를 내면 한재호 씨가 그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후 행동에 연결했는지 평가하는 자료가 됩니다.”

“정호 형이 자기 이야기를 제 심사에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의료정보나 사적 발언은 동의 범위와 개인정보를 검토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사별 경험은 본인 관점에서 쓸 수 있습니다.”

“제가 배웠다고 쓰면 정호 형 죽음이 제 변화 증거가 됩니다.”

서기현은 내 초안을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 문제를 포함해 제출 여부를 결정하시면 됩니다.”

“안 내면 어떻게 기록합니까?”

“사별 관련 추가 보완자료 미제출. 생활 변화에 대한 추가 입증자료 없음으로 남깁니다.”

“심사에는 불리합니까?”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는 자료 하나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기존 기록만으로 판단합니다.”

나는 접은 종이를 폈다. `돌봄은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라는 문장은 정호가 말한 적이 없었다. 내가 여러 장면에서 만든 결론이었다. 그것을 내 생각이라고 표시하면 제출할 수는 있었다.

“제가 정호 형을 이용하지 않으려고 안 낸다고 쓰면요?”

“그 문장도 자기성찰 자료가 됩니다.”

“결국 안 쓰는 이유까지 쓰면 제출한 셈이네요.”

“그렇습니다.”

나는 제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서기현은 선택 확인서에 표시했다.

`사별 경험 보완진술 미제출. 추가 생활변화 입증자료 없음.`

그는 내 결정을 윤리적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초안을 돌려주었다.

“초안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본인이 보관하거나 폐기할 수 있습니다. 제출하지 않으면 심사기록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나는 의료동으로 돌아와 초안을 찢지 않았다. 찢는 장면까지 내 절제의 증거로 기억할 것 같았다. 종이를 반으로 접어 사과문과 다른 칸에 넣었다. 정호의 이름이 적힌 종이는 아무도 읽지 않았지만, 내가 그를 이용하려고 쓴 사실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틀 뒤 보완자료 목록이 왔다. `사별 경험을 통한 변화` 항목은 `미제출`로 표시돼 있었고 점수란은 비어 있었다. 다른 항목에는 의료동 규칙 준수, 공개 진술 재검토, 피해 회복 계획이 나열돼 있었다.

“빈칸은 영 점입니까?”

내가 서기현에게 물었다.

“정량 점수로 환산하는 칸은 아닙니다. 추가로 검토할 자료가 없다는 뜻입니다.”

“기존 생활기록에서 정호 형과 지낸 일은 봅니까?”

“필요 범위의 객관 기록은 봅니다. 한재호 씨가 그 경험에 부여한 의미와 변화 진술은 없습니다.”

“그게 심사위원에게 부족하게 보일 수 있겠네요.”

“그럴 수 있습니다.”

나는 미제출 이유를 옆에 적어 달라고 다시 말하고 싶었다. 고인의 삶을 이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문장 하나면 빈칸이 선택의 증거로 바뀌었다.

“미제출 사유는 쓰지 않겠습니다.”

내가 먼저 말했다.

서기현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 목록을 닫았다. 그 말도 칭찬이 아니었다.

사별 보완지를 내지 않은 다음 날 정호가 쓰던 침대에 새 수용자가 들어왔다. 이름은 오태수였고, 쉰일곱 살이었다. 계단에서 넘어져 골반 골절 수술을 받은 뒤 보행 재활을 위해 임시로 의료동에 왔다.

직원은 빈 이름표에 그의 번호를 적었다. 새 시트와 베개, 호출벨을 확인하고 침대 높이를 물었다.

“조금 낮게 해 주세요. 발이 바닥에 닿아야 일어나기 편합니다.”

태수가 말했다.

정호는 숨이 찬 뒤 침대 머리를 올려 썼지만 태수에게는 낮은 높이가 필요했다. 나는 정호가 쓰던 각도를 말하지 않았다.

“물컵은 어디가 편합니까?”

직원이 물었다.

“오른쪽이요. 왼손으로 지팡이 잡아서.”

컵은 오른손 앞에 놓였다. 정호도 마지막 병상에서 같은 위치를 원했지만 이유는 달랐다.

태수는 내 휠체어를 보고 말했다.

“여기 오래 있었어요?”

“네.”

“전에 이 침대 쓰던 사람은 퇴원했습니까?”

나는 `죽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태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미안합니다. 괜히 물었네요.”

“모르고 물은 겁니다.”

나는 정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태수가 침대를 쓸 자격과 정호를 알아야 할 의무는 연결돼 있지 않았다.

저녁에 태수는 화장실까지 처음 걸어갔다. 직원이 보행기를 잡지 않고 옆에서 속도를 맞췄다. 돌아와서는 침대 높이를 다시 한 칸 올려 달라고 했다. 처음 정한 높이도 하루 안에 바뀌었다.

밤에 태수는 골반 통증 때문에 두 번 자세를 바꿨다. 첫 번째에는 직원 도움을 요청했고, 두 번째에는 보행기 손잡이를 짚고 스스로 옆으로 몸을 돌리려 했다. 나도윤은 수술 부위에 무리가 갈 수 있어 먼저 동작을 확인하고 필요한 범위만 도왔다.

“전에 있던 사람도 밤에 자주 불렀습니까?”

태수가 내게 물었다.

“마지막에는 다른 병원에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요?”

정호의 기일 금식과 관절통, 새벽 기침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현재 질문에 필요한 만큼만 답했다.

“필요할 때 불렀습니다.”

태수는 호출벨을 왼손 쪽에서 오른손 쪽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낮과 다른 자리였다. 직원은 이유를 따지지 않고 밤에 눕는 방향을 확인한 뒤 옮겼다.

정호가 마지막 병상에서 호출벨을 왼손 가까이 두었다는 사실은 태수의 오른손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

나는 정호의 빈자리를 지키는 대신 태수가 요청한 통로를 비켰다. 내 휠체어가 보행기 회전 범위를 막고 있었다.

“조금 뒤로 가 주실래요?”

태수가 말했다.

“네.”

나는 바퀴를 두 번 굴렸다. 그 행동을 보완지에 쓰지 않았다.

사흘 뒤 최종 가석방 심사 출석 통지가 도착했다. 실명 공개 진술 재검토와 회사 이의 검토를 반영한 뒤 심사일이 다시 잡혔다.

출석일은 열흘 뒤 오전 열 시였다.

사전 질문지 첫 항목은 내가 여러 번 본 문장과 닮아 있었다.

`수용생활을 통해 발견한 삶의 의미와 출소 후 실천 계획을 서술하십시오.`

서기현은 빈칸을 채우지 않아도 구두로 질문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호의 죽음을 쓰면 한 장을 채울 수 있었다.

나는 질문지와 제출하지 않은 사별 초안을 서로 다른 서류철에 넣었다.

한쪽 종이에 쓴 문장을 다른 쪽 빈칸으로 옮기지 않았다. 열흘 뒤에는 그 빈칸을 남겨 둔 이유까지 질문받을 수 있었다. 그때도 정호의 삶을 대신 말하지 않고 내 선택만 답해야 했다.

질문지는 비어 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빈칸이 보이도록 맨 위에 놓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