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8 / 10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아무 일정도 없었다.
성호는 소파에 누워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고, 지연은 옆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풍경이었다.
그런데 예전과는 조금 달랐다.
성호의 발이 지연 다리 위에 올라와 있었고, 지연은 귀찮다고 밀어내면서도 다시 올라온 발을 그냥 뒀다.
그때 성호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떴다.
15년 전 오늘.
사진 앱이 띄운 과거 사진이었다.
성호가 화면을 눌렀다.
(성호) : “야, 이것 봐.”
지연이 옆으로 붙었다.
사진 속에는 이십대의 두 사람이 있었다.
신촌 거리. 싸구려 맥주집. 벚꽃이 핀 공원. 바다 앞.
둘 다 지금보다 촌스러웠다.
성호는 머리가 이상했고, 지연은 눈썹이 너무 얇았다.
(지연) : “내 눈썹 왜 저래.”
(성호) : “내 머리는?”
(지연) : “그때 유행이었잖아.”
(성호) : “내가 저러고 다녔다고?”
둘은 한참 웃었다.
사진을 넘길수록 둘이 붙어 있는 사진이 많았다.
어깨에 기대고, 손을 잡고, 얼굴을 붙이고.
성호가 한 사진에서 멈췄다.
지연이 성호 등을 뒤에서 안고 웃고 있었다.
(성호) : “우리 이때 진짜 좋았지.”
지연도 사진을 봤다.
(지연) : “좋았지.”
다음 사진은 결혼식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지연. 턱시도를 입은 성호.
둘 다 정말 많이 웃고 있었다.
사진을 넘기던 손이 조금 느려졌다.
결혼하고 처음 몇 년은 아이 이야기를 자주 했다.
아들이면 누구를 닮았으면 좋겠는지. 딸이면 이름을 뭘로 지을지.
장난처럼 시작했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계획이 됐다.
그리고 계획은 숙제가 됐다.
병원을 다니고, 날짜를 맞추고, 약을 먹고, 검사를 했다.
매달 기대했다.
이번에는 혹시.
그리고 또 실망했다.
지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연) : “그때 진짜 많이 울었는데.”
성호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성호) : “알아.”
(지연) : “당신 앞에서는 별로 안 울었어.”
(성호) : “화장실에서 울었잖아.”
지연이 성호를 봤다.
(지연) : “알았어?”
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 : “모르는 척했지.”
지연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성호도 그랬다.
서로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다고 했다.
다음에 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 둘이 잘 살면 된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둘은 덜 싸웠다.
대신 덜 기대했다.
덜 서운했고, 덜 설렜다.
성호가 말했다.
(성호) : “우리 그때 너무 지쳤던 것 같아.”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연) : “응.”
(성호) : “당신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하기 싫었어.”
(지연) : “왜?”
(성호) : “그 말 하면 당신이 또 괜찮다고 할 것 같아서.”
지연이 피식 웃었다.
(지연) : “당신도 맨날 괜찮다 했잖아.”
(성호) : “그러네.”
둘은 한동안 결혼사진을 넘겼다.
그러다 성호가 지연을 봤다.
(성호) : “근데 요즘 당신 좀 옛날 같아.”
(지연) : “뭐가.”
(성호) : “표정이.”
지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연) : “무슨 표정.”
(성호) : “나 볼 때.”
지연은 바로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호가 웃었다.
(성호) : “봐. 또 저래.”
(지연) : “뭘 또 그래.”
성호는 장난스럽게 웃다가 조금 조용해졌다.
그리고 말했다.
(성호) : “귀여워.”
지연이 성호를 봤다.
(지연) : “마흔 먹은 아저씨가 할 말이야?”
성호가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성호) : “지금 스무 살인데.”
지연이 웃었다.
(지연) : “정신은 마흔이라며.”
(성호) : “그건 필요할 때만.”
지연이 성호 팔을 툭 쳤다.
성호가 그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장난치지 않았다.
손가락이 천천히 맞물렸다.
지연도 손을 빼지 않았다.
둘 사이에 놓인 휴대전화 화면에는 여전히 이십대의 두 사람이 웃고 있었다.
지연은 그 사진을 보다가 지금 옆에 있는 성호를 봤다.
스무 살 얼굴.
마흔 살의 기억.
그리고 11년을 같이 산 남편.
성호가 손에 힘을 줬다.
지연도 똑같이 힘을 줬다.
그때 좋았다.
그런데 어쩌면,
지금도 다시 좋아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