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 / 10
성호는 결국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했다.
처음에는 지연도 말렸다.
(지연) : “당신 진짜 할 거야?”
(성호) : “왜. 어차피 회사도 못 가잖아.”
(지연) : “그래도 갑자기 아이돌은 너무 갔지.”
(성호) : “오디션만 보는 거지.”
성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꽤 신나 보였다.
며칠 뒤.
둘은 기획사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지연은 유리문에 비친 성호를 봤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별것도 아닌 옷인데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지연) : “긴장 안 돼?”
(성호) : “회사 면접보다야 낫지.”
성호가 웃었다.
(성호) : “정신은 마흔이잖아. 그동안 사회생활 한 짬은 그대로라고.”
대기실에는 어린 지원자들이 앉아 있었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가사를 외우거나 안무 영상을 보고 있었다.
성호는 그 사이에 앉아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지연이 슬쩍 화면을 봤다.
주식 차트였다.
(지연) : “여기서도 그걸 봐?”
(성호) : “지금 장 열렸잖아.”
(지연) : “당신 오늘 오디션 보는 거 맞지?”
(성호) : “응. 근데 이건 이것대로 중요해.”
지연은 한숨을 쉬었다.
곧 성호 이름이 불렸다.
오디션장 안에는 세 명의 심사위원이 앉아 있었다.
성호는 중앙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성호) : “안녕하세요. 성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지연은 밖에서 모니터를 보다가 눈을 깜빡였다.
목소리부터 달랐다.
집에서는 늘어져 말하던 사람이 갑자기 또렷하고 밝았다.
심사위원이 물었다.
(심사위원) : “춤춰본 적 있어요?”
(성호) :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심사위원) : “노래는요?”
(성호) : “잘한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지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지연) : “정직하네.”
첫 곡이 시작됐다.
노래는 평범했다.
못하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잘하지도 않았다.
춤은 더 평범했다.
동작은 따라가는데 어딘가 살짝 늦었다.
지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그렇지.
그런데 음악이 끝난 뒤에도 심사위원들은 성호를 계속 보고 있었다.
한 명이 말했다.
(심사위원) : “표정 한 번 바꿔볼게요.”
카메라가 더 가까이 들어왔다.
(심사위원) : “이번에는 좀 차갑게.”
성호의 표정이 바로 바뀌었다.
(심사위원) : “이번에는 웃어볼까요?”
이번엔 부드럽게 웃었다.
지연은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웠다.
(지연) : “저 인간 저런 표정도 할 줄 알았어?”
다른 심사위원이 질문을 던졌다.
(심사위원) : “카메라 울렁증은 없어요?”
(성호) : “회의실에서 이사님 앞에서 발표하는 것보단 괜찮은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웃었다.
성호도 따라 웃었다.
(심사위원) : “멘탈은 좋아 보이네요.”
(성호) : “회사 다니면서 많이 단련됐습니다.”
지연은 순간 표정이 굳었다.
성호도 바로 입을 다물었다.
심사위원이 웃었다.
(심사위원) : “알바 많이 했나 봐요?”
성호는 한 박자도 쉬지 않았다.
(성호) : “네. 이것저것 많이 해봤습니다.”
지연은 모니터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오디션이 끝난 뒤 성호가 밖으로 나왔다.
(지연) : “회사 다니면서 단련됐습니다?”
(성호) : “실수.”
(지연) : “알바 많이 했냐니까 바로 받아치는 건 또 뭐야.”
(성호) : “사회생활 15년 차인데 그 정도 순발력은 있지.”
지연이 웃었다.
(지연) : “스무 살 신인이 사회생활 15년 차래.”
성호도 웃었다.
둘은 그냥 재미있는 경험 하나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바로 연락이 왔다.
기획사 대표가 직접 한번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지연은 메시지를 보고 놀랐다.
(지연) : “붙은 거야?”
(성호) : “그러게.”
(지연) : “노래도 그냥 그렇고 춤도 그냥 그렇던데.”
(성호) : “여보.”
(지연) : “응?”
(성호) : “얼굴이 있잖아.”
지연은 말없이 성호를 봤다.
성호는 꽤 진지했다.
(지연) : “진짜 재수 없어.”
며칠 뒤 둘은 다시 기획사를 찾았다.
대표는 성호를 보자마자 본론부터 꺼냈다.
(대표) : “춤이랑 노래는 더 배워야 해요.”
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 : “근데 카메라를 안 무서워하고, 표정이 좋아요.”
대표는 잠깐 성호를 훑어봤다.
(대표) : “그리고 솔직히 얼굴이 너무 좋아요.”
지연은 괜히 물을 마셨다.
대표는 데뷔를 전제로 트레이닝을 받아보자고 제안했다.
성호는 신나기보다 계약서를 먼저 받아 들었다.
수익 배분. 계약 기간. 활동 범위. 위약금.
하나씩 꼼꼼하게 읽었다.
대표가 웃었다.
(대표) : “성호 씨 생각보다 되게 꼼꼼하네요.”
(성호) : “계약은 원래 꼼꼼하게 봐야죠.”
(대표) : “스무 살 맞죠?”
성호가 잠깐 멈췄다.
(성호) : “네.”
지연은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또 웃으면 안 됐다.
계약 이야기가 어느 정도 끝났을 때 성호가 말했다.
(성호) :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대표가 성호를 봤다.
(대표) : “뭔데요?”
성호는 지연을 가리켰다.
(성호) : “매니저는 지연이가 하면 안 돼요?”
지연이 고개를 홱 돌렸다.
(지연) : “뭐?”
대표도 지연을 봤다.
(대표) : “매니저 경험 있으세요?”
(지연) : “없는데요.”
(성호) : “그래도 저를 제일 잘 알아요.”
지연은 어이가 없었다.
성호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 덧붙였다.
(성호) : “그리고 제가 사고 칠 일도 없게 잘 잡아줄 겁니다.”
지연이 성호를 노려봤다.
(지연) : “누가 누굴 잡아.”
대표는 둘을 번갈아 보더니 웃었다.
(대표) : “두 분 친하신가 봐요.”
둘은 동시에 대답했다.
(성호) : “네.”
(지연) : “아니요.”
잠깐 정적이 흘렀다.
대표가 더 크게 웃었다.
지연은 그제야 생각했다.
이상한 샘물 한 모금 때문에 남편이 스무 살이 됐고, 그 남편이 지금 아이돌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자기가 그 남편의 매니저가 될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