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5 / 10
성호의 데뷔는 생각보다 빨랐다.
작은 기획사라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다. 춤과 노래는 아직 더 배워야 했지만, 회사는 성호의 얼굴과 분위기를 먼저 밀어보기로 했다.
프로필 사진과 짧은 소개 영상이 공개된 날.
지연은 대기실 한쪽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조회수가 생각보다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댓글도 계속 달렸다.
[누구야?] [신인 맞아?] [얼굴 미쳤다] [이런 애가 어디 있다 이제 나왔지]
지연은 댓글을 몇 개 더 읽다가 성호를 봤다.
성호는 자기 영상 대신 주식 앱을 보고 있었다.
(지연) : “당신 댓글 안 봐?”
(성호) : “응.”
(지연) : “사람들이 난리인데?”
(성호) : “잠깐만. 지금 주식이 먼저야.”
지연은 헛웃음이 났다.
(지연) : “아이돌이 팬 반응보다 환율을 먼저 봐?”
(성호) : “타이밍은 기다려주지 않잖아.”
정말 정신은 마흔이었다.
며칠 뒤 첫 음악방송 무대가 잡혔다.
아침 일찍부터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무대 의상을 입고, 리허설을 했다.
지연은 스태프들과 동선을 확인하고 준비물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방송 직전.
대기실 문이 열렸다.
(성호) : “지연아.”
지연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무대 의상을 입은 성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검은 머리는 이마가 살짝 드러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짙고 반듯한 눈썹 아래로 길게 내려앉은 눈매가 또렷했다. 곧게 뻗은 콧대와 매끈한 턱선은 평소보다 훨씬 선명해 보였다.
무표정일 때는 조금 차가운 인상이었다.
그런데 지연과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 순간 얼굴이 확 어려졌다.
스무 살.
정말 잘생긴 스무 살 남자였다.
지연은 자기도 모르게 성호 얼굴을 오래 봤다.
성호가 다가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성호) : “왜?”
지연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성호 얼굴이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
눈을 조금만 올리면 바로 눈이 마주쳤다. 숨을 쉬면 서로의 기척이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지연의 심장이 갑자기 크게 뛰었다.
쿵.
그게 너무 생생해서 지연은 당황했다.
(지연) : “뭐가.”
(성호) : “계속 보잖아.”
(지연) : “안 봤는데.”
(성호) : “봤어.”
성호가 조금 더 얼굴을 숙였다.
(성호) : “나 오늘 좀 괜찮아?”
지연은 바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지연) : “빨리 가. 곧 무대잖아.”
(성호) : “대답은?”
(지연) : “안 괜찮아.”
(성호) : “거짓말.”
성호가 웃으며 돌아섰다.
지연은 괜히 들고 있던 일정표로 얼굴을 부쳤다.
덥지도 않은데 얼굴이 뜨거웠다.
잠시 뒤 무대가 시작됐다.
카메라가 성호 얼굴을 잡았다.
성호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시선도, 표정도, 웃는 타이밍도 자연스러웠다.
지연은 모니터를 보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저 사람을 11년이나 봤다.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놓는 것도 봤고, 소파에서 코를 골며 자는 것도 봤고, 아침에 눈도 못 뜬 채 냉장고 문을 여는 것도 봤다.
그런데 지금 모니터 안의 남자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젊고, 낯설고, 잘생겼다.
무대가 끝났다.
성호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스태프들이 잘했다고 박수를 쳤다.
(스태프) : “성호 씨, 첫 무대 맞아요? 생각보다 너무 잘했는데요?”
성호는 방금 전까지 무대 위에서 보이던 표정 그대로 밝게 웃었다.
(성호) : “감사합니다.”
지연은 그 모습을 보며 또 어이가 없었다.
진짜 잘한다.
스무 살 신인 아이돌인 척하는 걸.
카메라가 꺼지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성호가 바로 지연 쪽으로 왔다.
(성호) : “여보.”
지연이 재빨리 주위를 봤다.
(지연) : “여기서 여보 하지 말랬지.”
성호가 웃었다.
(성호) : “아무도 없잖아.”
(지연) : “그래도.”
(성호) : “그래서 무대 어땠어?”
지연이 대답하려다 잠깐 멈췄다.
가까이서 보니 또 심장이 뛰었다.
방금 전까지 화면 속에 있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지연) : “그냥 뭐.”
(성호) : “그냥 뭐?”
(지연) : “생각보다 잘하네.”
성호가 웃었다.
(성호) : “그게 다야?”
지연이 성호 어깨를 밀었다.
(지연) : “가서 옷이나 갈아입어.”
성호는 순순히 돌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가다 다시 돌아봤다.
지연과 눈이 마주쳤다.
성호가 웃었다.
지연은 또 시선을 피했다.
성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이상했다.
예전에도 지연은 저런 얼굴을 했다.
연애를 시작했을 때.
성호가 손을 잡으면 괜히 다른 데를 보던 얼굴. 좋다고 해놓고 민망하면 바로 딴소리하던 얼굴.
성호는 한참 만에 떠오른 기억에 피식 웃었다.
귀엽네.
지연은 그런 줄도 모르고 혼자 심각했다.
남편이다.
분명 자기 남편인데.
왜 다른 남자한테 반한 것 같은 기분이 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