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 10
지연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성호도 마찬가지였다.
거울 속에는 정말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지연은 침대에서 내려와 거리를 벌렸다.
(지연) : “잠깐만.”
성호가 자기 얼굴을 만졌다.
(성호) : “이게 뭐야.”
(지연) : “당신 맞아?”
(성호) : “나도 지금 그게 제일 궁금해.”
지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얼굴만 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목소리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전보다 맑고 가벼웠다.
하지만 말투는 성호였다.
지연은 팔짱을 꼈다.
(지연) : “우리 처음 데이트한 날 어디 갔어?”
(성호) : “신촌.”
(지연) : “뭐 먹었는데?”
(성호) : “파스타.”
(지연) : “틀렸어.”
성호가 바로 인상을 썼다.
(성호) : “파스타 먹으러 갔다가 당신이 느끼하다고 김치찌개 먹으러 갔잖아.”
지연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지연) : “결혼식 날 내가 어디서 울었어?”
(성호) : “신부대기실 화장실.”
(지연) : “왜?”
(성호) : “긴장해서.”
(지연) : “아닐걸.”
성호가 잠깐 생각했다.
(성호) : “당신 아빠랑 손잡고 들어갈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울었지.”
지연은 입을 다물었다.
성호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성호) : “이 정도면 됐지?”
지연은 아직도 미심쩍었다.
(지연) : “당신 비상금 어디 있어.”
성호가 바로 대답했다.
(성호) : “골프백 안쪽 주머니.”
잠깐 정적이 흘렀다.
성호가 눈을 크게 떴다.
(성호) : “잠깐. 그건 왜 물어봐.”
지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저건 성호였다.
틀림없이 자기 남편이었다.
지연은 다시 성호 얼굴을 봤다.
낯설었다.
너무 낯설어서 오히려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성호는 거울 앞에 바짝 붙었다.
얼굴을 왼쪽으로 돌렸다. 오른쪽으로도 돌렸다.
그러더니 머리를 쓸어 올렸다.
(성호) : “와.”
지연이 쳐다봤다.
(지연) : “뭐가 와야.”
(성호) : “나 스무 살 때 이렇게 잘생겼었나?”
지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지연) : “아니.”
(성호) : “기억이 잘못된 거 아니야?”
(지연) : “사진 있어.”
성호가 입을 다물었다.
지연은 휴대전화를 꺼내 옛날 사진을 찾았다.
스무 살 무렵의 성호.
통통한 볼. 짧게 자른 머리. 지금보다 훨씬 평범한 얼굴.
두 사람은 사진과 현재의 성호를 번갈아 봤다.
(성호) : “좀 잘 나온 사진 찾아봐”
(성호) : “이건 좀 억울한데.”
(지연) : “샘물이 서비스까지 해줬나 봐.”
성호는 다시 거울을 봤다.
조금 기분 좋아 보였다.
지연은 그게 더 어이없었다.
문제는 얼굴이 아니었다.
월요일이었다.
성호는 이 얼굴로 회사에 갈 수 없었다.
주민등록증에는 마흔 살 남자가 있었다. 사원증에도 마흔 살 남자가 있었다.
지연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지연) : “회사에는 뭐라고 할 건데.”
(성호) : “독감?”
(지연) : “얼마나 오래?”
(성호) : “일주일?”
(지연) : “일주일 뒤에도 그대로면?”
성호가 입을 다물었다.
둘은 일단 건강 문제로 며칠 쉬겠다고 연락했다.
그리고 바로 병원으로 갔다.
접수대 직원이 성호의 주민등록증과 얼굴을 번갈아 봤다.
한 번.
두 번.
세 번.
(직원) : “본인 맞으세요?”
성호가 한숨을 쉬었다.
(성호) : “네.”
직원이 다시 주민등록증을 봤다.
(직원) : “생년월일이…”
(성호) : “맞아요.”
지연은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웃으면 안 됐다.
검사를 해도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오히려 의사는 건강하다고 했다.
성호의 몸은 실제로 스무 살에 가까웠다.
피부도. 근육도. 혈액 수치도.
병원을 나온 성호가 말했다.
(성호) : “건강하대.”
(지연) : “축하해.”
(성호) :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거 아니야?”
지연이 성호를 노려봤다.
(지연) : “당신 회사 못 가.”
성호의 표정이 바로 현실로 돌아왔다.
그날 오후.
둘은 다시 산으로 갔다.
성호가 샘물을 마셨던 장소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약수터가 없었다.
분명 사진도 있었다.
성호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속에는 나무 팻말과 돌샘이 그대로 있었다.
청춘샘. 한 모금이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눈앞에는 나무와 바위뿐이었다.
(지연) : “귀신한테 홀린 거 아니야?”
(성호) : “내가 귀신 물 마시고 스무 살 된 거야?”
(지연) : “그게 지금 제일 말이 돼.”
둘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내려왔다.
며칠 뒤.
성호는 여전히 스무 살이었다.
회사에는 결국 장기 휴직을 문의했다.
지연이 계속 일하고 있어서 당장 생활이 막막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성호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오전에는 거울을 봤고, 점심에는 주식 차트를 봤고, 오후에는 또 거울을 봤다.
지연이 퇴근한 뒤 말했다.
(지연) : “당신 요즘 거울 진짜 많이 본다.”
(성호) : “이 얼굴은 봐줘야 돼.”
(지연) : “진짜 꼴 보기 싫다.”
주말.
둘은 필요한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
성호가 입던 옷은 전부 컸다.
셔츠도. 바지도. 재킷도.
지연이 옷을 고르는 동안 성호는 매장 밖에서 기다렸다.
그때 한 남자가 성호에게 다가왔다.
정장을 입은 깔끔한 남자였다.
(남자) : “잠깐만요.”
성호가 돌아봤다.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남자) : “혹시 연예계 쪽 관심 있으세요?”
성호가 명함을 받았다.
지연은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다가왔다.
(지연) : “뭐야?”
성호가 명함을 뒤집어 봤다.
연예기획사.
캐스팅 디렉터.
성호가 잠깐 생각하더니 지연을 봤다.
(성호) : “나 이거 해볼까?”
지연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지연) : “마흔 먹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성호가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성호) : “근데 지금은 스무 살이잖아.”
지연은 할 말을 잃었다.
성호는 다시 명함을 봤다.
눈빛이 꽤 진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