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스무살이 됐다
자고 일어났더니 남편이 스무 살이 됐다

에피소드 1 / 10

결혼 11년 차.

지연과 성호는 사이가 나쁜 부부는 아니었다.

크게 싸우는 일도 드물었고, 서로의 취향도 웬만큼 알고 있었다.

성호는 지연이 오이를 싫어한다는 걸 알았고, 지연은 성호가 양말을 벗어 소파 밑에 밀어 넣는 버릇이 있다는 걸 알았다.

문제는 서로를 너무 많이 안다는 데 있었다.

금요일 저녁.

둘은 나란히 식탁에 앉아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다.

(성호) : “내일 등산 갈까?”

(지연) : “혼자 가.”

(성호) : “같이 가면 좋잖아.”

(지연) : “주말에 왜 산에서 고생을 해.”

성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호) : “그럼 나 혼자 간다.”

(지연) : “응.”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예전에는 이런 침묵이 어색했다.

요즘은 편했다.

아이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 뒤로는 더 그랬다.

둘은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아이를 기다렸다.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생길 줄 알았다.

그다음에는 병원에 갔다.

날짜를 맞추고, 약을 먹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매달 기대했고, 매달 실망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도 지쳤다.

그 뒤로 아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말이 사라지자 다른 말들도 조금씩 줄었다.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냥 너무 오래 같이 살았다.

토요일 아침.

성호는 혼자 등산을 갔다.

지연은 늦게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고, 커피를 마시고, 밀린 드라마를 봤다.

오후가 되자 성호에게 사진이 하나 왔다.

산 중턱의 낡은 약수터였다.

사진 아래 메시지가 붙었다.

[성호 : 이런 거 아직도 있네ㅋㅋ]

지연은 화면을 확대했다.

돌로 만든 작은 샘 옆에 나무 팻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청춘샘

한 모금이면 충분합니다.

지연은 피식 웃었다.

[지연 : 많이 마시면 태아 되나]

곧 답장이 왔다.

[성호 : 한 모금만 마실게]

[지연 : 제발 그러지 마]

한참 뒤 성호가 집에 돌아왔다.

평소와 똑같았다.

땀 냄새가 났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들어오자마자 냉장고부터 열었다.

(지연) : “물 마셨어?”

(성호) : “뭐?”

(지연) : “청춘샘.”

성호가 생수병을 꺼내며 웃었다.

(성호) : “응. 딱 한 모금.”

(지연) : “유치해.”

(성호) : “내일 스무 살 되면 어쩔래?”

지연은 소파에 누운 채 대답했다.

(지연) : “그러면 당신 회사 대신 학교 보내줄게.”

성호가 웃었다.

그게 그날의 마지막 대화였다.

다음 날 아침.

지연은 이상한 느낌에 눈을 떴다.

평소보다 침대가 좁게 느껴졌다.

옆에서 누군가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성호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눈이 완전히 떠졌다.

지연은 그대로 굳었다.

낯선 남자였다.

아니.

남자라기보다 아직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흐트러져 있었고, 피부는 말도 안 되게 매끈했다.

콧대는 곧았고, 턱선은 얇고 선명했다.

눈을 감고 있어서 더 어려 보였다.

스무 살쯤.

지연은 몇 초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지연) : “꺄아악!”

청년이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청년) : “아, 뭐야!”

지연은 이불을 끌어안고 침대 끝으로 물러났다.

(지연) : “너 누구야!”

청년은 짜증 난 얼굴로 눈을 비볐다.

(청년) : “왜 그래, 여보.”

지연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말투.

짜증날 때 한쪽 눈썹부터 올라가는 표정.

그리고 잠에서 깨면 꼭 목부터 한번 돌리는 버릇.

너무 익숙했다.

지연은 입을 벌린 채 청년을 바라봤다.

청년도 지연의 표정을 보다가 이상한 듯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손등이 매끈했다.

손가락도 가늘었다.

청년의 표정이 서서히 굳었다.

침대 옆 거울로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거울 속에는 지연이 11년 동안 봐온 마흔 살 성호가 없었다.

대신 처음 보는 스무 살 남자가 있었다.

(성호) : “……미친.”

지연도 같은 생각이었다.

남편이 스무 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