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내일 물컵 자리

에피소드 44 / 50

정호의 흉수는 이 주 만에 다시 찼다.

처음에는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만 숨을 골랐지만, 셋째 주에는 침대에서 세면대로 가는 동안에도 한 번 멈췄다. 식사는 죽으로 바꾸어도 삼분의 일쯤 남았다. 산소는 움직인 뒤에만 쓰다가 밤에도 낮은 유량으로 이어졌다.

분자검사에서는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표적치료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 검체 양이 제한돼 확인하지 못한 항목도 있었다. 종양내과 의사는 추가 조직검사를 하면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지만, 현재 체력과 반복되는 흉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진료는 정호가 동의한 뒤 나와 최 목사가 일부 배석했다. 치료 선택 설명은 정호가 먼저 들었고, 그는 같은 내용을 우리 앞에서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조직을 더 떼면 약을 찾을 수도 있습니까?”

정호가 물었다.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만 검사로도 바로 맞는 약을 찾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일반 항암을 하면 얼마나 좋아집니까?”

“종양이 줄거나 진행을 늦출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 체중 감소와 호흡 상태에서는 감염·피로·식욕 저하 같은 부작용이 크게 올 수 있습니다. 정확한 이득을 개인에게 몇 달이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안 하면요?”

“병을 줄이는 치료 없이 증상 완화에 집중합니다. 흉수가 차면 배액하고, 산소·통증·불안·메스꺼움을 조절합니다. 병의 진행을 멈추지는 못합니다.”

정호는 하루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날 밤 그는 내게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도 의견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정호는 추가 침습적 조직검사와 세포독성 항암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흉수 배액과 산소, 통증·호흡 완화 약물은 원했다.

“치료를 포기한다고 적힙니까?”

그가 물었다.

“항종양 치료를 시행하지 않고 증상 중심 치료를 선택한다고 기록합니다.”

“죽고 싶어서 안 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습니다. 설명을 듣고 치료 목표를 선택한 것으로 기록합니다.”

의료진은 정호의 의사결정 능력과 이해를 다시 확인했다. 정호는 항암의 기대효과와 부작용, 검사하지 않을 때 놓칠 수 있는 치료 기회를 자기 말로 설명했다.

흉수를 반복해서 빼기 위해 작은 유치관을 둘지 논의했다. 정호는 매번 바늘로 배액하는 것과 관을 유지하는 방법의 감염 위험, 관리 빈도를 물었다. 숨참이 빨리 돌아오는 상태라 유치관을 두고 필요량만 배액하는 쪽에 동의했다.

“관 때문에 더 오래 병원에 있어야 합니까?”

“초기 상태 확인 뒤 교정병원 완화병상에서 관리할 예정입니다. 안정되면 이동 가능성을 다시 봅니다.”

“의료동으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까?”

“상태와 관리 인력을 보고 결정합니다.”

정호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요구하지 않았다.

유치관을 둔 뒤 사흘 동안은 의료동에서 상태를 지켜봤다. 서진은 드레싱을 갈 때마다 먼저 통증과 자세를 물었고, 정호가 동의한 뒤 삽입 부위의 붉어짐과 배액 상태를 확인했다. 배액량은 의료진이 정한 범위 안에서 조절했고, 숨이 덜 찬다고 한꺼번에 더 빼지는 않았다.

“관 달았으니 물은 계속 빠지는 거 아닙니까?”

정호가 물었다.

“필요할 때 정해진 방법으로 연결해 배액합니다. 계속 열어 두지 않습니다.”

“내가 답답하면 열면 안 되고?”

“직접 연결하거나 잠금장치를 만지면 안 됩니다. 답답한 정도와 통증을 말씀해 주세요. 상태를 확인하고 시행합니다.”

정호는 관을 자기 몸에 달린 수도꼭지처럼 다루지 않았다. 숨이 찰 때 호출하고, 직원이 현재 호흡과 배액 시점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렸다.

첫날 밤에는 오른쪽으로 눕는 자세가 관을 눌러 왼쪽으로 돌아누웠다. 둘째 날에는 왼쪽 어깨가 아파 반쯤 바로 누운 자세를 골랐다. 베개 위치는 매번 달라졌다.

식사는 하루 네 번 소량으로 나눴다. 정호는 단맛이 강한 영양음료를 거부하고 덜 단 제품을 선택했다. 반 병만 마신 날도 있었고 한 병을 다 마신 날도 있었다. 섭취량은 기록됐지만 치료 의지의 점수가 되지 않았다.

“오늘은 세면대까지 걸을래.”

셋째 날 아침 정호가 말했다.

직원은 산소줄과 흉수관 주머니를 정리하고 보행 보조를 제안했다. 정호는 팔을 잡는 것은 싫고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방식에 동의했다. 세 걸음 뒤 숨이 차자 스스로 멈췄다.

“의자 가져오겠습니다.”

“조금 쉬면 돼.”

“기다릴지 의자를 쓸지 말씀해 주세요.”

정호는 십 초쯤 숨을 고른 뒤 의자를 골랐다. 걷겠다고 한 아침의 선택이 끝까지 걸어야 하는 의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정호가 돌아올 때 수건을 건네려 했다.

“필요하면 말할게.”

그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잠시 뒤 정호가 이마의 땀을 가리켰다.

“이제 줘.”

나는 수건을 손에 쥐여 주었다. 얼굴을 닦아 주지 않았다.

완화병상 이동을 기다리는 동안 정호는 하루에 한 번만 최 목사와 전화하기로 했다. 최 목사가 더 자주 통화를 신청할 수 있었지만 정호가 정한 시간이 우선이었다. 통화하지 않는 날에는 의료진이 상태 정보를 대신 보내지 않았다.

“목사님이 섭섭해할 겁니다.”

내가 말했다.

“섭섭한 건 목사 몫이지.”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쉬워 보입니다.”

“쉬워서 정한 게 아니야. 숨차면 통화도 일이다.”

정호는 자기 남은 힘을 누구에게 쓸지 정했다. 나는 그 선택을 마지막 관계 정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별도 면담에서 작성했다. 의사는 심장이 멈추거나 호흡이 회복 불가능하게 악화될 때의 심폐소생술, 삽관과 인공호흡기, 중환자실 이송을 각각 설명했다.

“심장 누르고 전기 쓰는 건 안 하겠습니다.”

정호가 말했다.

“삽관과 인공호흡기도 원하지 않습니까?”

“네.”

“산소, 숨찬 걸 줄이는 약, 통증약, 흉수 배액은요?”

“그건 해 주세요.”

“치료 가능한 감염이 생겼을 때 항생제는 상황마다 다시 설명받겠습니까?”

“의식이 있으면 내가 듣고 정하겠습니다. 말을 못 하면 편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보고 의료진이 계획대로 해 주세요.”

정호는 심폐소생술과 삽관을 원하지 않는 것이 지금 산소와 진통제를 거부하는 뜻이 아니라는 설명을 자기 말로 반복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서명했고 정호가 마지막에 서명했다. 최 목사는 대리 서명자가 아니었다.

개인물품 처리표는 같은 날 저녁에 작성했다.

성경은 최 목사 개인에게 주지 않고 교도소 예배실 공용 선반에 두기로 했다. 안쪽에 끼운 반송 확인서 일곱 장은 따로 빼 폐기 요청했다.

“보관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습니다.”

도윤이 설명했다.

“남기지 마세요. 은희 동생한테 보내지도 말고.”

“폐기는 본인 확인 뒤 진행합니다.”

정호는 확인서 목록을 한 장씩 대조하고 폐기 칸에 표시했다.

영치금 이십만 원은 특정 유족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일반 피해지원기금에 기부하기로 했다. 예전에 최 목사가 설명했던 방식이었다.

“은희 이름이나 동생 이름은 어디에도 넣지 마십시오.”

“일반 기부로만 처리합니다.”

“내가 죽은 뒤 미담으로 교회 소식지에 싣는 것도 싫습니다.”

최 목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동의 범위 밖에서는 알리지 않겠습니다.”

정호는 옷과 세면도구는 규정에 따라 폐기하거나 재사용 가능한 품목만 기관에 돌리도록 했다. 내게 주는 물건은 없었다.

“섭섭하냐?”

그가 물었다.

“조금은요.”

“네가 받으면 또 뜻 만들잖아.”

“형도 지금 뜻을 만든 것 아닙니까?”

“내 물건 어디 둘지 정한 거야. 네가 무슨 뜻으로 기억할지는 내가 못 정하고.”

나는 그 말을 마지막 가르침으로 적지 않았다.

같은 주 수진 측 대리인에게서 공개 뒤 취재 기록이 왔다. 기자 한 명이 수진의 직장 대표번호로 연락했고, 다른 한 명은 유리의 학교 행정실에 재학 여부를 물었다. 두 곳 모두 대리인 창구로 안내하거나 답하지 않았다.

회신 끝에는 수진의 요청이 적혀 있었다.

`유리는 공개문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현재 한재호 씨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설명을 받을 의사가 없습니다. 이 의사를 재확인하기 위한 연락도 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첫 번째는 뜻을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다른 뜻이 없는지 찾으려는 습관 때문이었다.

현재 연락 의사가 없다는 말은 지금의 경계였다. 마지막 기회 전에 잠시 닫힌 문도, 영원한 형벌도 아니었다. 나는 회신하지 않았다.

정호가 완화병상으로 옮기는 날, 직원 둘이 이동용 침대를 준비했다. 산소통과 흉수관 배액 장치, 의료기록이 먼저 확인됐다. 정호는 침대 머리 각도를 조금 낮춰 달라고 했다가 숨이 차 다시 올려 달라고 했다.

“최 목사에게 오늘 이동한다고 알릴까요?”

서진이 물었다.

“병원 도착한 뒤 한 번만.”

“한재호 씨에게 상태를 알려도 됩니까?”

“내가 말할 수 있을 때는 내가 전화할게요. 급한 변화는 의료진이 정한 범위로.”

정호는 나를 보았다.

“무슨 말 해야 할지 생각하지 마.”

“안 했습니다.”

“거짓말.”

그는 잠깐 웃다가 기침했다.

나는 손을 잡아도 되는지 물었다. 정호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병원 직원한테 말해 줘. 물컵은 오른손 앞에, 호출벨은 왼손 가까이 두라고.”

“직접 말하면 되잖습니까.”

“도착하면 정신없을 수 있으니까 인계에도 넣어 달라고 해.”

서진이 이미 인계서에 적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됐네.”

정호는 눈을 감았다.

이동용 침대가 철문을 지나갈 때 그는 다시 눈을 뜨지 않았다. 잠든 것인지 피곤해서 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게 남긴 말은 용서나 믿음이 아니었다.

내일 물컵과 호출벨이 놓일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