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3 / 50
결과가 나오는 날 정호는 나를 공용공간으로 내보냈다.
오후 두 시 원격 진료 화면이 켜지기 전이었다. 윤서진이 다시 배석 범위를 물었고 정호는 의료진과 자기만 먼저 듣겠다고 했다.
“끝나면 내가 부를게.”
나는 휠체어를 돌렸다. 문이 닫히지는 않았지만 가림막이 펼쳐졌고, 화면 소리는 이어폰으로 바뀌었다.
공용공간의 시계가 이십 분을 지났다. 나는 정호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결과를 먼저 듣겠다는 선택에는 내가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포함돼 있었다.
서진이 가림막을 걷은 것은 삼십오 분 뒤였다. 정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진료 요약지를 접고 있었다.
“들어와.”
그가 말했다.
나는 침대에서 한 바퀴 떨어진 곳에 멈췄다.
“암이래.”
정호가 먼저 말했다.
“흉수에서 폐선암에 맞는 세포가 나왔고, 물이 찬 데까지 퍼진 걸로 보면 진행된 거라고 했어.”
나는 `얼마나 남았답니까`라는 질문을 삼켰다.
“다음 검사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물에서 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먼저 하기로 했어. 약이 맞는 변이가 있으면 먹는 약을 쓸 수도 있대.”
“조직검사는요?”
“검체가 부족하거나 결과가 안 나오면 다시 생각할 거야. 지금 당장 폐를 찌르는 건 안 하겠다고 했어.”
정호는 진료 요약지를 내게 주지 않았다. 내가 읽게 해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완치할 수 있답니까?”
“완치라는 말은 안 했어. 줄이거나 늦출 수 있는 치료가 있는지 보는 거래.”
“치료 안 하면요?”
“물이 다시 차고 숨이 더 찰 수 있대. 얼마나 빠른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정호는 의사에게 남은 기간을 물었다고 했다. 의사는 현재 영상과 세포검사만으로 몇 달이라고 단정하지 않았고, 전신 상태와 분자검사 결과, 흉수가 다시 차는 속도를 봐야 한다고 답했다.
“그래도 대충은 말했을 것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
“내가 들은 만큼만 말할게.”
정호가 대답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서진은 정호가 공유하기로 한 범위 안에서 오늘 관리 계획을 설명했다. 흉수가 다시 차는 속도를 보기 위해 숨참과 식사량, 체중 변화를 확인하되, 암 진단을 이유로 모든 동작을 대신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화장실은 걸어가도 됩니까?”
정호가 물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가까운 거리는 가능하지만 혼자 문을 잠그지 말고, 숨이 차면 중간에 앉으세요. 이동용 의자를 먼저 준비해 둘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의자 타면요?”
“그것도 선택입니다.”
정호는 점심 전까지는 걸어가고 저녁에는 상태를 보고 정하겠다고 했다. 진단명이 그의 모든 선택을 한꺼번에 빼앗지는 않았다.
식사는 부드러운 반찬과 죽으로 조정됐다. 정호는 냄새가 강한 국을 치워 달라고 했고, 서진은 영양 담당에게 선호와 섭취량을 전달했다. 내가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라고 말하려 하자 정호가 먼저 손을 들었다.
“몇 숟갈 먹을지는 내가 말할게.”
“알겠습니다.”
그는 천천히 여섯 숟갈을 먹었다. 내가 세지 않으려고 해도 숫자는 보였다. 그러나 여섯을 성공이나 포기로 부르지 않았다.
“암이라고 들으니 갑자기 더 아픈 것 같아.”
정호가 말했다.
“실제로 더 아픈 겁니까?”
“모르겠어. 어제도 있던 통증인데 이름이 붙으니까 다 거기로 가는 것 같아.”
서진은 새 통증인지 기존 관절통인지, 위치와 양상이 다른지 질문했다. 정호는 오른쪽 등 시술 부위 당김과 무릎 관절통을 구분해 말했다. 모든 통증을 암으로 묶지 않았다.
“결과 듣기 전에 최 목사한테 같이 들어 달라고 할 수도 있었잖습니까.”
내가 말했다.
“혼자 듣겠다고 한 걸 후회하냐는 거야?”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서웠지만 내가 먼저 듣고 싶었어. 그걸 사과할 생각은 없어.”
“저한테도요?”
“너한테 왜 사과해. 내 병인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결과를 함께 들을 권리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죽는 게 무섭습니까?”
이번 질문은 멈추지 못했다.
정호는 물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아까 남은 기간 묻지 말더니 다른 길로 묻네.”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을 붙이면 질문 안 한 게 되냐?”
나는 사과했다.
정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무서워. 그런데 오늘은 그 얘기 그만하자.”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의 두려움은 내가 받아 적어야 할 마지막 고백이 아니었다.
그날 오전 열 시에는 실명 정정 결정문도 공개됐다. 기관 홈페이지에 내 이름과 당시 직책, 최종 승인과 보고 정리 지시가 적혔다. 회사의 일정 압박과 보고체계 문제, 김도현의 보류 의견도 별도 항목에 남았다.
첫 기사 제목은 `현장 총괄, 기준 초과 알고도 승인`이었다. 회사는 공개범위 결정에 유감을 표하고 개인 진술이 조직 전체 책임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냈다.
수진 측 대리인은 결정문 링크를 수령했다고만 회신했다.
`학교·직장 직접 접촉 시 법률대리인 창구로 안내하겠습니다.`
유리가 읽었는지, 수진이 어떤 설명을 했는지는 없었다. 나는 그 빈칸을 진단 결과 기다리듯 바라보지 않았다.
정호의 암과 내 이름 공개는 같은 날 확인됐지만 서로의 의미가 되지 않았다. 내가 공개로 무엇을 잃든 정호의 병이 나아지지 않았고, 정호가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고 내 기록이 더 정직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저녁에 최 목사가 왔다. 정호가 한 차례 방문을 요청한 뒤였다. 면담 장소는 종교상담실이 아니라 의료동 소접견실로 정해졌다. 정호는 걸어서 가지 않고 이동용 휠체어를 탔다.
“같이 갈래?”
그가 내게 물었다.
“형이 원하면요.”
“처음 십 분만. 그다음은 나 혼자.”
최 목사는 정호의 손을 잡지 않고 맞은편에 앉았다.
“검사 결과를 들으셨다고요.”
“폐암이랍니다.”
정호가 말했다.
“기도하겠습니다.”
“그건 목사님이 알아서 하시고, 부탁 하나 있습니다.”
최 목사는 기다렸다.
“은희 동생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내가 아프다고, 만나 달라고, 마지막이라고 어떤 말도 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교회 사람들한테 병명 돌리는 것도 싫습니다. 필요한 의료 연락만 받으세요.”
“어디까지 알려도 되는지 정해 주십시오.”
“폐암 진단, 치료 선택 중. 그 정도.”
최 목사는 메모했다. 정호의 병을 회개나 마지막 기회로 해석하지 않았다.
“두 분만 말씀하세요.”
나는 십 분이 되기 전에 나왔다.
정호가 돌아왔을 때 눈이 붉어져 있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최 목사도 내게 알려 주지 않았다.
그날 밤 정호는 성경을 펼쳤다가 두 쪽을 읽지 못하고 덮었다. 글자가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읽어 줄까요?”
내가 물었다.
“오늘은 싫어.”
“기도는요?”
“네가 왜 자꾸 프로그램 짜.”
그가 짜증을 냈다.
나는 성경을 베개 옆에 놓아 주지 않았다. 정호가 손 닿는 탁자 위에 직접 두었다.
잠들기 전 그는 자신의 영치품 목록을 요청했다. 성경, 반송 확인서 일곱 장, 편지 몇 통, 옷가지가 적혀 있었다.
“벌써 정리하려고요?”
“뭐가 있는지 보려는 거야.”
“최 목사에게 줄 겁니까?”
“아직 정하지 않았어.”
“반송 확인서는요?”
정호가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말할 때까지 묻지 마.”
나는 목록을 돌려주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물건의 의미를 빨리 정하게 하는 것도 내 기다림을 줄이는 일이었다.
밤중에 정호는 숨이 차 호출벨을 눌렀다. 산소포화도는 낮아졌지만 산소 치료를 즉시 시작할 수준과 지속 여부는 의사가 평가해야 했다. 은경은 침대 머리를 올리고 호흡을 확인한 뒤 당직의에게 보고했다. 잠시 쉬자 수치가 회복됐고, 다음 날 영상과 흉수 재평가를 앞당기기로 했다.
“다시 물을 빼야 합니까?”
정호가 물었다.
“영상과 증상을 보고 결정합니다. 반복 배액이나 관 삽입은 각각 설명과 동의가 필요합니다.”
정호는 그 설명을 기록해 달라고 했다. 아침에 기억이 흐릴까 봐서였다.
다음 날 종양내과 진료 계획을 정하는 면담이 열렸다. 정호는 흉수 검체를 이용한 분자검사와 증상완화 진료에 동의했다. 숨참이 다시 심해지면 배액을 반복하거나 관을 두는 방법을 그때 설명받기로 했다.
“항암은 안 합니까?”
내가 묻자 정호가 먼저 답했다.
“검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뭘 해.”
의사는 치료 여부를 지금 확정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고 했다. 분자검사에 맞는 약이 없으면 조직검사로 정보를 더 얻을지, 전신 항암을 시도할지, 증상 중심 치료를 할지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정호는 교정병원 종양내과 진료와 필요 시 단기 입원에 동의했다. 의료 연락 대상에는 최 목사 이름만 남겼다. 연락 범위는 정호가 의사표현을 못 하는 응급 상황과 본인이 요청한 경우로 제한했다.
은희 동생 칸은 비어 있었다.
“빈칸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그대로 두세요.”
정호가 대답했다.
그는 자기 이름 아래에 서명했다.
서명 뒤 정호는 연명의료에 관한 질문을 꺼냈다.
“지금 당장 심폐소생술 같은 걸 정해야 합니까?”
의료동 의사는 현재 의사결정 능력이 있고 응급 상태는 아니므로, 종양내과에서 치료 목표와 예상 경과를 더 들은 뒤 사전의향과 의료계획을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 치료를 받는 것과 마지막에 기계 달지 않는 건 따로 정하는 겁니까?”
“네. 항암 여부, 흉수 처치, 통증·호흡 완화, 응급 처치 범위는 각각 구분해서 설명하고 결정합니다.”
“한 번 정하면 못 바꿉니까?”
“의사표현이 가능할 때는 상황과 의사를 다시 확인합니다.”
정호는 오늘 연명의료 문서에는 서명하지 않았다. 진료 뒤 다시 묻겠다고 했다. 결정을 미루는 것도 설명을 들은 뒤 선택한 일이었다.
진료일은 일주일 뒤였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치료를 포기한 것도, 기적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