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1 / 50
수진 측 회신은 공개를 막아 달라는 내용이 아니었다.
`실명 정정 결정의 예정 공개일과 담당기관 언론 창구를 확정되는 즉시 대리인에게 통지해 주십시오. 김수진 씨의 직장과 한유리 양의 학교·개인 연락처로 직접 연락하거나 의견을 구하지 마십시오. 가족관계에 관한 취재에는 응답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마지막에는 `본 회신에 대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도 설명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공개는 회사 책임을 줄이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록에서 빠진 제 승인 사실을 바로잡기 위한 것입니다.`
첫 문장 뒤에는 `수진과 유리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가 없었습니다`라고 썼다. 의도가 없다는 말은 앞으로 생길 취재와 검색을 줄이지 못했다.
`이해를 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장도 결국 이해할지 말지를 생각하게 했다.
나는 세 문장을 모두 지웠다. 회신서에는 공개일 미정, 담당기관 공식 창구 번호, 확정 즉시 대리인 통지라는 실무 정보만 적었다. 유리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수진에게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서준호에게 회신을 맡긴 뒤에도 내 선택 때문에 그들이 다시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남았다. 수진은 직장에 취재 전화가 올 경우를 생각해야 했고, 유리의 학교는 이름을 확인하려는 사람을 막아야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진실을 공개하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한 공개의 비용이 그들의 일정에도 들어간 것이었다.
오후에 서준호가 수진 측 대리인과 통화한 결과를 알려 주었다. 수진은 회사나 기자에게 전달할 입장문을 만들지 않겠다고 했다. 학교에는 사건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외부인의 학생 정보 문의에 응하지 말아 달라는 일반 요청만 해 둘 예정이었다.
“유리에게는 공개 전에 알립니까?”
내가 물었다.
“수진 씨가 시기와 방식을 정합니다.”
“제가 쓴 사실확인서를 보여 주지는 않습니까?”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로 먼저 보면—”
“그 가능성을 포함해 수진 씨가 결정합니다. 한재호 씨에게 설명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유리가 내 문장을 다른 사람의 기사에서 먼저 보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직접 보내면 사실을 정확히 알릴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연락하지 말라는 경계보다 내 설명 순서를 앞세우는 일이었다.
“공개 결정문 링크만 대리인에게 보내십시오. 제 별도 설명은 넣지 말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준호는 내 말에서 변화의 의미를 찾지 않았다. 통지 방식만 기록했다.
그날 아침 정호는 체중계 위에 섰다.
윤서진이 손잡이를 잡아도 되는지 먼저 물었고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양말만 신은 채 천천히 올라갔다. 숫자가 고정될 때까지 난간을 잡고 있었다.
“지난달보다 삼 점 일 킬로그램 줄었습니다.”
서진이 말했다.
“여름이라 입맛 없어서 그렇지.”
“사흘만 덜 드셔서 빠진 양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 전부터 식사량이 줄었습니까?”
정호는 대답을 미뤘다.
“한두 주 됐나.”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배고프면 먹었으니까.”
서진은 그를 꾸짖지 않았다. 최근 식사 기록을 확인하고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를 다시 쟀다. 산소포화도는 전날과 비슷하게 평소보다 낮았고, 방 안에서 세면대까지 걸은 뒤에는 숨을 고르는 시간이 길었다.
혈액검사는 오전 투약 뒤 진행됐다. 정호는 어느 팔에서 채혈할지 직접 골랐다. 오른팔 관절이 더 아파 왼팔을 내밀었다. 검사자는 이름과 생년을 확인하고 채혈 목적을 설명했다.
“빈혈, 염증, 간·신장 기능과 전해질을 봅니다.”
“피 뽑으면 더 빈혈 오는 거 아냐?”
정호가 물었다.
“필요한 양만 채혈합니다. 어지러우면 바로 말씀하세요.”
정호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바늘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흉부 촬영은 오후에 잡혔다. 정호는 촬영실까지 걸어가겠다고 했지만 서진은 보행 뒤 숨참 기록을 근거로 이동용 휠체어를 제안했다.
“걸을 수 있어.”
정호가 말했다.
“걸을 수 있는 것과 검사 전에 힘을 다 쓰는 건 다릅니다. 걸어갈지 휠체어를 탈지 선택하되, 중간에 숨이 차면 바로 멈춰야 합니다.”
정호는 휠체어를 택했다. 내가 쓰는 것과 달리 발판이 짧은 이동용 의자였다. 그는 앉자마자 손잡이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미는 건 아니지?”
그가 내게 물었다.
“직원이 밀 겁니다.”
“다행이네. 네 어깨로 나까지 밀면 둘 다 검사받아야겠다.”
정호는 웃었지만 끝에 짧은 기침을 했다.
나는 검사실에 따라가지 않았다. 그의 숨참을 내가 설명해 주겠다고 나서는 대신, 서진이 작성한 기록과 정호의 대답이 함께 갔다.
저녁 전에 혈액검사 일부 결과가 나왔다. 빈혈과 염증 수치 상승이 있었고, 단순히 식사량 감소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흉부 영상에는 오른쪽 아래쪽에 액체가 찬 것으로 보이는 음영과 그 뒤 가려진 부위가 있었다.
의료동 의사는 침대 옆에서 결과를 설명했다.
“오른쪽 가슴막 쪽에 물이 찬 것으로 보입니다. 폐렴, 심장 문제, 다른 폐 질환 등 원인이 여러 가지라 이 사진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교정병원에서 흉부 CT와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
“암입니까?”
정호가 바로 물었다.
“가능성 목록에 포함될 수 있지만 지금 암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죽을병일 수도 있다는 거네.”
“검사 전에 결론 내리지 않겠습니다. 현재 숨참이 심해지거나 통증이 생기면 예약일 전이라도 진료를 앞당깁니다.”
의사는 다음 날 교정병원 진료 의뢰를 넣겠다고 했다. 정호는 검사 동의 범위와 결과를 누가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의료진과 필요한 교정 직원이 봅니다. 가족이나 외부인에게 알리는 것은 별도 동의와 규정을 확인합니다.”
“알릴 가족 없습니다.”
“비상연락 대상이 등록돼 있는지 확인만 하겠습니다. 지금 누군가에게 연락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호의 비상연락칸에는 오래전에 적은 교회 목사 이름이 있었고, 은희의 동생은 없었다. 정호는 최 목사를 의료 연락 대상으로 유지할지 하루 생각하겠다고 했다.
“은희 동생한테는 연락하지 마십시오.”
그가 먼저 말했다.
“병든 걸로 또 문 두드리는 일은 안 할 겁니다.”
의사는 그 의사를 기록했다. 정호가 아프다는 사실은 수취 거절을 넘어갈 새 이유가 되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죽으로 바뀌었다. 정호는 절반보다 조금 적게 먹었다. 나는 몇 숟갈 먹었는지 세다가 멈췄다.
“더 먹을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지금은 이만큼.”
“물은요?”
“조금 있다.”
나는 숟가락을 들거나 그릇을 밀지 않았다. 서진은 섭취량을 확인하고 정호에게 원하는 음료 온도를 물었다. 정호는 미지근한 물을 골랐다.
밤에는 산소포화도와 호흡 상태를 정해진 간격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정호는 잠을 자꾸 깨우는 것이 싫다고 했지만, 숨참이 변하면 확인 간격을 조정한다는 설명을 듣고 동의했다.
조은경은 첫 야간 확인 때 침대 머리 쪽을 조금 올릴지 물었다. 정호는 바로 누우면 답답하지만 너무 세우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은경은 각도를 한 번에 정하지 않고 조금씩 올려 숨쉬기와 허리 통증을 물었다.
“여기면 돼요.”
정호가 손을 들어 멈추게 했다.
은경은 그 각도와 산소포화도, 기침 횟수, 가슴 통증 없음, 미지근한 물 섭취량을 기록했다.
“최 목사에게 검사 날짜를 알려 드릴까요?”
그가 비상연락 기록을 확인하며 물었다.
“아직은 말하지 마세요.”
“검사 결과가 나온 뒤 결정하시겠습니까?”
“그때 내가 말할 수 있으면 내가 정할게요.”
“그 의사를 인계하겠습니다. 응급 상황에서 의사표현이 어려우면 등록된 연락 기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호는 비상연락인을 지우지는 않았다. 알리는 시점만 자신이 결정하고 싶다고 했다.
새벽 두 번째 확인 때 산소포화도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지만 정호는 화장실에 다녀온 뒤 숨을 고르는 데 전보다 오래 걸렸다. 그는 이동 도움은 거절하고 문밖에서 직원이 기다리는 것에는 동의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멈췄다. 내 오른쪽 어깨로 그를 붙잡을 수도 없었고, 정호는 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은경이 보행 속도를 맞추고 돌아오는 길에 의자를 준비했다.
정호는 의자를 쓰지 않고 침대까지 돌아왔다. 그 선택이 다음번에도 걸어야 한다는 약속은 아니었다.
아침에 그는 밤새 확인 때문에 못 잤다고 불평했다. 서진은 수면 방해와 호흡 관찰 필요를 함께 기록하고 낮 시간 휴식 계획을 물었다. 정호는 오전 종교상담을 취소하고 검사 전까지 쉬겠다고 했다.
“목사한테 아픈 티 내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가 먼저 말했다.
“취소 사유는 건강 상태와 휴식 필요로만 전달합니다.”
서진이 답했다.
“기도하면 물이 빠진다는 말은 안 하네.”
불을 끄기 전 정호가 말했다.
“누가요?”
“나도 이제 그런 말은 못 하겠어.”
그는 성경을 펴지 않고 베개 옆에 두었다.
“겁납니까?”
“검사하기 싫지.”
“그것만 물은 게 아닙니다.”
“오늘은 그것만 대답할래.”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두 장의 일정표가 도착했다.
수진 측 대리인에게 보낼 실명 공개 예정일 통지는 `최종 결정 뒤 즉시`로 대기 상태였다.
정호의 교정병원 흉부 CT와 호흡기 진료는 나흘 뒤 오전 아홉 시로 예약됐다.
한 장은 가족이 취재를 피하기 위해 알아야 할 날짜였고, 다른 한 장은 정호가 자기 몸의 원인을 확인하러 갈 날짜였다.
두 일정은 같은 집게판에 꽂혔지만 서로를 설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