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40 / 50
나는 두 번째 칸에 표시했다.
`개인 사실확인 진술 제출 및 공개 동의. 한재호.`
회사 공동 정정문 참여 칸은 비워 두었다. 표시를 한 뒤에도 서명은 하지 않았다. 기한 당일 오후 네 시 십 분, 법률 접견실이었다.
서준호는 선택서를 내 쪽으로 돌려 최종 진술과 한 줄씩 대조했다.
“최초 기준 초과값과 작업 보류 의견을 인지했다.”
“맞습니다.”
“집중작업 시행을 최종 승인했다.”
“맞습니다.”
“재측정값 기준으로 보고를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맞습니다.”
“사고보고서에서 작업범위를 축소하는 문구 변경에 동의했다.”
나는 `작업구역`을 `증축구역`으로 바꾸었던 문장을 떠올렸다. 긴 회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변경 이력에 내 확인이 남아 있었다.
“맞습니다.”
서준호는 다음 항목을 읽었다.
“회사의 준공 일정 압박과 반송 비용, 보고체계 한계가 현장 판단에 영향을 주었다. 김도현의 보류 의견이 있었고 다른 부서는 재측정값과 보강 상태를 근거로 진행 가능 의견을 냈다.”
“그 내용도 남습니까?”
“개인 진술의 별도 사실 항목과 정정 결정 본문에 남습니다.”
“제가 공개를 선택하면 회사가 그 부분을 빼 달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확인 자료가 있는 사실을 최종 결정 기관이 판단합니다.”
공동문은 거짓이 아니었다. 조직의 압박과 보고체계 문제를 공개했고, 개인 이름을 보호 절차 안에 두었다. 내가 그 문서를 선택한다고 회사가 무죄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개인 진술을 공개하면 반대로 회사는 내 이름을 앞세울 수 있었다. `현장 총괄의 독단적 승인`이라는 문장이 회사 의견서에 생길 수도 있었다. 내 이름이 정확히 남는 것과 모든 사람이 책임을 정확히 나누어 읽는 것은 달랐다.
“공개되면 가족에게도 연락이 갈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언론이 다시 보도하면 전 배우자나 자녀에게 취재가 갈 가능성은 있습니다.”
“공개 전에 수진에게 알려야 합니까?”
“이혼조정 대리인을 통해 공개 예정 사실과 예상 시기만 통지할 수 있습니다. 의견이나 동의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요.”
“반대하면요?”
“한재호 씨 사실 진술 공개를 법적으로 대신 결정할 권한은 없습니다. 다만 가족에게 생길 노출 위험은 별도 문제입니다.”
유리는 내 설명을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실명을 공개하면 사람들은 다시 그의 학교와 수진의 직장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비용을 알고도 공개하는 일이 가족에게 책임을 지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미리 알리는 것도 연락 아닙니까?”
“유리에게 직접 보내지 않습니다. 수진 씨 측 대리인에게 실무 통지만 하고, 답변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 선택을 이해해 달라는 말은 넣지 마십시오.”
“공개 예정 사실, 예상 시기, 취재 대응 창구만 전달하겠습니다.”
나는 별도 통지 동의서에도 서명했다. 수진이 그 통지를 고맙게 여길지, 또 다른 침입으로 볼지 알 수 없었다. 공개 선택의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일상에 생길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공동문을 선택하면 그 위험은 작아질 수 있었다. 개인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사건 보도 자체가 다시 시작되면 가족이 연결될 가능성은 남았다. 더 작은 위험과 없는 위험은 달랐다.
“아직 공동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어느 쪽을 권합니까?”
“법률 위험만 보면 익명 공동문이 노출 범위가 작습니다. 기록 정정 목적에서 어느 사실을 실명으로 남길지는 의뢰인이 결정해야 합니다.”
“개인 진술을 선택하는 게 더 책임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평가를 제가 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는 펜을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선택서에 서명했다. 한재호 세 글자가 인쇄된 이름 아래에 같은 이름을 다시 썼다. 공개 범위 확인서와 철회 제한 안내에도 각각 서명했다.
사과문은 제출 묶음에 없었다. 장애와 수감생활, 여섯 해의 후회도 없었다. 내 승인과 보고 문구 관여, 회사 압박과 보고체계 사실만 있었다.
서준호가 시각을 적었다.
`16:32.`
“지금 바로 전자 제출합니다. 접수 전에 마지막으로 확인하겠습니다. 개인 사실확인 진술과 실명 공개에 동의합니까?”
“동의합니다.”
“공개 결정문 편입 뒤에는 사실 오류 정정 외 단순 변심으로 철회하기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습니까?”
“들었습니다.”
그는 문서를 스캔해 전자 접수 화면에 올렸다. 파일명이 화면에 나타났다.
`서부물류센터_사고기록정정_한재호_사실확인.pdf`
전송 버튼을 누른 것은 서준호였지만, 그 전에 동의하고 서명한 것은 나였다. 접수 번호가 생성된 시각은 오후 네 시 삼십칠 분이었다.
`접수 완료. 관계 당사자 통지 절차 개시.`
나는 화면을 보며 물었다.
“지금 철회하면 어떻게 됩니까?”
서준호가 시계를 확인했다.
“접수기관과 회사 측 대리인에게 자동 통지가 발송됐습니다. 철회 요청은 낼 수 있지만 효력이 자동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이미 받은 진술과 동의 기록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결정문은 아직 안 나왔잖습니까.”
“공개 결정 전 문구 수정은 사실 오류가 있을 때 협의할 수 있습니다. 선택이 두려워졌다는 이유로 접수 사실까지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제 이름을 빼는 건요?”
“공개 동의를 철회하는 별도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상대방 이의와 절차 진행 상태를 검토합니다. 지금 즉시 보장할 수 없습니다.”
나는 철회 신청서를 달라고 말할 뻔했다. 서명한 지 오 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회사가 어떤 문장을 낼지, 심사가 얼마나 늦어질지 아직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았다.
“신청하시겠습니까?”
서준호가 물었다.
“아니요.”
그 대답이 처음 서명보다 더 좋은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생긴 비용이 무서워졌고, 그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은 채 철회를 신청하지 않았다.
접견이 끝나기 전 첫 통지가 왔다. 회사 측 대리인이 개인 진술의 실명 공개와 일부 내부 메일 인용에 이의를 제기했고, 추가 법률 검토 기간을 요청했다.
“이의가 들어오면 공개가 안 될 수도 있습니까?”
“최종 기관이 범위를 판단합니다. 다만 제출 사실과 진술 원문은 절차 기록에 남습니다.”
“회사가 저를 상대로 대응한다는 뜻입니까?”
“현재는 공개 범위 이의입니다. 별도 청구 여부는 아직 모릅니다.”
오후 다섯 시가 되기 전 서준호는 회사 이의에 대한 답변 기한을 달력에 적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확인된 근거를 제출하는 일이었고, 회사가 어떤 대응을 할지는 아니었다.
의료동으로 돌아온 뒤 서기현의 통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신규 실명 사실확인 진술 제출에 따라 기존 가석방 보완자료와의 일치 여부 재검토. 현재 추천 일정 보류.`
보류는 가능성이 아니라 결정이었다. 다음 검토 날짜는 적혀 있지 않았다.
“개인 공개를 선택한 것이 책임 인정 아닙니까?”
내가 서기현에게 물었다.
“평가 전에 기존 진술과 새 문서가 같은 사실을 말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일정이 밀립니까?”
“네.”
“얼마나요?”
“회사 이의와 공개 범위 검토가 끝나기 전에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공개 동의를 철회하면 다시 진행됩니까?”
“철회 여부와 별개로 새 진술 제출 사실은 검토 대상입니다.”
내가 손해를 감수했다는 문장은 기록되지 않았다. `현재 추천 일정 보류`만 남았다.
정호는 저녁 식판 앞에서 숟가락을 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내 통지서를 접느라 처음에는 보지 못했다.
“안 먹습니까?”
“입맛이 없네.”
“약 먹어야 하잖습니까.”
“조금 있다 먹지.”
그는 국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오래 씹을 것도 없는데 삼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속이 불편합니까?”
“그냥 피곤해.”
지난 며칠 동안 정호는 아침밥도 절반쯤 남겼다. 새 집게를 받으러 물품함까지 갔다 온 뒤에는 침대에 오래 누워 있었다. 관절통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날은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든 채 손목을 탁자에 기대고 있었다.
“윤 간호사에게 말하겠습니다.”
“밥 좀 덜 먹는 걸 뭘.”
나는 정호 대신 괜찮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호출벨을 눌렀다.
윤서진이 들어와 식사량과 피로가 언제부터였는지 정호에게 직접 물었다. 정호는 사흘쯤 됐다고 답했다. 서진은 활력징후를 확인하고 통증, 숨참, 메스꺼움, 배변 상태를 차례로 물었다.
“숨은 조금 차. 걸으면.”
“언제부터요?”
“며칠 됐나.”
서진은 저녁 약을 바로 주지 않고 의사 보고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호는 귀찮다는 듯 눈을 감았다.
“최근 체중은 언제 쟀습니까?”
서진이 기록을 확인했다.
“지난주에요.”
정호가 말했다.
“그때보다 식사량이 줄었으면 내일 아침 다시 측정하겠습니다. 지금은 산소포화도와 호흡음도 볼게요.”
정호는 손가락 측정기를 끼우는 데 동의했다. 수치는 당장 응급 처치를 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 기록보다 조금 낮았다. 서진은 깊게 숨을 쉬게 한 뒤 등에 청진기를 댔다.
“오늘 밤 숨이 더 차거나 가슴 통증, 식은땀이 있으면 바로 호출하세요.”
“잠들면 모르지.”
“야간 순회에도 확인하고, 지금 말씀하신 증상은 인계하겠습니다.”
“내일 보면 되잖아.”
“오늘 확인한 변화는 오늘 기록합니다.”
서진은 당직 의사에게 보고한 뒤 혈액검사와 흉부 확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정호는 밥을 두 숟갈 더 먹었지만 식판의 절반은 그대로 남았다. 약은 의사 지시에 따라 위장 상태를 확인한 뒤 복용했다.
아직 급한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다. 그는 말했고, 서진은 기록했다.
공개 동의서의 내 이름은 이미 접수돼 있었다.
정호의 식판에는 밥이 절반 넘게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