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7 / 50
자료 수령 확인서는 사과문을 쓴 다음 날 도착했다.
제목은 `사건 관련자료 제공 일정 및 보호절차 확인`이었다. 박미영 측 대리인이 자료 목록과 예상 제공일을 확인했다는 표시가 있었고, 추가 요청란에는 `현재 별도 의견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여섯 글자를 세 번 읽었다.
별도 의견이 없다는 것이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다는 뜻인지, 지금 자료만 기다리겠다는 뜻인지, 내게 할 말이 없다는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의미가 가장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확인서 어디에도 내 사과문은 언급되지 않았다. 상대는 내가 그것을 쓴 사실을 몰랐다. 그런데 나는 `별도 의견 없음`이 초안에 대한 대답일 수도 있는 것처럼 읽고 있었다.
나는 서준호에게 법률 전화 신청서를 쓰기 시작했다.
`피해자 측에 당사자 의견서 또는 사과문을 받아 볼 의사가 있는지 확인 요청.`
문장 끝에 `한 차례에 한함`을 덧붙였다. 한 번만 묻는다면 경계를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회복적 프로그램 신청 때도 나는 자료만 원하는지 한 차례 확인해 달라고 했었다. 거부하거나 답하지 않으면 다시 연락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 절차는 불성립됐고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질문은 이름만 달랐다. 자료 대신 사과문을 받을지 묻는 것이었다. 상대가 대답하지 않으면 나는 또 침묵을 받게 되고, 대답하면 받거나 거절하는 일을 해야 했다.
나는 신청서를 접지 않고 탁자 위에 두었다.
첫 문장을 지우고 더 짧게 써 보았다.
`사과문 수령 의사 확인.`
질문표가 없으면 요구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확인이라는 말 안에는 예와 아니오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이 들어 있었다.
`원하지 않으면 답변하지 않아도 됨.`
그 문장을 붙였다. 무응답이 허용된다고 쓰면 부담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는 연락을 받은 순간 왜 지금 사과문을 만들었는지, 읽지 않으면 무엇을 놓치는지 생각할 수 있었다.
`자료 제공 절차와 무관함.`
이 문장도 붙였다. 자료와 분리한다고 선언하는 사람이 나일 뿐, 같은 대리인을 통해 같은 사건 이름으로 도착하면 상대가 분리해 읽어야 했다.
`가석방 또는 재판 자료로 사용하지 않음.`
그 약속까지 쓰자 문의서는 더 길어졌다. 사과문을 보내기 전에 내가 좋은 목적을 가졌다는 설명을 먼저 읽어 달라는 글이 됐다.
나는 네 문장에 각각 줄을 그었다. 마지막에는 처음과 같은 질문만 남았다. 받아 볼 의사가 있는지 묻는 일은 아무리 짧게 써도 의사를 표시해 달라는 요구였다.
정호가 새 집게로 바닥의 수건을 집어 올리다 확인서를 보았다.
“뭐가 왔어?”
“자료 일정은 확인했답니다.”
“그럼 됐네.”
“별도 의견이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의견 없다는 게 의견 없는 거지.”
“거절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정호는 수건을 접었다.
“아무 말도 안 한 걸 왜 네가 대신 말해.”
그의 말이 맞는 것처럼 들려 더 화가 났다.
“형은 반송 확인서 일곱 장을 보관하면서도 계속 돈을 보냈잖습니까.”
정호의 손이 멈췄다.
“그래.”
“수취 거절도 침묵이라고 생각했습니까?”
“아니. 거절이었지.”
“그런데 왜 계속 보냈습니까?”
“내가 거절을 내 벌로 바꿔서 썼으니까.”
정호는 접은 수건을 침대 끝에 놓았다.
“돌아올 때마다 내가 아직 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사람이 우체국에서 또 이름 보고 돌려보내야 하는 건 생각 안 하고.”
“지금은 안 보내잖습니까.”
“안 보내는 게 무슨 뜻인지도 자꾸 만들고 싶지. 기다리는 거라고, 포기한 거라고. 그냥 안 보내고 있는 건데.”
정호는 성경을 열지 않았다. 자기 경험을 계시처럼 말하지도 않았다.
“내 경우하고 네 경우는 달라.”
그가 덧붙였다.
“그러니까 내가 답을 아는 건 아니야.”
나는 전화 신청서의 `한 차례에 한함` 아래에 줄을 그었다. 한 번이라는 횟수는 질문의 부담을 없애지 않았다.
오후 법률 접견 때 서준호에게 확인서부터 보여 주었다.
“별도 의견 없음이 무슨 뜻입니까?”
“이 문서에서는 현재 제공 일정과 보호절차에 이견이나 추가 요청이 없다는 뜻입니다.”
“제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까?”
“그 질문에 답하는 문서가 아닙니다.”
“나중에 의견서를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은요?”
“그 가능성을 열거나 닫는 문장도 아닙니다.”
나는 전화 신청서 초안을 내놓았다.
“받을 의사가 있는지만 물으면 안 됩니까?”
서준호는 문장을 읽고 종이를 내려놓았다.
“법적으로 전달 경로는 있습니다. 상대 대리인에게 수령 의사를 문의하고 동의가 있을 때만 보내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물어볼 수 있다는 말입니까?”
“가능하다는 것과 지금 물어야 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사과문을 그냥 보내는 것보다는 낫잖습니까.”
“무단 전달보다 부담이 적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수령 의사를 묻는 연락 자체도 상대가 답할지 결정해야 하는 요청입니다.”
“답하지 않아도 된다고 쓰면 됩니다.”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장을 읽고, 답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도 생깁니다.”
나는 신청서의 빈 여백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기다리는 기간이 정해진 절차가 아닙니다. 피해자 측이 의견서나 진술을 요청하면 그때 범위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요청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그럼 영원히 못 보낼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이 너무 쉽게 나와서 나는 다시 물었다.
“제가 사과할 권리도 없습니까?”
“작성하고 책임을 인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상대에게 도달하게 할 권리와 상대가 읽을 의무는 별개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제가 책임을 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아무 판단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의 평가를 미리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서준호는 사과문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어제 이미 보여 준 초안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이 확인서에 대한 회신은 필요합니까?”
“자료 제공 절차상 수령 확인만 보관하면 됩니다.”
“감사하다는 말도 안 보냅니까?”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박미영 측이 자료 일정을 확인한 것은 내게 기회를 준 일이 아니었다. 자기 아들의 기록을 바로잡기 위한 절차였다.
접견을 마치며 나는 전화 신청서를 돌려받았다. 서준호는 접수하지 않았다. 내가 결정하지 않은 요청을 대신 보류한 것도 아니었다.
의료동으로 돌아와 신청서를 찢지 않았다. 종이 위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 질문을 없애면 묻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진 것처럼 꾸밀 수 있었다.
그날 외부 발송 등록 마감은 오후 다섯 시였다. 도윤은 복도 끝에서 봉투 수량과 수용번호를 대조했다. 수용자들은 봉하지 않은 편지를 검열용 투명 봉투에 넣고 발송대장에 서명했다.
나는 개인 보관함에서 사과문 봉투를 꺼내 무릎 위에 놓았다. 수신인 칸이 비어 있어 그대로는 접수할 수도 없었다.
“발송할 우편 있습니까?”
도윤이 우리 방 앞에서 물었다.
정호는 없다고 했다. 나는 봉투 앞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없습니다.”
도윤은 다음 방으로 갔다. 바퀴 달린 우편함 안에서 종이들이 서로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다섯 시가 지나 철문이 닫혔다. 오늘 묻지 않겠다는 선택에는 다음 발송일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작은 시간도 붙었다. 내일 마음이 바뀌더라도 오늘 우편편에는 넣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손실을 견딘 일을 자제력으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러나 발송대장에는 내 번호가 없을 뿐이었다. 누구도 내가 보내지 않은 봉투를 세지 않았다.
다음 주 발송일은 다시 왔다. 그때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할 수 있었다.
보내지 않는 일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편함이 지나갈 때마다 봉투를 꺼낼 수 있었고, 법률 접견을 신청할 때마다 문의 문장을 다시 붙일 수 있었다. 침묵을 존중한다는 말을 한 뒤에도 내 손에는 매주 같은 선택지가 돌아왔다.
정호가 물었다.
“전화해?”
“안 합니다.”
“변호사가 하지 말래?”
“할 수는 있다고 했습니다.”
“그럼 왜.”
“지금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호는 이유를 더 캐지 않았다.
나는 사과문 초안을 새 봉투에 넣었다. 봉투 앞면의 수신인 칸은 비워 두었다. 봉하지도 않았다. 혹시 문장을 다시 고치고 싶어질 수 있었다.
전화 신청서도 함께 넣으려다 따로 접었다. 사과문과 문의서를 한 봉투에 두면 언젠가 누군가 보관함을 확인할 때 이미 한 묶음의 발송 준비처럼 보일 것 같았다. 나는 문의서는 법률 서류 사이에, 사과문은 개인 편지 칸에 나눠 두었다.
두 종이는 같은 욕구에서 나왔지만 아직 같은 절차가 아니었다.
나도윤에게 외부 발송 봉투 등록을 요청하지 않았다. 변호인 서류함에도 넣지 않았다. 내 개인 보관함의 사진 봉투와 반송되지 않은 종이들 사이에 세워 두었다.
자료 수령 확인서에는 `별도 의견 없음`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자료 일정에 관한 행정 문장이었다.
나를 거절한 문장도, 기다리겠다는 문장도 아니었다.
나에게 보낸 문장이 아니었다.
나는 그 문장에 내 이름을 덧쓰지 않았다.
빈칸도 그대로 남겨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