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읽어 달라는 문장

에피소드 36 / 50

나는 전달 대상 칸을 비워 둔 채 새 종이를 꺼냈다.

당사자 의견서 양식이 아니라 일반 편지지였다. 누구에게 보낼지 정하지 않은 글에 수신인부터 쓰는 것은 이상했다. 나는 첫 줄을 두 칸 비워 놓고 `죄송합니다`라고 썼다.

그다음 문장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저는 회사의 일정 압박과 불완전한 보고 체계 속에서도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문장을 읽어 보니 책임보다 회사가 먼저 나왔다. 나는 `회사의 일정 압박과 불완전한 보고 체계 속에서도`에 줄을 그었다.

다시 썼다.

`저는 위험 징후와 작업 보류 의견을 알고도 작업을 승인했습니다.`

그 문장 뒤에는 곧바로 다른 문장을 붙이고 싶었다.

`당시 회사는 준공 일정과 반송 비용을 이유로 현장을 압박했고, 여러 부서가 재측정값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것도 사실이었다. 사실이어서 더 쉽게 쓸 수 있었다. 내 승인 바로 뒤에 놓으면 문장이 나를 둘러싸는 난간이 됐다. 나는 두 번째 문장 전체에 줄을 그었다.

정호는 맞은편 침대에서 새 집게로 약 봉지를 당겨 오고 있었다. 종이를 보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숙였지만, 펜이 멈출 때마다 집게 손잡이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세 번째 문장을 썼다.

`사고로 두 분이 돌아가시고 한 분이 크게 다쳤으며 저 역시 척수손상을 입었습니다.`

`저 역시` 앞에서 펜을 멈췄다. 내 몸의 손상은 사고의 사실이었다. 그러나 박진수와 오광철의 죽음, 최민석의 부상 뒤에 내 장애를 같은 문장으로 붙이면 고통을 나누어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다친 사실이 그들의 손실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나는 `저 역시 척수손상을 입었습니다`를 지웠다.

줄을 너무 세게 그어 종이가 얇아졌다.

`저는 지난 6년 동안 매일 이 선택을 후회하며 살았습니다.`

그 문장은 내게 익숙했다. 반성문에도 비슷한 말을 썼고, 심사 면담에서 오래 생각했다고 말했다. 여섯 해는 길어 보였고 `매일`은 한 번도 잊지 않았다는 증명처럼 보였다.

실제로 나는 사고를 생각하지 않은 날도 있었다. 소변주머니가 꼬였는지 확인하고, 식판을 옮기고, 면회 시간을 기다리느라 하루가 지나간 적도 있었다. 후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은 같은 생각만 하며 살 수 없었다.

나는 `매일`을 지웠다가 문장 전체를 지웠다.

첫 종이는 검은 줄로 가득해졌다.

정호가 물었다.

“누구한테 쓰는 거야?”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편지도 있어?”

“보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왜 써.”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쓰는 동안 나는 받는 사람보다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있었다.

두 번째 종이를 꺼냈다.

`박진수 님과 오광철 님의 가족, 최민석 님께.`

이름을 한 줄에 놓자 한 사람씩 다른 관계와 손실을 가진 이들을 하나의 수신인으로 묶는 느낌이 들었다. 박미영은 자료 정정을 요구했지만 박진수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의견서를 받기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최민석은 공개 증언을 했지만 내 사과를 요청하지 않았다.

나는 수신인 줄을 다시 비웠다.

`제가 위험을 알고도 작업을 승인한 책임을 인정합니다.`

`사고 뒤 보고서 문장을 줄이고 최초 계측값이 빠진 기록이 굳어지는 데 관여한 일도 인정합니다.`

여기까지 쓰자 글이 진술서처럼 보였다. 사과한다는 말만 붙이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용서를 구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겸손한 말처럼 보였지만 `용서`라는 단어를 내가 먼저 꺼내고 있었다.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상대가 용서 여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문장에도 줄을 그었다.

`이 글을 한 번만 읽어 주신다면 제가 책임을 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더 분명했다. 읽어 달라고 요구했고, 읽은 뒤 나를 평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줄을 긋는 대신 종이를 반으로 접었다.

“다 썼어?”

정호가 물었다.

“아닙니다.”

“버릴 거야?”

“아직 모르겠습니다.”

나는 접은 두 장을 서준호 접견 서류 사이에 넣었다.

다음 날 법률 접견에서 서준호는 먼저 당사자 의견서의 절차를 설명했다. 작성하면 변호인이 법률적 위험과 개인정보를 검토할 수 있지만, 제출하지 않으면 기록 밖에 남는다. 제출해도 법원·수사기관·피해자 대리인 중 전달 범위를 별도로 정해야 했다.

“박미영 측에서 의견서를 원한다고 했습니까?”

“아니요. 원자료 범위와 기록 정정 절차만 확인했습니다.”

“거부했다는 뜻입니까?”

“요청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거부, 기다림, 관심 없음 중 어느 것으로도 해석할 근거가 없습니다.”

나는 접은 종이를 내놓았다.

“문장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만 봐 주십시오.”

서준호는 검은 줄 사이의 글을 읽었다.

“최초 계측값이 빠진 기록에 관여했다는 표현은 형사·민사 절차에서 추가 자백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미 확인된 사실과 아직 판단 중인 책임 범위를 구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럼 빼야 합니까?”

“제가 빼라고 하면 법률 의견서가 됩니다. 한재호 씨가 무엇을 인정하려는지 먼저 정해야 합니다.”

“회사 압박을 쓰면 책임을 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회사 책임이 사실이라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왜, 어디에 쓰는지의 문제입니다. 자기 승인에 대한 사과 문장 뒤에 방어 자료를 붙이면 수신인은 설명을 받아들이는 일을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을 다 쓰지 않으면 거짓말 아닙니까?”

“한 장의 사과문이 사고조사 보고서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을 숨기는 것과 모든 사실을 한 문서에 넣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서준호는 줄 그은 `저 역시 척수손상을 입었습니다`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사실을 왜 넣었습니까?”

“같은 사고에 있었다는 것을—”

“그 다음에 상대가 무엇을 해 주길 바랐습니까?”

나는 답을 찾았다.

“저도 손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랐습니다.”

“그 바람이 있다는 사실과 문서에 넣는 선택은 별개입니다.”

그는 삭제를 칭찬하지 않았다. 남은 두 문장이 좋은 사과라고도 하지 않았다.

“전달 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 써도 됩니까?”

“쓸 수 있습니다. 다만 쓰는 일이 상대에게 보내도 된다는 허락은 아닙니다.”

접견이 끝난 뒤 종이는 다시 내게 돌아왔다.

의료동에서 세 번째 종이를 펼쳤다. 이번에는 사과라는 말부터 쓰지 않았다.

`나는 위험 징후와 작업 보류 의견을 알고도 작업을 승인했다.`

처음에는 `작업이 진행되도록 승인되었습니다`라고 썼다. 주어가 없는 문장은 회사 보고서와 닮아 있었다. 승인한 사람이 사라지고 작업만 저절로 진행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문장을 지우고 `제가 승인했습니다`라고 고쳤다.

`현장의 여러 판단이 잘못되었습니다`라는 문장도 썼다. 여러 판단에는 장석호의 압박과 조병철의 진행 의견, 김도현의 보류 요구까지 한꺼번에 들어갔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말하는 대신 모두를 같은 흐린 주어로 묶었다.

그 문장은 남기지 않았다.

`나는 사고 뒤 보고서의 문장을 줄이는 데 관여했고, 그 결과 책임을 축소한 기록이 남는 데 힘을 보탰다.`

`관여했다`도 숨을 곳이 많은 동사였다. 누가 시켜서 옆에 있었는지, 직접 바꿨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기억나는 범위까지 문장을 나눴다.

`저는 사고보고서에서 작업구역을 증축구역으로 바꾸는 데 동의했습니다.`

`저는 최초 계측값이 빠진 기록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재측정값 기준으로 보고를 정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두 번째 문장은 이미 확인된 내 회신과 연결됐지만, 최종보고서의 모든 삭제를 내가 직접 지시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최초 계측값을 빼라고 지시했습니다`라고 더 세게 쓰고 싶었다. 더 큰 죄를 인정하면 더 솔직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책임까지 차지하는 것도 내 성찰을 과시하는 일이었다.

나는 확인된 동사만 남겼다.

`그 선택으로 박진수 씨와 오광철 씨가 사망하고 최민석 씨가 크게 다쳤다.`

`사망하게 되었습니다`라고 고쳐 보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높임말은 필요했지만 죽음이 생겨난 경로까지 완곡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세 사람의 이름을 한 문장에 두는 것도 불편했다. 박진수의 축구장갑과 오광철의 문제집, 최민석의 왼팔을 적으면 사람을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글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물건과 몸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과 가까운 관계를 주지는 않았다. 나는 이름과 결과만 적었다.

`박진수 씨와 오광철 씨는 사망했습니다.`

`최민석 씨는 크게 다쳤고 후유장애를 입었습니다.`

그 앞에는 내 승인을 남겼다. 그 뒤에는 내가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말을 붙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사과한다.`

나는 존댓말로 다시 고쳤다. 이름 뒤의 `씨`가 맞는지, `님`이 맞는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수신인을 정하지 않았으니 호칭도 결정되지 않았다.

그 아래에 `저는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썼다.

곧 지웠다.

`남은 삶 동안 책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문장도 지웠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상대가 감독할 수는 없었다.

`부디 한 번만 읽어 주십시오.`

쓰지 않았는데도 그 문장이 종이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글을 만든 이유 속에 읽히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빈 아래쪽을 잘라내지 않았다. 더 쓸 수 있는 공간을 그대로 두었다.

종이에는 내가 한 일과 발생한 결과, 사과한다는 말만 남았다.

전달 대상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