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32 / 50
정호는 새 집게를 빌려 달라고 아침부터 두 번 말했다.
공용 집게는 맞은편 방 수용자가 오전 세면 시간에 빌려 간 상태였다. 정호의 양말 한 짝은 침대와 벽 사이로 떨어져 있었다. 손을 넣기에는 틈이 좁았고, 허리를 숙이면 굳은 무릎이 걸렸다.
“한 번만 쓰고 줄게.”
그가 말했다.
나는 새 집게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검은 고무 끝에는 아직 먼지가 묻지 않았다.
“개인 지급 물품을 빌려줘도 됩니까?”
“어제 네 헌 집게도 빌려줬잖아.”
“그건 교체 전이었습니다.”
정호가 나를 보았다.
“새것은 손때도 타면 안 돼?”
나는 집게를 건네지 않았다. 정호가 양말 없이 한쪽 발만 슬리퍼에 넣은 채 서 있는 모습을 조금 더 보았다.
“오늘 저녁 식판 제 것도 가져다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형이 식판을 가져다주면 저는 어깨를 덜 쓰잖습니까.”
“그래서 집게를 빌려주는 값으로 하겠다고?”
“값이라고까지 할 건 없습니다.”
정호는 코로 짧게 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가져다줄게.”
나는 그제야 집게를 건넸다.
정호는 손잡이를 눌러 양말 끝을 한 번에 물었다. 낡은 공용 집게였다면 두 손을 겹쳐 눌러야 했을 것이다. 그는 양말을 침대 위에 올리고 집게를 내게 돌려주었다.
“끝났어.”
“저녁 식판은 기억하십시오.”
“잊을까 봐 그러냐.”
“말은 해 둬야 하니까요.”
나는 손잡이를 소독용 티슈로 닦았다. 정호의 손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새 물건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내 눈에 남기고 싶어서 닦는 것 같았다.
나도윤이 아침 점검을 하다 티슈와 집게를 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정호 형에게 잠깐 빌려줬습니다.”
도윤은 지급 번호를 확인했다.
“개인 보조도구는 다른 사람에게 계속 돌려 쓰게 하면 안 됩니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공용 물품을 신청해야 합니다.”
“한 번만 썼습니다.”
“한 번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파손이나 분실 때 누가 책임지는지와 세척 상태가 불분명해집니다. 빌려주기 전에 직원에게 말씀하세요.”
“제 물건인데 제가 빌려주는 것도 안 됩니까?”
“개인 소유물이 아니라 개인 지급 관리물품입니다.”
도윤은 집게를 빼앗지 않았다. 표면을 정해진 방법으로 다시 닦고 작동을 확인한 뒤 내 침상 번호가 적힌 걸이에 걸었다.
“이정호 씨 도구는 수리 점검 중이고 공용 집게 사용 대상입니다. 공용 물품이 없으면 직원을 부르세요.”
“양말 하나 주우려고도요?”
정호가 물었다.
“필요하면요. 기다릴 수 있으면 반납 시간까지 기다리고, 바로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도윤은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받기로 했는지 묻지 않았다. 저녁 식판 약속은 관리표 밖에 남았다.
점심 뒤 공용공간에서 손병규가 나를 불렀다. 맞은편 끝방을 쓰는 수용자로, 보행은 가능했지만 왼쪽 손가락 두 개가 오래 굳어 있었다. 그는 세탁망 배부함 앞에 서 있었다.
배부함은 벽 선반 두 번째 칸에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내 눈높이보다 높았다. 나는 세탁일마다 직원에게 망을 하나씩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저거 아래로 옮겨 달라고 말 좀 해요.”
병규가 말했다.
“직원에게 직접 말하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말했더니 물품 담당한테 건의하래. 한재호 씨가 휠체어 때문에 못 닿는다고 하면 바로 옮길 거 아니야.”
“저는 직원에게 내려 달라고 하면 됩니다.”
“매번 사람 부르는 것보다 아래 있는 게 낫잖아. 나도 한 손으로 위 상자 당기다가 다 쏟을 뻔했어.”
그의 말에는 사실이 섞여 있었다. 나는 배부함에 직접 닿지 못했다. 병규도 굳은 왼손으로 상자를 고정한 채 오른손으로 망을 빼기 어려웠다.
“아래 칸에는 뭐가 있습니까?”
“청소용 천이랑 여분 세면대야. 옆으로 밀면 돼.”
“그건 담당자가 판단할 일입니다.”
“그러니까 건의만 해 달라는 거지. 한재호 씨 이름으로.”
병규는 내 휠체어 손잡이에 걸린 작은 세탁 주머니를 보았다.
“오늘 세탁물 수거할 때 내 것하고 같이 내 줄게요. 바퀴 밀고 세탁함까지 갈 필요 없게.”
나는 전날의 도서 신청서를 떠올렸다. 부탁과 전달, 먼저 적힌 시각. 이번에는 교환이 더 뚜렷했다.
“제 세탁 주머니를 대신 가져가면, 배부함을 아래로 옮겨 달라고 말해 달라는 겁니까?”
“서로 편하자는 거잖아.”
“아래 칸 물건은 어디로 갑니까?”
“그건 직원이 알아서 하겠지.”
병규는 대답을 서둘렀다.
나는 세탁 주머니를 무릎에서 내려 그에게 건넸다.
“건의는 하겠습니다. 옮길지는 직원이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되지.”
그는 내 주머니를 자기 것과 함께 들고 갔다.
오후 물품 순회 때 도윤이 배부함 앞에 왔다. 나는 병규가 없는 자리에서 말했다.
“세탁망 배부함을 아래 칸으로 옮길 수 있습니까? 지금 위치는 휠체어에서 닿지 않습니다.”
“아래 칸에는 청소 비품이 있습니다. 통로 폭도 확인해야 합니다.”
“옆으로 옮기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나는 잠깐 멈췄다.
“다른 수용자도 꺼내기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어떤 동작이 불편한지 직접 확인해야 합니다.”
“제게도 안 닿는 건 사실입니다.”
“한재호 씨 필요는 지금 확인했습니다. 직원이 매번 내려 주는 방식과 위치를 바꾸는 방식 중 무엇이 적절한지 보겠습니다.”
도윤은 휴대 기록기에 요청 내용을 입력했다.
“제 이름으로 들어갑니까?”
“요청한 사람은 한재호 씨니까요.”
“다른 사람도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요청하지 않았으니 이름을 넣을 수 없습니다.”
그는 배부함 높이와 휠체어 앞 공간을 줄자로 쟀다. 아래 칸의 청소용 천 상자를 꺼내 보니 뒤쪽에 전기 점검용 덮개가 있었다. 배부함을 그대로 내리면 덮개를 가리고 휠체어 발판이 선반 모서리에 닿았다.
“이 자리에서 아래로 내리는 건 어렵습니다. 벽 반대편에 낮은 거치대를 설치할 수 있는지 물품 담당에게 확인하겠습니다.”
“언제 됩니까?”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병규에게 들은 `바로 옮길 것`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저녁 식판이 올 때 정호는 약속대로 내 것까지 받아 왔다. 두 식판을 들고 걷느라 손가락이 그릇 가장자리를 힘주어 잡고 있었다.
“여기.”
그가 내 탁자에 식판을 놓았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집게 그냥 빌려줘.”
“직원에게 말하고 빌려야 한답니다.”
“그럼 식판도 직원한테 받아.”
정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만든 교환은 한 번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한 번 동안 정호가 양말을 주울 수 있는지는 내가 손에 쥔 도구와 내가 붙인 조건에 달려 있었다.
병규는 세탁물을 내고 돌아와 배부함이 옮겨졌는지 물었다.
“검토한답니다. 지금 자리는 아래로 내릴 수 없답니다.”
“한재호 씨가 꼭 필요하다고 했어요?”
“휠체어에서 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럼 될 거예요. 장애인 요청은 그냥 못 넘기잖아.”
그는 만족한 얼굴로 자기 방에 들어갔다.
십 분 뒤 다시 나와 내 휠체어 옆에 섰다.
“그냥 안 닿는다고만 했어요?”
“그렇습니다.”
“몸을 뻗다가 떨어질 수 있다고 해야지. 안전 문제라고 하면 빨리 해.”
“저는 몸을 뻗지 않습니다. 직원에게 내려 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혼자 있을 때 급하면 그럴 수 있잖아.”
“그렇게 한 적 없습니다.”
병규는 목소리를 낮췄다.
“말을 좀 세게 해야 움직인다니까. 실제로 떨어진 뒤 말하면 늦잖아.”
그는 내가 겪지 않은 위험을 내 몸으로 증명해 달라고 하고 있었다.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배부함은 우리 모두에게 낮아졌다. 거짓말의 주어는 나만 될 수 있었다.
“추가로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내 세탁물은 가져다줬잖아요.”
“배부함을 건의한다고 했지, 넘어질 뻔했다고 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서로 편하자는 것도 안 해 주네.”
병규는 돌아섰다. 내가 이미 그의 부탁을 내 이름으로 전달했다는 사실은 사라지고, 더 강한 말을 하지 않은 일만 남은 것 같았다.
다음 날 시설 담당 직원이 줄자와 낮은 거치대 도면을 들고 왔다. 그는 접수표의 요청자를 확인한 뒤 내게 배부함을 사용하는 동작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나는 휠체어를 선반 앞에 세웠다. 발판이 벽 아래 보호대에 먼저 닿았다. 팔을 들어도 손끝은 두 번째 칸 바닥에 닿지 않았다.
“평소에는 어떻게 받습니까?”
“직원에게 내려 달라고 합니다.”
“직원이 없을 때 꺼내려고 시도한 적은요?”
“없습니다.”
“넘어지거나 물품을 쏟은 적도 없고요?”
“없습니다.”
시설 담당은 도면에 내 휠체어 발판 길이와 손이 닿는 높이를 적었다.
“반대편 벽에 낮은 거치대를 놓으면 휠체어 회전 폭이 줄 수 있습니다. 배부 시간에 직원이 건네는 방식도 같이 검토하겠습니다.”
병규는 방 앞에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한 손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분이 요청했습니까?”
시설 담당이 물었다.
병규는 나오지 않았다.
“제게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손 기능과 사용하는 방식을 본인이 의료동 직원에게 알려야 합니다. 지금 접수 건에는 한재호 씨 접근 범위만 확인하겠습니다.”
그는 나만 측정하고 돌아갔다. 병규가 원한 낮은 배부함은 검토 대상이 됐지만, 그의 굳은 손가락과 상자를 쏟을 뻔한 일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다음 날 게시판에 시설 요청 접수표가 붙었다. `세탁망 배부함 접근 높이 조정 검토`라는 문장 옆 요청자는 `4271 한재호`로 적혀 있었다.
손병규의 이름은 없었다.
그가 부탁한 일이 내 필요로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