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먼저 들은 사람

에피소드 31 / 50

새 긴 집게가 세 개 들어온다는 말을 나는 물품함 앞에서 먼저 들었다.

내 집게 끝의 고무가 닳아 단추를 놓칠 때가 많았다. 윤서진은 손잡이를 두 번 당겨 보고 집게발이 완전히 맞물리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수리는 어렵겠네요. 이번 주 교체 물량이 세 개 들어옵니다.”

“제 것은 바꿀 수 있습니까?”

“신청한 사람들 도구 상태와 손 기능을 같이 보고 정합니다. 한재호 씨 것은 점검 필요로 올려둘게요.”

서진은 내 집게 손잡이에 노란 점검표를 붙였다. 사용 금지는 아니지만 작은 물건을 잡을 때 미끄러질 수 있다는 표시였다.

“세 개면 누가 먼저 받습니까?”

“지금부터 정하지 않습니다. 기존 도구가 부러졌거나 아예 없는 사람, 손 기능과 사용 목적을 확인해야 해요. 같은 조건이면 신청 시각도 봅니다.”

“신청은 언제부터 받습니까?”

“내일 아침 물품 점검 때요.”

서진은 공용 물품함 문을 잠갔다. 복도 게시판에는 아직 아무 공지도 붙지 않았다.

그날 오후 배성환이 검사실에서 돌아오다 내 노란 점검표를 보았다.

“그 집게도 망가졌어요?”

“끝이 잘 안 맞습니다.”

“새로 준대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이 비밀이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공지가 내일 붙을 뿐이었다.

“교체 물량이 들어온답니다.”

“언제 신청해요?”

“내일 아침 점검 때요.”

배성환은 자기 휠체어 옆에 걸린 집게를 꺼냈다. 손잡이를 쥐자 집게발 한쪽이 늦게 닫혔다.

“내 것도 이래요. 산소선 떨어지면 집으려고 쓰는데 두 번은 잡아야 돼요.”

“산소선은 직접 집어 올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연결부 말고 옷 위에 놓인 줄요. 물건도 줍고.”

그는 집게를 다시 걸었다.

“내일 몇 시인지도 알아요?”

“아침 투약 뒤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방은 흉부 물리치료 시간인데.”

배성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가 오늘 교육동 가는 길에 도서 신청서 내 줄까요? 한재호 씨 어깨 아파서 그쪽 경사로 안 가잖아요.”

나는 침대 옆에 놓인 도서 신청서를 보았다. 반납 도서와 다음 대출 희망 목록을 오늘 안에 제출해야 했다. 나도윤에게 전달을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배성환은 교육동 검사실 옆을 지나갈 예정이었다.

“대신 내일 물품 점검 전에 직원한테 내가 신청할 거라고 말해 줘요.”

그가 덧붙였다.

“제가 순서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하라는 게 아니라 말만 해 달라는 거예요. 치료 끝나면 늦을 수 있으니까.”

그 부탁은 규칙을 바꿔 달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신청 의사를 대신 전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도서 신청서를 접어 그에게 건넸다.

“알겠습니다.”

배성환은 종이를 산소장치 옆 주머니에 넣었다.

“잊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저녁에 정호가 바닥에 떨어진 안경닦이 천을 집으려 했다. 허리를 굽히다 무릎을 짚고 멈췄다. 나는 내 긴 집게를 내밀었다.

“이걸 쓰세요.”

정호가 손잡이를 눌렀다. 집게발이 천을 물었다가 놓쳤다.

“이것도 다 됐네.”

그는 두 번째에 천을 집었다.

정호의 침대 옆에도 긴 집게가 있었다. 손잡이 스프링에 천 테이프가 감겨 있었고 집게발 한쪽에는 금이 가 있었다.

“형 것도 신청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달에 말했어. 새 물건 들어오면 보자더라.”

나는 내일 세 개가 들어온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정호는 이미 직원에게 필요를 알렸으니 내가 전하지 않아도 명단에 있을 수 있었다.

“왜.”

정호가 내 얼굴을 보았다.

“아닙니다.”

나는 집게를 돌려받았다.

그날 배성환은 도서 신청서를 대신 내 주었다. 저녁 점검 때 접수 도장이 찍힌 반쪽을 가져와 내 탁자에 놓았다.

“내일 부탁한 거 기억하죠?”

“기억합니다.”

정호는 그 말을 들었지만 무엇을 부탁했는지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투약이 끝난 뒤 물품 점검대가 복도에 놓였다. 새 긴 집게 세 개는 투명 포장에 들어 있었다. 손잡이 모양은 같았고 끝의 고무는 검은색이었다.

나도윤이 게시판에 교체 신청 안내를 붙였다. 신청 대상과 점검 시간은 세 줄로 적혀 있었다. 공지가 붙은 뒤에는 누구나 볼 수 있었지만, 정호는 세면대 앞에서 손가락 관절에 온찜질을 하고 있었다. 안내문은 그의 등 뒤에 있었다.

“정호 형.”

나는 그를 불렀다.

“왜.”

그가 돌아보았다.

나는 새 물량 이야기를 하려다 탁자 위 도서 접수증을 보았다. 배성환에게 부탁받은 말은 아직 전하지 않았고, 신청표도 펴지지 않은 상태였다. 정호에게 먼저 말하면 그가 배성환보다 앞에 서게 될 수 있었다.

“온찜질 끝났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하세요.”

정호는 다시 손을 수건으로 감쌌다. 나는 안내문을 읽어 주지 않았다. 글자가 작아서 그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찜질이 끝나면 스스로 게시판에 올 수도 있었다.

직원은 아무에게도 줄을 서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미 누가 먼저 말하게 될지를 고르고 있었다.

배성환은 예정대로 맞은편 방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서진이 신청표를 펴자 내가 먼저 말했다.

“배성환 씨도 교체를 신청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치료 중입니다.”

“본인에게 사용 불편과 필요한 동작을 확인해야 합니다.”

“치료 끝나고 올 겁니다. 신청 의사는 어제 들었습니다.”

서진은 신청표 아래에 배성환의 침상 번호와 현재 시각을 적고 옆에 `본인 확인 대기`라고 표시했다.

“대리 신청으로 배정되지는 않습니다. 돌아오면 평가할게요.”

“알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그 한 줄은 이미 표에 생겼다.

내 도구를 확인할 차례가 왔다. 서진은 내가 바닥의 천 조각과 탁자 위 단추를 각각 집어 보게 했다. 바닥의 천은 두 번 미끄러졌고 단추는 세 번 눌러야 잡혔다. 오른손과 왼손의 악력, 어깨를 숙일 때 통증도 확인했다.

“교체 필요입니다.”

그는 내 이름 옆에 표시했다.

다른 방 수용자 한 명은 집게 손잡이가 완전히 부러져 있었다. 그는 첫 번째 교체 대상으로 정해졌다. 나는 두 번째였다. 새 집게는 하나 남았다.

정호가 자기 집게를 들고 점검대로 왔다.

“이건 끝에 금이 갔습니다.”

서진은 손잡이와 집게발을 확인했다. 정호는 양말을 당기고 침대 아래 슬리퍼를 꺼낼 때 쓴다고 설명했다. 손가락 관절이 굳어 작은 물건을 잡기 어렵다는 것도 보였다.

“교체가 필요합니다. 신청표에 올리겠습니다.”

그때 배성환의 치료가 끝났다. 직원이 휠체어를 밀고 점검대 앞으로 왔다. 서진은 먼저 호흡 상태를 확인하고 쉴 시간을 줬다. 배성환은 자기 집게로 바닥에 놓은 수건 고리를 잡아 보였다. 손잡이를 끝까지 눌러도 집게발이 비스듬히 닫혔다.

“물건을 두세 번 잡아야 합니다.”

“주로 어떤 때 씁니까?”

“옷이나 수건 떨어졌을 때요. 산소선이 옷 위에서 밀리면 직원 부르기 전에 위치 볼 때도 쓰고요. 연결부는 안 만집니다.”

서진은 배성환의 손 기능과 도구 상태를 적었다. 정호와 배성환의 교체 필요 등급은 같았다.

“남은 하나는 신청 시각 순으로 배정합니다.”

서진이 말했다.

신청표에는 배성환의 이름이 정호보다 위에 있었다. 내가 아침에 먼저 말한 시각이었다.

“본인이 온 건 방금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대리로 의사를 전달한 시각을 접수 시각으로 인정하되, 본인 확인이 안 되면 취소하는 방식입니다. 두 분 필요 정도가 같아서 먼저 접수된 배성환 씨에게 배정합니다.”

정호는 자기 집게를 내려다보았다.

“다음 건 언제 들어옵니까?”

“정확한 날짜는 없습니다. 기존 것을 임시 보강할 수 있는지 먼저 보겠습니다.”

서진은 정호의 집게를 수리 표시 상자에 넣었다. 그동안 쓸 공용 집게는 손잡이가 더 뻑뻑했고, 저녁마다 반납해야 했다.

배성환은 새 집게 포장을 받으며 내 쪽을 보았다.

“고마워요. 신청서도 접수됐죠?”

“됐습니다.”

나는 새 집게를 받았다. 손잡이를 누르자 집게발이 한 번에 닫혔다. 바닥의 단추를 집어 탁자에 올렸다.

정호는 공용 집게의 반납표에 이름을 쓰고 있었다. 그가 어제 새 물량을 알았으면 아침 투약 뒤 나와 함께 먼저 신청했을 것이다. 나는 정호가 이미 필요를 말했으니 명단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확인하지 않았고, 새 물량이 세 개뿐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배성환의 부탁을 먼저 전한 대가로 내 도서 신청서는 제시간에 접수됐다. 어느 규정에도 그 교환은 적히지 않았다.

점검이 끝난 뒤 정호는 공용 집게를 몇 번 눌러 보았다. 손잡이가 뻑뻑해 굳은 손가락이 끝까지 오므라들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번갈아 썼다.

“너는 새 물건 들어오는 거 언제 알았어?”

그가 물었다.

“어제 오전에요.”

“배 씨한테는 말했고?”

“그 사람이 먼저 물었습니다.”

“나는 안 물어서 말 안 했고.”

“형은 지난달에 이미 신청했다고 했잖습니까. 명단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확인은 안 했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호는 공용 집게로 침대 아래 슬리퍼를 당겼다. 첫 번째에는 손잡이를 끝까지 누르지 못해 집게발이 빠졌다. 그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감싸 두 번째로 눌렀다.

“다음에는 나한테도 알려 줘.”

그 말에는 용서도 비난도 없었다. 그는 오늘 저녁까지 써야 할 도구를 다시 시험했다.

“알겠습니다.”

내 대답은 이미 달라진 순서를 되돌리지 못했다.

나는 새 집게로 바닥에 떨어진 접수증을 집었다. 손잡이는 거의 힘을 주지 않아도 닫혔다. 정호가 내 도구를 빌려 달라고 하면 줄 수 있었지만, 공용 집게 반납 규칙과 내 사용 시간이 겹치는 문제는 남았다. 물건 하나를 나누겠다는 말로 배정표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물품표에는 네 이름이 순서대로 남았다.

세 번째 줄은 배성환이었다.

정호의 이름은 그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