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4 / 50
통지서에는 거절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회복적 대화 절차 진행 불성립.
상대 측은 본 프로그램을 통한 의사소통 절차를 이용하지 않음.
사유는 제공하지 않음.
사고 원자료 제공 요구는 기존 대리인 간 절차로 계속 진행.
나는 네 줄을 읽고 첫 줄로 돌아갔다.
“답을 한 겁니까, 답하지 않은 겁니까?”
서기현이 말했다.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 정보도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겁니까?”
“진행 여부 외에는 전달하지 않는 조건으로 신청하셨습니다.”
교육실 벽에는 아직도 인정, 반성, 회복, 재통합이 화살표로 이어져 있었다. 프로그램은 그중 회복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신청했고, 화살표는 다음 칸으로 가지 않았다.
“자료는 받겠다는 뜻입니까?”
“기존 대리인 절차로 계속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자료는 원하는 거잖습니까.”
“그 이상 해석하지 마십시오.”
“해석이 아니라 문장 그대로 읽은 겁니다.”
“문장 그대로는 원자료 제공 요구가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한재호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통지서 모서리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이유가 없으니 여러 이유를 만들 수 있었다.
나를 보고 싶지 않아서.
대화할 가치가 없어서.
아직 시간이 필요해서.
법률절차에 영향을 줄까 봐.
그중 `아직 시간이 필요해서`가 가장 편했다. 나중을 남기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다시 연락하지 않죠?”
“네.”
“제가 별도 사과문을 대리인에게 보내는 것도 안 되고요?”
“프로그램 밖의 법률적 연락은 변호사와 상의할 일입니다. 다만 이번 신청에서 직접 답변과 사과 전달을 요청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상대가 대화는 싫어도 사과문은 받을 수 있잖습니까.”
“그 가능성을 확인하려면 다시 물어야 합니다.”
한 번만 묻는 연락은 끝났다.
나는 통지서를 접지 않았다. 접으면 보관하기 쉬워졌고, 보관하면 언젠가 다른 의미로 펼쳐볼 것 같았다. 집게판 아래에 평평하게 넣었다.
서기현은 가석방 보완자료 기록안을 보여주었다.
회복적 대화 프로그램 사전교육 및 면담 참여.
사고 관련 원자료 제공 동의.
직접 만남·답변·용서 요청하지 않음.
상대 측 비참여로 대화 절차 불성립.
“마지막 문장에서 상대 측을 빼면 안 됩니까?”
내가 물었다.
“왜요?”
“피해자가 거부해서 프로그램이 안 된 것처럼 보입니다.”
“거부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비참여도 비슷하게 읽힙니다.”
“그러면 `상호 참여 요건 미충족으로 절차 불성립`이라고 쓸 수 있습니다.”
“그게 낫겠습니다.”
서기현이 문장을 고쳤다.
나는 또 균형 잡힌 표현을 찾았다. 박미영의 선택을 탓하지 않으면서, 내가 신청했다는 사실은 남겼다.
“자료 제공 동의가 피해 회복 노력에 들어갑니까?”
“실제 제공이 완료됐는지 확인되어야 합니다.”
“동의는 이미 했습니다.”
“동의와 제공은 다릅니다.”
“변호사가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그럼 완료된 뒤 보완할 수 있습니다. 심사자료 마감은 닷새 뒤고요.”
닷새.
서기현은 달력에서 날짜를 가리켰다.
7월 8일.
나는 이혼조정 때 7월 3일에 표시하지 않았다. 조정안 회신일을 유리의 연락 기한처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번 날짜는 실제 제출 기한이었다. 표시해도 되는 숫자였다.
“그때까지 자료 제공이 끝나면 반영됩니까?”
“사실 확인이 되면요.”
“어떤 자료를 제공했는지도 적습니까?”
“관련성을 간단히 적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 반응은 쓰지 않습니다.”
나는 7월 8일을 기억했다. 달력에는 아직 적지 않았다.
면담 뒤 의료동으로 돌아가려는데 나도윤이 변호사 접견이 추가됐다고 알려왔다. 같은 날 두 번의 이동은 드물었다. 외부자료 공개 기한 때문에 서준호가 긴급접견을 요청했다고 했다.
첫 번째 철문 앞에서 나는 압박 완화를 위해 몸을 왼쪽으로 기울였다. 오른쪽 어깨 통증은 줄었지만 오전 면담 동안 오래 앉아 있었다. 나도윤은 접견실에 도착하면 삼십 분 뒤 휴식을 요청하도록 기록표에 표시했다.
서준호는 인사한 뒤 두 개의 봉투를 탁자에 놓았다.
첫 번째는 박미영 측 대리인의 자료 제공 요청이었다.
초기계측 원본과 수정 이력.
최종 측정표 작성 과정.
장석호와 나의 메일.
사고 전날과 사고 당일 녹음파일 전체.
작업 전 안전교육 자료와 작업자 위험 고지 내용.
회사 사고보고서 초안과 수정 이력.
요청 범위에는 나에게 유리한 자료와 불리한 자료가 구분되지 않았다.
“제공하기로 했잖습니까.”
“원칙적으로는요. 다만 녹음에는 사건과 무관한 작업자 개인정보와 회사 기밀이 섞여 있고, 메일함 전체에는 제3자 정보가 있습니다. 관련 부분을 추출하고 비식별 처리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최소 이 주입니다.”
“상대는 언제까지 달랍니까?”
서준호가 요청서 마지막 장을 보여주었다.
회신 기한 7월 8일.
가석방 보완자료와 같은 날이었다.
“그날까지 제공하라는 겁니까?”
“전체 제공이 아니라 제공 범위와 일정에 대한 확답을 요구합니다. 일부는 바로 줄 수 있고, 일부는 보호절차가 필요하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녹음은 바로 주면 되잖습니까.”
“한재호 씨에게 불리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재심 검토뿐 아니라 가석방 심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내가 승인한 것으로 하라`는 음성이 새 자료로 제출되면 기존 반성문과 책임 인식이 다시 평가될 수 있고요.”
“숨기자는 겁니까?”
“아닙니다. 적법한 보호절차 뒤 제공하자는 겁니다.”
서준호는 두 번째 봉투를 열었다.
회사 측 제안이었다. 회사는 장석호의 일정 압박 메일, 초기계측 원본, 최종보고 수정 이력을 독립 검토기관에 공동 제출하는 데 동의하겠다고 했다. 대신 녹음과 개인 메일함 자료는 소유권·개인정보 협의가 끝날 때까지 외부 제공을 보류하자는 조건이었다.
“회사가 자기한테 불리한 자료를 왜 내놓습니까?”
“이미 존재가 확인됐고 유족 측이 요구했습니다. 공동 제출 형식을 택하면 해석 범위를 관리할 수 있으니까요.”
“제 음성은 빼고.”
“회사도 녹음에 있는 다른 관리자와 작업자 개인정보를 이유로 듭니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전화 내용도 있으니 전부 유리한 건 아닙니다.”
회사 제안을 따르면 7월 8일 전에 회사 압박과 원자료 누락을 공식 절차에 올릴 수 있었다. 서기현에게는 자료 제공이 시작됐다고 확인받을 수 있었다. 가석방 자료에는 내가 외부 책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추가 진실 규명에 협조했다는 문장을 넣을 수 있었다.
회사 공동제출안에는 요약문 초안도 붙어 있었다.
당시 경영진의 준공일정 관리 요구와 현장 보고체계의 한계가 개별 관리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 정황을 추가 확인함.
개별 관리자.
내 이름은 없었고, 압박받은 위치만 남았다. 초안 뒤쪽에는 `관련자 개인의 형사책임에 대한 기존 판단을 변경하는 취지는 아님`이라는 문장도 있었지만, 첫 문장보다 글씨가 작았다.
나는 첫 문장을 심사자료에 인용하는 장면을 떠올렸다. 구조적 책임을 무죄의 근거로 쓰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회사가 나를 압박했다는 공식 확인을 가장 앞에 둘 수 있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녹음 전체도 거짓이 아니었다.
두 자료의 차이는 진실과 거짓이 아니라 공개되는 순서였다. 순서는 독자가 원인을 이해하는 방식을 바꿨다. 나는 회사에서 그 기술을 오래 사용했다.
녹음 전체는 나중에 갈 수 있었다.
나중.
이번에는 법률상 이유가 있었다. 개인정보와 소유권, 비식별 처리. 미루는 것이 은폐와 같지는 않았다.
“회사 제안을 받는 게 유리합니까?”
내가 물었다.
“법률전략상은 안전합니다.”
“심사에도요?”
“회사 책임 자료가 먼저 확인되고, 한재호 씨 음성은 충분히 설명을 준비한 뒤 제출할 수 있습니다.”
“박미영 씨 쪽에는요?”
“원하는 전체 자료를 바로 받지는 못합니다. 대신 일부 자료와 향후 일정은 확정됩니다.”
“오광철 씨 위험 인지 문구를 고치는 데 녹음이 필요합니까?”
“필요할 가능성이 큽니다. 박진수 씨와 최민석 씨가 위험을 보고하고, 재호 씨와 관리자들이 판단하는 과정이 들어 있으니까요. 작업자들이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발적으로 위험을 택했다는 회사 문구를 반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두 봉투를 나란히 보았다.
회사 공동제출 동의서.
유족 측 전체자료 제공 요청서.
“오늘 결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하지만 7월 8일 전에는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접견실 교도관이 삼십 분 휴식을 알렸다. 나는 팔걸이를 짚지 않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무릎 위 두 봉투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서준호가 손으로 눌렀다.
“가석방 자료 마감도 그날입니다.”
내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누가 날짜를 맞춘 겁니까?”
“우연히 겹친 겁니다.”
우연은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의료동으로 돌아와 두 기한을 탁자 달력에 적었다.
7월 8일—심사 보완자료.
7월 8일—자료 제공 회신.
같은 칸에 두 줄이 들어가지 않아 두 번째 문장은 아래 칸까지 내려갔다.
정호가 물었다.
“둘 다 하면 안 되나?”
“어떤 걸 먼저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먼저 한 게 더 진심이 되는가?”
“진심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두 봉투를 포개지 않았다.
어느 것을 위에 놓는지가 벌써 선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소등 방송이 나온 뒤에도 달력의 두 줄은 보였다. 형광등이 꺼지면 글자는 사라졌지만 날짜를 외우고 있었다.
닷새 동안 기다린다고 선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닷새 동안은 두 방향을 모두 가진 사람처럼 지낼 수 있었다.
나는 그 상태가 편했다.
편하다는 사실이 어느 쪽을 원하는지 먼저 알려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