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2 / 50
정호는 최 목사에게 교회 계좌번호를 물었다.
종교상담실에 들어가 앉기도 전이었다. 최 목사는 손에 들고 있던 출석명부를 덮고 정호를 보았다.
“헌금하려고요?”
“이십만 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정호가 말했다.
“교회에 쓰라고 주는 돈은 아닙니다.”
나는 문 가까운 휠체어 자리에 멈췄다. 정호는 아침부터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글을 대신 써달라는 부탁은 거절했지만, 최 목사에게 설명할 때 증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을 증명하려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어디에 전달할 돈입니까?”
최 목사가 물었다.
정호는 성경 사이에서 반송 확인서를 꺼냈다. 일곱 장을 작은 탁자 위에 펼쳤다. 수취 거절, 주소 불명, 수취 거절. 도장이 오래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색이 달랐다.
“은희 동생한테 보낸 겁니다.”
최 목사는 확인서를 손대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분에게 보내려는 겁니까?”
“교회에서 봉사기금으로 받은 다음에 전해주면 됩니다. 내 이름은 말하지 말고.”
“그분이 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까?”
“내 이름으로 보내면 안 받습니다.”
“질문이 다릅니다.”
최 목사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까?”
정호가 입술을 다물었다.
“한 번은 받았어요. 처음에는.”
“발신인이 누군지 몰랐을 때라고 했잖습니까.”
내가 말했다.
정호가 나를 돌아봤다.
“자네는 가만히 있어.”
“증인 하라고 데려왔잖습니까.”
“말을 다 하라는 뜻은 아니었네.”
최 목사가 우리 사이에 손바닥을 들었다.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처음 받은 돈도 나중에 돌려보냈고, 이후 송금은 거절했다는 말씀이죠?”
정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교회 이름으로 대신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교회가 어려운 사람 돕는 곳 아닙니까?”
“그분이 어려운지 아닌지 제가 알지 못합니다.”
“사람 죽여놓고 돈 한 푼 안 주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보상금을 안 받았다는 뜻입니까?”
“국가에서 나온 거하고 민사 합의금은 받았겠지. 내가 주는 돈은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정호는 대답을 찾다가 말했다.
“내가 여기서 번 돈입니다.”
교도소 안에서 받은 작업장려금은 많지 않았다. 정호가 모은 이십만 원에는 몇 달의 작업이 들어 있을 수 있었다. 봉투를 접거나 부품을 분류하고, 정해진 시간에 손을 움직인 결과였다.
“그래서 그 돈을 받으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최 목사가 물었다.
“달라지라고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럼 왜 꼭 그분에게 가야 합니까?”
정호의 손이 반송 확인서 위에 놓였다. 종이 모서리가 손바닥 아래에서 구겨졌다.
“은희한테 줄 수 없으니까.”
상담실 밖에서 다른 종교집회가 끝나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가 접히고 사람들이 줄을 맞추는 소리였다.
최 목사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이 돈이 은희 씨에게 가는 방법은 제가 알지 못합니다.”
그가 말했다.
“유족에게 보내는 건 가능합니다.”
“유족이 거절했습니다.”
“내 이름만 거절한 거요.”
“이름을 숨기면 거절할 기회도 빼앗는 겁니다.”
정호의 얼굴이 굳었다.
“목사님은 용서하라고 가르치잖습니까.”
“누구에게요?”
“성경에 원수를 용서하라고 쓰여 있잖아요.”
“그 구절을 그분에게 전해달라는 겁니까?”
“그런 뜻은 아니오.”
“그러면 지금은 용서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습니다.”
최 목사는 반송 확인서 중 가장 최근 것을 가리켰다.
“수취 거절이 일곱 번이면 전달 의사를 확인할 자료는 충분해 보입니다.”
“그 사람은 화가 나서 그러는 겁니다.”
“화가 풀릴 때까지 계속 보내실 겁니까?”
“언젠가는 내 진심을—”
정호가 말을 멈췄다.
진심.
반성문과 사과문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였다. 진심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마음을 증명하려고 꺼내지만, 상대에게 그것을 알아봐 달라는 요청이 되기도 했다.
“받아달라는 게 아닙니다.”
정호가 말을 바꿨다.
“그냥 내가 줄 수 있는 걸 주려는 겁니다.”
“주는 행위에는 받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최 목사가 말했다.
“그 사람이 받지 않겠다고 하면, 주고 싶다는 마음만 남습니다.”
정호는 반송 확인서를 한 장씩 겹쳤다. 순서가 맞지 않아 몇 번 다시 정리했다.
“그럼 교회에 그냥 헌금하면 됩니까?”
“일반헌금이나 지정된 공익기금에 내는 건 가능합니다. 절차를 안내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 돕는 데 쓰면요?”
“공식적인 피해지원단체가 있고, 교정기관을 통한 기부 절차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이 은희 가족한테는 안 가고요?”
“특정 유족에게 전달하는 조건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 죗값하고 상관없는 돈이 되잖습니까.”
최 목사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돈을 어디에 쓸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선택이 무엇을 갚았는지는 본인이 정할 수 없고요.”
정호는 웃음 비슷한 숨을 냈다.
“하나님은 갚았다고 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하나님 대신 영수증을 써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 말에 정호는 더 묻지 않았다.
상담실의 십자가는 지난번과 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다. 나무 표면에 작은 흠집이 있었고 받침대 한쪽이 들떠 있었다. 십자가는 돈의 수취인을 정하지 않았다.
최 목사가 내게 물었다.
“한재호 씨는 왜 같이 오셨습니까?”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증언하셨습니까?”
“반송됐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것 말고 하실 말씀 있습니까?”
나는 박미영 측에 녹음과 메일을 공개하는 데 동의한 일을 떠올렸다. 내가 먼저 협조했다고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 선택을 보관하고 있었다. 언젠가 가석방 심사에서 피해 회복 노력으로 쓸 수 있을지 계산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정호는 새 송금신청서를 탁자 위에 놓았다. 수취인 칸과 사유란은 비어 있었다.
“일반 피해지원기금으로 보내면 신청서는 어떻게 씁니까?”
그가 물었다.
최 목사는 상담실 서랍에서 안내문을 꺼냈다. 등록된 단체인지 확인하고, 영치금 출금신청을 내고, 기관 심사를 거쳐 송금하는 절차였다. 단체가 후원자 이름을 공개하는지도 선택할 수 있었다.
“익명으로 할 수 있습니까?”
“단체에는 회계상 송금자 정보가 필요할 수 있지만 외부 공개는 하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습니다.”
“은희 이름으로는요?”
“그 이름을 사용할 권한이 있는지 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단체에 이름을 알리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정호는 안내문을 읽었다.
“오늘 신청하실 겁니까?”
최 목사가 물었다.
“아니오.”
정호는 반송 확인서와 빈 신청서를 성경 사이에 넣었다.
“왜요?”
내가 물었다.
“아직은 그 돈이 다른 데 가면 빼앗기는 것 같아.”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누구한테서요?”
“은희한테서인지, 나한테서인지 모르겠네.”
최 목사는 기부를 권하지 않았다. 신청 마감도 정해주지 않았다. 정호의 영치금은 그대로 남았다.
“안 보내면 내가 그 돈을 쓰게 됩니다.”
정호가 말했다.
“비누 사고, 양말 사고, 아프면 필요한 거 사고. 그러다 없어지겠죠.”
“그것도 본인 돈을 쓰는 방식입니다.”
최 목사가 말했다.
“은희 죽이고 내가 편하게 쓰는 돈이 되잖소.”
“그 돈을 불편하게 써야 한다는 규칙은 누가 정했습니까?”
“내가 정했지.”
정호는 바로 대답했다.
“그러면 그 규칙은 은희 씨 유족이 요구한 게 아니군요.”
정호의 손이 성경 표지를 문질렀다. 표지를 붙인 투명테이프가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요구하지 않았다고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잖소.”
“맞습니다. 다만 무엇을 할지는 상대의 거절을 포함해서 정해야 합니다.”
최 목사는 일반 피해지원기금 안내문과 영치금 사용내역 확인 방법을 함께 주었다. 기부하거나 보유하거나 필요한 데 쓰는 선택지가 모두 종이 한 장에 나란히 놓였다.
정호는 어느 칸에도 표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 망설임을 비겁하다고 생각했다가, 곧 마음을 고쳤다. 돈을 빨리 내는 것보다 돈이 무엇을 대신하게 되는지 결정하지 못한 채 멈추는 편이 정확할 수 있었다. 나도 자료 공개 동의서에 서명하자마자 책임을 실천했다고 이름 붙이고 싶었다.
상담실을 나오는 길에 정호는 반송 확인서를 성경 깊숙이 넣었다. 종이 끝이 조금 튀어나와 내가 안으로 밀어주려 했지만, 손을 대기 전에 물었다.
“넣어드릴까요?”
“그대로 둬.”
그는 튀어나온 종이를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았다.
의료동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을 때 정호는 밥을 남기지 않았다. 서진은 식사량을 확인하고 저녁 약을 평소대로 처방 준비했다. 어제 금식 이야기는 다시 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교정교육 담당자가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발신인은 서기현이었다.
“가석방 준비 관련 추가자료입니다.”
나도윤이 말했다.
봉투 안에는 `피해 회복 및 책임 실천 계획서`라는 양식과 회복적 대화 프로그램 안내문이 들어 있었다.
안내문 첫 줄에는 굵은 글씨가 있었다.
본 프로그램은 피해자 또는 유족의 참여 의사가 확인된 경우에만 진행되며, 참여를 요청받은 상대방에게 응답·면담·용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 아래에는 수형자의 참여 목적을 쓰는 칸이 있었다.
나는 가석방 심사자료라는 작은 표시를 먼저 보았다.
그다음에야 피해자 참여 의사가 필요하다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제출 기한은 열흘 뒤였다.
정호가 내 손의 안내문을 보았다.
“자네도 누군가한테 돈 보내려고?”
“아닙니다.”
나는 참여 목적 칸을 가렸다.
아직 쓰지 않은 문장이었지만, 벌써 좋은 답을 만들기 시작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