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은희의 기일 식판

에피소드 21 / 50

정호는 식판 대신 복약거부 확인서를 받았다.

윤서진은 저녁 배식이 끝나기 전에 담당 교도관과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한 손에는 약봉지, 다른 손에는 얇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

“식사를 안 하시면 저녁 소염진통제는 보류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루 안 먹는다고 큰일 안 납니다.”

정호는 식은 밥을 보지 않았다.

“큰일 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공복에 드시면 위장 출혈 위험이 커질 수 있고, 약을 안 드시면 밤에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겁니다.”

“그럼 약도 안 먹지.”

“본인 선택입니다. 설명을 들었다는 확인은 남겨야 하고요.”

서진은 종이를 침대 옆 탁자에 놓았다.

정호가 물었다.

“서명하면 금식해도 됩니까?”

“허락하는 서류가 아닙니다. 식사와 약을 거부했다는 기록입니다. 내일까지 계속하시면 의사 진료를 요청하고 상태를 더 자주 확인할 겁니다.”

“기도 때문에 밥 안 먹는 것도 병입니까?”

“금식 이유는 제가 진단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혈압계를 준비했다.

“팔 내주세요.”

정호는 마지못해 소매를 걷었다. 커프가 부풀어 오르는 동안 그는 눈을 감았다. 기도하는 것인지 압박을 참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혈압은 평소보다 조금 높았고 맥박은 정상이었다. 서진은 수치를 말하고 기록했다. 수치에는 기일도, 죄책감도 없었다.

“물은 드셨습니까?”

“아침에.”

“금식하고 탈수는 다른 문제예요. 물은 드세요.”

“성경에서는—”

“종교상 금식 범위를 제가 정하지 않습니다. 의료적으로 필요한 설명만 합니다.”

정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내 침대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녹음파일을 듣고 돌아온 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박진수의 실제 목소리와 붕괴 전 금속음이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서준호가 멈춘 뒤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끝까지 들으면 내가 피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고함과 무전, 구조물이 무너지는 소리를 견디는 일이 박진수와 오광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처럼 느껴졌다.

그 소리를 듣는다고 그들에게 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호의 굶음과 다르지 않을 수 있었다.

“왜 오늘입니까?”

서진이 물었다.

“말했잖습니까. 은희가 죽은 날이오.”

“매년 금식하셨어요?”

정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 들어온 뒤로는.”

“작년 기록에는 저녁 식사하셨습니다.”

“아침하고 점심을 안 먹었어.”

“저녁은 왜 드셨습니까?”

“약 먹으라고 해서.”

서진은 작년 기록을 더 따지지 않았다.

“올해도 같은 방법이 가능합니다. 식사를 조금 하고 약을 드시거나, 약을 보류하고 상태 관찰을 받으세요. 금식의 의미는 본인이 판단하십시오.”

그녀는 선택지를 다시 말했지만 정답을 주지 않았다.

정호가 확인서를 집어 들었다. 안경을 쓰지 않아 글씨를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여기 서명하면 내가 치료를 거부한 사람이 되는 거요?”

“오늘 저녁 식사와 약을 거부한 기록이 됩니다.”

“가석방 심사에도 들어갑니까?”

정호의 형기는 가석방이라는 말을 기대하기 어려울 만큼 길었다. 그래도 그는 물었다.

“의료기록은 필요한 범위에서 처우 판단에 참고될 수 있습니다. 제가 심사 영향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정호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굶는 것도 남한테 보여주는 일이 되는군.”

“여기서는 식사량도 기록하니까요.”

“기록 안 하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그는 식판을 자기 쪽으로 조금 당겼다. 밥알이 굳어 숟가락에 한 덩어리로 떠졌다. 한 입을 먹고 오래 씹었다.

“다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약 복용할 만큼 드시고, 밤에 통증이 심해지면 호출하세요.”

서진은 물컵을 채워주지 않았다. 정호가 직접 세면대에서 받아오려 하자 나도윤이 물병을 건넸다. 정호는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받았다.

밥 세 숟가락과 국 두 모금 뒤 정호는 약을 삼켰다.

그의 금식은 끝났지만 은희의 기일은 끝나지 않았다. 시계는 아직 저녁 여섯 시를 지나고 있었다.

“확인서에는 어떻게 씁니까?”

정호가 물었다.

“저녁 식사 일부 섭취, 약 복용으로 기록합니다.”

“금식하려 했다는 건요?”

“사유란에 본인이 원하시면 적을 수 있습니다.”

“적어주시오.”

서진이 펜을 들었다.

“뭐라고요?”

정호는 잠시 생각했다.

“아내 기일이라 금식하려 했으나 약 복용 때문에 일부 먹었다.”

“그대로 적겠습니다.”

문장은 그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금식에 성공한 사람도, 치료에 순응한 사람도 아니었다. 하려던 일과 바꾼 행동이 함께 남았다.

서진이 나간 뒤 정호는 남은 식판을 문 쪽으로 밀었다. 나는 그가 후회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자네는 오늘 뭘 들었나?”

그가 먼저 물었다.

“사고 녹음입니다.”

“죽는 소리도 있었나?”

“그 전까지만 들었습니다.”

“왜 멈췄는데?”

“변호사가 법률 판단에 필요한 건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자네는 더 듣고 싶고?”

“네.”

“왜?”

나는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제가 한 일을 피하지 않으려고요.”

정호가 식판의 국그릇을 내려다봤다.

“들으면 안 피한 게 되나?”

“아저씨는 굶으면 아내를 기억한 게 됩니까?”

말이 날카롭게 나갔다.

정호는 화내지 않았다.

“아니.”

그가 말했다.

“굶으면 내가 잊고 편하게 산 날이 없었던 것 같아지지.”

“실제로는 있었고요?”

“많았지.”

그는 뜻밖에 웃었다. 즐거운 웃음은 아니었다.

“은희 죽인 다음 날에도 배고팠어. 경찰서에서 준 빵을 다 먹었네. 먹고 나서 토했지만 배고파서 먹은 건 맞아. 처음 몇 년은 그게 너무 끔찍했어. 사람 죽여놓고 배가 고프다는 게.”

정호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래서 기일에는 안 먹었어. 적어도 그날만큼은 몸도 내가 한 일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몸이 압니까?”

“배고픈 건 알겠지.”

“은희 씨가 죽었다는 건 모르고요.”

“그래.”

정호는 빈 약봉지를 접었다.

“사람은 자기 몸을 증인으로 세우고 싶을 때가 있어. 흉터가 있으면 반성한 것 같고, 아프면 갚은 것 같고.”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매년 했습니까?”

“생각 안다고 안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오른쪽 어깨에 남은 냉찜질 팩의 차가움을 느꼈다. 어깨가 아픈 것과 사고 책임은 관계가 없었다. 하반신이 마비된 것도 내가 치른 형벌의 정확한 양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내 몸을 보고 이미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했고, 다른 날은 더 망가져야 맞다고 생각했다.

두 생각 모두 몸을 장부로 사용했다.

정호가 성경을 열었다. 책 사이에서 얇은 종이들이 떨어졌다. 그는 급히 주우려 했지만 허리를 숙이지 못했다.

“그대로 계세요.”

나는 집게를 꺼냈다가 서진의 지시를 떠올렸다. 오른쪽 어깨 사용을 줄이라고 했다.

“나도윤 교도관님.”

내가 문 쪽을 불렀다.

그가 들어와 바닥의 종이를 주웠다. 정호가 직접 받으려고 손을 내밀자 나도윤은 먼저 물었다.

“이정호 씨 물건 맞습니까?”

“맞습니다.”

종이는 우편환 반송 확인서였다.

한 장이 아니었다. 해가 다른 확인서가 일곱 장 있었다. 수취인 이름은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검은색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송금액과 반송 사유는 보였다.

삼만 원.

오만 원.

십만 원.

수취 거절.

주소 불명.

수취 거절.

“이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정호는 확인서를 성경 안에 다시 넣었다.

“은희 동생한테 보낸 돈이네.”

“왜 보냈습니까?”

“내가 여기서 번 돈이라도 주려고.”

“받지 않았네요.”

“처음 한 번은 받았어. 누구 돈인지 모르고.”

그는 첫 확인서를 골라 보여주었다. 반송 표시가 없는 오래된 영수증이었다.

“나중에 내가 보낸 걸 알고 돌려줬지. 그 뒤로는 이름 보면 안 받아.”

“그런데 계속 보냈습니까?”

“매년은 아니고.”

일곱 장이면 충분히 반복이었다.

“왜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상대는 안 받겠다고 했잖습니까.”

“돈은 은희 몫이기도 하잖아.”

“누가 정했습니까?”

정호의 얼굴이 굳었다.

“자네는 남의 일에 말이 쉽네.”

“아저씨가 보여줬잖습니까.”

“떨어진 걸 봤지.”

우리는 잠시 서로를 보지 않았다.

소등 방송이 나오기 전 정호가 서랍에서 새 송금신청서를 꺼냈다. 수취인 칸은 비어 있었다.

“이번에는 교회 이름으로 보내면 받을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목사님한테 부탁하려고요?”

“봉사기금으로 보내고, 거기서 전달하면 내 이름은 안 나가겠지.”

“수취 거절을 피해서 보내는 겁니까?”

“돈에 죄가 있나?”

정호는 신청서를 내 쪽으로 밀었다.

“자네 글씨가 나보다 낫잖아. 사유란만 써주게.”

나는 종이를 받지 않았다.

식은 밥을 먹는 것은 정호 몸에 관한 선택이었다.

거절한 사람에게 다른 이름으로 돈을 보내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경계를 넘는 일이었다.

두 일은 같은 기일에 놓여 있었지만 같지 않았다.

신청서의 빈 수취인 칸이 우리 사이에 남았다.

정호는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녹음의 마지막 소리를 듣고 싶었던 이유를 다시 생각했다. 듣지 않으면 피하는 것 같았고, 들으면 견딘 만큼 갚는 것 같았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내 고통의 방식으로 완성할 수는 없었다.

나는 집게로 신청서를 정호 쪽에 밀어놓았다. 어깨를 쓰지 않도록 짧게 움직였다.

“오늘은 안 쓰겠습니다.”

정호는 종이를 거두지 않았다.

소등 뒤에도 흰 신청서는 어둠 속에서 식판이 있던 자리만큼 희미하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