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8 / 50
기준을 넘은 값은 한 칸이었다.
서준호가 가져온 출력물에서 그 칸만 연한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원본 파일에는 붉은색이었지만 흑백 출력이라 색은 사라졌다고 했다.
측정지점 3-B.
수평변위 10.3밀리미터.
관리기준 10.0밀리미터.
판정 초과.
다른 여덟 지점은 6.8에서 9.4 사이였다. 3-B 바로 아래 행에는 같은 지점을 십칠 분 뒤 다시 측정한 값이 있었다.
9.2밀리미터.
판정 기준 이내.
“어느 값이 맞습니까?”
내가 물었다.
“파일만 보고는 모릅니다.”
“재측정값이 더 정확하니까 최종 보고에 쓴 것 아닙니까?”
“그렇게 주장한 기록은 있습니다.”
서준호는 표 아래 주석을 가리켰다.
3-B 1차 측정 시 센서 고정부 흔들림 관찰. 측정오차 가능성 있음. 고정부 재설치 후 반복 측정 필요. 원인 확인 전 해당 구간 추가하중 보류 권고.
작성자는 김도현이었다.
오차 가능성이 있다는 문장과 하중을 보류하라는 문장이 같은 셀 안에 있었다. 나는 전자를 먼저 읽었다.
“센서가 흔들렸군요.”
“흔들림이 관찰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니까 첫 값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거잖습니까.”
“실제 구조물이 움직여 센서 고정부가 흔들렸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검토 의견이 붙어 있습니다.”
그는 두 번째 장을 내밀었다. 시설팀 내부 주석이었다.
센서 설치 불량인지 접합부 변형에 따른 이탈인지 현장사진만으로 판단 곤란. 동일 하중조건에서 재설치 후 연속 측정 필요.
“연속 측정은 했습니까?”
“최종 보고서에는 세 번 측정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9.2, 9.1, 9.2.”
“그럼 첫 값이 이상치였네요.”
“하중조건이 같았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측정표에는 같다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적재장비 위치와 작업인원, 주변 진동까지 같은지는 별도 기록을 봐야 합니다.”
나는 다시 첫 장을 보았다.
10.3과 9.2 사이에는 1.1밀리미터가 있었다. 손톱 두께 정도의 차이였다. 법정에서는 그 차이가 기준 안과 밖을 나눌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센서 고정 하나, 지게차 위치 하나, 온도나 진동 하나로 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초과라는 글자는 한 번 생겼다.
최종 보고서에는 그 행이 없었다.
“삭제한 겁니까?”
“최종본에는 재측정 세 값만 들어갔습니다.”
“초기값을 제외한 이유도 적혀 있습니까?”
“센서 설치 불량 추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추정인데 제외했군요.”
“네.”
그 대답은 내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회사는 기준을 넘은 값을 알고 있었다. 안전팀은 확인 전 하중 보류를 권고했다. 최종 보고에서는 낮은 값만 남겼다. 민석의 말과 맞았다.
“이걸 언론에 공개해야 합니다.”
“아직은 안 됩니다.”
“무엇을 더 확인해야 합니까?”
“측정자 진술, 장비 교정기록, 원본 생성시각, 수정 이력, 당시 하중조건, 파일 전달 경로.”
“원본 파일이 있잖습니까.”
“엑셀 한 장이 구조물 상태를 스스로 측정한 게 아닙니다.”
서준호는 원본 파일의 속성표를 보여주었다. 최초 생성은 사고 전날 오후 두 시 십일 분, 마지막 수정은 두 시 삼십사 분이었다. 작성자 계정은 김도현, 마지막 저장 계정은 시설팀 공용계정이었다.
“누가 행을 지웠는지도 알 수 있습니까?”
“이 파일에서는 초과 행이 남아 있습니다. 최종 보고 파일은 별도입니다. 두 파일 사이 작업이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도 숨긴 건 맞잖습니까.”
“제외한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은폐라는 평가는 이유와 절차를 더 봐야 합니다.”
그는 자꾸 단어를 늦췄다. 나는 빨리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조작. 은폐. 희생양.
단어가 확정되면 내 자리가 바뀔 것 같았다.
“유족 쪽에서도 이 자료 공개를 요청했습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누구요?”
“박미영 씨 대리인입니다.”
그 이름을 듣자 손에 든 종이가 무거워졌다.
박미영은 오광철의 어머니였다. 빈소에서 나를 보지 않았고, 재판 과정에서도 내 사과문을 받지 않았다. 사고 뒤 회사가 유족에게 전달한 물품목록과 보상서류의 오류를 여러 번 고쳤다고 들었다.
“저희한테 요청한 겁니까?”
“외장하드 존재가 기사화된 건 아닙니다. 민석 씨가 제출하겠다고 한 원자료와 회사 내부파일 전반에 대해 보존·공개를 요구한 겁니다. 저희가 확보한 자료가 관련된다는 사실은 아직 알리지 않았습니다.”
“같이 대응하면 되겠네요.”
서준호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목적이 다릅니다.”
“회사 기록을 밝히려는 건 같잖습니까.”
“박미영 씨 쪽은 사고보고서에서 오광철 씨가 위험을 알고도 자발적으로 작업했다는 문구를 삭제하거나 근거를 명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 문구가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재호 씨 형량이나 재심을 위해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회사 책임이 드러납니다.”
“그 결과를 한재호 씨가 이용할 수는 있습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이용하는 것과 같은 편이라고 말하는 건 다릅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박미영이 원하는 것은 나 대신 회사를 처벌해달라는 일이 아니었다. 오광철이 위험을 알면서도 돈을 벌려고 현장에 남았다는 회사 문장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최종 사고보고서의 해당 문구는 기억났다.
작업자들은 임시보강 상태와 작업상 위험요인을 사전 공유받았으며, 숙련도와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에 참여함.
나는 병원에서 그 문장을 읽었다. `자발적으로`라는 단어가 초안에 있었고, 법무팀과 협의해 `작업에 참여함`으로 바꾼 것도 기억났다. 자발적이라는 표현은 책임 전가처럼 보일 수 있다고 내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작업자를 보호한 수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위험을 사전 공유받았다는 전제는 그대로 두었다.
“오광철 씨가 위험을 공유받았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안전교육 서명부와 작업 전 회의 참석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위험을 얼마나 설명했는지는 분명하지 않고요.”
“제가 식당에서 들었을 때는 야간작업 확정 여부만 물었습니다.”
“그 진술도 기록해둘 수 있습니다.”
“박미영 씨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안 됩니다. 원하지 않는 연락일 수 있고, 한재호 씨 기억만으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입니다.”
나는 또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오광철이 위험을 알고도 남았다는 회사 주장에 반대한다고 말하면, 박미영은 내가 아들을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내가 회사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그래서 말하지 않기로 해야 했다.
“유족 측 요청에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자료 보존 사실을 공개할지 먼저 결정해야 합니다. 공개하면 회사가 소유권 분쟁을 확대할 수 있고,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하는 절차도 생깁니다.”
“숨길 이유는 없습니다.”
“한재호 씨에게 불리한 자료도 포함해서요?”
“그건 이미 검색하기로 했잖습니까.”
“유족 측에 제공하는 것도 동의합니까?”
나는 잠시 멈췄다.
내 메일함 전체에는 가족 이야기나 병원 기록이 아니라 회사 업무가 있었다. 그래도 공개 범위를 내가 통제하고 싶었다. 회사의 잘못은 보여주고, 내 판단에 관한 것은 변호사와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사고 관련 자료라면 동의합니다. 개인정보는 제외하고요.”
“서면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그는 유족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 검토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관련기관 또는 양측 대리인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박미영이 나와 접촉할 필요는 없었다.
“제 동의 사실을 알립니까?”
“필요한 범위에서만요.”
“제가 공개에 협조했다고—”
말이 끝나기 전에 스스로 들었다.
협조했다는 평가를 박미영에게 받고 싶었다.
“그 말은 빼십시오.”
내가 말했다.
서준호는 아무 표정 없이 메모했다.
접견을 마치기 전에 나는 압박 완화를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종이가 무릎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10.3이 적힌 첫 장이었다.
교도관이 주우려 하자 내가 집게를 꺼냈다. 종이 끝을 집으려는데 오른쪽 어깨가 당겨 한 번 놓쳤다. 두 번째에는 집게가 표 가운데를 눌렀다.
10.3 옆에 집게 자국이 났다.
“자료 훼손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서준호가 종이를 받아 살폈다.
“사본입니다. 원본에는 영향 없습니다.”
그 말에 안도했다.
원본은 내가 떨어뜨릴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의료동으로 돌아온 뒤 서진이 오른쪽 어깨 상태를 확인했다. 팔을 어느 각도까지 들면 당기는지 묻고, 오늘은 집게 사용을 줄이라고 했다.
“종이를 주워야 했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잖아요.”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과 오늘 해야 하는 건 다릅니다.”
그녀는 냉찜질 팩을 수건에 싸서 건넸다. 나는 왼손으로 어깨에 눌렀다.
저녁 점호 뒤 서준호에게서 한 장이 더 도착했다. 독립 검토자가 초기계측 메일과 같은 시간대의 관련 항목을 추가로 찾았다는 통지였다.
메일 발송 뒤 여덟 분 후, 내 계정에서 김도현에게 보낸 짧은 회신이 있었다.
제목은 `RE: 3구간 초기계측 자료 및 재측정 요청`.
본문 크기 94바이트.
첨부 없음.
내용은 다음 열람 협의 전까지 비공개였다.
나는 그 메일을 보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열람기록은 누군가 내 계정으로 파일을 열었다는 표시일 수 있었다.
회신은 달랐다.
누군가 내 계정으로 답을 썼다.
94바이트면 긴 설명은 아니었다.
짧은 문장은 빠져나갈 자리가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