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검색어에 내 이름을 넣었다

에피소드 17 / 50

첫 번째 검색어는 장석호였다.

나는 열람범위 협의서의 빈칸에 그의 이름을 쓰고, 다음 줄에 공기 단축이라고 적었다. 세 번째는 최초 측정값, 네 번째는 원본, 다섯 번째는 보고 누락이었다.

서준호가 내 쪽으로 몸을 숙여 목록을 읽었다.

“한재호는 왜 없습니까?”

“제 메일함 전체가 대상이잖습니까.”

“전체를 열지 않으려고 검색어를 정하는 겁니다.”

“제가 보낸 메일은 장석호나 공기 단축으로도 나올 겁니다.”

“안 나오는 건 안 봐도 된다는 뜻입니까?”

접견실 탁자 위에는 회사와 합의한 임시 열람안이 놓여 있었다. 회사가 지정한 변호사와 서준호 측 디지털분석 담당자가 함께 검색을 실행하고, 제목과 송수신 시각,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 첨부파일 이름까지만 먼저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내용 열람이 필요한 문서는 양측이 표시해 별도로 협의하기로 했다.

회사는 내 이름을 검색어에 넣자고 했다.

한재호.

작업 승인.

진행 지시.

사용 중지.

안전 우려.

나는 회사가 자기 책임을 줄이기 위한 단어를 골랐다고 생각했다. 내가 적은 목록도 같은 방식이었다.

“회사 검색어는 너무 넓습니다.”

내가 말했다.

“‘진행’만 넣으면 공정 진행, 회의 진행, 검토 진행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기간과 폴더를 제한합니다. 사고 전 한 달부터 사고 뒤 일주일까지, 서부물류센터 폴더와 한재호 씨 메일함.”

“회사도 장석호 이름을 받아들였습니까?”

“네.”

“공기 단축은요?”

“일정, 준공, 지체상금과 함께 넣기로 했습니다.”

그 단어들은 회사에 불리해 보였다. 내 이름은 내게 불리해 보였다. 양쪽이 서로 불리한 단어를 교환하면 공정한 절차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료는 거래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검색어를 빼도 파일은 외장하드 안에 남아 있었다.

“‘한재호 승인’을 넣으십시오.”

내가 말했다.

서준호가 펜을 들었다.

“‘보류’도요.”

“회사 안에 있습니다.”

“제 목록에도 넣겠습니다.”

같은 단어를 어느 쪽 목록에 적느냐가 중요해 보였다. 내가 먼저 찾았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재측정’, ‘허용기준’, 숫자 1.12와 0.91.”

“숫자는 형식이 여러 가지일 수 있어 기본 검색 뒤 다시 정하죠.”

“0.92도 넣어주세요.”

“그 값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사고 전날 현장 실측이 허용치의 92퍼센트였습니다.”

서준호는 숫자 옆에 출처 확인이라고 적었다.

나는 마지막 줄에 박진수와 김도현의 이름을 썼다. 오광철과 최민석도 적으려다가 멈췄다. 오광철은 내게 안전 문제를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 민석의 이름을 넣으면 그가 보낸 말과 자료가 나올 수 있었지만, 회사가 그의 개인정보를 이유로 열람을 더 막을 수도 있었다.

“최민석도 넣어야 합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본인이 공개한 증언과 연결되는 업무자료에 한정한다고 명시하겠습니다.”

그는 내가 망설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검색은 그날 오후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결과표는 다음 날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내용을 하나도 못 보는데 무엇을 판단합니까?”

“먼저 존재를 확인합니다. 회사가 이미 재판에 낸 자료인지, 새로운 파일인지, 개인정보 때문에 제외해야 하는지 나눠야 합니다.”

“제 메일인데 제가 못 봅니까?”

“회사 업무계정이었고 다른 사람 정보가 섞여 있습니다. 본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개인 열람과 소송 증거로 쓰는 열람도 다르고요.”

“기억을 확인하면 안 됩니까?”

“자료를 보기 전에 현재 기억을 먼저 적어두는 게 좋습니다.”

서준호는 별도 용지를 건넸다.

“나중에 파일을 본 뒤 기억이 바뀌면 원래 무엇을 기억했는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빈 종이를 보았다.

기억나는 이메일 제목.

보낸 사람.

받은 시각.

첨부파일.

내가 한 답변.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거의 없었다. 김도현이 사고 전날 밤 보낸 `3구간 연결부 추가확인 필요` 메일은 기억했다. 자정이 조금 넘어 읽었고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사고 당일 아침 장석호에게 받은 전화도 기억했다. 일정은 지켜야 한다. 최종 결정은 현장에서 해.

그러나 메일로도 같은 말을 받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종이에 적었다.

장석호—일정 유지 취지 메일 있었을 가능성. 정확한 문구 기억 안 남.

김도현—보강상태 확인 전 집중하중 보류 권고. 사고 전날 밤 메일 열람. 답장 안 함.

조병철—점검업체 지연 시 작업 여부 문의. 내가 준비작업만 지시.

마지막 문장을 쓰고 멈췄다.

준비작업만.

사고 뒤에도 나는 그렇게 진술했다. 점검 결과 전에는 본작업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력과 장비를 대기시키고 자동화설비 반입 시간을 유지했다. 준비는 작업이 아니었지만 작업하지 않기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다.

“사고 당일 오후 최종 승인 메일은 기억납니까?”

서준호가 물었다.

“전화로 했습니다.”

“메일이나 메신저로 확인을 남기지 않았고요?”

“회의 뒤 공정표를 공유했을 수 있습니다.”

“기억나는 대로 적으세요.”

나는 `공정표 공유 가능성, 문구 기억 안 남`이라고 썼다.

회사에서 메일을 보낼 때 나는 항상 제목을 일정하게 붙였다. `[확인]`, `[긴급]`, `[공유]`, `[승인요청]`. 제목만 봐도 상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했다.

내가 보낸 메일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사실이 불편했다.

오십 분이 지나자 오른쪽 어깨가 묵직해졌다. 나는 서준호에게 잠시 쉬겠다고 말하고 팔걸이를 짚었다. 몸을 들어 방석 압박을 풀려는데 오른팔에 힘이 충분히 들어가지 않았다. 엉덩이가 완전히 뜨지 않았다.

“도움 부를까요?”

“앞으로 숙이는 방식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탁자 모서리를 잡고 상체를 천천히 앞으로 기울였다. 한쪽씩 체중을 옮겼다. 접견실 교도관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내가 고개를 저으니 다시 앉았다.

몸을 관리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니었다. 할 수 없는 동작을 억지로 반복하는 것보다 다른 방법을 쓰는 편이 정확했다.

다시 앉았을 때 서준호가 물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검색어만 마무리하죠.”

나는 협의서 마지막 칸에 직접 적었다.

한재호 지시.

한재호 승인.

진행 준비.

보류 권고.

네 단어를 넣고 서명했다.

다음 날 오후 검색결과 표본이 왔다. 정식 접견을 기다리면 이틀이 더 걸려 서준호가 허용된 범위의 문서 세 건을 팩스로 보냈다. 제목과 송수신정보, 양측이 동의한 일부 문장만 공개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장석호가 사고 당일 오전 여덟 시 칠 분에 보낸 메일이었다.

제목: 서부 준공일정 관리.

수신: 한재호 외 시설팀 3명.

본문 공개 부분:

전면 중단으로 일정 차질 발생 시 별도 경영진 보고가 필요합니다. 현장 조건을 확인하여 준공 기준일에 영향 없도록 관리 바랍니다.

나는 ‘전면 중단’과 ‘준공 기준일에 영향 없도록’에 밑줄을 그었다.

“지시였군.”

정호가 건너편 침대에서 말했다.

“보지 마십시오.”

“소리 내서 읽었잖아.”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장석호는 작업을 강행하라고 직접 쓰지 않았다. 현장 조건을 확인하라고 했다. 동시에 중단하면 경영진 보고가 필요하고 일정에 영향이 없어야 한다고 썼다. 판단을 내게 주면서 허용되는 결과를 좁혔다.

회사는 이것을 현장 자율 판단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나는 압박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두 번째 문서는 내가 오전 여덟 시 이십사 분에 보낸 답장이었다.

제목: RE: 서부 준공일정 관리.

본문 공개 부분:

현재 측정값은 허용범위 내이며 3구간 별도 확인을 병행하겠습니다. 인원 및 장비는 계획대로 준비하고 중대한 이상이 없으면 금일 16시 집중작업 진행 예정입니다.

내 문장은 장석호의 문장보다 구체적이었다.

그는 일정에 영향 없도록 관리하라고 했다.

나는 인원과 장비를 준비하고 네 시에 진행한다고 썼다.

“중대한 이상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했나?”

정호가 물었다.

“읽지 말라니까요.”

“이번에는 안 읽었어. 자네가 아까 말했잖아.”

나는 종이를 접었다. 중대한이라는 단어를 내가 넣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내 기억에서는 `이상 없을 시`라고 작업계획표를 보냈고, 중대한으로 바꿀까 생각하다 원래 문장을 보낸 것으로 떠올렸다.

이 메일은 다른 시각의 답장이었다. 작업계획표와 별개일 수 있었다. 또는 내 기억이 두 문서를 섞었을 수 있었다.

기억 장부에 적어야 할 차이였다.

세 번째는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메일목록이었다.

보낸 사람: 김도현.

받은 사람: 한재호, 조병철.

사고 전날 오후 두 시 삼십팔 분.

제목: 3구간 초기계측 자료 및 재측정 요청.

첨부: `3구간_초기계측_원본.xlsx`.

열람기록에는 내 업무계정으로 오후 두 시 사십일 분에 열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이 메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은 밤 열한 시 사십팔 분에 온 추가확인 메일이었다. 허용기준 이내지만 보강 상태를 확인하고 집중하중을 보류하라는 내용.

오후 두 시 사십일 분의 원본 파일은 기억에 없었다.

“열람기록이 확실합니까?”

팩스 아래에는 독립 검토자 주석이 있었다.

서버 로그상 계정 열람 표시. 자동 미리보기 또는 대리접속 여부는 추가 확인 필요.

내 계정으로 열렸다는 것과 내가 읽었다는 것은 아직 같지 않았다.

나는 그 차이에 즉시 매달렸다.

그날 오후 내 노트북을 누가 사용했는지, 메일 프로그램이 첨부를 자동으로 내려받았는지, 정다은이 내 계정으로 자료를 확인한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파일 안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생각했다.

첨부파일 내용은 열람 보류 상태였다.

첫 장에는 작은 글씨로 다음 협의일이 적혀 있었다.

초기계측 원본 열람 여부 결정.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회사 책임을 찾으려고 검색어에 내 이름을 넣었다.

내 이름이 먼저 찾아낸 것은 내가 열었다는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