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3 / 50
개인물품 검사에서 내 종이는 여섯 장 초과였다.
나도윤은 아침 점호 뒤 투명 보관함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뚜껑에는 수용번호 4271이 검은 유성펜으로 적혀 있었다. 편지와 사진, 재판서류, 가석방 자료가 칸막이 없이 섞여 있었다.
“법률서류는 별도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편지하고 사진은 합쳐서 스무 장까지입니다. 지금 스물여섯 장이고요.”
“지난번 검사 때는 문제없었습니다.”
“지난달에 편지 두 통하고 사진 네 장이 들어왔습니다.”
“보관함에 다 들어가잖습니까.”
“들어가는 양으로 정하는 규정이 아닙니다.”
그 말은 책상 높이나 문턱과 비슷했다. 내 물건이 실제로 자리를 차지하는 정도와 허용되는 범위는 같지 않았다.
“초과한 건 돌려보낼 수 있습니까?”
“등록된 가족이나 대리인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폐기도 가능하고요. 오늘 오후까지 정리해 주세요.”
수진에게는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유리에게도 물건을 보낼 수 없었다. 서준호에게 가족사진을 맡기는 것은 가능했지만, 법률서류도 아닌 것을 변호사 사무실에 보관해달라고 해야 했다.
“결정을 못 하면요?”
“최근 반입분부터 임시보관합니다. 기한 지나면 지정 절차대로 처리하고요.”
“최근 것은 유리가 보낸 겁니다.”
“그래서 직접 고르시라는 겁니다.”
나도윤은 검사표에 오후 세 시라고 적었다.
그가 나간 뒤 나는 보관함을 무릎 위로 옮겼다. 전날 접견 때문에 오른쪽 어깨가 뻐근했다. 상자를 들 정도는 되었지만 침대로 옮길 때 팔 안쪽이 당겼다. 나는 정호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부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버릴지 고르는 동안 그의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다.
정호는 알아서 공용휴게실로 나갔다.
나는 법률서류부터 분리했다. 판결문 사본과 감정서 일부, 서준호가 보내온 의견서에는 파란색 법률서류 띠를 둘렀다. 가석방 질문지는 법률서류가 아니었다.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은 새 종이와 민석의 인터뷰에서 옮겨 적은 두 문장이 끼워져 있었다.
그 사람만 잘못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몰랐던 것도 아니다.
그 종이는 가족 물품이 아니므로 교육자료철로 옮길 수 있었다. 종이의 이름을 바꾸면 보관할 자리가 생겼다. 회사에서 하던 일과 다르지 않았다. 비용을 투자로 바꾸고, 지연을 일정 영향으로 바꾸고, 위험보고를 참고자료로 바꾸었다.
나는 종이를 교육자료철에 넣었다.
그 행동이 비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남은 것은 스물여섯 장이었다.
유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날 찍은 사진이 있었다. 교문 앞에서 수진과 유리가 손을 잡고 서 있었고 나는 뒤에 조금 떨어져 있었다. 사진을 찍어준 사람은 장모였다. 나는 그날 오전 회의 때문에 입학식 도중 먼저 나갔다. 사진 속에서도 한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놀이공원 회전목마 앞 사진도 있었다. 내가 다섯 시간 늦게 도착한 날이었다. 유리는 토끼 귀 머리띠를 하고 있었고, 나는 자유이용권 띠가 보이도록 손목을 들고 있었다. 사진만 보면 하루 종일 함께 논 가족 같았다.
병원 재활실에서 찍은 사진에서는 수진이 내 휠체어 뒤에 서 있었다. 내 입원복은 깨끗했고 수진은 웃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직전 우리는 소변주머니를 누가 비울지를 두고 다퉜다. 간호사가 카메라를 들자 수진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그 손을 사랑의 증거로 기억했고, 수진은 나중에 그 사진을 보기 싫다고 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사진 밖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최근에 들어온 네 장은 유리가 지난 편지에 동봉한 것이었다. 학교 방송영상 동아리에서 촬영한 단편의 장면 사진 두 장, 친구들과 운동장 계단에 앉아 있는 사진 한 장, 외할머니 부엌에서 인터뷰하는 사진 한 장이었다.
단편 사진에서 유리는 화면 안에 없었다. 첫 장에는 체육관 창문과 비어 있는 의자들이 보였고, 둘째 장에는 교복 입은 학생이 운동화 끈을 묶고 있었다. 사진 뒤에 유리 글씨가 있었다.
내가 찍은 장면. 사람 얼굴보다 빈 데 찍는 게 더 재밌어.
처음 받았을 때 나는 유리 얼굴이 나온 사진부터 봤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느 아이가 유리인지 찾았고, 키가 얼마나 컸는지, 머리를 왜 잘랐는지 생각했다. 빈 의자 사진은 잘못 인화된 것처럼 취급했다.
이제 여섯 장을 빼야 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중복을 없애는 것이었다. 유리 돌잔치 사진은 비슷한 구도가 세 장이었다. 한 장만 남기면 두 장을 줄일 수 있었다. 제주도 가족여행 사진도 같은 해변에서 찍은 것이 두 장이었다.
나는 사진을 날짜순으로 늘어놓았다.
돌잔치.
첫 유치원 등원.
초등학교 입학.
놀이공원.
제주도.
학예회.
병원.
법원 가족대기실.
그 뒤로는 사진 간격이 길어졌다. 면회실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고, 수진은 유리의 일상 사진을 자주 보내지 않았다. 내 보관함 안에서 유리는 열두 살에서 열다섯 살로 갑자기 자랐다.
사진을 날짜순으로 놓으면 관계도 계속된 것처럼 보였다. 빈 구간은 종이 위에서 좁았다. 삼 년이 사진 두 장 사이의 손가락 한 마디에 들어갔다.
나는 돌잔치 사진 두 장을 폐기 쪽에 놓았다. 곧 하나를 다시 가져왔다. 첫 번째 사진에는 유리가 나를 보고 있었고, 두 번째 사진에는 수진을 보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사진을 버리면 그날 유리가 나를 보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 생각 때문에 두 번째 사진을 버리려는 자신을 알아차렸다.
나는 두 장 모두 폐기 쪽에 놓고, 정면을 보는 세 번째 사진만 남겼다.
다음으로 제주도 사진 한 장을 뺐다. 학예회 사진은 손이 오래 머물렀다. 무대 위 유리보다 내가 들고 간 꽃다발이 더 크게 나온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출장에서 돌아와 행사에 참석한 아버지라고 설명했다. 리허설에 가지 못한 일은 말하지 않았다.
사진 뒤에는 수진의 글씨로 날짜와 장소만 적혀 있었다.
나는 학예회 사진을 폐기 쪽에 놓았다.
세 장이 남았다.
병원 사진을 들었다. 수진의 손이 내 어깨 위에 있었다. 그 손이 놓인 무게를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사진을 오래 보면 기억이 생기는 것 같았다. 수진이 먼저 손을 올렸고, 촬영 뒤에도 잠시 그대로 두었다고 나는 믿어왔다.
실제로는 간호사가 가족분은 조금 가까이 서달라고 했을 수 있었다.
나는 사진을 버리지 못했다.
보관 쪽에 놓았다.
그 선택이 수진의 노동을 내 사랑의 증거로 다시 사용하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남겼다. 모든 잘못된 욕망을 발견하는 즉시 없앨 수는 없었다.
나머지는 두 장이었다.
법원 가족대기실에서 찍힌 사진은 유리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첫 변호인이 기록용으로 찍어 사건파일에 넣었다가 나중에 수진이 한 장 건네준 것이었다. 수진은 창가에 서 있었고 유리는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화면 오른쪽 끝에 휠체어 손잡이만 보였다.
가족사진이라기보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폐기 쪽에 놓았다.
한 장을 더 골라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 사진과 놀이공원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둘 다 내가 늦거나 먼저 떠난 날이었다. 하나를 버린다고 그날의 결석이 커지지는 않았고, 남긴다고 함께 있던 시간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세 시까지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서진이 피부를 확인하러 왔다. 나는 사진을 침대 위에 둔 채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녀는 사진을 치워달라고 했다. 종이 모서리가 피부에 닿을 수 있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잠깐 닿아도 긁힐 수 있어요.”
나는 사진을 봉투에 넣어 탁자 위로 옮겼다. 서진은 드레싱을 떼고 피부를 눌러 색이 돌아오는 시간을 확인했다.
“붉은 자국 없습니다.”
“어제 오래 앉았는데도요?”
“이번에는요.”
이번에는.
그 말에는 다음도 괜찮다는 보장이 없었다.
“어깨는요?”
“조금 당깁니다.”
“오늘 휠체어 이동 줄이고 냉찜질 신청하세요.”
“물건 검사가 있습니다.”
“사진 고르는 데 어깨가 필요합니까?”
“상자를 옮겨야 합니다.”
“옮겨달라고 요청하세요.”
그녀는 치료를 마치고 나갔다. 나는 호출벨을 누르지 않았다. 상자는 이미 탁자 위에 있었고, 다시 침대로 가져오지 않아도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정호가 공용휴게실에서 돌아왔다. 그는 내가 구분한 두 묶음을 보았지만 어느 쪽이 버릴 것인지 묻지 않았다.
“여섯 장 골라야 합니다.”
내가 먼저 말했다.
“내 사진은 한 장도 없네.”
“아저씨 사진을 왜 제가 보관합니까?”
“그러게.”
그는 자기 침대로 갔다.
“아저씨는 가족사진 없습니까?”
“없어.”
“버렸습니까?”
“처음 들어왔을 때 은희 사진 한 장 있었는데, 유족이 돌려달라고 했어.”
“돌려줬습니까?”
“내 사진이 아니니까.”
정호는 성경을 펼쳤다. 나는 그가 잘한 선택을 들려주려는지 의심했다. 그러나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오후 두 시 오십 분, 나는 마지막 한 장을 골랐다.
놀이공원 사진이었다.
사진 속 유리는 내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내가 늦게 왔다는 사실과, 그래도 유리가 안겼다는 사실이 함께 있었다. 나는 그 포옹을 이후의 모든 결석에 대한 면허처럼 사용했다. 유리는 결국 나를 반겼다는 증거로.
사진을 폐기 봉투에 넣자 손끝이 오래 남았다.
나도윤이 세 시에 돌아왔다. 나는 보관할 스무 장과 폐기할 여섯 장을 보여주었다.
“폐기 확인 서명하셔야 합니다.”
“파쇄합니까?”
“개인정보물로 처리합니다.”
“지금 볼 수 있습니까?”
“처리장에는 같이 못 갑니다.”
내가 버린 사진이 실제로 사라지는 장면은 볼 수 없었다. 봉투를 넘기는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도윤은 장수를 두 번 센 뒤 밀봉 스티커를 붙였다. 나는 확인란에 서명했다.
그가 봉투를 들고 나가려 할 때 불렀다.
“잠깐만요.”
나도윤이 멈췄다.
놀이공원 사진을 다시 달라고 할 수 있었다. 대신 병원 사진을 버리거나, 최근에 받은 빈 의자 사진을 빼면 됐다. 유리 얼굴도 나오지 않는 사진이었다.
나는 보관함 위에 놓인 그 사진을 보았다.
체육관의 빈 의자들 사이로 오후 빛이 길게 들어와 있었다. 유리가 무엇을 보고 그 장면을 찍었는지 나는 몰랐다. 내 기억을 증명하지 않는 사진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유리가 보고 고른 것이었다.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윤이 봉투를 가져갔다.
남은 사진을 보관함에 넣었다. 날짜순으로 정리하지 않았다. 유리의 빈 의자 사진을 맨 위에 놓았다. 그 아래에는 친구들과 찍은 최근 사진, 외할머니를 인터뷰하는 사진을 놓았다. 오래된 가족사진은 밑으로 들어갔다.
저녁에 보관함을 다시 열었을 때 나는 놀이공원 사진의 정확한 표정을 떠올리려 했다.
유리가 웃고 있었는지, 입만 벌리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사진을 버린 뒤에도 그날은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제 내가 원하는 표정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