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매달 한 통의 권리

에피소드 12 / 50

이혼조정 서류에는 빈칸보다 괄호가 많았다.

사건번호 옆에 가사라고 적혀 있었고, 당사자 이름 아래에는 혼인일과 별거 시작일이 인쇄되어 있었다. 수진과 내가 함께 살지 않은 시간은 한 줄의 날짜로 정리돼 있었다. 사고 뒤 병원에 있던 기간을 별거라고 해야 하는지, 구치소에 있던 날부터인지, 수진이 유리와 새집으로 옮긴 날부터인지 나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류는 그중 하나를 골라 이미 적어두었다.

수진이 이사한 날이었다.

나는 그 날짜 옆에 연필로 물음표를 쳤다.

“다르게 기억하십니까?”

접견실 맞은편에 앉은 서준호가 물었다.

“병원에 있을 때도 같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김수진 씨가 병원과 집을 오갔고 혼인관계를 끝내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구치소에 들어간 날은요?”

“그날도 자동으로 별거 시작일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 수진이 정한 날입니까?”

“두 분이 생활공동체를 끝냈다고 볼 만한 시점을 대리인들이 정리한 겁니다. 이 날짜 하나로 큰 법적 쟁점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큰 쟁점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면 작은 쟁점을 더 오래 보고 싶어졌다. 사고보고서에서도 사람들은 결론에 영향이 없는 문구부터 양보했다. 작은 문장을 넘겨주다 보면 마지막에 무엇을 지키려 했는지 분명해졌다.

“이혼 자체에는 동의하시죠?”

서준호가 물었다.

“네.”

나는 물음표를 지웠다. 연필 자국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재산분할 항목에는 아파트 보증금과 보험금, 내가 회사에서 받은 퇴직정산금, 수진 명의의 대출이 적혀 있었다. 서준호는 숫자마다 산정 근거를 설명했다. 내가 가진 것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이미 병원비와 소송비에 들어갔다. 수진은 내가 사고 뒤 받은 장해보험금 일부를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자신이 갚아온 주택대출과 유리의 생활비를 분리해달라고 했다.

“이 부분은 수진 쪽 안을 받아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서준호가 나를 보았다.

“검토는 더 해보셔야 합니다.”

“얼마 차이 납니까?”

그가 계산한 금액을 말했다. 적은 돈은 아니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양보하면 좋은 아버지나 미안해하는 남편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생각이 든 뒤에는 오히려 양보를 취소하고 싶어졌다.

“합의하더라도 이유를 도덕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수진 씨가 실제로 부담한 금액과 향후 생계 조건을 기준으로 결정하면 됩니다.”

“제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압니까?”

“오래 변호하다 보면 표정 몇 개는 압니다.”

나는 재산 항목에 동의 표시를 했다.

마지막 장에 유리에 관한 항목이 있었다. 친권과 양육권은 수진에게 두는 데 이미 동의했다. 양육비는 내 수용 중 지급 가능한 금액과 출소 뒤 소득이 생겼을 때 조정하는 방식으로 적혀 있었다.

문제는 연락이었다.

초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비양육자는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여 서신·전화·면접교섭의 시기와 방법을 상호 협의한다.

‘상호’가 누구와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수진과 제가 협의한다는 뜻입니까?”

“보통은 부모 간 협의를 뜻합니다.”

“유리 의사를 존중한다면서 유리는 협의 당사자가 아니네요.”

“법률문구가 아이에게 협상 책임을 지우면 안 되니까요.”

“그럼 수진이 안 된다고 하면 저는 편지 한 통도 못 보냅니까?”

“현재 요청대로면 당분간은 그렇습니다.”

나는 서류를 내려놓았다.

“적어도 정기 연락 기준은 있어야 합니다.”

“어떤 기준을 원하십니까?”

“한 달에 편지 한 통. 전화는 유리가 원할 때. 면회는 석 달에 한 번 정도.”

말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나는 이미 계산해본 사람이었다. 한 달에 한 통이면 일 년에 열두 통이었다. 남은 수용기간을 곱하면 유리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몇 번의 편지를 보낼 수 있는지도 셀 수 있었다.

서준호가 메모했다.

“수진 씨 쪽에 제안은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자녀가 거부하면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르잖습니까. 유리가 안 읽을 수는 있어도 제가 보내는 것까지 막을 필요는 없죠.”

“받는 쪽에서는 도착하는 것 자체가 연락입니다.”

“봉투를 열지 않으면 됩니다.”

“집 우편함에 아버지 이름이 적힌 봉투가 꽂혀 있는 일은 없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반박할 문장을 찾았다. 교정시설에서 보낸 편지는 발신 주소가 표시됐다. 유리가 직접 우편함을 열 수도 있고 친구와 함께 집에 들어오다가 봉투를 볼 수도 있었다. 열지 않아도 내가 썼다는 사실은 전달됐다.

“그렇다고 아무 기준도 없이 수진 판단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왜요?”

“관계가 완전히 끊길 수 있으니까요.”

내가 처음으로 목적을 말했다.

서준호는 펜을 놓았다.

“그 가능성을 조정문으로 막고 싶은 겁니까?”

“부모와 자녀 관계는 이혼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잖습니까.”

“법적 관계는 남습니다.”

“그럼 연락할 권리도 있어야죠.”

“권리라는 말을 쓰면 상대에게는 응할 의무가 생깁니다.”

나는 창문 아래의 환기구를 보았다. 접견실의 더운 공기가 약하게 흔들렸다. 한 시간 가까이 같은 자세로 앉아 있어 엉덩이 아래가 뜨거운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 열감인지 신경통인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자세 바꾸겠습니다.”

나는 팔걸이를 짚고 몸을 들어 압박을 풀었다. 서준호는 말을 멈추고 기다렸다. 열을 셀 때까지는 누구의 문장도 진행되지 않았다.

다시 앉은 뒤 그가 물었다.

“한 달에 한 통이라는 기준은 어떻게 정하셨습니까?”

“많지도 적지도 않으니까요.”

“누구에게요?”

“보통 그 정도면.”

“유리 양에게 물어본 적 있습니까?”

없었다.

나는 수진과 결혼생활을 할 때도 보통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보통 회사원은 야근한다. 보통 가장은 중요한 인사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보통 중학생은 부모가 바쁘다는 걸 이해한다. 내가 정한 보통의 범위 안에 가족을 넣으면, 그들이 느끼는 특별한 불편은 예외가 됐다.

“유리는 지금은 연락을 원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다.

“네.”

“지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죠.”

“달라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싫어했다. 가능성을 열어두는 말처럼 보이면서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사고 전 수진은 유리의 학예회 영상을 보내며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다음에는 올 수 있으면 와.

나는 그 말을 다음 학예회에는 오라는 뜻으로 읽었다. 실제로는 오지 못할 약속을 먼저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올 수 있으면’의 조건을 지우고 ‘와’만 남겼다.

그 뒤로도 가족의 문장을 같은 방식으로 읽었다.

시간이 필요해.

나는 기다리면 된다고 이해했다.

지금은 면회하기 싫어.

나는 언젠가는 면회하겠다는 뜻을 찾았다.

궁금하지 않아.

이번에는 ‘지금’이라는 말에 매달렸다.

나중은 내가 보유한 시간이 아니었다.

서준호가 조정안의 여백을 가리켰다.

“대안을 적어보시죠.”

나는 펜을 들었다. 한 달에 한 통이라는 문구를 먼저 썼다.

비양육자는 월 1회 자녀에게 서신을 발송할 수 있다.

문장은 단정했고 실행하기 쉬웠다. 첫째 월요일에 쓰고, 검열 시간을 계산해 발송하면 됐다. 답장이 없어도 다음 달이 오면 다시 보낼 수 있었다. 관계를 일정표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단, 자녀가 수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두 문장이 붙자 첫 문장의 권리는 거의 사라졌다.

“이렇게 쓰면 됩니까?”

서준호가 읽었다.

“법률적으로는 더 다듬어야 하지만 뜻은 분명합니다.”

“유리가 다시 받겠다고 말하는지는 누가 확인합니까?”

“수진 씨가 전달하거나, 유리 양이 직접 연락할 수 있습니다.”

“수진이 전달하지 않으면요?”

“그 문제까지 모든 경우의 수를 조정문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결국 믿으라는 겁니까?”

“아니요.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남는다는 겁니다.”

나는 첫 문장을 바라보았다. 월 1회. 숫자는 나를 진정시켰다. 관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정해진 간격으로 반복될 것 같았다.

하지만 둘째 문장이 실제 조건이었다.

나는 첫 문장에 줄을 그었다. 찢지 않았다. 글자가 보일 만큼 한 줄만 그었다.

그리고 새로 썼다.

비양육자는 자녀가 수신 또는 연락을 원한다는 의사를 확인한 경우, 자녀가 원하는 방법과 간격에 따라 서신·전화·면접교섭을 한다.

“이러면 제가 먼저 확인할 수 없다는 뜻입니까?”

“현재 합의안에서는 그렇습니다.”

“수진을 통해서도 묻지 않고요?”

“연락 의사를 반복해서 확인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넣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문구까지 적었다.

손해가 생기는 결정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매달 한 통이라는 확실한 기회를 포기했고, 유리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가 오래갈 수 있었다.

“이 안을 보내주세요.”

내가 말했다.

서준호는 종이를 바로 거두지 않았다.

“오늘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생각할수록 다른 문장을 만들 겁니다.”

“불리한 선택이라는 건 알고 계시고요?”

“네.”

그는 내가 적은 문구 옆에 시간을 기록하고 서명란을 가리켰다. 나는 이름을 썼다. 책상이 높아 손목을 꺾어야 했다. ‘호’의 마지막 획이 처음 이름을 적던 날처럼 조금 미끄러졌다.

의료동으로 돌아왔을 때 정호는 공용바늘을 빌려 수용복 소매의 풀린 솔기를 꿰매고 있었다. 단추가 아니라 소매였다. 그는 실을 너무 길게 뽑아 자꾸 엉키게 했다.

“오늘은 안 도와줍니다.”

내가 말했다.

“부탁도 안 했네.”

정호가 실뭉치를 손가락으로 풀었다.

“서류는 잘됐나?”

“제가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딸한테?”

“네.”

“언제까지?”

“유리가 원할 때까지요.”

정호는 바늘귀를 들여다봤다.

“그게 언제인데?”

“모릅니다.”

이번에는 모른다는 말 뒤에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 서진이 소변주머니 연결관이 눌리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접견실에서 오래 앉았던 시간을 묻고 피부 점검을 예약했다. 나는 시간을 정확히 말했다. 한 시간 십오 분. 중간에 압박을 두 번 풀었다.

“다음에는 한 시간 넘으면 쉬는 시간을 요청하세요.”

“서류 마감이 있었습니다.”

“몸에는 마감이 없습니까?”

나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등 전에 나도윤이 접수 확인서 사본을 가져왔다. 내가 적은 연락 기준은 수진 측 대리인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확인서 아래에는 회신 기한이 있었다.

7월 3일.

그날이 와도 유리에게서 연락이 온다는 뜻은 아니었다. 조정안에 대한 수진의 답이 오는 날일 뿐이었다.

나는 탁자 달력의 7월 3일에 표시하지 않았다.

날짜를 표시한다고 그날 받을 수 없는 답이 생기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