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유리에게 보내지 않은 설명

에피소드 11 / 50

뉴스가 나온 다음 날, 내가 쓴 편지는 발송함에 들어가지 못했다.

나도윤은 아침 점호가 끝난 뒤 봉투를 돌려주었다. 봉투 오른쪽 위에는 전날 내가 쓴 날짜가 있었고, 풀로 붙이지 않은 덮개가 조금 벌어져 있었다.

“내용에 문제가 있습니까?”

“검열 전입니다.”

“그런데 왜 돌려줍니까?”

“보호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당분간 한유리 양 앞으로 가는 서신은 발송 전에 김수진 씨에게 연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봉투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보호자가 제 편지를 막을 권한이 있습니까?”

“막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확인을 요청한 겁니다.”

“유리는 제 딸입니다.”

“미성년자고, 수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가 있으면 절차를 확인해야 합니다.”

“유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까?”

나도윤은 들고 있던 서류를 보았다.

“김수진 씨 요청만 접수되어 있습니다.”

“그럼 유리 의사는 모르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확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봉투를 내 탁자에 놓았다. 내가 받아 들고 있으면서도, 그가 내려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변호사 접견이 잡혔습니다. 언론보도 관련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도윤이 나간 뒤 나는 봉투를 열었다. 편지는 전날 쓴 상태 그대로였다.

오늘 가석방 관련 상담을 받았어. 결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전에 결정되지 않은 일을 먼저 말해서 미안해.

그 아래에는 수학여행 준비물을 물었다. 제주도에 갈 때 바람막이를 챙기라는 말도 썼다. 유리가 무엇을 준비했는지 나는 몰랐다.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흔적이었다.

정호는 건너편 침대에서 나를 보다가 물었다.

“뉴스 때문인가?”

“모릅니다.”

“어제 그 사람이 나왔으니 가족한테도 기자가 갔을 수 있지.”

“확인되지 않은 말 하지 마십시오.”

나는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었다. 정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가 물을 권하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말을 멈추는 데도 기술이 있다는 것을 그에게서 처음 보는 듯했다.

접견실에서 서준호는 인사보다 먼저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놓았다. 화면에는 포털 뉴스 목록이 떠 있었다. 같은 영상에서 나온 기사들이 서로 다른 제목을 달고 있었다.

‘안전보고 묵살한 한 부장, 회사 희생양이었나.’

‘생존자 최민석 “최종 승인은 한재호가 했다.”’

‘6년 만에 뒤집힌 물류센터 참사.’

“뒤집힌 건 아직 없습니다.”

서준호가 말했다.

“기록 원본도 못 봤고 민석 씨가 무엇을 제출할지도 모릅니다. 회사 쪽 추가 책임이 확인될 수는 있지만, 판결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처럼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표정을 보고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김수진 씨 집과 한유리 양 학교로 기자가 연락했습니다.”

정호의 추측이 사실이 되는 순간, 나는 그가 맞았다는 생각부터 했다. 곧이어 그 생각이 부끄러웠다.

“학교까지요?”

“교무실에 한 번, 담임교사 개인번호로 두 번 연락이 갔다고 합니다. 집 앞에 온 사람도 있었고요. 김수진 씨는 촬영이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주소를 흘린 겁니까?”

“단정하지 마십시오. 판결 기사와 공개된 자료로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유리는 괜찮습니까?”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원인을 말하기 전에 서준호가 덧붙였다.

“어제 보도 때문에요.”

그 문장은 내가 끼어들 자리를 막았다. 회사가 잘못했고 기자가 잘못했으며 주소가 공개된 제도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모두 따져볼 일이었다. 그래도 유리가 학교에 가지 않은 날짜는 민석의 인터뷰 다음 날이었다. 화면에 내 재판 사진이 나온 다음 날이었다.

“수진하고 통화할 수 있습니까?”

“지금은 원하지 않습니다.”

“유리 목소리만이라도—”

“한재호 씨.”

서준호가 내 말을 잘랐다.

“둘 다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적어도 보도가 가라앉을 때까지는요.”

“유리가 직접 말했습니까?”

“김수진 씨가 두 사람의 의사라고 했습니다.”

“그건 수진 말이잖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제가 한 말도 제 말일 뿐입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서준호는 서류가방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첫 장은 언론 대응에 관한 위임 확인서였고, 둘째 장은 수진이 보내온 짧은 메모를 옮긴 것이었다. 원본은 문자메시지라고 했다.

유리에게 사건이나 가석방 관련 설명을 보내지 말아 주세요. 아이가 읽을지 답할지는 아이가 정하게 해 주세요. 당분간은 편지도 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필요한 연락은 변호사를 통해 해 주세요.

문장마다 주어가 분명했다.

보내지 말아 주세요.

정하게 해 주세요.

연락은 변호사를 통해 해 주세요.

“유리가 사건을 잘못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무엇을 잘못 이해합니까?”

“제가 회사에 모든 책임을 돌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반대로 회사가 시킨 일뿐인데 혼자 결정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민석 씨 말도 기사마다 잘려 나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설명해야 합니까?”

“제가 아는 부분은 말할 수 있잖습니까.”

“유리가 듣고 싶지 않다고 해도요?”

“그건 아직 유리한테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서준호는 메모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직접 확인하겠다는 행동 자체를 멈춰 달라는 요청입니다.”

나는 그 문장을 이해했다. 이해하고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유리가 나를 거부한 것인지 수진이 막는 것인지 구분하고 싶었다. 구분하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진의 판단이라면 설득하고, 유리의 판단이라면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다린다고 말하려면 먼저 유리의 대답을 받아야 했다.

그 대답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기다림일 수 있었다.

서준호가 언론 대응 확인서를 내 앞으로 밀었다.

“입장문을 낼지 결정해야 합니다. 회사 책임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정도로 짧게 갈 수 있습니다.”

“제 책임도 쓰죠.”

“지금은 법률 대응 문서입니다.”

“어제까지는 반성문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하셨잖습니까.”

“문서 목적이 다릅니다.”

“읽는 사람은 구분합니까?”

서준호는 피곤한 얼굴로 안경을 올렸다.

“가족한테 보내는 편지와 언론 입장문도 구분하셔야 합니다.”

나는 탁자 위 봉투를 보았다. 가져온 기억이 없었는데, 접견실까지 무릎 위에 올려두고 왔다.

“이 편지 읽어보시겠습니까?”

“안 읽겠습니다.”

“변호사 의견이 필요합니다.”

“법률문제가 아니니까요.”

나는 웃음이 나오려다 멈췄다. 사람들은 자기 경계 밖의 일을 내게 돌려주었다. 전에는 그것을 무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수진이 내게 그 경계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유리의 편지는 내가 잘 쓰면 통과하는 심사문서가 아니었다.

언론 입장문은 내지 않기로 했다. 자료를 확인한 뒤 대응하겠다는 변호사 명의의 짧은 답만 보내기로 했다. 내 이름으로 ‘깊은 유감’이나 ‘새로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접견이 끝날 무렵 서준호가 이혼조정 서류의 진행을 물었다. 송달된 서류는 아직 의료동 보관함에 있었다.

“수진 씨는 재산보다 유리 관련 연락 기준을 먼저 정하려고 합니다.”

“저도 유리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 문장을 상대에게 증명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가 말했다.

“부담을 주지 않는 행동을 하면 됩니다.”

의료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 번째 철문 앞에서 오래 기다렸다. 반대편에서 외부진료를 마친 수용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내 무릎 위 봉투는 바람이 불 때마다 모서리가 들렸다. 나는 손바닥으로 눌렀다.

사고 전에도 수진은 내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유리가 열한 살 때 학예회가 있었다. 나는 싱가포르 출장을 취소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리허설 날에는 반드시 가겠다고 약속했다. 리허설 당일 고객사 회의가 길어졌다. 나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계약금액이 얼마인지, 회의에 본부장이 참석했는지, 통역이 왜 늦었는지, 다음 비행기를 타면 몇 시에 도착하는지를 차례로 말했다.

수진은 한동안 듣다가 말했다.

“오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시키는 데 그렇게 힘쓰지 마.”

“내가 놀다가 못 가는 게 아니잖아.”

“유리는 오늘 아빠가 없는 걸 견뎌야 해. 당신 사정을 이해하는 일까지 같이 시키지 말라고.”

나는 그 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가족이라면 사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다. 내가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설명까지 했다. 결국 리허설에는 가지 못했고, 학예회 본행사에는 가장 큰 꽃다발을 들고 갔다.

유리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 웃었다.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보관했다. 리허설 날 빈 객석을 보았다는 수진의 말은 사진에 남지 않았다.

철문이 열렸다.

나도윤이 경사로에서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편지 발송 확인은 어떻게 할까요?”

그가 물었다.

“안 보내겠습니다.”

“폐기하시겠습니까?”

나는 봉투를 손으로 만졌다. 찢으면 어제 반성문을 찢은 장면과 비슷해질 것 같았다. 종이를 찢는 일이 결정을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실제 결정은 발송함에 넣지 않는 것이었다.

“제가 보관하겠습니다.”

방에 돌아와 편지를 탁자 서랍에 넣었다. 유리가 보낸 편지 아래였다. 받은 편지와 보내지 않은 편지가 포개졌다.

정호가 물었다.

“설명 안 하기로 했나?”

“당분간 편지를 보내지 말랍니다.”

“억울하겠구먼.”

“무엇이요?”

“자네 말을 들으면 달라질 수도 있는데, 들을 기회도 안 주니까.”

나는 정호를 보았다. 그가 나를 위로하는지 시험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달라지게 만드는 게 제 목적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정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컵에 물을 따랐다. 예전처럼 내 컵까지 채우려다 손을 멈췄다.

“물 필요한가?”

그가 물었다.

“네. 반 컵만 부탁드립니다.”

그는 반 컵을 따랐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오후 약 배부 때 서진이 피부 상태를 확인했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압박 완화 동작을 했고, 그녀는 붉은 자국이 다시 생기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내가 편지를 보내지 않은 일은 말하지 않았다. 말해서 칭찬을 받으면 그 행동의 방향이 다시 나를 향할 것 같았다.

저녁 점호 뒤 나도윤이 작은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발신인은 김수진이었다. 편지는 아니었다. 통신제한 요청 확인을 위해 제출된 보호자 의견의 사본이었다.

마지막 줄에 수진이 직접 덧붙인 문장이 있었다.

유리는 지금 아빠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수진의 판단인지 유리의 판단인지 구분하고 싶었던 자리가 사라졌다.

탁자 서랍 안에는 내가 보내지 않은 설명이 있었다.

처음으로, 설명하지 않을 이유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