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건너는 해
첫 번째 답안

에피소드 10 / 50

반성문을 완성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쓰는 데 사흘이 걸린 것이 아니라, 남길 문장을 고르는 데 사흘이 걸렸다.

첫날에는 서준호가 만든 초안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둘째 날에는 믿지 않는 표현에 밑줄을 그었다. 셋째 날에는 밑줄 친 문장 대부분을 다른 말로 바꾸었다.

‘깨달았습니다’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로 바꿨다.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했습니다’는 ‘제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결과를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로 바꿨다.

‘피해자들을 위한 삶을 살겠습니다’는 ‘박진수 씨와 오광철 씨의 죽음을 잊지 않고 안전과 관련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로 바꿨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정직해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빠져나갈 길도 많아졌다.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본다는 말은 얼마나 구체적인지 밝히지 않았다.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말은 어떤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쓰지 않았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기억이 희미해졌을 때 누가 확인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문장을 남겼다.

반성문은 네 장이 되었다.

첫 장에는 사고 전의 내가 있었다.

성과와 일정에 매몰되어 위험을 수치와 문서로만 판단했고, 안전을 사람의 생명보다 추상적으로 생각했다.

둘째 장에는 사고가 있었다.

안전담당자의 우려와 현장 작업자의 보고를 들었음에도 작업을 즉시 중지하지 않았고, 최종 승인권자로서 필요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셋째 장에는 감옥의 내가 있었다.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의 도움을 수치로 여겼으나, 의료수용동 생활을 통해 인간이 서로의 도움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배웠다.

넷째 장에는 미래의 내가 있었다.

가족의 의사를 존중하며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산업안전과 장애인 지원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의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썼다.

완성된 글에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었다.

사고 전의 오만.

사고와 처벌.

성찰과 변화.

사회로의 귀환.

읽으면 내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잘 썼구먼.”

정호가 말했다.

그는 내 허락 없이 읽지 않았다. 내가 소리 내어 첫 장을 읽자 조용히 들었다.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서 성경을 덮었다.

“어디가 좋습니까?”

“처음보다 훨씬 길어.”

“길면 좋은 글입니까?”

“심사하는 사람들이 좋아하겠지.”

“아저씨는요?”

정호는 대답하기 전에 물컵을 마셨다.

“자네가 말할 때보다 착해 보이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글 속 자네는 화도 안 내고, 모든 걸 이해하고, 남을 위해 살 준비가 됐어.”

“반성문에 간호사와 싸운 이야기까지 써야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지.”

“그러면 중요한 내용만 정리하는 게 맞잖습니까.”

“그래.”

그는 쉽게 동의했다.

“그런데 중요한 걸 누가 골랐나?”

“제가 골랐죠.”

“그럼 자네가 보여주고 싶은 자네겠지.”

나는 반성문을 접었다.

“아저씨는 무슨 말을 해도 문제를 찾습니다.”

“자네가 물어보니까.”

“좋다고 하면 되잖습니까.”

“좋다고 했어. 심사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나는 반성문을 서류봉투에 넣었다.

정호의 말이 틀리지 않아 불쾌했다. 글 속의 나는 실제 나보다 안정되어 있었다. 윤서진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정호의 신앙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딸의 질문에 방어적인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반성문에는 내가 한 가장 나쁜 행동과 가장 좋은 생각이 들어 있었다.

그 사이의 대부분은 빠졌다.

사람의 삶을 짧게 쓰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시간을 적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무엇을 빼는가는 단순한 분량 문제가 아니었다.

가석방 상담일 아침, 서진이 욕창 부위를 확인했다. 붉은 범위는 거의 사라졌지만 그녀는 드레싱을 하루 더 유지하겠다고 했다.

“오늘 오래 앉아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말했다.

“상담 얼마나 걸립니까?”

“한 시간 정도입니다.”

“삼십 분마다 압박을 풀어주세요.”

“상담 중에 몸을 들어 올리라고요?”

“휠체어에서 상체 지지해서 엉덩이 압박 줄이는 동작 하실 수 있잖아요.”

“심사위원 앞에서 하면 산만해 보일 수 있습니다.”

서진이 드레싱 포장을 뜯다 손을 멈췄다.

“상처는 심사위원 인상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교정위원 상담입니다.”

“그 사람이 상처 대신 책임져줍니까?”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말해야 하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드레싱을 붙이고 바지를 올려주었다.

“한 시간 동안 자세 안 바꾸고 좋은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상처 나빠지면, 그건 좋은 심사 준비가 아닙니다.”

“제가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런 말 안 했습니다.”

“방금 했잖습니까.”

“자세를 참고 있는 모습을 말한 겁니다.”

“같은 뜻으로 들립니다.”

서진은 장갑을 벗었다.

“그럼 오늘 상담에서 물어보세요. 제가 자세 바꾸는 걸 어떻게 평가할지.”

그녀는 기록지를 들고 나갔다.

나는 그녀가 일부러 내 반성문을 겨냥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진은 반성문을 읽지 않았다. 내가 며칠 동안 글을 쓰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사람이 나를 공격한다고 느낄 때는 상대가 실제로 무엇을 아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숨기고 싶은지가 중요했다.

상담실에는 서기현과 나도윤이 있었다. 나도윤은 벽 쪽에 앉아 기록용 태블릿을 켰다. 서기현은 내가 제출한 반성문을 천천히 읽었다.

나는 휠체어에 앉아 그의 눈동자가 문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첫 장 끝에서 한 번 고개를 끄덕였고, 셋째 장의 단추 이야기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나는 단추를 구체적으로 썼다.

같은 방 수용자가 떨어뜨린 단추를 집게로 주워준 일을 통해, 자유란 거대한 선택만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단추를 주웠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붙인 의미였다.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으니까.

서기현이 마지막 장을 넘겼다.

“많이 정리하셨네요.”

그가 말했다.

칭찬이었다.

나는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변호사 도움도 받았습니다.”

“그래도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이런 글은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는 첫 장으로 돌아갔다.

“특히 책임을 지나치게 외부로 돌리지 않으면서 구조적 문제도 함께 언급한 부분이 좋습니다.”

지나치게 외부로 돌리지 않는다.

구조적 문제도 함께 언급한다.

서준호가 말한 균형이었다.

“가족관계 부분도 현실적으로 쓰셨습니다. 따님에게 관계 회복을 요구하지 않고 의사를 존중하겠다고 한 점이 좋고요.”

나는 유리에게 가석방 가능성을 미리 말했던 일을 떠올렸다. 수진은 내가 계획을 먼저 세운다고 했다.

반성문에는 그 장면이 없었다.

“이 문장을 실제로 지킬 수 있습니까?”

서기현이 물었다.

그는 해당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가족이 저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지키려고 합니다.”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생각하셨습니까?”

“네.”

대답은 빨랐다.

실제로 생각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과 그 일이 일어났을 때 견디는 것은 달랐다.

“산업안전 활동은 구체적인 계획이 있습니까?”

“출소가 결정되면 관련 기관을 알아볼 생각입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사고 사례를 바탕으로 관리자의 판단 실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어서 현장 이동은 어렵지만 교육자료 작성이나 온라인 강의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준비한 답이었다.

“좋습니다.”

서기현이 말했다.

또 칭찬이었다.

“재범 위험도 낮고 직업경력도 있으니, 구체적인 거주지와 생계계획만 보완하면 심사자료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는 반성문을 처음 썼을 때보다 가석방에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그 느낌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분명했다. 서기현의 고개 끄덕임과 ‘좋습니다’라는 말이 가능성을 높였다.

나는 글을 잘 썼다.

회사에서도 보고서를 잘 썼다.

복잡한 상황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정리했고, 필요한 결론이 나오도록 사실을 배열했다.

그 능력이 다시 내게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한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서기현이 말했다.

“수감생활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습니까?”

반성문 첫날 받았던 질문이었다.

나는 준비한 문장을 떠올렸다.

삶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얻으며, 저는 남은 삶을 책임과 봉사의 자세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서준호의 초안에 있던 문장이었다. 쓰지는 않았지만 외우고 있었다.

“삶 전체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서기현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다만 제가 하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실제 결과를 만든다는 점은 이전보다 많이 생각합니다.”

“그게 본인에게는 새로운 의미가 아닙니까?”

“의미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 단어를 피합니까?”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박진수 씨와 오광철 씨가 저를 변화시키기 위해 죽은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라는 질문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변화의 시작을 사고라고 쓰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기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사고를 통해 배운 것이 전혀 없습니까?”

“배운 것은 있습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죠?”

“그 일이 교훈을 주기 위해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어난 사건에서 교훈을 얻는 것과 사건의 목적을 동일하게 보는 건 다릅니다.”

서준호와 같은 대답이었다.

“저도 구분하려고 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제가 반성문을 쓰면서 자꾸 두 사람의 죽음을 제 이야기의 전환점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그분들을 잊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기억하는 것과 사용하는 건 다를 수 있습니다.”

서기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윤의 태블릿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삼십 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진이 말한 압박 완화 동작을 해야 했다. 상담 흐름을 끊기 싫었다.

조금만 더 앉아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서진의 말이 떠올랐다.

상처는 심사위원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

나는 휠체어 팔걸이를 잡고 상체를 들어 올렸다. 팔에 힘을 주어 엉덩이를 방석에서 몇 초간 띄웠다.

서기현이 물었다.

“불편하십니까?”

“압박을 풀어야 합니다.”

“필요하면 잠시 쉬죠.”

“아닙니다. 계속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다시 앉았다.

나도윤이 태블릿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것이 자기관리로 기록될지, 상담 중 돌발행동으로 기록될지는 몰랐다.

서기현은 반성문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전체적으로 좋은 글입니다.”

그가 말했다.

“몇 가지 표현만 보완하면 1차 자료로 제출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표현입니까?”

“삶의 의미를 지나치게 철학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책임 회피나 허무주의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요?”

“표현의 문제입니다.”

또 표현이었다.

“그리고 미래계획을 조금 더 구체화하세요. 거주지, 직업, 의료지원, 가족과의 연락 방식까지.”

“알겠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 동안 나는 칭찬받은 문장을 떠올렸다.

좋은 글입니다.

충분합니다.

책임을 외부로 지나치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했던 승인이었다.

상담실을 나온 뒤 나는 우편용 편지지를 한 장 요청했다. 가석방 준비에 대해 유리에게 알리고 싶었다. 지난 면회에서 성급하게 가능성을 말해 수진과 다퉜지만, 이번에는 교정위원이 글을 좋게 평가했다.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실제 진행이라고 생각했다.

복도 휴게공간의 낮은 책상에서 편지를 썼다.

유리에게.

오늘 가석방 준비 상담을 했어. 아빠가 쓴 글을 교정위원이 좋게 봐줬어. 아직 결정된 건 없지만, 아빠도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는 여기까지 쓴 뒤 문장을 읽었다.

아빠도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유리가 그 말을 읽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뻐해야 할까. 나를 다시 믿어야 할까. 다음 면회에서 달라진 모습을 확인해줘야 할까.

나는 딸에게 사실을 알린다고 생각하면서 평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교정위원의 칭찬을 전달함으로써 내가 변하고 있다는 공인된 증거를 주려 했다.

편지 아래에 시험과 수학여행 이야기를 물으면 덜 부담스러워 보일 수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문장의 균형을 생각했다.

나도윤이 지나가다 물었다.

“편지 쓰십니까?”

“네.”

“상담은 잘 끝났고요?”

“좋은 글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대답하면서 스스로 자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군요.”

나도윤은 축하하지 않았다.

“교정관님 기록에도 도움이 됩니까?”

“오늘 상담 내용은 서기현 위원이 정리합니다.”

“교도관님 관찰의견은 별도잖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반성문을 성실하게 썼다는 것도 기록합니까?”

“필요하면요.”

“필요하지 않습니까?”

나도윤은 내 앞의 편지를 보지 않고 말했다.

“지금 그 사실을 기록에 남기고 싶은 마음은 알겠습니다.”

“그게 잘못입니까?”

“잘못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걸어갔다.

나는 유리에게 쓰던 편지로 돌아갔다. 교정위원에게 받은 승인과 나도윤에게서 받지 못한 승인이 한 문장 안에서 섞였다.

편지를 찢지는 않았다. 첫 문단에 한 줄을 그어 지우고 새로 썼다.

오늘 가석방 관련 상담을 받았어. 결과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전에 미리 말해서 네가 부담스러웠다면 미안해. 결정되는 일이 생기면 엄마와 상의해서 알려줄게.

그 뒤에는 수학여행 준비물을 물었다.

이번 편지가 더 정직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부담스러웠다면’이라는 말은 유리가 실제로 부담스러웠다는 사실을 확정하지 않고 사과를 줄이는 표현일 수도 있었다. 회사 사과문에서 자주 쓰던 방식이었다.

불편을 느끼셨다면 유감입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사과드립니다.

나는 ‘부담스러웠다면’을 지웠다.

전에 미리 말해 네게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해.

이번에는 내가 유리의 감정을 대신 정한 것처럼 보였다.

결국 문장을 짧게 바꿨다.

전에 결정되지 않은 일을 먼저 말해서 미안해.

그 문장만 남기고 편지를 접었다.

상담에서 칭찬받았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그러나 쓰지 않은 사실을 내가 포기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유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편지를 우편함에 넣지 않고 서류판에 끼웠다. 하루 뒤 다시 읽기로 했다.

의료동으로 돌아오자 정호가 공용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오후 뉴스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나는 방으로 바로 들어가려다 화면 아래 자막에서 회사 이름을 보았다.

‘서부물류센터 붕괴사고 안전보고 조작 의혹.’

휠체어를 멈췄다.

앵커가 말했다.

“6년 전 두 명이 숨지고 한 명이 크게 다친 서부물류센터 증축현장 붕괴사고와 관련해, 당시 시공사와 발주사 측이 사고 전 안전 이상을 알고도 공사를 강행했다는 새로운 증언이 나왔습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민석이 앉아 있었다.

사고 때보다 얼굴이 야위었고 머리카락이 짧아졌다. 왼팔은 몸 가까이 붙어 있었고 오른손으로 무릎을 잡고 있었다. 음성은 일부 변조되어 있었지만 얼굴은 가리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연결부에 문제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민석이 말했다.

“현장에서는 전날부터 소리가 이상하다는 보고가 올라갔고, 측정값도 처음 나온 것보다 안 좋았습니다.”

기자가 물었다.

“수치가 바뀌었다는 뜻입니까?”

“처음 잰 값 중에 기준 넘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다시 재니까 낮게 나왔고, 회사는 낮은 값만 썼습니다.”

나는 화면에 가까이 갔다.

공용실의 다른 수감자들이 나를 알아보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누군가는 내 얼굴과 화면을 번갈아 봤다.

“왜 지금 증언하시는 겁니까?”

기자가 물었다.

민석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때는 치료비도 필요했고 회사에서 책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다 한 사람 잘못으로 끝났습니다.”

화면에 내 재판 당시 사진이 나왔다. 휠체어에 앉아 법원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얼굴 아래에 ‘현장 총괄책임자 한모 씨 실형 확정’이라는 자막이 붙었다.

“한재호 씨가 회사의 희생양이었다고 보십니까?”

기자가 물었다.

민석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사람만 잘못한 건 아닙니다.”

그 말에 나는 숨을 멈췄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공용실 안이 조용해졌다.

텔레비전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한 부장도 보고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위험하다고 말한 것도 들었습니다. 회사가 밀어붙였고, 한 부장이 마지막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기자는 구체적인 자료가 있느냐고 물었다.

민석은 답했다.

“당시 기록하고 녹음이 남아 있습니다. 제출할 겁니다.”

뉴스는 회사 측 입장으로 넘어갔다. 회사는 수사와 재판에서 확인된 내용 외의 주장은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며, 안전보고 조작은 없었다고 밝혔다.

나는 화면을 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기록과 녹음.

무엇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박진수와 통화한 내용일 수도 있었다. 김도현과의 통화일 수도 있었다. 현장회의 녹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

정호가 내 옆에서 말했다.

“괜찮나?”

나는 괜찮다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뉴스가 끝난 뒤 공용실에서 휠체어를 돌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왔다. 처음 수감됐을 때처럼 누가 내 얼굴을 보는지 세고 싶어졌다.

방에 돌아오자 반성문 봉투가 탁자 위에 있었다.

좋은 글입니다.

서기현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봉투를 열어 첫 장을 꺼냈다.

저는 현장 총괄책임자로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사 일정과 회사 손실을 우려한 나머지 신중하지 못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문장은 여전히 정확해 보였다.

둘째 장을 읽었다.

저는 당시 위험의 정도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민석의 목소리가 겹쳤다.

그 사람이 몰랐던 것도 아닙니다.

셋째 장에는 단추 이야기가 있었다.

넷째 장에는 산업안전 교육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나는 네 장을 모두 바닥에 내려놓았다.

정호가 방으로 들어왔다.

“변호사한테 연락해야겠네.”

그가 말했다.

“내일 하겠습니다.”

“저 자료가 자네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회사 책임이 드러나면요.”

“그래.”

“제가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나온답니다.”

“자네는 알고 있었나?”

나는 반성문 둘째 장을 보았다.

위험의 정도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그 말은 틀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붕괴 확률을 몰랐고, 수치가 조작됐는지도 몰랐다.

동시에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다.

박진수가 소리를 말했다.

김도현이 보류를 권고했다.

변위값이 기준치에 근접했다.

나는 몰랐던 것과 알고 있던 것을 한 문장 안에서 바꿔 사용했다.

“일부는요.”

내가 말했다.

“얼마나?”

“모르겠습니다.”

정호는 더 묻지 않았다.

나는 반성문 첫 장을 반으로 찢었다.

종이가 쉽게 찢어지지 않아 양손으로 힘을 줘야 했다. 둘째 장, 셋째 장, 넷째 장도 찢었다. 네 장을 겹쳐 다시 찢으려 했지만 손에 힘이 부족해 두 장씩 나눴다.

정호가 말리지 않았다.

종이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반으로 갈라졌고, ‘회복’의 ‘회’와 ‘복’이 다른 조각에 남았다. 박진수와 오광철의 이름도 각각 찢어진 종이 끝에 걸렸다.

나는 휠체어 뒤의 집게를 꺼냈다.

종이조각을 하나씩 주웠다.

단추를 주웠을 때와 같은 집게였다.

바닥의 종이를 주우며 내가 왜 반성문을 찢었는지 생각했다.

거짓이어서인지.

민석의 증언이 두려워서인지.

칭찬받은 글이 더 이상 유리하지 않을 것 같아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종이를 모두 쓰레기통에 넣은 뒤, 찢기지 않은 빈 종이를 꺼냈다.

첫 줄에 날짜를 썼다.

그 아래에 뉴스에서 들은 문장을 적었다.

그 사람만 잘못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몰랐던 것도 아니다.

두 문장은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나는 그 아래에 새 반성문을 시작하려다 펜을 멈췄다.

아직 쓸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창살 사이로 들어온 오후의 빛이 쓰레기통 안의 종이조각에 닿았다.

‘새로운 삶’이라는 글자 일부가 빛 속에 보였다.

나는 그것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