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1 / 50
필터 수명은 43분 17초였다.
미라에게는 자기 필터가 없었다.
리나의 보조순환은 37퍼센트에서 다시 떨어지고 있었다.
외벽에서 가장 가까운 밀폐시설은 북서쪽 열교환소였다. 지도상 거리는 680미터. 그러나 지도에는 진흙도, 허리 높이까지 자란 흰 줄기도, 배양조 바퀴가 빠질 구멍도 없었다.
“세 번.”
요나가 마스크를 건넸다.
미라는 쓰고 세 번 숨을 들이마셨다. 목 안쪽의 따가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네 번째 숨을 참으며 마스크를 돌려줬다.
“이러다 둘 다 못 가.”
“그럼 네가 계속 써.”
“당신이 쓰러지면 길 아는 사람이 없어.”
“길은 지도에도 있어.”
요나는 외벽 아래로 번진 물을 가리켰다.
“지도에는 저게 바닥이라고 돼 있어.”
빗물 위의 흰 막 아래에서 검은 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리나의 생체선이 닿았던 곳에서 시작해 폐허 쪽으로 가느다란 띠를 만들었다. 군집은 물길을 따르지 않았다. 낮은 곳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이안이 쪼그려 앉으려 하자 미라가 말했다.
“손 대지 마.”
아이는 손을 등 뒤로 감췄다.
“안 댈 거야.”
미라는 잡지 않았던 손을 내렸다.
다니엘과 외벽 작업자 세 명이 배양조 바퀴 아래에 폐기 노선의 금속판을 깔았다. 한 장씩 앞으로 옮겨 길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뒤에서 뺀 판을 앞에 놓을 때마다 조가 70센티미터 움직였다.
사라가 조작판을 봤다.
“리나, 오른쪽 순환이 31퍼센트야. 열교환소까지 이 속도면 50분 넘게 걸려.”
“빨리 밀어.”
“흔들리면 관이 다시 꺾여.”
“그럼 덜 흔들고 빨리.”
다니엘이 숨을 내쉬었다.
“그게 되면 벌써 했지.”
리나가 유리 밖의 아버지를 봤다.
“화났어?”
“무서워.”
다니엘은 금속판을 들어 앞으로 옮겼다.
“그래도 네가 가자고 했으니까 가는 거야.”
첫 번째 바퀴가 외벽 배수홈을 벗어나 진흙에 닿았다. 바퀴는 손가락 두 마디 깊이까지 가라앉았다.
작업자 한 명이 욕을 했다. 이름은 베크 솔이었다. 제7도시 외벽 수문을 18년 동안 관리했지만 실제 흙 위에서 일한 적은 없었다.
“이게 땅이야?”
요나가 말했다.
“비 온 뒤의 땅.”
“평소에는?”
“더 단단하고 더 많이 갈라져.”
“어느 쪽이 나아?”
“둘 다 바퀴에는 나빠.”
사람들이 배양조를 밀었다. 금속판 끝이 진흙 속으로 미끄러졌다. 조는 움직이지 않았다.
리나의 심박이 151까지 올라갔다.
이안이 손잡이를 잡았다.
“나도 밀게.”
미라는 아이의 손가락을 봤다. 오른손 셋째와 넷째 손가락이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왼손으로 잡아.”
“오른손도 쓸 수 있어.”
“다치면 놓쳐.”
“다른 사람도 놓칠 수 있잖아.”
미라는 입을 다물었다. 이안은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오른손에 힘이 빠질 때마다 왼손 위치를 바꿨다.
“하나, 둘.”
여덟 사람이 밀었다.
배양조가 진흙에서 빠져나왔다. 동시에 뒤쪽 금속판이 튀어 올라 베크의 정강이를 쳤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뼈는?”
사라가 물었다.
“안 부러졌어.”
작업복이 찢어져 있었다. 빗물이 피부에 닿은 자리부터 붉은 반점이 번졌다.
사라가 물로 씻으려다 멈췄다. 가진 깨끗한 물은 리나의 주입관 세척용 1.4리터뿐이었다.
“닦을 물이 없어요.”
요나가 방수포 가장자리에 고인 빗물을 받아 냄새를 맡았다.
“이걸로 먼저 흙만 떼.”
“외부 미생물이 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미 들어갔어.”
베크가 바지를 걷었다. 피부의 붉은 점 사이에 가는 흰 선이 생겼다.
“이거 숨관이야?”
사라가 장갑 낀 손으로 만졌다.
“피부 아래가 아니라 표면에 붙었어요.”
“떼.”
“그대로 떼면 피부도 벗겨질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
“모릅니다.”
베크는 사라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믿을 만하네.”
필터 수명 38분 02초.
열교환소까지 603미터.
통신에서 노아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잡음 사이로 사람들의 기침이 들렸다.
“대기구역 산소 17.9퍼센트. 공기전지 예상 1시간 41분입니다.”
미라가 물었다.
“안쪽문 틈으로 도시 공기 들어와?”
“압력이 같아져 흐름이 거의 없습니다.”
“문을 더 열 수 있어?”
“수동축이 안쪽에 있습니다. 제가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합니다.”
노아의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도시 쪽으로 보내 달라고 해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
“저 사람들은 나갔잖아. 우리도 밖으로 열어!”
노아가 통신을 잠시 막았다.
“두 집단으로 갈렸습니다. 안쪽문을 열자는 쪽과 외부문을 다시 열자는 쪽입니다.”
“외부문은 전력 없어.”
“사람들이 수동축을 부수려고 합니다.”
미라는 닫힌 외벽문을 봤다. 이쪽에서는 잠금축이 보이지 않았다.
“막을 수 있어?”
“막는 것이 맞습니까?”
미라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몇 분 안에 결정해야 해?”
“공기가 나빠지기 전에 40분 정도입니다.”
“그 사람들한테 열면 어디로 나오는지, 필터가 몇 개인지, 도시 쪽 구역 상태가 어떤지 전부 말해. 그다음 다시 연결해.”
“알겠습니다.”
미라는 통신을 끊었다.
요나가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열교환소에 못 가.”
“간다.”
“문 열겠다고 하면 돌아올 거야?”
“그때 정해.”
“이번에는 미리 정하면 안 돼?”
“미리 정하면 또 누군가 대신 정해.”
“미리 생각하는 거랑 대신 정하는 건 달라.”
요나는 마스크를 미라에게 다시 건넸다.
“당신은 둘을 자꾸 같은 걸로 만들어.”
미라는 세 번 숨 쉬었다.
일행은 금속판을 옮기며 외벽에서 멀어졌다. 비는 가늘어졌지만 바람이 세졌다. 필터 표시가 한 번에 2분씩 줄었다. 포자 부하가 예상보다 컸다.
작업자 진 아라가 외벽을 돌아봤다.
“도시가 이렇게 작은 줄 몰랐어.”
안에서 볼 때 외벽은 세상의 끝이었다. 밖에서 보니 회색 벌판에 박힌 낮은 구조물이었다. 위쪽 절반은 비구름에 가려졌고, 오래된 태양집광판들이 비늘처럼 벗겨져 있었다.
“열두 도시가 다 저렇게 보여?”
이안이 물었다.
요나가 말했다.
“본 건 세 개뿐이야. 제3도시는 벽 일부가 없어. 제9도시는 가까이 못 갔고.”
“왜?”
“밖에 있는 것들이 사람보다 먼저 차지했어.”
“무슨 것?”
“몰라. 들어간 탐사기가 돌아오지 않았어.”
“사람은?”
“보내지 않았어.”
이안은 도시 수를 세려는 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른손 두 손가락이 늦게 따라왔다.
“나머지 아홉 개는?”
“지도에는 있어.”
“사람은?”
요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교환소는 500미터 앞의 검은 구조물이었다. 지붕 일부가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 사이에 흰 줄기와 갈색 잎이 섞여 자랐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 뒷면에서 은빛 가루가 날렸다.
휴대센서가 경고했다.
니켈 화합물.
규산 분진.
미확인 단백질성 입자.
베크가 기침했다. 마스크를 쓴 상태였지만 목소리가 갈라졌다.
“필터 불량 아니야?”
사라가 그의 마스크를 확인했다.
“밀폐는 정상이에요. 피부에서 들어온 물질일 수 있어요.”
“피부로 기침을 해?”
“면역반응은 한곳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크의 정강이에서 시작한 붉은 반점이 무릎까지 올라왔다. 흰 선은 더 이상 표면에만 있지 않았다. 몇 가닥이 상처 가장자리로 들어가 있었다.
“잘라.”
베크가 말했다.
사라는 가위를 꺼냈다.
“피부 안쪽까지 들어간 부분은 남을 수 있어요.”
“그럼 더 깊게 잘라.”
“신경이나 혈관을 건드릴 수 있습니다.”
“도시 돌아가면 치료할 수 있어?”
사라는 닫힌 외벽문을 봤다.
“돌아갈 수 있어도 같은 치료법은 없습니다.”
베크가 가위를 빼앗았다.
“내가 할게.”
“혼자 하면—”
“내 다리야.”
그는 흰 선이 붙은 피부를 얕게 잘랐다. 피가 맺혔다. 선은 떨어진 살점 위에서 수축했다가 빗물 쪽으로 몸을 틀었다.
베크가 그것을 진흙에 던졌다.
“됐어.”
사라는 상처에 깨끗한 물 200밀리리터를 부었다.
리나가 물었다.
“내 물?”
사라의 손이 멈췄다.
“세척수에서 썼어. 말했어야 했어.”
“얼마 남았어?”
“1.2리터.”
“다음에는 먼저 말해.”
“그래.”
다니엘이 베크의 상처를 봤다.
“리나 물을 저 사람한테 쓴 거야?”
“감염되면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어요.”
“그래도 물 주인이 있잖아.”
“방금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잘못했다고 말하면 물이 돌아와?”
리나가 유리를 두드렸다.
“아빠.”
다니엘은 말을 멈췄다.
“내가 말하게 둬.”
“알았어.”
리나는 사라를 봤다.
“베크한테 쓰는 건 괜찮아. 먼저 말 안 한 건 안 괜찮아.”
“기록할게.”
“기록 말고 다음에 물어.”
사라는 물통 뚜껑을 닫았다.
“다음에는 묻겠습니다.”
필터 수명 29분 46초.
리나의 보조순환 24퍼센트.
배양조 외피에서 짧은 파열음이 났다.
사라가 조작판으로 달려갔다.
“멈춰요.”
바깥 압력 88.9킬로파스칼.
배양조 외피 압력 96.2킬로파스칼.
도시 안에서 맞춰진 압력이 바깥보다 높았다. 유리와 금속 사이의 완충막이 풍선처럼 부풀어 고정틀을 밀고 있었다. 오른쪽 바퀴가 지면에서 손가락 하나만큼 떠올랐다.
다니엘이 물었다.
“터져?”
“유리가 아니라 완충막이 먼저 찢어질 거예요. 찢어지면 조 안쪽 관도 당겨질 수 있어요.”
“압력 빼.”
사라는 외피 감압구를 열었다가 닫았다.
“외기를 바로 넣으면 포자가 외피 안에 갇혀요. 지금 리나와 직접 닿지는 않아도 관 교체할 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안 빼면?”
“이동 충격을 한 번 더 받으면 어느 쪽이 찢어질지 몰라요.”
리나는 부푼 막 때문에 바깥이 일그러져 보이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얼마나 빼야 해?”
“도시 압력과 바깥 압력 차이의 절반 정도. 감압구에 미세필터가 필요해.”
요나가 자기 마스크를 만졌다.
“사람 필터 잘라 쓰면?”
“한 개 카트리지의 절반이면 됩니다. 대신 그 필터 수명과 유량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요.”
외벽 작업자들은 서로를 봤다. 남은 시간은 모두 비슷했지만 포자에 노출된 양이 달라 숫자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루이스 단이 자기 필터를 벗었다.
“내 거 써.”
진 아라가 말했다.
“왜 네 거야?”
“내가 셋 중 폐활량 제일 좋아.”
“그건 도시 검사값이고 여긴 도시 밖이야.”
“그럼 제비 뽑아?”
베크가 다친 다리를 들어 보였다.
“내가 내면 감염된 사람 필터를 조에 붙였다고 할 거잖아.”
사라가 말했다.
“카트리지 안쪽은 오염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확정할 수 없어요.”
루이스가 리나에게 물었다.
“내 필터 써도 돼?”
리나는 그의 얼굴을 봤다. 마스크를 벗은 지 10초도 안 됐는데 루이스의 눈이 벌써 충혈되고 있었다.
“그러면 아저씨는?”
“진이랑 나눠 쓸게.”
“미라처럼?”
“그것보단 자주 받을 거야.”
진이 말했다.
“내가 준다고 아직 안 했어.”
루이스가 그녀를 봤다.
“줄 거야?”
진은 필터 시간을 확인했다.
“두 번 숨 쉬고 돌려줘.”
리나가 말했다.
“그럼 써.”
사라는 카트리지를 분해했다. 내부 여과막은 손바닥만 한 주름층이었다. 절반을 자르자 루이스의 필터가 오류를 띄웠다.
규격외 여재.
밀폐성 판정 불가.
사라는 남은 절반을 다시 넣고 테두리를 의료접착제로 막았다.
“기계는 이제 안전하다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루이스가 필터를 받아 쓰며 말했다.
“안전하지 않으니까 정직하네.”
잘라낸 여과막을 감압구에 넣었다. 사라가 밸브를 2밀리미터 열었다.
공기가 아주 가늘게 우는 소리를 냈다.
완충막 압력 95.
93.
91.4.
여과막 바깥이 회색으로 변했다. 포자가 주름 사이에 붙고 금속분진이 그 위를 덮었다.
사라가 밸브를 닫았다.
완충막이 원래 두께로 돌아갔다. 떠 있던 바퀴가 땅에 닿았다.
리나의 보조순환은 그대로 24퍼센트였다. 감압은 그녀를 치료하지 않았다. 단지 조가 터질 위험 하나를 줄였다.
루이스의 필터 예상수명은 11분 03초가 됐다.
그는 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이 자기 마스크를 벗어 건넸다.
“두 번.”
루이스가 두 번 숨 쉬고 돌려줬다.
미라와 요나, 루이스와 진이 서로 다른 간격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필터를 벗는 순간마다 말을 멈췄다. 바깥에서는 대화도 공기를 소비하는 일이었다.
일행은 다시 조를 밀었다. 흰 줄기가 바퀴 사이로 들어오자 금속판 위에서 잘랐다. 잘린 줄기 일부는 조 아래에 붙었다. 사라가 떼려 했지만 리나가 멈추게 했다.
“잠깐 둬.”
“왜?”
“차가워져.”
배양액 온도가 0.4도 내려가고 있었다. 전력 부족으로 멈춘 외부 냉각판 대신 흰 줄기가 유리의 열을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라는 휴대측정기를 댔다.
“줄기 내부 수분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고 있어. 유리 표면의 염류도 흡수합니다.”
“좋은 거야?”
이안이 물었다.
“지금은. 하지만 조 안으로 들어가면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리나가 말했다.
“안으로 안 들어오게 볼게.”
“네가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안다고.”
사라는 줄기 끝에 붉은 표시를 했다.
“여기 넘으면 자를게. 괜찮아?”
“응.”
흰 줄기 세 가닥을 붙인 채 이동했다. 배양조 전력소비가 11퍼센트 줄었다. 보조순환은 24퍼센트에서 멈췄지만 더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리나의 왼쪽 손목에 작은 흰 반점이 나타났다.
유리 바깥 줄기와 같은 간격이었다.
사라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먼저 리나에게 보여 줬다.
“기록해도 돼?”
리나는 손목을 봤다.
“내 기록에만.”
“연구망에는 안 올릴게.”
“아빠도 보여 줘.”
다니엘은 유리에 가까이 왔다. 손을 대지는 않았다.
“아파?”
“안 아파. 그래서 더 무서워.”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열교환소까지 211미터.
진흙이 끝나고 갈라진 콘크리트가 나왔다. 바퀴는 빨라졌지만 바람 속 가루도 짙어졌다. 필터 예상수명은 17분으로 떨어졌다.
열교환소 입구는 반쯤 무너진 철판에 막혀 있었다. 베크와 진 아라가 수동절단기를 댔다. 날이 철판을 10센티미터 자른 뒤 멈췄다.
“전지 끝.”
진이 말했다.
남은 작업자 루이스 단이 문 옆 경첩을 살폈다.
“핀을 빼면 문 전체를 눕힐 수 있어.”
미라가 경첩을 만졌다. 녹이 손가락에 묻었다.
“위쪽 핀은 하중 받고 있어. 먼저 빼면 문이 우리 쪽으로 떨어져.”
“아래부터?”
“아래를 빼면 비틀려서 위가 안 빠져.”
“그럼?”
“받치고 동시에 빼.”
받칠 장비는 배양조뿐이었다.
다니엘이 말했다.
“안 돼.”
“조를 문 밑에 넣겠다는 게 아니야.”
미라는 금속판 두 장을 삼각형으로 세웠다.
“이걸 버팀대로 쓰고, 고정끈으로 문 무게를 열교환탑 기둥에 넘겨.”
요나가 기둥을 두드렸다. 속이 빈 소리가 났다.
“이것도 썩었어.”
“한 번만 버티면 돼.”
“오늘 그 말 많이 듣네.”
끈 두 개를 문에 걸었다. 베크가 위쪽 핀, 루이스가 아래쪽 핀을 잡았다. 진은 기둥의 균열을 보며 손을 들었다.
“당겨.”
사람들이 고정끈을 잡아당겼다.
미라가 아래 핀을 망치로 쳤다. 처음 세 번은 녹가루만 떨어졌다. 네 번째에 핀이 2센티미터 밀렸다.
기둥이 삐걱거렸다.
“멈춰.”
요나가 말했다.
“계속해.”
미라가 다시 쳤다.
아래 핀이 빠졌다. 문이 기울며 금속판 버팀대를 눌렀다. 위쪽 끈 하나가 끊어졌다.
베크가 넘어졌다. 문 아래쪽이 그의 부츠를 덮쳤다.
“발 빼!”
“안 빠져!”
사람들이 문을 들었다. 기둥의 균열이 길어졌다.
이안도 끈을 잡으려 했지만 오른손이 미끄러졌다. 그는 왼손으로 다시 잡았다.
베크가 부츠에서 발만 빼냈다. 양말이 진흙 위에 닿았다.
“놔!”
문이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입구가 열렸다. 동시에 열교환탑 기둥 위쪽이 부러졌다. 은빛 가루가 구름처럼 쏟아졌다.
필터 수명이 한꺼번에 줄었다.
08:11.
“안으로!”
일행은 배양조를 밀어 열교환소에 들어갔다.
안쪽 공기는 더 나빴다. 오래된 냉각판에 금속분진과 포자가 층층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바람은 막혔고 닫을 수 있는 내부 정비실이 있었다.
정비실 문은 사람용이었다. 폭 1.1미터.
배양조는 1.32미터였다.
다니엘이 문틀을 봤다.
“또 안 맞아.”
리나가 말했다.
“밖에 둘 수 없어?”
사라가 센서를 들었다.
“이 공간 포자 농도는 바깥의 세 배야.”
미라는 문틀의 볼트를 확인했다. 네 개는 녹슬었고 두 개는 벽 안에 매립돼 있었다.
“벽째 넓히려면 한 시간.”
필터 7분 22초.
요나가 열교환소 깊은 곳을 가리켰다.
“냉각재 통로.”
사람이 허리를 숙여야 하는 낮은 통로였다. 바닥에는 오래된 운반 레일이 남아 있었다. 폭은 배양조보다 넓었다.
“끝이 어디야?”
“외부 저장조.”
“밀폐돼 있어?”
“17년 전에는.”
통로 안에서 규칙적인 금속음이 들렸다.
쿵.
삼 초 뒤 다시 쿵.
요나가 등을 벽에 붙였다.
“움직이는 게 있어.”
휴대등 아래로 낮은 기계 한 대가 나타났다. 여섯 개의 바퀴 가운데 두 개가 없었다. 남은 네 바퀴로 몸을 끌며 레일을 따라오고 있었다.
기계 뒤에는 물탱크가 연결돼 있었다.
표면에 포지 표식과 날짜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 점검 2163년.
운송 목적: 외부 저장조 보충.
목적지: 제5중계소.
적재량: 정제수 1,800리터.
기계는 사람들을 보지 않았다. 센서 렌즈는 진흙으로 막혀 있었다. 벽에 부딪히고, 물러났다가, 같은 각도로 다시 부딪쳤다.
쿵.
미라가 물탱크 밸브를 봤다.
리나에게 필요한 물과 사람들의 세척수, 필터를 헹굴 물이 그 안에 있었다.
요나는 기계의 낡은 연결축을 봤다.
“저걸 멈추면 물은 얻어.”
“안 멈추면?”
“목적지까지 따라갈 수 있어.”
“제5중계소에 뭐가 있는데?”
“모르지.”
필터 수명 05:48.
기계는 다시 벽에 부딪쳤다.
이번에는 충격으로 센서의 진흙이 조금 떨어졌다.
렌즈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운반기는 미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뒤 어둠 속에서 같은 금속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휴대등이 닿지 않는 통로 안쪽에서 붉은 센서 불빛이 하나씩 켜졌다. 두 개, 다섯 개, 열한 개. 각 기계 뒤에는 서로 다른 탱크와 상자가 매달려 있었다.
가장 앞의 운반기가 벽 대신 이번에는 배양조를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