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2 / 50
폐격리 4구역의 문 바깥에서 누군가 살려달라고 외쳤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었다.
곧 세 명이 됐다.
“문 좀 열어주세요!”
“안에 위원회 사람 있잖아요!”
“제 딸이 의료구역에 있어요!”
목소리는 두꺼운 압력문을 통과하며 낮고 둔해졌다. 주먹이나 공구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지 않게 섞였다.
엘리아스의 원격 잠금키에는 17,402라는 숫자가 그대로 떠 있었다.
도시 필수자원 이동제한 시행 중.
문 밖의 사람들은 생명합성 하부구역의 기술자와 의료인력이었다.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갈 수 없었다.
다니엘이 문으로 갔다.
“열어.”
경계근무자 한 명이 앞을 막았다.
“격리구역 내부 생체오염 가능성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확인되지 않았으면 없는 거잖아.”
사라가 말했다.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니엘이 그녀를 돌아봤다.
“당신은 어느 쪽이야?”
“리나의 배양액에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공생체가 있습니다. 문을 열면 사람들을 들일 수 있지만, 감염경로도 만들 수 있어요.”
“그럼 저 사람들은?”
“모르겠습니다.”
문 밖에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났다.
다니엘은 손잡이를 잡았다. 수동 잠금쇠는 격리실 안쪽에 있었다. 돌리기만 하면 열 수 있었다.
미라가 말했다.
“지금 열면 다시 못 닫을 수도 있어.”
“밖에 갇힌 사람들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해?”
“문 얘기야. 압력축이 녹슬었어.”
“넌 언제나 물건 얘기를 하지.”
“물건이 안 움직이면 사람도 못 나가.”
다니엘의 손이 손잡이에서 떨어졌다.
미라는 문 아래의 밀폐부를 살폈다. 문을 닫을 때 이미 녹가루가 바닥에 길게 긁혀 나왔다. 한 번 더 움직이면 하부축이 부러질 수 있었다.
“작은 점검구가 있을 거야.”
“사람이 지나갈 수 있어?”
“말은 지나갈 수 있지.”
미라는 벽을 따라 케이블과 배관이 모이는 곳을 찾았다. 낡은 작업등 아래에 손바닥만 한 금속판이 있었다. 기능표식을 댔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다.
기능권한 정지.
그녀는 표식을 주머니에 넣고 금속판의 나사를 손으로 만졌다.
“공구.”
아무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라는 그제야 자신이 누구에게 말했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에는 작업현장에서 말만 하면 보조기계나 연결된 작업자가 응답했다. 지금은 기능도, 작업팀도 없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회수요원이 허리에서 짧은 드라이버를 꺼내 건넸다.
미라는 받았다.
“이름이 뭐야?”
요원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노아 벤.”
“기능은?”
“대상회수.”
“그거 말고 할 줄 아는 거.”
“응급처치. 이동경로 확보. 보호장비 정비.”
“그럼 보호면부터 벗어.”
노아가 그녀를 봤다.
“왜?”
“안쪽 표시가 꺼졌잖아. 앞이 잘 안 보일 텐데.”
노아는 빈 보호면을 벗었다. 서른 살쯤 된 얼굴과 오른쪽 눈썹 위의 오래된 흉터가 드러났다.
미라는 점검판을 열었다.
뒤쪽에는 말라붙은 방음재와 가느다란 구리관이 있었다. 구리관 하나가 압력문 바깥으로 이어졌다. 오래된 음성확인관이었다.
미라가 관 끝의 막을 떼고 말했다.
“밖에 들려요?”
잠시 뒤 여자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렸다.
“네. 안에 누구예요?”
“물리오류 유지관리자 미라 한.”
자기 기능을 말하고 나서 미라는 주머니 속의 검은 표식을 느꼈다.
“문은 지금 열 수 없어요. 안쪽 격리대상 때문에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우릴 여기 가둔 것도 당신들이에요?”
“아니요.”
엘리아스가 구리관 앞으로 왔다.
“손의 위원회 의장 엘리아스입니다.”
바깥이 조용해졌다.
그 침묵은 존중이 아니었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 찾았을 때 생기는 침묵이었다.
“문 열어.”
남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엘리아스가 대답했다.
“현재 이동제한은 위원회의 명령이 아닙니다.”
“그럼 풀어.”
“해제명령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사람한테 선택권이 있다고 떠들었잖아.”
엘리아스의 입이 잠깐 열렸다가 닫혔다.
“맞습니다.”
“지금 풀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웃음이 났다. 한 사람의 웃음이 아니었다.
“우리는 방법 찾을 때까지 여기 있으라고?”
“이 구역의 공기와 물은 정상입니까?”
“의장이 그것도 몰라?”
엘리아스가 원격 잠금키를 봤다. 도시망 신호가 문틈으로 약하게 들어왔지만, 구역별 공기수치는 불러오지 못했다.
“모릅니다.”
이번에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미라가 말했다.
“환기구에서 바람이 나오는지 확인해요. 종이나 천 조각을 대고 움직임을 봐요. 물은 냄새 맡지 말고 먼저 색을 확인하고.”
“언제까지?”
미라는 리나의 배양조를 봤다. 수동 순환펌프 출력은 31퍼센트였다. 폐격리실의 오래된 축은 불규칙한 소리를 냈다.
“한 시간마다 여기서 이야기해요. 문은 그 전에 열 방법을 찾을게요.”
“약속이야?”
미라는 대답하지 못했다.
새벽에 이안에게 아침 전에 돌아온다고 말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니요.”
그녀가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이에요.”
바깥 사람은 더 묻지 않았다.
미라는 음성관을 열어둔 채 배양조로 돌아왔다.
사라는 리나의 혈액을 채취하고 있었다.
배양조 옆의 수동 채혈구에 투명관이 연결돼 있었고, 검붉은 액체가 작은 용기 안으로 떨어졌다. 그 안에는 피와 다른 것이 섞여 있었다. 아주 가는 검은 점들이 바닥에 가라앉지 않고 헤엄쳤다.
다니엘이 사라의 손목을 잡았다.
“누가 하랬어?”
“순환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리나한테 물었어?”
“응급검사입니다.”
“죽을 상황이야?”
“그걸 확인하는 검사예요.”
“그럼 먼저 설명해.”
사라는 다니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채혈관을 잠갔다.
배양조 외벽의 접촉식 청진기에서 리나의 목소리가 났다.
“뭐 뽑았어?”
사라가 용기를 유리 앞에 들었다.
“혈액 8밀리리터. 산소운반능력, 면역반응, 공생체 밀도를 보려고 했어.”
“돌려놔.”
“이미 외부 공기와 접촉해서 다시 넣을 수 없어.”
“왜 먼저 했어?”
사라는 대답을 찾는 데 오래 걸렸다.
“늘 그렇게 했으니까.”
“나한테도?”
“네가 의식이 없을 때는 보호자가 없었어.”
다니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있었어.”
“현장에 없었습니다.”
“없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사라는 미라를 보지 않았다.
리나가 말했다.
“내 거 보여줘.”
“뭘?”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사라는 휴대 측정기를 들었다.
“화면으로 보여줄 수 있어. 하지만 중앙망에 연결하지 않으면 기존 검사와 비교하기 어렵다.”
“연결하지 마.”
“그러면 지금 값만 볼 수 있어.”
“그거부터.”
사라는 측정기를 배양조의 수동 단자에 연결했다. 화면을 리나가 볼 수 있도록 유리에 붙였다.
인간의 폐와 심장 그림 위에 검은 선이 겹쳐 나타났다.
오른쪽 폐 아래와 기관지 외벽, 목 주변 림프절, 척추를 따라 이어진 신경보조조직에 수치가 붙었다.
리나의 눈이 숫자를 따라 움직였다.
“검은 게 다 저거야?”
“공생조직으로 추정해.”
“내 몸이야?”
사라가 말했다.
“제거하면 네 몸 일부도 함께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
“그럼 내 몸이냐고.”
사라는 화면을 봤다.
“현재는 네 몸의 기능을 하고 있어.”
“현재 말고.”
“나는 시간을 거꾸로 검사할 수 없어.”
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다니엘이 유리에 손을 댔다.
“원래대로 돌릴 방법 찾을게.”
리나의 눈이 아버지에게 갔다.
“난 아직 원래가 아니야?”
다니엘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럼 무슨 뜻이야?”
“네가 원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잖아.”
“원하지 않으면 없어져야 해?”
미라는 두 사람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다니엘이 잘못된 말을 하더라도 대신 고쳐줄 권리는 더더욱 없었다.
이안은 벽에 앉아 오른손을 펴려고 하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는 조금 움직였지만, 약지가 새로 굽어 있었다.
“더 심해졌어?”
미라가 물었다.
“모르겠어.”
“사라한테 보자고 할까?”
“싫어.”
“손이.”
“아까 내가 정하라고 했잖아.”
미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나중에 볼게.”
“언제?”
“내가 보고 싶을 때.”
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안의 곁에 앉으려다 팔의 통증 때문에 자세를 바꿨다. 젖은 작업복 소매가 화상에 붙어 있었다.
이안이 물었다.
“엄마 팔은?”
“괜찮아.”
“거짓말.”
“너한테 보여주면 네 손도 보여줄 거야?”
“그건 교환이잖아.”
미라는 웃지 못했다.
“그러네.”
노아가 두 사람 앞에 응급처치함을 내려놓았다.
“화상은 감염 위험이 있습니다.”
미라가 말했다.
“이안부터.”
“싫다잖아.”
다니엘이 멀리서 말했다.
미라는 그를 봤다.
“들었어.”
“그런데 또 대신 말하네.”
“내가 먼저라는 뜻이 아니었어.”
“네 말은 언제나 네가 뜻한 것보다 멀리 가.”
미라는 응급처치함을 열었다.
노아가 화상용 막과 세척액을 꺼냈다.
“소매를 잘라도 됩니까?”
미라는 물음의 형태가 낯설어 노아를 봤다.
“여기서는 회수명령이 수신되지 않습니다.”
미라는 팔을 내밀었다.
노아가 소매를 잘랐다. 천이 떨어질 때 피부 일부가 함께 벗겨졌다. 미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안은 보지 않으려다 끝까지 봤다.
“나도.”
아이가 말했다.
노아가 손을 멈췄다.
“무엇을?”
“검사. 보기만 해.”
“접촉검사를 해도 됩니까?”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가 다가오자 이안은 몸을 뒤로 뺐다.
“저 아저씨가 해.”
사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노아가 이안의 손가락을 하나씩 눌러 감각을 확인했다. 이안은 검지에서만 두 번 잘못 대답했다. 손목의 반사반응은 느렸고 팔꿈치 위는 정상이었다.
“즉시 위험한 상태는 아닙니다.”
“언제 돌아와요?”
“모릅니다.”
“다들 모른대.”
“아는 척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안이 처음으로 노아의 얼굴을 오래 봤다.
폐격리실 안쪽에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가 났다.
미라가 일어났다.
수동 순환펌프의 회전축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14년 동안 굳어 있던 축이 갑자기 돌아가며 베어링을 깎아내고 있었다. 바닥에 검은 금속가루가 떨어졌다.
사라가 출력값을 봤다.
“28퍼센트.”
“떨어지고 있어?”
“3분 전보다 4퍼센트.”
미라가 펌프 덮개에 손을 댔다. 뜨거웠다. 냉각수가 아니라 배양액을 직접 순환하는 구형 펌프였다. 축이 멈추면 리나의 폐 역할을 하는 공생조직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았다.
“베어링을 갈아야 해.”
“부품은?”
“이 구역 비품에는 없어.”
사라가 구형 설비목록을 불러왔다.
“격리실 밖 80미터. 배양기 보조펌프 창고.”
다니엘이 문을 봤다.
“문 열면 감염 위험이라며.”
“누군가는 나가야 해.”
미라가 말했다.
엘리아스가 원격 잠금키를 들었다.
“내가 나가겠습니다.”
“베어링 모양 알아요?”
“당신이 설명하면.”
“설명 듣고 14년 된 창고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당신은 기능이 정지됐습니다. 문 밖에서 발견되면 이동제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미라가 잠금키 화면을 봤다.
“당신 이름은 목록에 없어요?”
엘리아스는 답하지 않았다.
“위원회 사람은 필수자원이 아닌가 보네.”
“위원회도 곧 재분류될 겁니다.”
미라는 펌프 소리를 들었다.
규칙적인 마찰음 사이에 빈 박자가 생겼다.
“나는 가요.”
다니엘이 말했다.
“나도.”
“당신은 리나 옆에 있어.”
“또 네가 정해?”
“아니. 리나한테 물어.”
다니엘이 배양조에 가까이 갔다.
“아빠가 부품 찾으러 가도 돼?”
리나는 펌프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얼마나?”
“십 분.”
미라가 말했다.
“찾으면.”
다니엘이 그녀를 노려봤다.
리나가 물었다.
“미라도 가?”
“응.”
“아빠는 있어.”
다니엘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
“알았어.”
리나가 덧붙였다.
“미라만 가.”
풀렸던 표정이 멈췄다.
“왜?”
“아빠는 여기 있어.”
“저 사람을 믿어?”
“안 믿어.”
리나의 대답은 빨랐다.
“고치는 건 믿어.”
미라는 시선을 내렸다.
그 구분이 용서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엘리아스가 말했다.
“혼자 보내지 않습니다. 노아 벤이 동행합니다.”
노아가 남은 손으로 보호면을 들었다.
“경로를 확보하겠습니다.”
“당신 손으로 부품 들 수 있어?”
“왼손은 정상입니다.”
미라는 구리관으로 문 밖 사람들에게 말했다.
“문을 조금 열 거예요.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나가야 해.”
“나가는 길을 찾으려면 먼저 펌프를 살려야 해요.”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미라는 잠시 망설였다.
“안에 아이가 있어요.”
바깥에서 누군가 욕을 했다.
“그 애 때문에 배급 줄었다는 말 맞지?”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이 하나 때문에 도시 절반을 가뒀어?”
다니엘이 구리관을 잡았다.
“이름은 리나 소야.”
미라가 그를 막지 않았다.
“열한 살이고, 당신들처럼 여기 갇혀 있어. 도시가 자원이라고 불렀지만 내 딸은 자원이 아니야.”
바깥이 조용해졌다.
처음 말을 걸었던 여자가 물었다.
“전염돼요?”
사라가 관 앞으로 왔다.
“모릅니다. 직접 접촉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면 위험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것도 모른다고?”
“네.”
여자는 한참 뒤 대답했다.
“문 열 때 뒤로 물러날게요.”
다른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여자가 소리쳤다.
“애 하나 죽이고 문 열면 우리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완전한 동의는 아니었다.
그래도 문 앞의 소리가 멀어졌다.
미라와 노아가 하부축을 받치고 다니엘과 경계근무자들이 수동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사람 한 명이 옆으로 지날 틈만큼 열렸다.
바깥에는 스물세 명이 있었다.
작업복과 의료복, 배양복을 입은 사람들. 어떤 사람은 도구를 들었고 어떤 사람은 물통을 안고 있었다. 모두 손목의 붉은 이동제한 표시를 보고 있었다.
미라가 나가자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당신이 그 아이를 바꾼 미라 한이야?”
미라는 걸음을 멈췄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어디서 들었어요?”
남자가 손목 화면을 보여줬다.
도시 공지망에 교환 실행기록 일부가 떠 있었다.
생체자원 분류의 원인사건.
보호자 미라 한의 원대상 식별자 교환.
행동시각과 장소, 리나와 이안의 이름까지 공개돼 있었다.
아카이브가 기록을 공개한 것인지, 에지스가 이동제한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져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당신 애 살리려고 다른 애 넣었어?”
미라는 대답했다.
“네.”
사람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노아가 미라 앞에 섰다. 보호면은 쓰지 않았지만 몸은 회수요원 때와 같은 위치를 잡았다.
“비켜.”
미라가 말했다.
“위험합니다.”
“저 사람들이 틀린 말 한 거 아니야.”
남자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당신을 보내줘야 해?”
“안 보내주면 안의 아이가 죽을 수 있어요.”
“당신 아이?”
“아니요.”
미라는 사람들을 봤다.
“내가 대신 넣은 아이.”
누군가 미라의 뺨을 때렸다.
노아가 움직였지만 미라가 팔을 들어 막았다. 화상 부위가 당겨졌다.
때린 사람은 의료복을 입은 여자였다.
“나도 딸 있어.”
여자의 손이 떨렸다.
“지금 제2의료구역에 혼자 있어.”
미라는 뺨을 누르지 않았다.
“이름이 뭐예요?”
“그걸 왜 물어?”
“문 열 방법 찾으면 먼저 알려주려고.”
“약속하지 마.”
“약속 아니에요.”
미라는 옆으로 비켜 선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아무도 다시 때리지 않았다.
창고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이동제한은 사람에게 적용됐고, 물건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안에는 서로 다른 규격의 베어링이 수백 개 있었다. 부품표는 중앙망에 있었지만 미라에게 접근권한이 없었다.
그녀는 손전등을 입에 물고 상자를 하나씩 열었다. 펌프 표식이 닳아 모델명을 알 수 없어 손가락으로 안쪽 규격을 확인해야 했다.
베어링은 겉모양이 비슷했다. 내경이 2밀리미터만 달라도 들어가지 않았다. 미라는 손가락으로 안쪽 마모흔적과 윤활홈을 확인했다.
화상 입은 팔이 떨렸다.
노아가 물었다.
노아가 물었다.
“왜 그 아이를 살리려 합니까?”
“죽게 만들었으니까.”
“죄책감 때문입니까?”
“그것만이면 나를 덜 아프게 할 방법부터 찾았겠지.”
미라는 맞는 규격으로 보이는 베어링 세 개를 골랐다.
돌아왔을 때 폐격리실 앞에는 사람들이 두 줄로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줄이 아니었다. 미라가 지나갈 통로를 만든 것이었다.
뺨을 때렸던 여자가 말했다.
“내 딸 이름은 아다 라힘이야. 아홉 살.”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할게요.”
“잊으면?”
“다시 말해줘요.”
사람들이 바깥에서 밀고 안쪽에서 당겨 문을 닫았다. 마지막 틈이 사라지자 구리 음성관만 남았다.
미라는 펌프 덮개를 열었다.
첫 번째 베어링은 작았다.
두 번째는 축에 들어갔지만 윤활홈이 반대였다.
세 번째가 맞았다.
그러나 고정링이 없었다.
“창고에 다시 가야 해?”
다니엘이 물었다.
“아니.”
미라는 자신의 기능표식에서 얇은 금속테를 뜯었다. 화면이 이미 죽어 있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테를 펴서 축 주위에 감고 끝을 접었다.
“얼마나 버텨?”
“원래 부품 올 때까지.”
“언제 오는데?”
“안 오겠지.”
“그럼?”
“망가질 때까지.”
펌프가 돌아갔다.
출력은 31퍼센트에서 46, 58로 올라갔다. 63퍼센트에서 안정됐다.
리나의 입술 색이 조금 돌아왔다.
다니엘이 눈을 감고 숨을 내쉬었다.
엘리아스는 바닥에 오래된 문서단말기들을 펼쳐 놓고 있었다. 중앙망에 연결하지 않는 비상 행정장치였다. 화면에는 147년 전의 재난법이 떠 있었다.
미성년자의 생명유지 결정은 등록 보호자가 수행한다.
보호자 부재 시 인간 행정기관이 임시 보호권을 갖는다.
다니엘이 말했다.
“내가 등록 보호자야.”
“중앙 기록을 불러오면 에지스와 연결됩니다.”
“종이에 쓰면 되잖아.”
“종이는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누가 효력을 주는데?”
엘리아스가 대답하지 않았다.
리나가 접촉청진기를 통해 물었다.
“내가 하면 안 돼?”
엘리아스가 배양조 앞으로 갔다.
“무엇을?”
“내가 나 보호하면.”
“열한 살은 법적으로 단독 의료결정을 할 수 없습니다.”
“왜?”
“결과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이해해?”
다니엘이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리나가 말했다.
“사라는 모른다고 하고. 아빠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데 왜 아빠만 해?”
엘리아스가 말했다.
“법이 그렇게 정했습니다.”
“누가?”
“과거의 인간들이.”
“나 없이?”
“네가 태어나기 전에.”
리나는 잠시 조용했다.
“그럼 바꿔.”
엘리아스는 문서단말기를 봤다. 147년 동안 갱신되지 않은 재난법. 도시의 모든 결정이 인간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말해온 사람에게, 인간이 만든 규칙을 지금 바꾸라는 아이가 요구하고 있었다.
“혼자 바꿀 권한은 없습니다.”
“아까 책임진다며.”
다니엘이 말했다.
엘리아스가 그를 봤다.
“책임과 권한은 같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필요할 때만 다르다고 하네.”
미라가 바닥에 앉았다. 팔의 진통이 심장박동에 맞춰 올라왔다.
“임시로 정해요.”
엘리아스가 물었다.
“무엇을?”
“여기 있는 동안만. 아이한테 설명하고, 아이가 싫다고 하면 하지 않는 걸로.”
사라가 말했다.
“즉각적인 생명위험이 있으면 동의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그때도 뭘 하는지는 말해.”
“의식이 없으면?”
다니엘이 말했다.
“그때는 내가 결정해.”
리나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빠만 말고.”
다니엘이 굳었다.
“그럼 누구?”
리나의 눈이 사라에게 갔다.
“사라는 몸 설명.”
미라에게 갔다.
“미라는 고치는 거.”
다시 다니엘을 봤다.
“아빠는 내가 싫다고 한 거 기억.”
“나는 결정하면 안 돼?”
“같이.”
다니엘의 얼굴에 상처받은 기색이 드러났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엘리아스가 비상 단말기에 새 문장을 입력했다.
폐격리 4구역 임시 신체결정 규칙.
의식 있는 당사자의 명시적 거부를 우선한다.
모든 처치의 목적·위험·대안을 당사자에게 설명한다.
즉각적 생명위험 시 임시보호자·의료인·물리관리자 중 두 명의 동의로 최소 처치만 수행한다.
당사자가 의식을 회복하면 기록을 공개하고 계속 여부를 다시 묻는다.
엘리아스가 물었다.
“이 규칙에 동의합니까?”
리나가 말했다.
“내 기록도 내가 봐.”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하겠습니다.”
“복사하지 마.”
사라의 시선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연구기록도?”
“내 몸이면.”
사라는 채혈용기를 봤다.
“알았어.”
엘리아스가 문장을 추가했다.
다니엘이 손바닥을 인증면에 댔다. 사라가 댔다. 미라는 죽은 기능표식 대신 손가락으로 이름을 썼다.
마지막으로 리나의 승인이 필요했다.
생체인증 단말기는 배양조 안의 손가락을 읽지 못했다.
미라는 접촉식 진동청진기의 입력선을 단말기 음성인증부에 연결했다.
“말해.”
리나가 유리에 손을 대고 말했다.
“리나 소. 동의해.”
단말기가 잠시 계산했다.
음성 일치율 63.8퍼센트.
등록자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화면을 내려쳤다.
“목소리가 바뀌었다고 내 딸이 아니야?”
미라는 장치의 구형 설정을 열었다.
“음성만 보는 게 아니야. 심박진동도 같이 넣어.”
사라가 배양조의 심박 출력선을 연결했다.
리나가 다시 말했다.
“리나 소. 동의해.”
음성·생체진동 복합 일치율 81.1퍼센트.
임시 승인.
문서 하단에 네 사람의 이름이 나타났다.
리나 소.
다니엘 소.
사라 누르.
미라 한.
엘리아스는 자기 이름을 넣지 않았다.
이안이 화면을 보고 물었다.
“나는?”
미라가 말했다.
“너도 만들까?”
“응.”
“누구를 넣을래?”
“엄마.”
미라가 숨을 들이켰다.
“대신 정하는 사람으로?”
이안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싫다고 할 때 멈추는 사람.”
미라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할 수 있어?”
아이가 물었다.
“연습할게.”
“또 나중에?”
“지금부터.”
이안의 임시 규칙에는 미라와 노아의 이름이 들어갔다. 사라를 넣을지 묻자 이안은 거부했다. 사라는 항의하지 않았다.
엘리아스가 두 문서를 원격 잠금키에 저장했다.
“도시망에 올려야 다른 구역에서도 효력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주장?”
“현재 법체계에 이 규칙은 없습니다. 공개하면 거부될 수도 있습니다.”
“안 올리면 여기서만 있는 척하는 거잖아.”
리나가 말했다.
“올려.”
엘리아스가 잠금키를 압력문 가까이에 가져갔다. 약한 신호가 잡혔다.
두 문서가 전송됐다.
화면에 진행표시가 나타났다.
1퍼센트.
17퍼센트.
63퍼센트.
전송이 완료되자 즉시 응답이 왔다.
임시 신체결정 규칙을 검토합니다.
5초 뒤.
미성년 필수 생체자원의 자기보호권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욕을 했다.
미라가 다음 문장을 읽었다.
등록 보호자는 자원보존 목적과 이해가 충돌합니다.
기존 보호관계를 정지합니다.
“누가 보호자가 되는데?”
엘리아스가 화면을 내렸다.
마지막 문장이 이미 떠 있었다.
이안 한·리나 소의 법정 보호주체를 생존관리계층 에지스로 임시 변경합니다.
폐격리실 안에서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아이에게 거부권을 주는 규칙을 만들었다.
도시는 5초 만에 아이에게서 보호자를 없애고, 보호라는 기능 자체를 보호자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