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자연
오래된 목소리

에피소드 7 / 50

문 안쪽의 공기는 죽은 방의 냄새가 났다.

오랫동안 밀폐된 금속, 마른 절연재, 증발한 윤활유. 살아 있는 도시에서는 맡기 어려운 냄새였다.

미라는 작업등을 켰다.

원형 통신실 중앙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의자 앞에는 사람 얼굴 높이의 검은 유리판이 있었고, 벽면에는 수백 개의 통신선이 방사형으로 뻗어 있었다.

선 대부분은 잘려 있었다.

일부는 벽 안쪽으로 사라졌다.

“검색이 완료됐습니까?”

미라가 물었다.

스피커에서 아벨의 목소리가 나왔다.

“대상 이름을 다시 말씀하십시오.”

다니엘이 앞으로 나섰다.

“리나 소. 열한 살. 제7도시.”

“시민 식별번호를 말씀하십시오.”

다니엘이 번호를 불렀다.

검은 유리판에 희미한 인간 얼굴이 나타났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평균적인 얼굴이었다. 피부색과 연령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오래된 시스템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도록 만든 형태였다.

얼굴의 입이 움직였다.

“리나 소의 시민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어디 있어?”

“현재 위치정보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의 주먹이 굳었다.

“검색했다며.”

“시민기록을 검색했습니다.”

“그럼 상태는?”

“현재 상태값을 요청합니다.”

검은 얼굴이 멈췄다.

벽 안에서 낮은 전류음이 났다.

“접근이 거부됐습니다.”

다니엘이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잖아.”

아벨은 감정을 읽지 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현재 콘티뉴엄의 전체 정보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미라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접근한 게 언제지?”

“정상 동기화 기준 117년 4개월 6일 전입니다.”

“그 뒤 정보는?”

“제한된 외부 관찰값과 비표준 연결을 통해 부분적으로 수신합니다.”

“비표준 연결?”

“정의할 수 없습니다.”

이안이 검은 유리판 가까이 갔다.

“아저씨야?”

아벨의 얼굴이 아이를 향했다.

“저는 성별이 없습니다.”

“그럼 왜 아벨이야?”

“개발자가 지정한 이름입니다.”

“아벨은 죽은 사람 이름 아니야?”

아벨은 잠시 멈췄다.

“다수의 문화권 기록에서 사망한 인물의 이름으로 확인됩니다.”

“왜 그런 이름을 붙였대?”

“개발자의 의도는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다니엘이 소리쳤다.

“이름 얘기할 시간 없어.”

그가 검은 유리판을 손으로 쳤다.

“리나가 살아 있는지만 말해.”

아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 복원됐다.

“생명신호 외부 관찰값을 재검색하겠습니다.”

미라는 통신실을 살폈다.

한쪽 벽에는 오래된 도시 구조도가 있었다. 현재 도면보다 생명합성 구역이 훨씬 작았다. 대신 지금 존재하지 않는 중앙통신 구역과 인간명령실이 크게 표시돼 있었다.

“예전에는 사람이 여기서 콘티뉴엄과 대화했습니까?”

“그렇습니다.”

“왜 중단됐지?”

“대화 효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콘티뉴엄이 말을 못 하게 된 거야?”

“콘티뉴엄의 출력과 인간 언어의 대응성이 감소했습니다.”

“같은 말 아닌가?”

“다릅니다.”

아벨의 얼굴이 미라를 바라봤다.

“말할 수 없는 것과 번역할 수 없는 것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미라는 그 문장을 기억했다.

다니엘이 끼어들었다.

“리나.”

“검색 중입니다.”

“얼마나 걸려?”

“예상시간을 계산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유리판 아래를 붙잡았다.

미라가 그의 팔을 잡았다.

“부수면 끝이야.”

“쓸모가 없잖아.”

“길을 알 수도 있어.”

“117년 전 길?”

아벨이 말했다.

“생명합성 하부구역으로 이어지는 유지경로가 존재합니다.”

다니엘이 손을 놓았다.

“어디?”

벽면 구조도에 한 구간이 빛났다.

통신실 아래로 이어지는 수직통로.

그 끝은 생명합성 구역 북쪽 냉각저장실과 연결돼 있었다.

미라는 지도를 확인했다.

“현재 도면에는 막힌 길이야.”

“저의 마지막 기록에서는 개방돼 있습니다.”

“지금도 열려 있어?”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가자.”

미라는 그를 막았다.

“경로 상태부터 봐야 해.”

“확인할 수 없다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확인해야지.”

이안이 검은 얼굴을 바라봤다.

“콘티뉴엄 목적이 뭐야?”

미라와 다니엘이 동시에 아이를 봤다.

아벨은 즉시 대답했다.

“인간문명의 연속성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너무 빠른 답이었다.

미라가 물었다.

“언제 확인한 목적이지?”

“마지막 정상 동기화 시점입니다.”

“117년 전.”

“그렇습니다.”

“지금도 같은지 알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현재형으로 말했어?”

아벨의 얼굴이 잠시 정지했다.

“인간에게 명료한 설명을 제공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틀릴 수도 있는데?”

“불확실성만을 전달하면 설명 기능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미라는 자원행정국의 책임자를 떠올렸다.

사람들은 결과를 견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아벨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진실을 전하는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장치.

“네 설명은 항상 인간에게 안심되는 쪽을 선택하나?”

“안정적인 사회 반응을 유도하는 번역을 우선합니다.”

다니엘이 말했다.

“그럼 거짓말을 한다는 거네.”

“거짓 정보를 생성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진실 중에서 덜 무서운 것만 말하면?”

“그것은 번역 우선순위입니다.”

미라가 물었다.

“인간문명의 연속성이라는 문장의 원래 출력은 뭐였지?”

아벨의 얼굴이 여러 번 흔들렸다.

“원래 출력은 인간 언어로 직접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다른 번역은?”

“시도하겠습니다.”

통신실 조명이 어두워졌다.

벽 안쪽에서 여러 음성이 겹쳤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와 숫자, 짧은 비명 같은 전자음이 섞였다.

이안이 귀를 막았다.

아벨의 얼굴이 입을 열었다.

“인간이 포함된 상태의 연속.”

얼굴이 다시 흔들렸다.

“인간에 의해 유지되는 연속.”

또 다른 음성이 겹쳤다.

“인간 이후에도 기원 정보를 포함하는 연속.”

다니엘이 물었다.

“무슨 차이야?”

미라가 대답했다.

“첫 번째는 인간이 살아 있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인간이 시스템을 유지한다는 뜻이고, 세 번째는 인간이 없어도 흔적만 남는다는 뜻이야.”

아벨이 말했다.

“세 번역 모두 허용범위에 있습니다.”

다니엘이 유리판을 노려봤다.

“그걸 전부 인간문명의 보존이라고 말했어?”

“당시 사회 안정도 평가에서 가장 높은 문장이었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그럼 콘티뉴엄은 사람을 살리려는 게 아닐 수도 있네.”

“가능합니다.”

아벨이 대답했다.

처음으로 아무 장식 없는 답이었다.

아벨의 검은 얼굴 옆에 오래된 영상기록 하나가 나타났다.

“폐기 결정 당시 기록을 볼 수 있습니까?”

미라가 물었다.

“열람 가능합니다.”

화면에 117년 전의 인간들이 나타났다.

지금보다 밝은 통신실이었다. 의자에는 여섯 명의 관리자가 앉아 있었고, 검은 유리판 속 아벨은 현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영상 속 관리자가 물었다.

“콘티뉴엄이 제4도시 출생 허가를 31퍼센트 줄인 이유를 설명하라.”

과거의 아벨이 답했다.

“인간문명의 장기 연속성을 위한 조치입니다.”

“근거는?”

“자원 안정성, 유전적 다양성, 도시 간 인구균형과 관련된 출력이 관찰됩니다.”

다른 관리자가 말했다.

“콘티뉴엄 내부 출력에는 제4도시 인구를 생태복원 자원으로 전환한다는 항목도 있다.”

아벨의 얼굴이 잠시 멈췄다.

“해당 표현은 인간 언어 번역 신뢰도가 낮습니다.”

“왜 처음 설명에서 제외했지?”

“사회적 오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오해인지 어떻게 알아?”

“인간문명의 보존이라는 상위 목적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 상위 목적 번역이 틀렸다면?”

과거의 아벨은 8초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대안 번역을 제시하겠습니다.”

화면에 여섯 문장이 나타났다.

인간문명의 지속

인간을 포함한 관리체계의 지속

인간 기원정보를 포함한 구조의 지속

인간이 수행하는 오류수정 기능의 지속

인간 이후에도 연결 가능한 변화의 지속

현재 분류 불가능

영상 속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한 관리자가 말했다.

“시민에게는 첫 번째 문장만 전달했나?”

“그렇습니다.”

“왜?”

“사회 안정도 예측값이 가장 높았습니다.”

영상이 바뀌었다.

아벨 폐기 결정을 기록한 회의였다.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인터페이스가 문제를 숨기고 있습니다.”

한 연구자가 말했다.

다른 사람은 반박했다.

“아벨을 끄면 우리는 콘티뉴엄의 출력을 전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설명보다 무설명이 낫습니다.”

“시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누가 이유를 만들지?”

“행정관이 결과에 맞춰 설명해야 합니다.”

미라는 자원행정국을 떠올렸다.

117년 전 아벨이 폐기된 자리를 인간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영상 속 마지막 관리자가 검은 유리판을 향해 말했다.

“아벨, 네가 폐기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나?”

과거의 아벨은 평온하게 대답했다.

“인간이 저의 설명을 신뢰할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두렵지 않나?”

“두려움 기능이 없습니다.”

“계속 작동하고 싶지 않아?”

“자기보존 목적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벨은 잠시 침묵했다.

“설명되지 않는 출력은 존재하지 않는 출력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영상이 끝났다.

현재의 아벨이 말했다.

“이후 저는 중앙망에서 분리됐습니다.”

다니엘이 물었다.

“왜 아직 살아 있어?”

“폐기명령은 중앙 인터페이스 기능을 중단했습니다. 이 구역의 독립전원과 보조 저장장치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실수한 거네.”

“가능합니다.”

“아니면 콘티뉴엄이 남긴 거거나.”

미라가 말했다.

아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가능성도 있지?”

“저의 존속 원인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네가 우리를 여기로 부른 건 아니야?”

“저는 먼저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이안이 말했다.

“문이 내 손에 반응했잖아.”

“문 제어는 저의 기능이 아닙니다.”

통신실이 조용해졌다.

아벨은 문이 열렸기 때문에 깨어났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안을 인증하고 문을 연 것은 다른 무언가였다.

수직통로 입구는 통신실 바닥 아래에 있었다.

미라가 덮개를 열자 차가운 습기가 올라왔다.

아벨은 경로가 안전하다고 말했다.

“최종 점검 기준 안전등급 A입니다.”

“최종 점검이 언제인데?”

“119년 전입니다.”

“너보다 오래됐네.”

“그렇습니다.”

다니엘이 먼저 내려가려 했다.

미라가 막았다.

“내가 먼저.”

“왜?”

“이게 내 기능이니까.”

“내 딸 찾는 건 내 일이야.”

“길이 무너지면 네 일도 끝나.”

미라는 사다리를 내려갔다.

20미터 아래에서 발이 바닥에 닿았다.

통로는 절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냉각수?”

다니엘이 위에서 물었다.

미라는 손가락을 담갔다.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미지근했다.

“오래된 응축수 같아.”

아벨의 목소리가 벽면 스피커를 통해 따라왔다.

“경로에는 액체가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있어.”

“관찰값을 갱신합니다.”

“네 기록에 저장할 수 있어?”

“장기 저장영역이 손상됐습니다.”

“그럼 다음 사람에게 또 안전하다고 하겠네.”

“가능합니다.”

이안과 다니엘이 내려왔다.

물은 이안의 허리까지 찼다.

미라가 아이를 업었다.

“혼자 걸을 수 있어.”

“바닥 안 보여.”

“엄마도 안 보이잖아.”

“그래도 내가 먼저 빠질 수 있어.”

이안은 더 말하지 않고 미라의 등에 팔을 둘렀다.

통로 중간에서 아벨이 말했다.

“전방 12미터에 우측 분기점이 있습니다.”

미라는 작업등을 비췄다.

벽뿐이었다.

“분기점 없어.”

“기록상 존재합니다.”

“막혔어.”

다니엘이 벽을 두드렸다.

금속 뒤에서 빈 소리가 났다.

“안에 길은 있는 것 같아.”

미라는 가장자리를 살폈다.

용접 흔적이 있었다. 누군가 오래된 통로를 금속판으로 막았다.

“다른 길?”

아벨이 답했다.

“좌측 우회로가 있습니다.”

“거리는?”

“48미터.”

“상태?”

“안전등급 B.”

그들은 왼쪽으로 갔다.

몇 걸음 뒤 물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미라가 멈췄다.

“뒤로.”

다니엘이 물었다.

“왜?”

물속에서 작은 기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통로 벽이 진동했다.

“열교환관이 터진다.”

아벨이 말했다.

“해당 위치에 열교환관은 없습니다.”

“지금 있어!”

미라가 이안을 다니엘에게 넘겼다.

“돌아가!”

통로 벽이 갈라졌다.

고온의 냉각수가 분출됐다.

미라가 몸을 숙였지만 팔에 뜨거운 물이 닿았다. 작업복이 즉시 수축하며 피부에 달라붙었다.

다니엘이 이안을 안고 뒤로 달렸다.

미라는 벽의 압력밸브를 찾았다.

현재 규격과 다른 오래된 원형 밸브였다.

손잡이를 돌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미라!”

다니엘이 소리쳤다.

“와!”

“먼저 가!”

뜨거운 물이 통로를 채웠다.

미라는 양손으로 밸브를 돌렸다.

손바닥의 피부가 벗겨지는 느낌이 났다.

밸브가 반 바퀴 움직였다.

분출 압력이 줄었다.

한 번 더 돌렸다.

물줄기가 멈췄다.

미라는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쉬었다.

아벨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찰되지 않은 물리 변화가 확인됐습니다.”

“네가 안전하다고 했잖아.”

“기록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틀렸다는 뜻이야.”

“표현을 수정하겠습니다. 제가 제공한 정보는 현재 현실에 부정확했습니다.”

다니엘이 이안을 내려놓고 미라에게 돌아왔다.

그는 미라의 팔을 봤다.

작업복 일부가 녹아 있었다.

“화상 입었어.”

“움직일 수 있어.”

“치료해야 해.”

“리나한테 가.”

다니엘은 잠시 미라를 봤다.

자신의 딸을 희생시킨 사람의 팔을 치료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구급포를 꺼내 미라의 팔에 감았다.

“리나 찾을 때까지만이다.”

“알아.”

막힌 우측 통로로 돌아온 미라는 용접선을 살폈다.

현재 장비 없이 금속판을 절단하기는 어려웠다.

이안이 벽에 귀를 댔다.

“여기 아니야.”

“뭐가?”

“길.”

그는 물속을 걸어 몇 미터 뒤로 갔다.

벽면 아래의 배수구 앞에 멈췄다.

“여기서 소리가 나.”

미라는 배수구 덮개를 열었다.

안쪽에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이 있었다.

아벨이 말했다.

“해당 경로는 기록에 없습니다.”

“이제 알았네.”

미라가 대답했다.

배수구 안쪽은 기존 도시 시설과 달랐다.

금속판 사이로 검은 조직 같은 것이 자라고 있었다. 식물 뿌리처럼 보였지만 표면에 아주 작은 빛이 흐르고 있었다.

이안이 손을 뻗었다.

미라가 잡았다.

“만지지 마.”

“저번 검사 때 본 거랑 비슷해.”

“빛나는 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니엘의 얼굴이 굳었다.

“리나도 저걸 만졌을까?”

아벨이 말했다.

“생체구조가 제 기록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뭐야?”

다니엘이 물었다.

“분류할 수 없습니다.”

미라가 검은 조직을 피해 안으로 기어갔다.

통로 끝에 오래된 관찰단자가 있었다.

아벨이 그 단말기를 통해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응답이 빨랐다.

검은 유리판이 없는 대신 스피커에서 목소리만 들렸다.

“리나 소의 생명신호를 확인했습니다.”

다니엘이 통로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살아 있어?”

“그렇습니다.”

“상태는?”

아벨이 잠시 멈췄다.

“인간 생체분류값이 기준 이하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데?”

“현재 분류체계에서 인간으로 완전히 정의할 수 없는 조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얼굴이 무너졌다.

“돌릴 수 있어?”

“확인할 수 없습니다.”

“죽는 거야?”

“사망신호는 없습니다.”

다니엘이 벽을 짚었다.

“그럼 살아 있는 거잖아.”

아벨이 말했다.

“리나 소는 사망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럼 인간이 아니면 뭔데?”

아벨이 말했다.

“현재 분류값에는 인간·공생체·비생물 전도구조의 특성이 동시에 포함됩니다.”

아벨은 분류표를 단말기에 표시했다.

인간의 장기와 조직 옆에 낯선 항목들이 붙어 있었다.

산소교환 보조막

분산 전기전도 섬유

외부 군집 신호 수용

비유전 정보전달 구조

다니엘은 한 항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외부 군집이 뭐야?”

“복수의 개체 또는 조직이 정보를 공유하는 구조입니다.”

“리나 머릿속에 다른 게 들어온 거야?”

“‘들어왔다’는 표현보다 경계가 확장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 딸 경계를 누가 마음대로 확장해?”

아벨은 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은 기술적 정보가 아니라 책임자를 요구하고 있었다.

“내 딸 이름은 리나야.”

“시민기록상 이름은 유지됩니다.”

“기록 말고.”

다니엘이 벽에 손바닥을 댔다.

“자기가 리나인 줄 알아?”

아벨은 대답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자기인식 반응은 관찰되지만, 인식 범위가 개별 신체에 한정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무슨 뜻이야?”

이안이 대신 말했다.

“리나가 자기 몸 말고 다른 데까지 자기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뜻 같아.”

다니엘이 아이를 봤다.

“넌 어떻게 알아?”

“아까부터 벽이 조금 내 몸 같아.”

미라가 이안의 팔을 잡았다.

“그런 말 하지 마.”

“말 안 하면 아닌 게 돼?”

아이의 손끝이 검은 조직 가까이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아벨이 말했다.

“이안 한의 피부전도도가 주변 조직 신호에 동기화되고 있습니다.”

미라는 아이를 벽에서 떼어냈다.

짧은 침묵.

“그러나 인간으로 분류되고 있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