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자연
남은 날들

에피소드 30 / 50

북쪽으로 떠날 사람은 칩이 나오기 전에 정해야 했다.

제3도시 물 11시간 38분.

북쪽 결절점까지 11시간 32분.

남는 시간은 6분이었다.

“T-12 속도로는 그래.”

미라가 말했다.

전륜 하나가 휜 운송기는 시속 4킬로미터 이상 달릴 수 없었다. 길이 평탄하고, 추가 고장이 없고, 지도에 없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을 때만 6분이 남았다.

나미는 회랑에 다른 운송기를 요청했다.

대여 가능 운송기 없음.

T-12 회수 또는 현장 분해를 권고합니다.

“직접 고치면?”

필요 작업시간 5시간 40분.

제3도시 수리 우선권 정지 중.

회랑은 전날 합의한 조건을 바꾸지 않았다.

미라는 T-12의 휜 축에 임시 보강판을 댔다. 속도는 늘지 않았지만 바퀴가 완전히 빠질 확률을 낮췄다.

“나하고 이안, 요나가 간다.”

요나가 고개를 들었다. 저산소 뒤 입술색은 돌아왔지만 오래 서 있으면 호흡이 짧아졌다.

사라가 반대했다.

“폐기능 검사부터 해야 해요.”

“북쪽 시설을 아는 사람이 필요해.”

나미가 말했다.

“내가 간다. 제3도시 옛 물길은 내가 안다.”

“당신은 펌프 결정을 해야 하잖아.”

“결정은 이미 조건부로 승인됐다. 진과 마테오가 집행할 수 있어.”

미라는 요나를 남겼다.

“당신은 도시 6 관로 기록을 찾아. 북쪽에서 밸브를 건드리기 전에 어느 구역이 연결됐는지 알아야 해.”

요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자기 몸을 증명하듯 따라왔을 것이다.

“살아서 통신해.”

그가 말했다.

“죽으면 못 하니까.”

선발조는 미라, 나미, 이안 세 명이었다. 식수 6리터, 중계소 여과막 두 장, 수동절단기, 압력마개 네 개를 실었다. 돌아올 자원은 싣지 못했다. T-12가 휜 축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41킬로그램뿐이었다.

다니엘은 의료동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안이 출발하기 직전 사라가 아이의 손가락을 검사했다. 오른손 약지와 소지가 손바닥 명령보다 0.4초 늦게 굽혀졌다.

“어제보다 느려졌어.”

“쓸 수는 있어.”

“쓸 수 있느냐하고 손상 중이냐는 다른 질문이야.”

사라는 이안의 팔에 전도패치를 붙였다. 저주파를 보내자 근육은 정상으로 움직였지만 신경 되돌림 신호가 두 번 겹쳤다.

예상 가역구간 9~13일.

중앙값 10일 19시간.

그 뒤 죽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손가락의 느림과 감각혼선이 영구화될 가능성이 절반을 넘는 시점이었다.

“연결을 안 하면 늘어나?”

이안이 물었다.

“원인을 하나로 확정 못 했어. 포지 저주파, 생체망 접촉, 아카이브 과부하가 겹쳤으니까. 안 쓰면 악화속도가 줄 가능성은 있어.”

“가능성.”

“그 이상 말하면 거짓말이야.”

사라는 이안이 거부할 시간을 기다린 뒤 결과를 저장했다. 미라에게는 숫자만 공유했고 원신경자료는 넘기지 않았다.

이안이 T-12에 올라탔다.

“열흘 안에 고치면 되는 거야?”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열흘 안에 알아내야 해.”

미라가 답했다.

또 하나의 시간이 생겼다.

T-12는 북쪽으로 출발했다.

제3도시에서 공장 시험공정은 계속됐다.

진은 원격 측정값을 한 줄씩 읽었다.

정렬오차 0.21마이크로미터.

절연층 오염 0.7퍼센트.

고온 논리반전 예상 1만 회당 3.2회.

펌프 제어용 조건부 합격범위 안이었다. 그러나 최종 절단 단계에서 웨이퍼 가장자리에 균열이 생겼다.

시험칩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만 나올 예정이었다.

남은 물 8시간 17분.

공정 종료 4시간 29분.

화물이송 3시간 31분.

남는 시간 17분.

관로가 한 번만 늦어져도 칩은 마른 도시로 도착했다.

아샤는 리나의 배양조에서 검은 생체선을 측정했다. 선은 배수구로 뻗은 뒤 더 자라지 않았지만 뿌리 가까운 곳에 작은 마디 일곱 개가 생겼다.

“수술 거부를 바꾸라는 검사가 아니야.”

아샤가 먼저 말했다.

리나는 막을 투명하게 했다.

“그 말을 먼저 해야 하는 검사면 위험한 거네.”

“위험을 모르고 있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다니엘은 방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화면을 켜지 않았다.

리나가 검사를 허용했다.

조직 마디는 새 호흡막이 아니었다. 배양조의 영양염을 농축하는 저장기관에 가까웠다. 성장속도를 그대로 적용하면 11일 안에 순환입구를 둘러쌌다.

차단 가능시간 8~14일.

중앙값 11일 3시간.

둘러싼 뒤 무슨 일이 생기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배양액 흐름을 안정시킬 수도, 순환을 막을 수도 있었다.

“이안하고 같은 시간이네.”

다니엘이 처음 말했다.

사라가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숫자일 뿐이에요. 이안은 신경전도, 리나는 외부조직 성장입니다. 같은 원인이라고 묶으면 안 돼요.”

“우연히 둘 다 열하루라고?”

“범위가 겹친다고 시계가 연결되는 건 아니에요.”

리나가 물었다.

“마디만 자르면?”

“혈관 비슷한 관이 선 전체로 이어져 있어. 자른 뒤 출혈과 순환충격을 예측 못 해.”

“그럼 열하루 안에 뭘 해야 해?”

“관찰할지, 성장 억제를 시험할지, 네 몸이 쓰게 둘지 정해야 해.”

“다 내가 정해?”

“그래.”

리나는 다니엘을 봤다.

“아빠도 들었지?”

다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어.”

“대신 누르지 마.”

“안 누를게.”

화해는 아니었다. 확인할 수 있는 약속 하나였다.

북쪽 19킬로미터 지점에서 비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굵은 방울 몇 개였다. 곧 T-12의 바퀴자국에 물이 찼다. 외부 이끼가 잎을 세우고 검은 포자를 빗물 위로 내보냈다.

미라와 나미는 중계소 여과막을 얼굴에 한 겹 더 댔다. 이안은 연결감각을 쓰지 않고 휴대검출기를 들었다.

포자농도 보증범위 초과.

“우회로?”

T-12는 K-41의 지형기억에서 세 길을 꺼냈다. 첫 길은 전날 무너진 수로로 이어졌다. 둘째는 24년 전 산사태로 폐쇄 표시가 있었다. 셋째는 8.6킬로미터 길었다.

현재 지형은 어느 길에도 없었다.

나미가 빗물 흐름을 살폈다.

“옛 물길 둑 위로 간다.”

“물이 차면?”

“둑 아래보다 늦게 잠겨.”

T-12가 둑으로 올라갔다. 휜 바퀴가 진흙에 빠질 때마다 미라와 나미가 뒤에서 밀었다. 이안은 앞에서 탐침으로 땅을 찔렀다.

속도는 시속 2.7킬로미터로 떨어졌다.

도착예상 16시간 04분.

제3도시의 물보다 4시간 넘게 늦었다.

“돌아가도 늦어.”

이안이 말했다.

“계속 가도 늦어.”

나미가 대답했다.

미라는 북쪽 취수탑 지도를 확대했다. 지상으로 이어지는 옛 유입관 하나가 7킬로미터 앞에서 둑과 만났다. 관이 열려 있다면 T-12를 버리고 내부를 걸을 수 있었다.

“차를 두고 간다.”

회랑이 즉시 비용을 표시했다.

T-12 현장방치 시 침수손상 68퍼센트.

회수 예상 12~21일.

“분해 요청은?”

이안이 물었다.

T-12가 직접 답했다.

현재 작업 지속.

운송기에게는 아직 목적이 있었다.

세 사람은 속도를 늦춘 채 유입관까지 갔다. 덮개는 반쯤 열려 있었고 안에서 차가운 공기가 나왔다.

미라는 T-12의 화물에서 절단기와 압력마개만 내렸다. 식수는 세 병만 가져갔다.

“여기서 기다려.”

T-12는 답하지 않았다. 작업목적이 사람 운송이었는지 결절점 도착이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안이 차체에 손을 얹었다.

“우리가 안 오면?”

대기 21일.

그 뒤 회랑의 회수 예상 상한과 같았다.

세 사람은 관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시험칩은 예정시간보다 9분 늦게 절단됐다.

최종검사 결과가 제3도시 벽에 떴다.

저속 제어 합격.

고속 제어 조건부 불합격.

열화예상 73~410시간.

합격이었다. 동시에 언제든 틀릴 수 있는 부품이었다.

진이 칩을 화물캡슐에 넣었다. 관로 압력은 71퍼센트였다. 지난번 막을 보낼 때보다 낮았다.

“도착 예상?”

6시간 58분.

제3도시 물은 7시간 11분 남았다.

여유 13분.

캡슐을 쏘는 순간 압력제어기가 떨렸다. 정상 칩을 써서 살린 장치였지만 배관 안쪽에 중계소 막 조각이 붙어 있었다.

압력 63퍼센트.

도착예상 7시간 46분.

물보다 35분 늦었다.

진은 관로의 다음 압축기를 원격으로 켜려 했다. 포지는 안전한계 때문에 거부했다.

“수동승인은?”

인간 현장확인 필요.

다음 압축기는 공장에서 1.8킬로미터 떨어진 지하실에 있었다.

베크가 일어섰다. 체온 38.2도, 정강이 반점은 더 번지지 않았다.

사라가 통신으로 말했다.

“밖에 나가면 다시 노출됩니다.”

“알아.”

“이번에는 권고를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내가 없어도 되는 일이었어.”

“지금도 다른 사람이 갈 수 있어요.”

루이스는 왼쪽 발목을 절었고 진은 공정실을 떠날 수 없었다. 요나는 저산소 회복 중이었다.

베크가 물었다.

“누가?”

사라는 이름을 대지 못했다.

베크는 외부막과 필터를 챙겨 압축기로 갔다. 1.8킬로미터를 달리지 않았다. 심박이 150을 넘지 않도록 걸음과 휴식을 반복했다.

그 사이 캡슐은 느린 압력파 앞에서 관로 안을 이동했다.

제3도시 물 5시간 02분.

캡슐 도착 5시간 31분.

베크가 압축기실에 도착했을 때 출입문 아래로 검은 물이 차 있었다. 무릎까지 잠기면 정강이 상처가 젖었다.

그는 사라에게 화면을 보냈다.

“들어가면 감염확률?”

“계산 못 해요.”

“안 들어가면?”

“제3도시 외부호흡막 주민부터 위험해집니다.”

베크는 항염제를 꺼냈다. 전날 거부했던 약이었다.

“지금 맞으면?”

“면역반응은 줄지만 감염이면 더 악화될 수 있어요.”

“내가 선택할게.”

그는 약을 주사하지 않고 주머니에 넣었다. 상처 위에 수지막을 세 겹 감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압축기 수동레버는 물 아래 있었다.

베크가 두 손으로 레버를 올렸다.

관로 압력이 82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캡슐 도착예상 4시간 11분.

제3도시 물 4시간 32분.

여유 21분.

베크가 물에서 나왔을 때 수지막 안쪽에 검은 점 하나가 생겨 있었다.

그는 숨기지 않고 사라에게 보냈다.

북쪽 유입관은 5킬로미터 뒤에서 물에 잠겼다.

미라가 먼저 발을 넣었다. 무릎, 허리, 가슴까지 차올랐다. 물은 차갑고 니켈 냄새가 났다.

“돌아갈까?”

나미가 물었다.

“밖으로 우회하면 물 시계 뒤야.”

“안에서 막히면 셋 다 못 돌아가.”

이안이 관 벽을 두드렸다. 반향이 14미터 앞에서 짧게 돌아왔다.

“완전히 막힌 건 아니야. 위쪽에 공기 있어.”

“연결 쓴 거야?”

“귀로 들었어.”

이안은 다시 두드렸다. 미라도 들었다. 반향 사이에 물 흐르는 소리가 있었다.

세 사람은 장비를 머리 위로 들고 걸었다. 수위가 턱까지 올라간 구간에서 나미의 발이 바닥 구멍에 빠졌다. 미라가 팔을 잡았고 이안이 벽의 케이블에 몸을 걸어 둘을 당겼다.

구멍 아래로 물이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취수탑 배수관이 살아 있어.”

나미가 말했다.

물이 움직인다는 것은 북쪽 시설이 완전히 죽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결절점에 도착했을 때 제3도시의 칩 캡슐도 마지막 관로를 지나고 있었다.

북쪽 시설은 탑이 아니었다.

탑이었던 것의 절반이었다.

회색 금속 덩어리가 하늘에서 비스듬히 박혀 취수탑 상부와 질소분배동을 함께 찢어 놓았다. 궤도 발신체의 잔해였다. 충돌구 안에는 빗물이 고였고, 끊어진 질소관이 물속에서 작은 기포를 내보냈다.

18년 동안 새어 나온 질소가 저장고 기록에서 사라진 393톤의 일부였다.

취수탑 아래에서는 지하수가 계속 올라왔지만 충돌 잔해의 단열재와 녹이 유입구를 막았다. 넘친 물은 배수관으로 버려지고 있었다.

물은 있었다.

제3도시로 가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미가 유량을 쟀다.

시간당 690리터.

“중앙관을 열면 도시까지 와?”

미라가 물었다.

“중간 파손을 모른다. 전부 오지는 않아.”

최악 9퍼센트만 도착해도 현재 펌프 냉각손실을 넘었다. 그러나 유입구를 뚫는 동안 질소관을 건드리면 남은 가스가 한꺼번에 빠졌다.

두 기반시설이 잔해 하나 아래 눌려 있었다.

제3도시에서 캡슐이 도착했다.

진과 R-8이 기존 제어기를 분리하고 시험칩을 연결했다.

남은 물 18분.

칩이 첫 기동신호를 냈다.

펌프 출력 43퍼센트.

47퍼센트.

52퍼센트.

고속조건에 들어가기 전 57퍼센트에서 멈췄다.

유입량 시간당 241리터.

코일 재단락 예상 29퍼센트.

수분막 잔존 26시간.

도시는 하루를 얻었다.

칩 열화예상은 61~208시간으로 줄었다. 제7도시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반환조건은 성립하지 않았다.

노아는 결과를 듣고 짧게 답했다.

“기록해. 우리가 동의한 조건대로야.”

대기망의 14개월은 그 칩 없이 줄어들 예정이었다.

북쪽에서 미라는 잔해 사이로 들어갔다. 궤도물체의 외피는 대부분 타고 찢겼지만 중앙기록함은 질소관 위에 걸려 있었다.

그것을 움직이면 가스가 샜다.

그대로 두면 취수 유입구를 절반 이상 막았다.

나미가 말했다.

“기록함을 잘라내고 물부터 연다.”

이안이 물었다.

“안에 뭐가 있는데?”

“18년 동안 없어도 살았던 것.”

“질소는?”

“관을 압력마개로 막을 수 있어. 네 개 중 두 개가 맞으면.”

“안 맞으면?”

“도시권 공기 시간이 더 줄어.”

미라는 절단기를 들었다. 물을 열면 오늘을 살렸다. 질소관을 지키면 몇 달을 살렸다. 기록함을 온전히 꺼내면 23년 뒤 기계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지도 몰랐다.

세 개를 다 보존할 공간은 없었다.

“기록함을 먼저 고정한다.”

미라가 말했다.

나미가 돌아봤다.

“물을 늦추겠다고?”

“아니. 물을 열 때 기록함이 관을 찢지 않게 묶는 거야. 내용은 나중에 본다.”

세 사람은 끊어진 케이블을 잔해에 감았다. 이안이 틈 안으로 들어가 매듭을 걸었고 미라가 바깥에서 당겼다. 연결감각은 쓰지 않았다. 나미는 질소관 양쪽에 압력마개를 준비했다.

미라가 유입구를 막은 단열재를 잘랐다.

첫 조각이 빠지자 물이 쏟아졌다. 기록함이 흔들리며 질소관을 눌렀다.

나미가 첫 마개를 넣었다. 규격이 6밀리미터 작았다. 가스가 손가락 사이로 새었다.

두 번째 마개는 컸다.

미라는 절단한 단열재를 마개 둘레에 감았다. 나미가 망치로 밀어 넣었다.

누출량이 81퍼센트 줄었다.

완전밀폐는 아니었다.

취수 유량은 시간당 511리터로 열렸다.

중간관 손실을 적용한 제3도시 도달 예상은 시간당 74~203리터였다.

도시의 하루가 이틀 반에서 나흘로 늘어날 수 있었다. 관로를 여섯 군데 더 수리해야 했다.

질소 저장량은 318톤에서 287톤으로 다시 계산됐다.

대기망 중앙값 12개월 26일.

14개월이 한 번의 수리로 두 달 가까이 줄었다.

그러나 제3도시는 그 결과를 알지 못했다. 결절점 원격센서는 궤도잔해가 떨어진 날 끊겼고, 휴대통신은 비와 지형 때문에 회랑 중계기에 닿지 않았다.

“물을 보냈으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 돼.”

나미가 말했다.

“도시에서는 우리가 실패한 줄 알고 펌프를 더 올릴 수 있어.”

미라는 시험칩의 고속조건부 불합격을 떠올렸다. 북쪽 유입을 모른 채 출력을 높이면 새로 들어오는 압력과 충돌해 수분막을 터뜨릴 수 있었다.

도시까지 물이 도착하는 시간은 최소 1시간 46분, 최대 4시간 20분이었다. 그 전에 알려야 했다.

이안은 기록함의 표시등을 봤다.

“저건 궤도까지 보냈던 기계잖아.”

“18년 전 기계야.”

“T-12 기억도 오래됐어.”

오래됐다는 것은 죽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만 현재와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미라는 기록함 외피를 열었다. 송신부는 충돌 때 타 버렸고 수신부와 단거리 착륙유도 안테나만 남아 있었다. 출력은 회랑까지 닿기 부족했지만 질소분배동의 지상 철골을 안테나로 쓰면 가능성이 있었다.

철골은 취수탑 반대편에 쓰러져 있었다. 그 아래로 열린 물이 지나갔다. 옮기려면 다시 유입을 줄여야 했다.

“물은 안 닫아.”

나미가 말했다.

“안 닫고 연결해.”

미라는 끊어진 유도선 30미터를 풀었다. 물살을 건너 철골까지 가져가야 했다. 허리에 케이블을 묶고 들어가자 물이 곧바로 무릎을 밀었다.

이안이 뒤에서 케이블을 잡았다.

“놓치면 나까지 끌려가.”

“그러니까 놓지 마.”

나미는 유입밸브 옆에 남았다. 압력이 오르면 바로 줄이기 위해서였다.

미라가 두 걸음 갔을 때 바닥의 단열재 조각이 떠올라 정강이를 쳤다. 세 번째 걸음에는 발이 미끄러졌다. 케이블이 허리를 조였고 이안의 몸이 앞으로 끌렸다.

아이는 손가락 대신 팔 전체로 선을 감았다. 늦게 굽는 두 손가락을 쓰지 않았다.

미라는 물속에서 무릎을 세우고 다시 일어났다. 철골까지 간 뒤 유도선을 녹슨 볼트에 감았다. 금속 표면을 긁어 전도면을 만들고 선을 눌렀다.

기록함이 19초짜리 신호를 보냈다.

취수 유입 개방.

예상 도달유량 74~203리터.

펌프 출력 57퍼센트 이상 상승 금지.

질소 잔량 287톤.

응답은 오지 않았다.

한 번 더 보내자 기록함 전압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세 번째 송신은 못 했다.

회랑의 확인신호가 4분 뒤 철골을 울렸다.

수신 완료.

제3도시에서 진은 펌프 상승명령을 취소했다. 시험칩은 57퍼센트에서 계속 구동됐다.

북쪽 물이 도착한 것은 2시간 31분 뒤였다.

첫 유량은 시간당 81리터였다. 녹과 단열섬유가 섞여 그대로 수분막에 넣을 수 없었다. 제3도시는 식용배양조 하나를 비우고 임시 침전조로 바꿨다. 이미 건식전환한 두 곳에 이어 세 번째 식량생산이 멈췄다.

여과 뒤 실제 유입은 시간당 63리터였다.

수분막 잔존 2일 18시간.

북쪽 여섯 파손구간을 수리하면 4일 7시간까지 늘릴 수 있었다. 수리조가 쓸 희생전극은 더 없었다.

도시는 물을 얻었고 식량과 다음 수리재료를 잃었다.

리나는 투명막 너머로 물길 수치를 봤다. 자신이 내놓은 310리터는 이미 쉰둘의 외부호흡막에 들어갔다. 돌려받을 수도, 돌려받을 이유도 없었다.

다니엘이 말했다.

“네가 포기한 물보다 많이 들어왔어.”

“내가 포기해서 들어온 건 아니야.”

“알아.”

그는 그 물을 딸의 희생이 만든 보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북쪽에서 미라가 보낸 거래.”

리나는 잠깐 검은 생체선의 마디를 봤다.

“이안은?”

“같이 있어. 다친 보고는 없어.”

“그것만 알려 줘.”

다니엘은 다른 의료수치나 선택을 덧붙이지 않았다.

결절점에서 세 사람은 돌아갈 준비를 하지 못했다. 비가 더 세졌고 T-12가 기다리는 유입관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기록함을 지키는 케이블은 임시 고정뿐이었다. 질소마개도 매시간 압력이 떨어졌다.

나미가 수리목록을 작성했다.

중앙관 파손 6곳.

질소관 영구마개 2개.

취수 여과층 교체.

궤도잔해 인양.

최소 인원 14명.

예상 6일.

제3도시는 회랑 수리 우선권이 14일 정지돼 있었다. 사람 손과 도시의 남은 부품만으로 해야 했다.

이안이 물었다.

“우리한테 열흘 남았는데 수리에 엿새 쓰면?”

“나흘 남지.”

미라가 말했다.

“돌아가는 시간도 있어.”

“그러면 사흘.”

“그 안에 뭘 할 수 있어?”

미라는 답하지 못했다. 아이의 신경을 고칠 방법도, 리나의 생체선이 무엇을 만드는지 알아낼 장비도 제3도시에는 없었다.

기록함이 다시 켜진 것은 그때였다.

회랑의 23년은 변하지 않았다.

이안의 손은 10일 14시간.

리나의 생체선은 10일 22시간.

숫자들은 살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다음 선택을 미룰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록함은 케이블에 매달려 물 위로 절반 드러났다. 외피가 깨진 틈에서 작은 표시등 하나가 켜졌다.

18년 동안 죽어 있던 장치가 아니었다.

물에 잠긴 광전판이 드러나 전원을 얻은 것이었다.

화면에는 구조요청이 뜨지 않았다.

착륙화물 인계목록.

생체적응 기준표본 27.

지상 인계 완료 24.

미인계 3.

마지막 줄에 세 좌표가 나타났다.

하나는 북쪽 1,840킬로미터, 누르가 신호를 보낸 곳이었다.

하나는 제7도시 아래였다.

마지막 하나는 이동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