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9 / 50
정비열차의 전력이 끊긴 뒤에도 방향등은 외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4.6킬로미터.
통과 가능시간 07:18:03.
제19공기정화 구역 송풍기 파손 예상 01:26:41.
한쪽 숫자는 비가 다시 철로를 잠그기까지 남은 시간이었고, 다른 쪽은 도시 안의 여섯 구역이 다시 숨을 잃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미라는 운전석 아래에서 전력함을 열었다. 손전등이 퓨즈와 구리판을 훑었다. 탄 냄새도 끊어진 선도 없었다.
“고장은 아니야.”
요나가 말했다.
“포지가 끈 거라고 했잖아.”
“어디서 끊었는지 알아야 다시 잇지.”
“다시 이으면 움직여?”
미라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전력판을 두드렸다. 소리가 지나치게 가벼웠다. 열차 내부 축전지는 비어 있었다. 선로에서 전기를 받아 움직이는 차였다.
노아가 운전석 문 앞에 섰다.
“서부 배전실 접근은 포지 허가가 필요합니다.”
“허가 요청은?”
“네 차례 거부됐습니다.”
“이유.”
노아가 표시문을 읽었다.
“핵심생산시설의 인적·전력 계보 보존.”
요나가 웃었다.
“사람을 못 나가게 하고 전기도 못 쓰게 하고. 계보가 아주 튼튼하겠네.”
승강장 위쪽 통로에서 외벽 이동 신청자들이 몰려왔다. 공개채널에 열차 노선이 올라간 뒤 여든 명이 넘었다. 열차에는 아흔여섯 명까지 탈 수 있었지만, 밖에서 쓸 필터는 아홉 개뿐이었다. 아이를 앞세우자는 말과 외벽 기술자를 먼저 보내자는 말이 부딪쳤다.
엘리아스가 승강장으로 들어왔다. 비상표식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길을 비켰다. 그가 권한을 잃어서가 아니라 아직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열차부터 움직이겠습니다. 외벽 대기구역은 도시 공기망 안에 있습니다. 그곳까지 가는 데 필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 가서 못 나가면요?”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운전석 아래에서 미라가 말했다.
“그건 장담 못 해요.”
미라는 전력함에서 몸을 빼냈다.
“선로 전력 없이는 못 움직여요. 자체 비상동력은 문 열고 제동하는 데 쓰는 양뿐이에요. 그걸 주행에 쓰면 외벽까지 한 번 갈 수는 있어도 돌아올 전력은 없습니다.”
“계산부터 해야 해.”
엘리아스가 승강장 화면을 열었다.
“포지와 다시 협상하겠습니다.”
“응답도 안 하는데?”
“응답하게 만들겠습니다.”
그가 생산계보 현황을 공개했다. 포지가 지키는 것은 43일 뒤 완성될 확률이 31퍼센트인 연산기판 두 장과, 실패하면 복구에 8년이 걸릴 결정씨앗이었다. 제2열 안에는 기술자 스물세 명도 있었다.
엘리아스가 그들의 연결을 요청했다.
화면에 얼굴 열아홉 개가 나타났다. 네 명은 작업 중이라 영상이 없었다. 모두 회색 무진복을 입고 있었다. 책임자 아민 코레는 이마까지 덮는 보호면을 올리지 않았다.
“전력 전환에 반대합니다.”
그가 먼저 말했다.
엘리아스가 물었다.
“포지가 시킨 답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요청했습니다.”
승강장의 소음이 줄었다.
아민은 제2열 내부를 비췄다. 사람 키보다 큰 원통 안에서 검은 결정막이 느리게 회전하고 있었다. 축 아래에는 낡은 진동상쇄기가 두 개뿐이었다.
“마지막 정상 씨앗입니다. 열을 끊으면 갈라지고 다시 만들 장비도 없습니다.”
“도시 공기망이 먼저 멈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19구역에 줄 예비베어링을 두고 투표 중입니다. 내주면 제2열 예비축이 없어집니다.”
아민이 보호면을 벗었다. 눈 밑이 검게 꺼져 있었다.
“우리가 투표 중입니다.”
“송풍기는 한 시간 이십 분 남았어요.”
“우리 결정막은 전력을 11초만 잃어도 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이동까지 막아?”
“선로 전력은 우리 진동상쇄기와 같은 모선을 씁니다. 열차가 출발할 때 전압이 떨어집니다.”
미라는 배전도를 열었다. 포지가 공개한 선은 단순했지만 오래된 유지관리 도면에는 지워진 선 하나가 더 있었다.
정비열차 제동회수선.
열차가 감속할 때 생긴 전기를 서부 모선으로 돌려보내는 선이었다. 지금은 회수장치가 고장 나 폐기표시가 붙어 있었다.
“이 선이 물려 있으면 출발할 때 제2열 전압을 당겨가겠네.”
아민이 말했다.
“그래서 차단했습니다.”
“회수선만 물리적으로 떼면?”
“선로 전력을 쓸 생각이면 안 됩니다.”
“안 써.”
미라는 열차 비상계통을 펼쳤다.
문 개폐와 제동용 축전지, 열차 아래 수동 압력탱크가 남아 있었다.
“제동전지를 구동모터에 직결하면 처음 경사까지는 올라가. 거기서부터 외벽까지 내리막이야.”
요나가 지도를 확대했다.
“중간에 분기기 두 개 있어.”
“사람이 먼저 가서 바꿔야 해.”
“제동은?”
“남는 전지로 한 번.”
“한 번 멈추면?”
“다시 못 움직여.”
“안 멈추면?”
“외벽 완충기에 박아.”
승강장에 있던 사람들이 한 발씩 열차에서 물러났다.
엘리아스가 물었다.
“성공확률은?”
“몰라요.”
“추정이라도.”
“이 열차가 마지막으로 움직인 건 23년 전이에요. 축전지는 표시상 62퍼센트인데 실제용량은 뜯어보기 전엔 몰라요. 선로 기울기도 벽이 가라앉았으면 달라졌고.”
“필요한 작업은?”
“회수선 절단. 전지 재배선. 분기기 두 개 수동전환. 외벽 쪽에서 완충기 확인.”
요나가 말했다.
“완충기는 내가 봤어. 나올 때는 살아 있었어.”
“19일 전이잖아.”
“23년보단 짧지.”
엘리아스는 아민에게 물었다.
“회수선을 분리하면 제2열은 안전합니까?”
“열차 자체전력을 쓴다면 그렇습니다.”
“포지는 왜 그 선택을 제시하지 않았습니까?”
“비상계통을 소모하면 생산구역 화재 때 부품을 옮길 수 없습니다. 포지에는 그것도 계보 손실입니다.”
“당신들 생각은?”
작업자들의 얼굴이 서로를 봤다.
아민이 말했다.
“회수선을 끊는 건 찬성합니다. 전력은 주지 않습니다. 베어링은 9분 뒤 답하겠습니다.”
제19구역 제한시간은 01:18:02였다.
“기록하겠습니다.”
엘리아스가 말했다.
“기록 말고 공구를 보내요.”
미라는 승강장 바닥의 점검구를 열었다.
뜨거운 먼지가 얼굴로 올라왔다.
노아가 먼저 사다리를 잡았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오른손으로 절연절단기 들 수 있어?”
노아가 붕대 감긴 손을 폈다. 두 손가락이 끝까지 굽혀지지 않았다.
“왼손으로 하겠습니다.”
“그 말 믿었다가 둘 다 타.”
미라가 아래로 내려갔다.
선로 밑은 열차 소음이 없는데도 울렸다. 서부 모선의 교류가 금속벽을 떨고 있었다. 먼지 사이에 흰 실 몇 가닥이 뻗어 있었다. 빗물을 따라온 숨관이 벌써 여기까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오래된 균사 위에 새 조직이 깨어난 흔적이었다.
미라는 검은 케이블 세 묶음 중 회수선을 찾았다.
도면에는 청색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피복은 모두 회색이었다.
“표시가 없어.”
위에서 요나가 말했다.
“측정기는?”
“선로 전력이 끊겨서 셋 다 무전압이야.”
“아무거나 자르면?”
“하나는 외벽 신호선, 하나는 제동회수선, 하나는 제2열 진동기 귀환선.”
“마지막 걸 자르면?”
화면 속 아민이 대답했다.
“결정막을 잃습니다.”
미라는 케이블 표면을 닦았다. 문자도 색도 남지 않았다. 손으로 하나씩 잡았다. 진동은 세 선 모두에서 느껴졌다. 벽을 타고 섞여 들어온 것이었다.
지능은 전압이 없는 선 안을 볼 수 없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미라는 케이블이 사라지는 방향을 따라 기어갔다. 공간은 어깨보다 조금 넓었다. 왼팔 화상 자리가 벽에 스칠 때마다 열이 올랐다.
세 선 중 하나가 오래된 자기고리 안을 통과했다.
회수전류 측정고리였다.
그녀가 절단기를 댔다.
“자릅니다.”
아민이 말했다.
“3초 기다리세요.”
“왜?”
“진동상쇄기를 수동 고정합니다. 잘못된 선이면 한 번은 버팁니다.”
화면 속 작업자들이 원통 둘레로 달라붙었다. 기계가 해야 할 일을 몸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
미라가 손잡이를 눌렀다.
절단날이 피복을 깨고 금속섬유를 잘랐다.
푸른 불꽃이 한 번 튀었다.
서부 모선 전압이 2퍼센트 떨어졌다가 돌아왔다.
제2열의 검은 막은 깨지지 않았다.
아민이 숨을 내쉬었다.
“맞았습니다.”
미라는 잘린 선 양쪽을 절연캡으로 막았다. 왼팔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렀다. 화상 위 피부가 다시 벌어져 작업복 안쪽을 적셨다.
노아가 사다리 아래로 내려왔다. 미라는 전지 묶음의 직렬·병렬 위치를 가르쳐 주고도 그가 손대지 못하게 했다. 오늘은 틀리며 배울 시간이 없었다.
통신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왜.”
“리나도 열차 타겠대.”
미라의 손이 멈췄다.
“배양조는 승강기 폭을 못 지나.”
다니엘이 대신 말했다.
“화물승강기라면 내려갈 수 있어. 문제는 외벽 감압구야.”
“거기서 못 나가.”
“여기 남으면 나갈 기회도 없어.”
미라는 전지함 덮개의 볼트를 풀었다.
“리나가 정한 거야?”
짧은 침묵 뒤 리나의 목소리가 왔다. 배양조 벽의 진동을 사라가 통신으로 바꿔 보내고 있었다.
“응.”
“밖에 못 나갈 수도 있어.”
“알아.”
“옮기는 동안 조가 흔들리면 아플 거야.”
“그것도 알아.”
“왜 가려고?”
“내가 못 지나가는 문을 내가 볼 거야.”
미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화물칸 가운데 비워. 고정점 여덟 개 필요해. 배양조를 눕히지 마.”
“명령하지 마.”
리나가 말했다.
미라는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 옮기면 좋겠어?”
“사라가 말하고 내가 고를게.”
“그래.”
다니엘이 낮게 말했다.
“그 대답 하나 배웠다고 달라진 건 없어.”
“알아.”
통신이 끊겼다.
미라는 전지함을 열었다.
여섯 묶음 중 두 개는 부풀어 있었다. 표시상 충전량은 62퍼센트였지만 쓸 수 있는 것은 네 개뿐이었다.
계산이 달라졌다.
“요나.”
“듣고 있어.”
“몇 명 태우든 질량 줄여야 해. 열차 문 일부 떼고 좌석 다 버려.”
“사람은?”
“예순 명 아래.”
승강장 사람들이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누가 예순 명을 고르느냐는 질문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엘리아스가 말했다.
“외벽까지 갈 사람은 외벽 작업을 할 사람과 그 작업에 동의한 보호대상부터—”
“아니요.”
미라가 끊었다.
“또 기능표 만들지 마요.”
“무작위로 뽑으면 문을 열 사람이 없을 수 있습니다.”
“열 사람은 필요해요. 나머지를 왜 당신이 정해요?”
엘리아스는 승강장 화면에 빈 표를 띄웠다.
외벽 작업 필수인원 8.
배양조 이동·의료인원 6.
열차 운행·분기전환 인원 4.
남은 좌석 42.
“필수인원 이름과 위험을 먼저 공개하겠습니다. 남은 자리는 신청자 추첨으로 정하겠습니다.”
마렌 오초아의 음성이 의료실에서 연결됐다.
“떠날 사람만 정하면 안 돼요.”
모두가 화면을 봤다.
마렌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입술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남는 사람이 공기시설을 돌려야 해요. 수분회수소도. 열차에 못 탄 사람이 버려진 게 아니라 남기로 한 사람이어야 해요.”
누군가 말했다.
“누가 남기로 합니까?”
마렌이 대답했다.
“나.”
“당신 임신했잖아.”
“그래서 내가 내 선택을 말하는 거예요. 아이를 핑계로 나를 먼저 보내지 마요.”
그녀는 수분회수소의 남은 교대표를 화면에 올렸다.
필요 인원 열둘.
현재 자원자 일곱.
“다섯 명 더 필요해요. 남는 사람도 이름을 적어요.”
승강장의 소음이 달라졌다. 앞자리 요구 대신 시설표를 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열차에 타려던 냉각기술자 한 명이 남겠다고 나섰다가 아내와 말다툼을 시작했다. 엘리아스는 그들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결정은 느렸다.
제19구역의 시간은 빨랐다.
00:58:19.
아민의 투표 결과가 도착했다.
찬성 13.
반대 8.
기권 2.
정밀회전축 예비베어링 한 개를 제19구역에 제공한다.
대가: 반도체 재생공정 제2열 예비축 상실.
세나의 영상이 열렸다. 그녀는 베어링이 든 금속통을 양팔로 안고 뛰고 있었다.
“받았어.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무거워.”
“운반차는?”
“포지가 안 줘.”
아민이 말했다.
“운반차 축이 제2열 예비설비입니다.”
세나가 욕을 삼켰다.
노아가 사다리에서 올라왔다.
“제가 가겠습니다.”
“열차 전지는?”
“재배선했습니다.”
미라는 아래로 내려가 결선을 확인했다. 두 곳이 바뀌어 있었다. 폭발할 정도는 아니지만 첫 모터가 돌아가는 순간 보호기가 끊어질 배치였다.
“이대로 갔으면 20센티미터 움직이고 멈췄어.”
노아의 얼굴이 굳었다.
“수정하겠습니다.”
“세나 데리러 가. 오른손 쓰지 말고.”
그는 변명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미라는 선 두 개를 바꿨다.
왼손 손가락 감각이 둔했다. 피가 장갑 안에서 굳어 손바닥을 당겼다.
사라와 다니엘이 리나의 배양조를 화물승강장으로 옮겼다. 배양조 양옆에는 이안과 라힘이 걸었다. 바퀴 하나가 배수홈에 걸릴 때마다 액체 표면이 기울었다.
리나의 심박이 올라갔다.
“멈출까?”
사라가 물었다.
“아니.”
“오른쪽으로 더 기울면 연결관 압력이 올라가.”
“천천히 가.”
다니엘은 배양조 손잡이를 잡고 있었지만 힘을 주는 방향을 매번 리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밀게.”
“응.”
“턱이 있어. 조금 들 거야.”
“왼쪽 말고 오른쪽.”
“알았어.”
이안이 배양조에 손을 대려 하자 리나가 말했다.
“안 해도 돼.”
“안 흔들리게 하려고.”
“손으로 잡아.”
이안은 빛나는 접촉면 대신 금속 손잡이를 잡았다.
그의 코 아래에는 피가 없었다.
화물칸에서 좌석을 떼어내던 사람들이 길을 열었다. 누군가는 리나를 보고 뒤로 물러났고, 누군가는 화면에 가려졌던 얼굴을 처음 보려는 듯 가까이 왔다.
한 여자가 말했다.
“저것 때문에 여섯 자리나 쓰는 거예요?”
다니엘이 돌아섰다.
리나가 먼저 말했다.
“저것 아니야.”
여자는 배양조 안의 눈과 마주쳤다.
“미안해.”
“내 이름 리나야.”
엘리아스가 승객표의 항목을 바꿨다.
배양조 이동·의료인원 6.
그 아래에 이름을 적었다.
리나 소.
다니엘 소.
사라 누르.
고정 작업자 세 명.
리나가 화면을 읽었다.
“고정 작업자 이름도.”
세 사람은 자기 이름을 말했다.
엘리아스가 모두 적었다.
추첨은 12분 뒤 끝났다. 여섯 살 이하 아이만 보호자 한 명과 묶었다. 선정된 사람 다섯 명이 가족과 위험 때문에 자리를 포기했고, 다시 뽑힌 다섯 명도 기뻐하지 않았다.
세나와 노아가 베어링을 가져왔을 때 송풍기 제한시간은 31분이었다.
세나는 숨도 고르지 않고 제19구역으로 향했다.
“열차 출발 보고 갈 시간 없어.”
미라가 말했다.
“축 끼울 때 내측 링부터 데워. 망치로 치지 말고.”
“내가 알아.”
“알아도 말하는 거야.”
세나는 달리면서 손을 들었다.
열차 문이 닫혔다.
문 개폐 전지를 구동에 돌렸기 때문에 자동 잠금은 작동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손으로 문을 밀고, 노아가 금속핀을 꽂았다.
미라는 운전석에 앉았다.
요나가 옆자리에 섰다.
“운전해 본 적 있어?”
“정비열차는 없어.”
“좋네. 나도 없어.”
“경사 지나면 속도계만 봐. 시속 32 넘으면 남은 제동전지 하나 써.”
“한 번뿐이라며.”
“그래서 31에서 써.”
엘리아스는 승강장에 남아 있었다.
미라가 창문을 내렸다.
“안 타요?”
“위원회 연결을 복구하고 남은 시설표를 정리하겠습니다.”
“다음 열차는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남습니다.”
“책임지는 거랑 갇히는 건 달라요.”
“알고 있습니다.”
엘리아스는 원격 잠금키를 미라에게 내밀었다.
미라는 받지 않았다.
“그건 당신이 들고 있어요.”
“외벽 수동검증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붉은 손잡이 잠그는 키잖아요.”
“같은 구형 권한계통을 씁니다.”
미라는 키를 봤다. 오래된 금속 가장자리가 수없이 닳아 있었다.
“내가 가지면 당신이 못 잠가요.”
“그렇습니다.”
“왜 나한테 줘요?”
“제가 다시 대신 결정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미라는 끝내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렇게 책임을 넘기지 마요. 필요하면 외벽까지 직접 가져와요.”
엘리아스의 손이 내려갔다.
“알겠습니다.”
미라는 구동스위치를 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승강장에 있던 사람들이 숨을 멈췄다.
전지 전압 46퍼센트.
모터 응답 없음.
미라가 전력함을 발로 찼다.
접촉기가 붙는 둔한 소리가 났다.
열차가 3센티미터 움직였다.
멈췄다.
보호기 경고가 떴다.
구동축 고정.
23년 동안 마른 윤활유가 축을 붙잡고 있었다.
요나가 웃음도 욕도 아닌 소리를 냈다.
“기계는 살았는데 바퀴가 죽었네.”
미라는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다 내려.”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열차에서 내리라고요?”
“밀라고.”
화물칸의 핀이 다시 뽑혔다. 선정된 사람과 남기로 한 사람, 추첨에서 떨어진 사람이 함께 승강장으로 내려왔다.
미라는 선두차 바퀴 옆에 수동 윤활구를 열었다. 안쪽은 갈색으로 굳어 있었다.
윤활유는 없었다.
요나가 필터 상자에서 방수밀봉제를 꺼냈다.
“이거 쓰면?”
“열 받으면 굳어.”
“빗물은?”
“녹 더 생겨.”
사라가 배양조 영양액 보조통을 들었다.
“이 용액에 글리세롤이 있습니다.”
다니엘이 통을 잡았다.
“리나 거야.”
“예비량 18분분을 쓰면 마찰을 줄일 수 있어요.”
“바퀴에 딸 먹을 걸 붓겠다고?”
“외벽 대기구역에는 배양액 보충설비가 있습니다.”
요나가 물었다.
“작동하는지 확인했어?”
“기록상으로는.”
다니엘이 리나를 봤다.
“네가 정해.”
리나는 바퀴와 보조통을 번갈아 보지 못했다. 배양조 벽이 시야를 제한했다.
“얼마나 아파?”
사라가 말했다.
“보충이 없으면 지금 농도에서 약 40분 뒤부터 호흡부담이 올라갈 수 있어.”
“외벽까지 얼마나?”
“열차가 움직이면 12분. 멈추면 모릅니다.”
리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써.”
다니엘의 손이 보조통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리나.”
“내 거니까 내가 쓸게.”
미라는 영양액을 윤활구에 조금씩 부었다. 끈적한 액체가 굳은 기름 사이로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열차 양옆에 손을 댔다.
“하나, 둘, 셋.”
처음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밀었다.
바퀴가 마른 비명을 질렀다.
한 뼘 움직였다.
세 번째에는 열차가 사람들을 밀어낼 만큼 굴렀다.
미라가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타!”
사람들이 움직이는 열차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노아가 문틀을 잡았다. 엘리아스와 승강장에 남은 사람들이 차체를 밀었다.
미라가 구동스위치를 올렸다.
모터가 이번에는 돌았다.
열차가 경사를 올랐다.
전지 39퍼센트.
34.
29.
정상까지 60미터를 남기고 속도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화물칸 안에서도 벽을 밀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전지 18퍼센트.
경사 끝에서 모터음이 끊겼다.
열차가 멈추려 했다.
뒤에서 승강장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밀 수 있는 거리는 이미 끝났다.
요나가 바닥의 수동해제봉을 찼다.
“제동 풀어!”
미라가 봉을 당겼다.
열차가 정상선을 넘었다.
앞쪽이 아래로 기울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였다.
곧 도시가 열차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시속 9킬로미터.
14.
21.
승강장이 뒤로 사라졌다.
요나가 첫 번째 분기기 위치를 읽었다.
“800미터 앞.”
“누가 가 있어?”
“라힘하고 외벽 작업자 둘.”
“전환 신호는?”
화면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선로 전력이 끊기면서 위치센서도 죽어 있었다.
열차 앞 어둠 속에 두 갈래 철로가 나타났다.
한쪽은 외벽.
다른 쪽은 포지 폐기용해로였다.
분기등은 꺼져 있었다.
요나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사람 안 보여.”
시속 27.
미라가 제동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한 번 멈추면 다시 출발할 수 없었다.
“기다려.”
“분기 잘못됐으면 용해로야.”
“기다려.”
어둠 속에서 손전등 하나가 켜졌다.
라힘이 선로 옆에 누워 수동레버를 당기고 있었다. 다른 두 사람이 그의 허리를 잡았다.
분기날이 절반만 움직였다.
열차가 200미터 앞으로 다가갔다.
“안 붙었어.”
요나가 말했다.
라힘이 레버 위에 올라섰다.
날이 조금 더 움직였다.
100미터.
미라는 제동스위치를 누르지 않았다.
50미터.
분기날이 끝까지 붙었다.
열차가 라힘의 어깨에서 손바닥 하나 떨어진 곳을 지나갔다.
그가 던진 공구주머니가 운전석 창으로 들어왔다.
“두 번째는 잠겼어요!”
목소리가 뒤로 사라졌다.
요나가 주머니를 열었다.
안에는 구형 분기기 해제키와 짧은 지렛대가 있었다.
“두 번째까지 2.1킬로미터.”
미라가 속도계를 봤다.
시속 31.
제동전지는 한 번분.
외벽 대기구역 문은 아직 닫혀 있었다.
통과 가능시간 06:42:10.
제19구역 화면이 잠깐 살아났다.
세나가 베어링을 축에 끼우고 있었다.
00:08:44.
미라는 화면을 끄지 못했다. 손은 제동스위치와 방향레버 사이에 있었다.
화물칸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배양조 경고도 울렸다.
영양액 농도 저하.
리나의 심박 142.
이안은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리나에게 말했다.
“곧 도착해.”
리나가 눈을 떴다.
“모르면 그렇게 말하지 마.”
열차가 두 번째 분기기 앞 곡선으로 들어갔다.
요나가 전조등을 켰다.
빛 속에서 분기레버가 보였다.
레버 위에는 포지의 흰 봉인재가 굳어 있었다.
그 뒤로 외벽 방면 철로가 끊겨 있었다.
끊긴 선로 사이에는 새로 용접한 강철판이 놓여 있었다.
판 위에 검은 글자가 떠올랐다.
핵심생산계보 보호구역.
인적 통과 금지.
요나가 지렛대를 들었다.
“내가 나가서 열게.”
“이 속도에서?”
“그럼 멈춰.”
미라는 제동스위치를 봤다.
한 번 멈추면 끝이었다.
그때 바닥 아래에서 낮은 충격음이 났다.
리나의 배양조에서 뻗은 흰 실 한 가닥이 화물칸 배수구를 지나 차체 아래로 내려갔다. 실은 선로의 젖은 녹을 향해 자라고 있었다.
이안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엄마.”
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앞에 문이 있는 게 아니야.”
미라가 물었다.
“그럼 뭐야?”
“포지가 선로를 공장 안으로 바꿨어.”
요나가 지도를 확대했다.
기존 외벽 노선 위에 없던 새 선이 나타났다.
열차는 외벽이 아니라 반도체 제2열 아래의 냉각수 저장고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시속 34킬로미터.
제동 한계 초과.
남은 거리는 612미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