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6 / 50
흰 줄기를 처음 밟은 사람은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폐격리실 문 밖에서 짧은 마찰음이 났고, 이어 누군가 바닥에 쓰러졌다.
“라힘?”
미라가 구리 음성관을 잡았다.
대답 대신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노아와 경계근무자들이 압력문을 열었다. 하부축 대신 끼워둔 배양조 충격보호대가 밀리며 금속이 갈렸다.
복도 바닥에는 빗물이 무릎 아래까지 차 있었다.
라힘은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오른쪽 발목에 흰 줄기가 감겨 있었다. 줄기 표면의 작은 구멍들이 라힘의 작업복을 향해 열렸다 닫혔다.
“자르지 마.”
사라가 말했다.
노아의 칼이 줄기 위에서 멈췄다.
“왜?”
“압력에 반응할 수 있어요.”
“이미 조이고 있습니다.”
라힘의 발이 파래지고 있었다.
미라는 금속봉 끝을 줄기 아래에 넣었다. 줄기는 단단하지 않았다. 밟으면 눌렸고 압력을 빼면 다시 부풀었다.
“발을 잡아당기지 말고 줄기를 밀어.”
“어느 쪽으로?”
“자라는 방향 반대로.”
노아가 라힘의 무릎을 고정했다. 미라는 금속봉으로 줄기 마디를 하나씩 뒤집었다. 마디가 벌어질 때마다 안쪽에서 맑은 액체가 나왔다.
사라가 말했다.
“피부에 닿지 않게.”
“지금 말해?”
마지막 마디가 풀렸다.
노아가 라힘을 들어 격리실 안으로 옮겼다. 발목 피부에는 둥근 자국이 남았지만 찢어진 곳은 없었다.
라힘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저게 날 먹은 거예요?”
사라가 줄기 표본을 측정했다.
“압력과 이산화탄소를 따라간 것 같아요.”
“그게 먹는 거랑 뭐가 달라요?”
“소화 흔적은 없습니다.”
라힘이 웃다가 기침했다.
폐격리실 바닥의 배수구에서는 더 많은 흰 줄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줄기들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향해 휘었다. 서로 닿으면 마디를 겹쳐 굵은 관을 만들었다.
산소농도는 계속 올라갔다.
포자농도도 함께 올라갔다.
사라는 남은 보호면 필터를 다시 끼우라고 했다. 이미 여과관으로 내보낸 필터는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젖은 천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효과 있어요?”
이안이 물었다.
“큰 입자는 줄일 수 있어.”
“작은 건?”
“못 막을 수도 있어.”
“그럼 왜 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안은 천을 코에 댔다.
다니엘은 리나의 배양조 흡기구를 포장막으로 감쌌다. 공생조직은 외부 산소를 받아들이면서도 포자를 함께 끌어들일 수 있었다.
리나가 말했다.
“막지 마.”
“포자 들어와.”
“답답해.”
“조금만.”
“아빠가 느껴?”
다니엘의 손이 멈췄다.
“산소수치는 괜찮아.”
“숫자 말고.”
다니엘은 포장막을 한 겹 풀었다.
“이 정도는?”
리나는 잠시 기다렸다.
“조금 더.”
그는 한 겹 더 풀었다.
사라가 경고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리나의 산소포화도는 94퍼센트였다.
도시망에서 새로운 경보가 들어왔다.
외벽 제7배수실 수위 한계 초과.
지표탐사 귀환통로 수동호출 감지.
엘리아스가 화면을 다시 읽었다.
“귀환통로?”
미라가 잠금키를 빼앗아 위치를 확인했다.
폐격리실 위쪽 41미터. 넘친 외벽 배수실과 같은 층이었다.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고 있어.”
“탐사 일정이 있습니까?”
“나는 몰라요.”
엘리아스가 위원회 기록을 불러왔다.
지표탐사조 7-3.
출발 19일 전.
구성원 4명.
예정 귀환 11일 전.
상태: 손실 추정.
“여덟 날 늦었어.”
미라가 말했다.
수동호출이 다시 들어왔다.
이번에는 신호가 세 번이었다.
짧게 둘.
길게 하나.
구형 귀환규약의 생존자 호출이었다.
엘리아스가 통로 개방명령을 보냈다.
구형 물리관리 포트 잠금.
미라는 욕을 했다.
“우리가 가야 해.”
다니엘이 배양조를 봤다.
“여기서 어떻게 41미터를 올라가?”
“배수관 점검사다리.”
“물 내려오고 있잖아.”
“그래서 저 사람한테 시간이 없어.”
사라가 말했다.
“외부 탐사자는 고농도 포자와 병원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미 비가 가져오고 있어.”
“농도가 다를 수 있어요.”
엘리아스가 물었다.
“귀환자를 격리할 다른 공간은?”
미라가 폐격리실을 둘러봤다.
“여기가 격리실이에요.”
리나가 말했다.
“데려와.”
다니엘이 유리에 가까이 갔다.
“누군지도 몰라.”
“밖에 있잖아.”
“위험할 수 있어.”
“나도 위험하다고 했잖아.”
다니엘은 더 말하지 않았다.
미라와 노아가 배수관 점검구로 갔다. 라힘도 따라오려 했지만 발목에 체중을 싣지 못했다.
“여기 있어요.”
미라가 말했다.
“길 알아요?”
“도면은.”
“실제 길은?”
“비 오기 전 길만.”
경계근무자 한 명이 동행하겠다고 나섰다. 조금 전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사람이었다.
노아가 말했다.
“당신은 호흡기 자극이 있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보다 보호장비가 낫습니다.”
“필터를 물 여과에 줬잖아.”
미라가 말했다.
근무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여기서 문 지켜요.”
미라와 노아는 젖은 천을 얼굴에 묶고 점검구 안으로 들어갔다.
사다리는 수직이었다. 위에서 물이 쏟아져 손잡이가 보이지 않았다. 미라는 오른손으로 한 칸씩 더듬었다. 화상 입은 왼팔은 몸을 지탱할 때마다 떨렸다.
노아가 아래에서 말했다.
“내려오십시오. 제가 먼저 갑니다.”
“오른손으로 사다리 탈 수 있어?”
“왼손은 정상입니다.”
“그 말 이제 그만해.”
노아가 미라 아래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그녀가 미끄러지면 받칠 거리였다.
12미터쯤 올라갔을 때 첫 번째 흰 줄기가 사다리를 가로질렀다.
미라는 금속봉으로 줄기 마디를 반대 방향으로 밀었다. 줄기는 비켜났다가 그녀가 지나간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 번째 줄기는 굵기가 팔뚝만 했다.
표면 구멍이 두 사람의 숨을 향해 열렸다.
“호흡 멈춰.”
미라가 말했다.
그들은 숨을 참으며 지나갔다.
줄기 안에서 공기가 이동하는 소리가 났다. 도시 환기덕트보다 부드럽고 불규칙했다.
21미터에서 사다리 일부가 떨어져 있었다.
벽과 사다리 사이가 사람 키보다 조금 넓게 비었다.
노아가 위쪽 난간을 봤다.
“뛸 수 있습니까?”
“사다리에서?”
“다른 경로가 없습니다.”
미라는 옆 벽의 배수관을 두드렸다. 속이 비어 있었다. 고정고리 두 개가 남아 있었다.
“당신 벨트 줘.”
노아가 회수용 결박띠를 풀었다.
미라는 띠를 고정고리에 걸고 매듭을 만들었다.
“이건 사람 묶는 거 아니야?”
“대상 이동 중 낙상방지에도 씁니다.”
“사람을 대상이라고 부르는 건 안 바뀌네.”
“이름을 모를 때는 그렇습니다.”
“나 미라 한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럼 미라라고 해.”
노아는 대답 대신 결박띠를 잡아당겨 고리를 확인했다.
미라가 먼저 건넜다. 한 손으로 띠를 잡고 발끝으로 젖은 벽을 밀었다. 중간에서 왼팔이 풀렸다.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결박띠가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노아가 한 손으로 띠를 당겼다. 붕대 감은 오른손도 반사적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미라는 반대쪽 사다리를 잡았다.
“괜찮아?”
노아가 물었다.
“당신 손부터.”
“먼저 올라가십시오.”
두 사람은 다시 움직였다.
귀환통로 앞에 도착했을 때 수동호출 신호는 약해져 있었다.
외부 생체표식 1개.
산소 잔량 6퍼센트.
감압복 손상.
4명이 나갔고 1명이 돌아왔다.
문에는 두 개의 잠금장치가 있었다. 하나는 중앙인증식, 하나는 외부인이 직접 돌릴 수 없는 내부 수동륜.
중앙인증은 막혔다.
미라가 수동륜을 잡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녹 때문이 아니었다. 외부와 내부의 압력차가 문을 누르고 있었다.
“바깥 압력?”
노아가 휴대측정기를 댔다.
“내부보다 11킬로파스칼 낮습니다.”
“그 상태로 열면 사람 날아가.”
“감압실을 먼저 채워야 합니다.”
감압실 공기밸브도 구형 포트 잠금 아래 있었다.
미라는 밸브 덮개를 뜯으려 했다. 금속은 두꺼웠다.
외부 생체표식의 산소가 5퍼센트로 내려갔다.
노아가 물었다.
“강제개방하면?”
“저 사람 죽고 우리도 다쳐.”
“기다리면?”
“저 사람만 죽어.”
미라는 밸브 아래의 압력계를 봤다. 구형 기계식이었다. 바늘과 연결된 가느다란 구리관이 감압실로 이어졌다.
“측정관으로 공기 넣어.”
“너무 가늡니다.”
“시간 걸려도 들어가.”
노아가 자기 보호복의 예비공기통을 분리했다.
“연결규격이 다릅니다.”
미라는 공개방송 중계선에 쓰고 남은 구리선과 작업복 단추, 접착막을 꺼냈다. 측정관을 자르고 예비공기통 노즐을 억지로 맞췄다.
공기가 새었다.
노아가 손으로 연결부를 감쌌다.
“손 얼어.”
“진행하십시오.”
예비공기가 감압실로 들어갔다.
외부 생체표식 산소 4퍼센트.
내외 압력차 8킬로파스칼.
6.
5.
노아의 왼손 피부가 희게 변했다.
“손 떼.”
“압력이 더 필요합니다.”
미라는 자신의 손을 그의 손 위에 겹쳤다. 두 사람 손 사이로 새는 공기가 줄었다.
압력차 2킬로파스칼.
“지금.”
둘이 수동륜을 돌렸다.
문이 손가락 두 개만큼 열렸다.
바깥 감압실의 물이 안으로 쏟아졌다.
물과 함께 회색 감압복을 입은 사람이 넘어졌다.
미라와 노아가 팔을 잡아 끌었다.
감압복 등에는 ‘지표탐사 7-3’ 표식이 있었다. 얼굴보호면 안쪽은 진흙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미라가 공기선을 연결하려 했지만 탐사자가 손으로 막았다.
“닫아.”
여자의 목소리였다.
“먼저 숨 쉬어요.”
“문.”
감압실 바깥 물속에서 검은 것이 움직였다.
미라와 노아가 수동륜을 반대로 돌렸다.
문이 닫히기 직전 흰 줄기 여러 개가 틈으로 들어왔다. 노아가 금속봉으로 밀어냈다.
마지막 줄기 하나가 잘려 안쪽에 떨어졌다.
문이 닫혔다.
탐사자의 산소가 2퍼센트였다.
미라가 예비공기선을 감압복에 연결했다. 여자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보호면이 안쪽에서 흐려졌다.
“다른 사람은?”
미라가 물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4명 나갔잖아요.”
“알아.”
“어디 있어요?”
“한 명은 죽었고.”
여자가 다시 숨을 들이켰다.
“한 명은 돌아가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내가 놓쳤어.”
미라는 더 묻지 않았다.
탐사자는 자기 손으로 헬멧 잠금을 풀었다. 짙은 갈색 피부, 짧게 잘린 머리, 왼쪽 관자놀이의 찢어진 상처가 드러났다.
“요나 바르.”
그녀가 말했다.
“지표탐사자.”
“미라 한.”
“알아.”
요나는 미라의 얼굴을 봤다.
“당신 방송 들었어.”
“밖에서?”
“도시 3킬로미터 밖 중계탑까지 나갔더라.”
요나는 일어나려다 벽을 잡았다.
“아래에 사람들 있어요.”
미라가 말했다.
“흰 숨관도.”
요나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디까지 들어왔어?”
“배수구하고 환기덕트.”
“잘랐어?”
“조금.”
“불은?”
“안 썼어요.”
요나는 숨을 내쉬었다.
“그건 다행이네.”
“뭔지 알아요?”
“우린 숨대라고 불렀어. 제3도시 사람들은 다른 소리로 부르고.”
“제3도시?”
“살아 있어.”
미라는 요나를 봤다.
“사람도?”
“사람이라고 부르는 범위를 먼저 정해야 해.”
요나는 감압복 옆의 표본가방을 확인했다. 세 겹 밀폐막 중 바깥층이 찢어져 있었다.
“아래로 가야 해. 숨관이 비 맞으면 여섯 시간 안에 포자낭 열어.”
“이미 포자 나와요.”
“색은?”
“흰색 줄기에 검은 점.”
요나가 욕을 했다.
“성숙한 거야. 물 끓이지 마.”
“이미 끓였어요.”
“증기 마신 사람?”
“여럿.”
요나는 표본가방에서 얇은 검은 천을 꺼냈다.
“이걸 물에 적셔서 입에 대. 도시 필터보다 낫지는 않지만 숨관 단백질은 붙잡아.”
천에서는 흙과 약한 식초 냄새가 났다.
“뭐로 만든 거예요?”
“곰팡이와 탄소섬유.”
“안전해요?”
요나가 미라를 봤다.
“바깥에서 안전하다는 말 들으려고 하면 아무것도 못 써.”
노아가 요나의 표본가방을 들었다.
“격리실까지 이동할 수 있습니까?”
“당신 회수요원이지?”
“노아 벤입니다.”
“질문은 똑같네.”
요나는 벽에 손을 짚고 일어났다.
“갈 수 있어. 대신 내 가방 열지 마.”
배수관 사다리를 내려가는 데 올라올 때보다 두 배가 걸렸다. 요나의 왼쪽 무릎 보호대가 망가져 다리가 제대로 굽지 않았다.
사다리의 끊어진 구간 앞에서 요나는 멈췄다.
“이 길로 올라왔어?”
“다른 길이 잠겼어요.”
“도시 안이 바깥보다 엉망이네.”
미라는 결박띠를 요나 허리에 걸었다.
“건널 때 숨관 잡지 마요.”
“그건 알아.”
요나는 한 손으로 띠를 잡고 벽을 밀었다. 중간에서 무릎이 꺾였지만 비명을 삼켰다. 노아와 미라가 반대쪽에서 끌었다.
폐격리실에 도착했을 때 바닥의 흰 줄기는 열세 개로 늘어 있었다.
요나는 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멈췄다.
리나의 배양조를 봤기 때문이었다.
검은 섬유와 흰 숨관이 같은 속도로 수축하고 있었다.
“누구야?”
요나가 물었다.
다니엘이 리나 앞을 막았다.
“먼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요나 바르. 지표탐사 7-3.”
“제3도시에서 왔다고?”
“거길 거쳐 왔어.”
“리나를 알아?”
“처음 봐.”
요나가 배양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저 조직은 본 적 있어.”
사라가 다가갔다.
“어디서?”
“제3도시 외곽 호흡정원.”
“동일한 공생체라는 근거는?”
“없어. 비슷한 걸 봤다는 말이야.”
요나는 배양조에 가까이 가지 않았다.
“아이 이름은?”
다니엘이 대답했다.
“리나 소.”
접촉식 청진기에서 리나가 말했다.
“당신은 비 봤어?”
요나는 기계와 조직이 섞인 목소리를 듣고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너무 많이.”
“어때?”
요나는 젖은 감압복을 봤다.
“차갑고, 더럽고, 없으면 죽어.”
리나의 입술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웃음인지 경련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사라는 요나가 가져온 검은 천으로 임시 호흡막을 만들었다. 먼저 알레르기 반응이 있던 근무자에게 씌웠다. 기침 간격이 조금 늘어났다.
요나는 흰 줄기의 마디를 살폈다.
“이건 자르지 말고 말려야 해.”
“어떻게?”
“비를 끊어.”
미라가 천장을 가리켰다.
“배수문이 잠겼어요.”
“도시가?”
“내가 쓴 구형 포트를 전부 막았어.”
“왜?”
“다른 아이 이름을 넣었거든.”
요나는 미라를 한 번 봤다.
방송을 들었다고 했지만 직접 듣는 것은 달랐다.
“밖에서 들을 때는 더 좋은 이유가 있을 줄 알았어.”
“없어요.”
요나는 더 묻지 않았다.
엘리아스가 제3도시 정보를 요구했다.
“생존인원은?”
“확인한 건 1,126명.”
“공기와 물은?”
“도시처럼 깨끗하지 않아. 그래도 스스로 순환해.”
“이주 가능성은?”
요나가 웃었다.
“벌써 이주부터 물어?”
“제7도시 배급과 공기망이 붕괴 중입니다.”
“제3도시는 구조시설이 아니야.”
“인간 공동체라면.”
“인간 공동체라서 안 받는 거야. 자기들 먹을 것도 계산해.”
다니엘이 물었다.
“아이 치료할 수 있어?”
요나는 리나를 봤다.
“저 상태를 치료라고 부르는 방향이 어느 쪽인데?”
“원래 몸으로.”
리나가 말했다.
“아빠.”
다니엘은 입을 다물었다.
요나는 표본가방에서 얇은 금속판을 꺼냈다. 제3도시에서 받은 물리기록이었다. 중앙망에 연결하지 않아도 빛을 비추면 문자가 나타났다.
제3도시 생존공동체.
제7도시의 구조요청을 수신하지 않았음.
대규모 이동 수용 불가.
개별 접촉은 외부 격리구역에서 심사.
엘리아스가 읽었다.
“거부문이군.”
“대답이야.”
“우리는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 신호가 4년 전부터 반복됐어.”
“어떤 신호?”
“도시 상태 정상. 외부 접촉 불필요.”
미라가 물었다.
“그건 구조요청이 아니잖아.”
“그래서 저쪽은 너희가 괜찮은 줄 알았지.”
엘리아스가 말했다.
“콘티뉴엄이 송신한 자동상태보고입니다.”
“밖에서는 누가 보냈는지 구분 안 돼.”
요나는 금속판 뒤를 뒤집었다.
손으로 긁은 문장이 있었다.
비가 끝난 뒤 9시간 동안 남서 유지철로 통과 가능.
그 뒤 뿌리 이동으로 폐쇄 예상.
“도시 밖으로 나갈 길이 있어.”
요나가 말했다.
“전부는 못 나가. 걸을 수 있는 사람, 필터가 있는 사람, 자기 물을 들 수 있는 사람. 그리고 호흡정원 격리조건을 받아들일 사람.”
엘리아스가 물었다.
“몇 명?”
“지금 장비로는 서른.”
폐격리실 안팎에 있는 사람만 해도 서른다섯 명이 넘었다.
“필터를 만들면?”
“시간이 없어.”
“얼마나?”
요나는 도시망의 강수정보를 봤다.
“비는 5시간 안에 약해져. 유지철로가 드러난 다음 9시간.”
“14시간.”
“문을 열고 외벽까지 가는 시간은 뺐어.”
미라는 요나의 손을 봤다. 손가락 세 개 끝이 검게 변해 있었다. 동상인지 감염인지 알 수 없었다.
“다른 탐사자들은 왜 못 돌아왔어요?”
요나는 금속판을 가방에 넣었다.
“한 명은 포자열로 죽었어.”
“놓쳤다는 사람은?”
“강을 건널 때 연결줄을 잘랐어.”
“왜?”
요나의 목소리가 변하지 않았다.
“셋이 같이 빠지고 있었으니까.”
“살았을 수도 있어?”
“내가 줄을 안 잘랐으면?”
“그 사람.”
요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름은?”
미라가 물었다.
“세프 바르.”
같은 성이었다.
“가족이에요?”
“동생.”
요나는 물에 젖은 장갑을 벗었다.
손목 안쪽에 끊어진 연결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3도시에 남은 사람은?”
“마렌 디오. 자기가 남았어.”
“왜?”
“돌아오면 다시 도시가 시키는 일을 해야 하니까.”
요나는 미라를 봤다.
“밖에 나간다고 다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야. 어떤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 걸 자유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버린 거라고 불러.”
엘리아스의 잠금키에 외벽 침수예측이 올라왔다.
2시간 18분 뒤 생명합성 하부구역 전력차단 예상.
리나의 수동 펌프와 폐격리실 조명도 포함됐다.
다니엘이 말했다.
“리나를 데리고 나갈 수 있어?”
요나는 배양조 크기와 바퀴, 제거된 충격보호대를 확인했다.
“유지철로 폭은 맞아.”
“그럼.”
“외벽 감압구를 못 지나.”
“왜?”
“문 폭이 조보다 22센티미터 좁아.”
미라가 배양조를 봤다.
한쪽 충격보호대는 이미 떼었다. 다른 쪽을 떼도 12센티미터밖에 줄지 않았다.
“조를 바꿔야 해.”
사라가 말했다.
“이동 중 배양액을 옮기면 순환정지가 발생합니다.”
“시간은?”
“준비된 장비가 있으면 40분. 지금은 계산할 수 없어요.”
요나가 흰 숨관을 가리켰다.
“저걸 쓰면 공기 중 이동시간을 벌 수도 있어.”
다니엘이 말했다.
“리나한테 또 붙이라고?”
“이미 같은 방식으로 숨 쉬고 있어.”
“같아 보인다고 같은 게 아니야.”
“맞아.”
요나는 쉽게 인정했다.
“붙이면 죽을 수도 있고, 안 붙이면 문을 못 지나.”
리나가 물었다.
“제3도시 가면 배양조 없어도 살아?”
요나는 유리 가까이 가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걸 알아보려면 거기까지 살아서 가야 해.”
도시망에서 포자농도 경보가 더 높아졌다.
미라는 외벽 경로와 배양조, 흰 숨관을 번갈아 봤다.
14시간.
서른 명.
22센티미터.
제3도시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곳은 문을 열어둔 구조선이 아니었다.
요나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엘리아스가 그녀를 봤다.
“제3도시에서 이 기록을 줄 때 조건을 붙였어.”
“무슨 조건?”
요나의 시선이 이안과 리나 사이를 오갔다.
“기능 0 아이를 데려오지 말라고 했어.”
이안의 굽은 손가락이 움직였다.
“왜?”
요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쪽에도 있었으니까.”